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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경기도 삼남길 제9길(진위고을길)

삼남대로는 조선시대 6대 대로(大路) 중 한양과 충청 · 전라 · 경상의 삼남지방을 이었던 천 리에 달하는 길이다

조선시대 육로교통의 중심축으로 과거를 보러가던 젊은 선비들이 이 길을 걸었고 삼남지방의 풍부한 물산도 이 길을 오갔다

또한 이 길은 정조께서 아버지 사도세자를 참배하기 위해 현릉원으로 행차하던 길이며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영으로 부임하던 길이고, 삼봉 정도전, 다산 정약용이 유배를 떠났던 길이며

암행어사가 된 이몽룡이 남원으로 한달음에 달려가던 길이기도 하고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의 격전지이기도 하다

*

경기도 삼남길은 과천 · 의왕 · 수원 · 화성 · 오산 · 평택을 연결하는 총거리 100km, 10개 구간으로

삼남대로의 옛 노선을 연구 고증하고, 그 원형을 최대한 따르면서

고속도로 등으로 단절된 구간 · 도보자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구간 등을 대체로로 개척하여 역사문화탐방로인 경기도 옛길 삼남길을 개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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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길은 맑음터공원에서 원균 장군묘까지의 길로 진위현 관아가 있었던 진위면사무소 · 진위천 인근의 풍광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진위향교

「흰치고개」라고 불렸던 소백치와 대백치를 지나 내리저수지 인근에 위치한 원균장군묘에 도착하는 코스로

삼남길 안내서에 거리 18.4km · 소요시간 4시간 50분으로 나와 있다

 

 

오산역 2번출구

지금은 문닫은 계성제지 오산공장 굴뚝이 옆에 있다

시점이다

 

 

 

 

오산천

경기도 삼남길 제9길 시점으로 가는 길이다

 

 

 

 

오산천

오산맑음터공원 앞이다

 

 

 

 

오산 에코리움

4층 전망대와 전시관은 지난 삼남길 8길 걷기 때 들렸기에 이번엔 통과다

 

 

 

 

경기도 삼남길 안내판

경기도 삼남길 종합안내판 옆에 제8길 · 제9길 안내판이 있다

 

 

 

 

오산맑음터공원 캠핑장

텐트 사이트와 개러반 사이트 그 밖에 입구에 매점 · 화장실 · 샤워실 · 공동취사장 등이 있다

 

 

 

 

야막리

314번 국도인 남부대로 밑을 지난 곳이다

 

 

 

 

무봉산

야막리 농로를 걸으며 봤다

 

 

 

 

수도권 채소1번지, 야막리

소나무 · 대나무 · 철골파이프 · 유리온실 등으로 시설을 현대화하여 우리나라 시설원예를 선도한 지역으로도 널리 알려졌고

진위면의 야막리와 하북2리 · 신리로 이어지는 시설원예 재배단지는 「수도권 채소1번지」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진위 오이 · 애호박은 수도권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큰 명성을 얻고 있다

 

 

 

 

천안 · 오산 · 사리 사거리 안내판

사거리에서 천안 · 오산 방면이다

 

 

 

 

사리고가교 옆 길이다

앞에 보이는 육교로 올라가야 한다

 

 

 

 

야막들사리

고가교에 올라 돌아 봤다

 

 

 

 

롯데제과 평택공장

 

 

 

 

무봉산조개들을 지나며 봤다

 

 

 

 

금호전기 평택물류센터

 

 

 

 

가곡리

무봉산 서편자락인 진위면 가곡1리 신가곡은 마을의 산과 골짜기(谷)가 아름답다(佳)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키 큰 목련이 핀 기와집을 지난다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모범, 경주 이씨 6형제

무봉산과 접한 이 마을과 인근 지역은 조선 후기 경주이씨 상서공파의 집성촌으로백사 이항복 이후, 정승과 판서를 두루 배출한 조선 최고의 명문가였다

이들은 1905년 을사늑약으로 국운이 위태롭게 되자 명문가의 특권을 버리고 신민회를 중심으로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했고

끝내 일제가 국권을 강탈하자 이회영 · 이시영 등 6형제가 재산을 모두 정리하고 만주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많은 독립운동가들을 키워냈다

일제에 투항하여 떵떵거리고 살 수도 있었지만 고집을 꺾지 않고 이들은 독립운동에 헌신하며 풍찬노숙을 마다하지 않았다

마침내 1945년 8월 15일 꿈에 그리던 해방을 맞았을 때 6형제 중 유일하게 살아서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이시영은 초대 부통령에 취임하였다

 

 

 

 

무봉산 기슭 고갯마루가 보인다

 

 

 

 

진위현길 안내판

무봉산 기슭을 넘어온 곳이다

 

 

 

 

130여 년된 느티나무 보호수

쇠퇴해가는 남사당을 일으킨 유세기 안내판 · 평택섶길 안내판이 있다

 

 

 

 

진위초등학교

'SINCE 1899'라 써있다

 

 

 

 

진위면사무소와 3 · 1운동 만세 시위지 빗돌

평택지역은 본디 진위현으로 불리던 곳으로, 원래는 「진위」가 이 지역을 대표하는 지명이었다

일제강점기에 경부선 평택역을 중심으로 근대 도시가 발달하고 군청이 평택역으로 옮겨가면서 읍치였던 진위는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고

결국 진위라는 지명은 평택의 한 지역을 지칭하는 의미로 축소되었다

진위관아 터는 지금의 진위면사무소와 진위초등학교 자리에 있었다. 관아 남쪽에는 읍내장과 주막거리가 번창했다고 전해진다

수원에서 불과 한나절 거리에 불과한 「진위주막」은 삼남대로의 요지이자 많은 여행객들이 쉬어가던 곳이었다

 

 

 

 

진위현청 터이자 독립만세운동 자리 빗돌

진위군 북면(현 진위면) 독립만세 시위는 봉남리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3월 11일 봉남리에서 천도교인들이 주축이 되어 시위하였고 3월 21일에는 봉남리와 야막리 주민 500여 명이 면사무소를 습격하였다

3월 31일에도 봉남리 주민 400여 명이 면사무소에서 대대적인 시위를 전개하였다

 

 

 

 

평택섶길 무봉산둘레길 안내판

 

 

 

 

진위향교

1398년 창건된 진위향교는 병자호란 때 불에 타 소실되어 위패만 모셔두고 제향만 올렸지만

1644년 현령 남두극이 대성전을 중수하면서 다시 격을 갖추었다

진위향교는 전학후묘의 형태로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한 27명의 성현의 위패를 모셨고 유림에서 매년 봄과 가을 석전제를 올리고 있다

진위향교는 특히 풍수지리가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진위천, 남쪽으로는 퇴봉산을 안산으로 하여 문필봉과 무봉산 남쪽 줄기의 부산을

동서로는 진위천의 충적지인 장안평을 바라보고 있어 풍수의 기본적인 배산임수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이처럼 진위향교는 전국 향교 중에서도 풍수지리가 가장 으뜸인 것으로 유명하다

 

 

 

 

명륜당(明倫堂)

 

 

 

 

대성전(大成殿)

공자를 비롯한 27명의 성현의 위패를 모셨고 유림에서 매년 봄 · 가을 석전제를 올리고 있다

큰 규모의 건물은 아니나 18세기 기법을 잘 보여준다

 

 

 

 

진위천 다리를 지난다

 

 

 

 

진위천

시민유원지가 있는 진위천 서쪽 방향이다

 

 

 

 

삼남길 이야기 / 평택의 나루터 이야기

평택지역은 일찍부터 해상교통이 발달하였다

고려시대 이후 안성천의 대표적인 포구인 안성천의 군문포는 경기도 진위현과 충청도 평택현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였고

현덕면 신왕리 신왕나루는 상업활동이 활발했던 포구이다

이밖에도 청북면 토진리의 토진포 · 청북면 삼계리 웅포 · 청북면 현곡리 신포 등이 평택의 대표적인 나루터이다

 

 

 

 

삼남길 이야기 / 조선초기 개혁의 상징, 정도전

평택시 진위면 은산리 산대마을은 봉화 정씨 동족마을이다

봉화 정씨는 조선개국공신이며 조선왕조의 설계자로 칭송받던 삼봉 정도전의 후손들이다

정도전의 후손들은 기동 · 방촌 · 평동 · 새터 등 8개 마을에 크고 작은 동족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진위향교

진위천 건너에서 봤다

 

 

 

 

옛날 막걸리

30년 전통의 통막걸리집이다

 

 

 

 

150여 년된 느티나무 보호수 정자 쉼터

마산4리 입구에 있다

 

 

 

 

평택 진위 3산업단지 조성공사 중이다

공사중이라 이곳에서 길을 잠시 잃었었는데 사진의 왼쪽으로 가면 된다

 

 

 

 

부부화가네 안내판

한국화가 예원 김은숙 · 서양화가 이태용의 집이다

사진에 보이는 분이 서양화가 이태용이다

 

 

 

 

단양우씨 세거비(丹陽禹氏世居碑)

왼쪽에 사당 · 묘소는 뒷편에 있다

 

 

 

 

예스티 앞을 지난다

 

 

 

 

삼남길 리본

덕암산 들머리가 있는 317번 국도 생터통로를 지난 곳이다

 

 

 

 

동막마을

 

 

 

 

삼남로 · 동막길 사거리

 

 

 

 

카페 마로

부락산 쉼터로 가는 들머리이다

 

 

 

 

평안 해오름길 종합안내도

부락산 쉼터 앞에 있다

 

 

 

 

평택의 하얀고개

부락산과 덕암산을 잇는 생태통로로 고지도를 보면, 이 고개에 흰치고개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그 중에서도 큰흰치고개는 평택에서도 가장 험로였다

험로를 넘어 한참 걸어 내려가다가 첫 번째 만나는 주막이 도일동과 장안동의 경계에 있었던 감주거리주막이었다

지친 여행자에게는 감주거리부막에서 마시는 시원한 막걸리 한 잔이 꿀맛이었을 것이다

 

 

 

 

하얀고개에서 바라본 남쪽 방향이다

 

 

 

 

삼남길 이야기 / 평택을 거쳐간 이몽룡

삼남대로는 춘향이가 이몽룡을 애타게 기다리던 길이자 암행어사가 된 이몽룡이 남원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던 길이며

이몽룡이 춘향을 구해 다시 한양으로 올라가며 평택지역의 풍광을 즐겼던 길이다

그래서 춘향전을 사랑했던 민중들은 삼남대로를 「춘향이길」이라는 애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백현원과 맹사성의 공당문답

조선 초의 명 재상 맹사성이 비를 만나 백현원에서 잠시 묵었을 때 그를 알아보지 못한 젊은 선비가 공당문답을 하자고 하였다

맹사성이 "무슨 일로 한양에 가는 공"하니, 선비가 "과거시험 보러 간당"이라 답했고

이에 맹사성이 "그러면 내가 좀 도와줄공?"이라 묻자 맹사성의 남루한 행색을 본 선비는 "아니꼽당"하고 면박을 주었다

그러나 과거급제 후에 좌의정 맹사성이 다시 그 선비에게 "어떠한공?"하였더니 선비가 크게 부끄러워하며 "죽고싶당"하였다 한다는 내용이다

 

 

 

 

 

해주정씨 삼옥공 정감묘 안내판

 

 

 

 

 

자작나무 · 진달래

 

 

 

 

 

진달래

 

 

 

 

 

산불감시초소

삼남길은 아래쪽에 있는데 올라와 봤다

 

 

 

 

 

평택 아파트단지와 건설 중인 단지가 보인다

 

 

 

 

 

덕암산 날머리다

 

 

 

 

 

원릉군기념관

 

 

 

 

 

원릉군기념관

시간이 늦어서인지 문은 닫혀있었다

 

 

 

 

 

원균 장군묘

원균(元均 · 1540~1597)의 자는 평중(平仲)으로 조선 선조 때의 무신이다

무과에 급제한 후 선전관을 거쳐 조산만호 부령부사를 지냈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우도 수군절도사로서 처음 옥포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에게 구원을 요청해 왜선 30척을 물리쳤다

그후 합포해전 · 적진포해전 등 여러 차례에 걸친 크고 작은 해전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선조 30년 칠천량해전에서 전사하였다

선조 36년 권율 · 이순신과 함께 선무 1등 공신에 추록되었다

 

 

 

 

모선재(慕先齋)

조선 선조 때 장군인 원릉군 원균을 모신 사당이다

1991년 7월 11일 평택시 향토유적 제6호로 지정되었다

 

 

 

 

경기도 삼남길 제9길 · 제10길 안내판

삼남길 제9길 마침점 · 제10길 시점이다

 

 

 

 

내리 버스정류장

버스 배차 간격이 길어 30분만에 평택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마침점이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19.7km, 소요시간 5시간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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