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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경기도 삼남길 제7길(독산성길)

삼남대로는 조선시대 6대 대로(大路) 중 한양과 충청 · 전라 · 경상의 삼남지방을 이었던 천 리에 달하는 길이다

조선시대 육로교통의 중심축으로 과거를 보러가던 젊은 선비들이 이 길을 걸었고 삼남지방의 풍부한 물산도 이 길을 오갔다

또한 이 길은 정조께서 아버지 사도세자를 참배하기 위해 현릉원으로 행차하던 길이며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영으로 부임하던 길이고, 삼봉 정도전, 다산 정약용이 유배를 떠났던 길이며

암행어사가 된 이몽룡이 남원으로 한달음에 달려가던 길이기도 하고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의 격전지이기도 하다

*

경기도 삼남길은 과천 · 의왕 · 수원 · 화성 · 오산 · 평택을 연결하는 총거리 100km, 10개 구간으로

삼남대로의 옛 노선을 연구 고증하고, 그 원형을 최대한 따르면서

고속도로 등으로 단절된 구간 · 도보자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구간 등을 대체로로 개척하여 역사문화탐방로인 경기도 옛길 삼남길을 개통하였다

*

제7길은 세마교에서 출발하여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물리친 권율 장군의 이야기가 내려오는 독산성에 올라

삼림욕장과 백제고찰 보적사을 거쳐 금암동 고인돌 공원과 은빛개울공원에 닿는 길이다

삼남길 안내서에 거리 8.2km · 소요시간 2시간으로 나와 있다

 

 

뱅뱅이 버스정류장

패션회사인 뱅뱅 때문에 뱅뱅이라 하였나 보다

 

 

 

 

솟대 · 삼남길 6길 · 세람교 안내판

세마교 앞이다

 

 

 

 

세마교

세마대가 있는 독산성이 보인다

 

 

 

 

경기도 삼남길 제7길 독산성길 안내판

황구지천을 세마교로 건너 오산화성고속도로 밑이다

 

 

 

 

화성시 · 오산시 경계 안내판

 

 

 

 

삼남길 들머리 안내판

화성시와 오산시 경계 안내판을 지나 첫 번째 사거리 왼쪽이다

 

 

 

 

삼남길 리본

예전엔 도로로 걸었는데 좁지만 새로운 숲길이다

 

 

 

 

좁은 숲길로 잠시 오르면 산림욕장으로 가는 포장도로와 만난다

산림욕장은 포장도로 왼쪽으로 가야한다

 

 

 

 

삼남길 이야기 / 걷기와 건강 안내판

우리나라 국민들 역시 걷기 등의 체육활동으로 의료비 절감 및 생산성 향상 효과가 1인당 연간 46만 원 정도에 이른다는 연구가 보고된 바 있다

이를 20세 이상 전체 인구로 환산하면 연간 16조원 가량 된다

건강도 찾고, 살림도 살찌우는 길이 바로 걷기여행에 있다

 

 

 

 

신선교

 

 

 

 

평상이 있는 쉼터

 

 

 

 

삼남길 안내판

흙길에 가끔 매트가 깔려 있어 편하다

 

 

 

 

독산성 산림욕장

산림욕하기 편하게 벤치가 많이 있다

 

 

 

 

오산 독산성과 세마대지 / 사적 제140호

오산 독산성과 세마대지는 1.095m의 테뫼식 산성과 산 정상부에 복원되어 있는 권율 장군의 승전과 관련된 장대를 말한다

독산성은 독성산성이라고도 불리는데 오산 · 수원 · 화성에 펼쳐진 평야 한가운데 우뚝 솟아 주변을 두루 살필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에 자리하고 있다

독산성은 백제시대에 처음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도 지속적으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의 승전으로 군사적 중요성이 강조되었고 여주 파사성 · 용진 토성 등과 함께 도성을 방어하는데 중요한 근거지가 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임진왜란 중인 선조 27년(1594)에 경기도 관찰사 유근이 백성과 함께 4일 만에 고쳐 지었으며

임진왜란 이후 선조 35년(1602)에 방어사 변응성이 석성으로 다시 지었다

정조 16년(1792)에는 약 70일간 새로 짓는 것과 비슷하게 큰 규모로 공사를 했고 1796년(정조 20) 수원 화성이 완공된 이후 협수체제를 구축하였다

산꼭대기에는 세마대가 복원되어 있으며, 동문 안에는 보적사가 있다

내부 시설물로는 성문 5개 · 치(雉) 8개 · 우물 1개 · 수로 1개가 남아 있다

 

 

 

 

동문

평거식 성문으로 천장석과 바닥에 성문을 고정시켰던 문확석이 각각 두 개씩 남아 있다

「화성지」의 기록에 따르면 문루와 이름이 없다. 동문은 사람만 다니던 문으로 성문 안쪽에 보적사가 있다

동문은 1982년에 정비하였다

 

 

 

 

보적사(寶積寺) 3층석탑

독산성 동문 안에 있는 사찰로 지어진 때를 알 수 있는 옛 문헌이나 유물은 없다

임진왜란 이후 여러 차례 고쳐 지어졌고 용주사를 세울 당시 약사여래를 모신 약사전과 요사 3동이 다시 지어졌다고 한다

1831년 편찬된「화성지」에 따르면 보적사는 21칸 반 규모였다고 한다

이후 1902년 약사전을 허물고 새로 지었으며, 1987년에 고쳐 지으면서 대웅전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현재는 석가여래와 약사여래, 지장보살을 모신 대웅전과 요사 2동과 3층 석탑이 있다

보적사는 1978년 세마사로 이름을 변경하였다가 1996년 다시 보적사로 비꾸었다

*

보적사라는 이름에는 전해져 오는 전설이 있다

옛날 삶이 어려운 노부부가 쌀이 2되밖에 남지 않아 굶어 죽을 지경에 이르자

구차하게 사느니 부처님께 공양하기로 마음을 먹고 공양한 후 집에 돌아오니 곳간에 쌀이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이후 열심히 공양하면 보화가 쌓이는 신통력 있는 사찰이라 하여 보적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보적사 요사채 주련

 母年一百歲(모년일백세) 어머니 나이 백세라도

常憂八十兒(상우팔십아) 팔십되는 아들 항상 걱정하시네

欲知恩愛斷(욕지은애단) 그 은혜와 사랑 끝날 때를 알고 싶은가

命盡始分離(명진시분리)목숨이 다해야 비로서 끝난다네

 

 

 

 

세마대로 오르는 갈림길이다

먼저 세마대로 올라 이동식을 하고 독산성을 한 바퀴 돈 후 삼남길을 걷기로 했다

 

 

 

 

세마대(洗馬坮)

세마대는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의 승전과 관련하여 성 안 꼭대기에 세워진 장대로 일제강점기와 6.25를 거치면서 파괴되었다가

1957년 8월 15일 민관으로 구성된 '세마대중건위원회'에 의해 팔작지붕을 올린 정면 3칸 · 측면 2칸의 규모로 복원되었다

북쪽에는 세마대(洗馬臺)라는 현판이, 남쪽에는 세마대(洗馬坮)라는 현판이 걸렸는데 이 중 남쪽 현판은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글씨를 썼다

1831년에 편찬된 「화성지」에는 세마대와 관련하여 도원수 권율이 독산성에 들어갔다

성안에는 샘이 적어 오래 지키기에 어려웠다. 적이 염탐하여 그것을 알고서는 급히 성을 공격하고자 하였다

권율은 군사에게 적을 향하여 말을 세우고 쌀을 흩날리게 부어 씻게 하였다

그것을 본 왜적이 성안에 물이 많이 있다고 생각하고 마침내 포위를 풀고 갔다

훗날 그곳을 세마대라 일컬으니 곧 지금의 장대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

아래는 예전 안내판의 글이다

선조 25년(1592) 12월에 전라도 관찰사 겸 순변사였던 권율이 근왕병 2만을 모집하여 북상하다가 이 성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그때 가토가 이끄는 왜군 수만 명이 이곳을 지나다가 이 벌거숭이 산에 물이 없으리라 생각하고 물 한 지게를 산 위로 올려 보내 조롱하였다

그러자 권율은 물이 풍부한 것처럼 보이려고 백마를 산위로 끌고 가 흰쌀을 말에 끼었으며 목욕시키는 시늉을 하였다

이를 본 왜군은 산꼭대기에 말을 씻길 정도로 물이 풍부하다고 오판하고 퇴각하였다 한다

이때 말을 씻었던 높은 대를 세마대라 하며 1957년 복원하였다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의 승전과 관련하여 성 안 꼭대기에 세워진 장대로 일제강점기와 6 · 25를 거치면서 파괴되었다가

1957년 8월 15일 민관으로 구성된 '세마대 중건위원회'에 의해 팔작지붕을 올린 정면 3칸 · 측면 2칸의 규모를 복원되었다

 

 

 

 

세마대(洗馬坮) 현판

李大統領閣下 揮毫 (이대통령 각하 휘호)라 써있다

 

 

 

 

동탄

66층 메타폴리스아파트가 희미하게 보인다

 

 

 

 

남문

멀리 두 개의 치(雉)가 보인다

 

 

 

 

남문

독산성의 정문으로 진남루(鎭南樓)라는 문루가 있었다

1831년 편찬된 「화성지」의 기록에 따르면 문루의 규모는 6칸이었으며 남문은 영조 · 정조 · 순조 때 고쳐 지었다고 한다

이 문으로는 말과 소가 다닐 수 있었으며 독산성의 주 출입구 역할을 하였다

지금의 모습은 파손되어 있던 것을 1979년 복원하여 정비한 것이며 바닥에 성문을 고정시켰던 문확석 2개가 남아 있다

(문확석이 하나만 보인다)

*

삼남길은 이 문을 나가 왼쪽 길로 따라가야 하지만 성을 한 바퀴 돌고 가기로 했다

 

 

 

 

석산

e편한세상오산세교아파트가 있다

 

 

 

 

삼남깅 이야기 / 정조의 효심이 담긴 독산성

영조-사도세자-정조 3대가 찾은 독산성 ·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는 온양온천에 행차했다가 환궁하던 중

장마 때문에 독산성에서 하루를 묵고 백성들에게 몇 가지 이야기를 남기고 갔습니다

그로부터 30년 뒤 풍수지리의 문제로 독산성을 없애야 한다는 논란이 일어났지만

효심이 깊었던 정조는 아버지 뜻을 기리기 위해 오히려 독산성을 더 고쳐 쌓도록 명하여 지금의 독산성의 모습이 갖추어 졌다

 

 

 

 

냉이를 캐는 사람들이 많다

 

 

 

 

서오산JC 방향

황구지천의 물줄기가 보인다

 

 

 

 

랜드마크인 일진전기 타워가 있는 안녕동 방향

독산성은 오산 · 수원 · 화성에 펼쳐진 평야 한가운데 우뚝 솟아 주변을 두루 살필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에 자리하고 있다

 

 

 

 

보적사까지 독산성을 한 바퀴 돈 후 다시 남문으로 가는 빅터

 

 

 

 

남문을 나와 독산성 세마대 산문으로 가는 길이다

 

 

 

 

독산성 세마대 산문

 

 

 

 

동탄어린이천문대

독산성 세마대 산문을 나와 차길을 건너 음식점 옆길로 잠시 걸으면 있다

 

 

 

 

독산성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 방향으로 가다 봤다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 토끼굴이다

 

 

 

 

토끼굴을 나와 여계산으로 오르는 길이다

 

 

 

 

왼쪽 철계단은 오산휴게소로 통하는 계단인데 다니지 못하게 나무 등으로 막아놓았다

 

 

 

 

애기바위

애기바위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임진왜란 때 오산시 금암동으로 들어온 왜군은 이 마을의 지형이 큰 인물이 태여날 지형임을 알고 마을의 아기와 임산부를 모두 죽이라고 명령을 내린다

이 때 한 부인은 아들을 지키기 위해 아기를 바위 밑에 감추었지만 울음소리를 들은 왜군이 기어코 바위를 톱으로 잘라 아이를 살해하고 말았다고 한다

 

 

 

 

삼남길 · 애기봉 가는길 안내판

 

 

 

 

여계산 정상

체육시설 등이 앞에 있다

 

 

 

 

세교터널 생태통로를 지난다

 

 

 

 

당집 터(사각정자)

금암동 사람들이 산신제를 지내던 당집 터이다

예전의 당집은 나무기둥에 흙벽을 둘렀으며 이엉으로 지붕이 되어 있었다

해마다 지붕을 새로 했는데, 매년 이렇게 하기 어려워 1967년 시멘트벽을 하고 기와를 얹어 새로 지었다

새교1지구 개발로 인해 2003년 이후 산신제의 명맥이 끊겼으며, 당집도 헐리게 되었다

당집이 헐린 자리에 지금의 정자가 지어졌다

 

 

 

 

1967년 지어진 금암동 당집

금암동산신제는 가을에 추수를 끝내고 날을 잡아 지냈는데 대개 음력 10월 초하룻날 치러졌다

산신제는 금암동 마을에서 제일 신성시하던 행사로 매년 엄숙하게 지냈으며 2003년 마을이 해체되기 전까지 이어지다 사라졌다

사라진 산신제는 2013년부터 매년 독산성문화제 때 금암향우회에 의해 재현되고 있다

*

안내판에 있는 사진이다

작은 사진에 보호용 아크릴판이 덮여 있어 사진이 희미하다

 

 

 

 

금암리 지석묘군 제6호

개석식으로 추정되며 크기는 185cm×127cm×67cm이고 모양은 장방형이다

금암동 고인돌은 한강 이남에서 처음 발견된 고인돌로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높다

 

 

 

 

금암동 당우물 터

예전 금암동 마을의 당우물 터이다

당우물은 금암동 사람들이 신성하게 생각하던 우물로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산신제를 지내기 전에 우물을 청소하고 제관과 당주는 일 주일간 이 물로 목욕재계하며 경건하게 제를 준비했다

그리고 이 우물 물로 조라(제주 祭酒)를 담갔다

2003년 금암동 마을이 사라지고 개발이 시작되면서 우물이 없어진 것을 2016년 〈유아숲체험교실〉을 조성하며 당우물 터에 다시 우물을 만들었다

 

 

 

 

고인돌 유아 모험놀이터를 나왔다 

 

 

 

 

은빛개울공원 정자

 

 

 

 

경기도 삼남길 제7길 독산성길 안내판

마침점인 은빛개울공원에 있다

 

 

 

 

오산대역로 · 수목원로 사거리

경기도 삼남길 제8길 안내판이 왼쪽에 있다

 

 

 

 

오산대역

마침점이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13.5km, 소요시간 6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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