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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고색향토문화전시관

고색향토문화전시관은 고색동 수원산업3단지 앞 중보들공원에 위치하고 있으며

수원시 향토유적 제9호인 고색동 민속줄다리기와 고색동 도당 ·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고색농악을 테마로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미래 비젼을 제시하는 상설전시 · 문화학교 평생학습프로그램 · 열린(인문학) 강의

체험프로그램 · 기획전시 · 휴식 공간 제공등 문화적 혜택을 드리고자 마련된 공간이다

 

 

고색향토문화전시관

왼쪽 카페 · 오른쪽 전시실이다

 

 

 

 

고색향토문화전시관

 

 

 

 

고색향토문화전시관 전시실

 

 

 

 

고색향토문화전시관 전시실

고색동역사 · 고색동도당 · 고색농업협동조합 · 줄다리기 등이 있다

 

 

 

 

고색동역사 / 고색동이야기

고색동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신석기시대 이전부터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색의 지명은 도고산 밑에 있다하여 고색골 또는 고색이라 불렀다는 설과 먼 옛날 바닷물이 범람하여 이주를 하였다가

바닷물이 빠져나간 후에 고향(古 옛 고을)을 찾아와(索 찾을 색) 살았다는 의미로 고색(古索)이라는 지명이 생겼다는 설이 있다

우리 지역은 조선시대에 수원 용복면에 속해 있었으며 옛 지명으로는 고색이 · 뒷벌 · 건너말(작은말) · 비구재

마룻돌 · 배다리 · 꼼짝우물 · 매방아 · 청나무 · 오정 · 움말 · 중보평 · 진들 · 작삼말 · 대보뜰 · 솔대백이 등이 있는데

다양한 이름만큼 고분 · 활터 · 가마터 · 우물 터 · 매방앗돌 등 다양한 문화유산들이 전해지고 있다

또한 고색동은 노란 찰진 흙이 많아 벽돌을 만드는 공장이 많았고, 비가 오면 신랑 · 각시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산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다

또한 황토에서 자란 쌀은 전국에서 밥맛이 좋기로 유명하였다

 

 

 

 

고색동의 역사

조선시대 · 수원부 용복면 지역 / 1906년 수원군 용복면 고색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용복면 고색리 · 중보평 · 남부면 지장동을 합쳐 고색리라 하고 안용면 관할

1949년 수원읍이 수원시로 승격될 때 화성군 인용면 고색리

1963년 수원시 평동에 편입되어 고색동으로 개칭 / 1988년 구제 실시로 권선구 관할

 

 

 

 

고색동 옛 사진전 / 1980년 9월 19일 세평지하도

 

 

 

 

대한민국 농협을 만든 고색농업협동조합

고색리 농업협동조합(지금의 고색영농조합)은 대한민국 최초의 농협으로 1953년 양봉식 초대 조합장을 주축으로 설립되었다

1957년(단기 4290년) 대법원 등기 제1호로 현금 및 현물 출자 구좌를 받아 조합을 활성화 시켰고

신용사업 · 경제사업 · 공동구매 · 혼상구 구비 · 공동 영농 작업 · 구판장 운영 · 정미(정맥)소 운영 등 농촌 잘살기 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고색농업협동조합의 영향으로 전국 13만여 개의 이동조합(里洞組合)이 설립되었고

1970년에 이동조합을 시 · 군 단위로 합병시켜 현재의 농협이 태동되었다

고색농업협동조합은 강제 합병 법안에 의해 1972년 수원 단위농협에 합병되었지만

자체적으로 출자 및 이용고 배당을 해오다가 고색영농조합으로 새롭게 태여났으며

2013년 현재 133명의 조합원과 9천여 주의 출자 구좌로 운영되고 있다

 

 

 

 

조합원명부

(사)고색개발위원회(고색큰말영농조합)에서 원본을 제공받아 복사본을 제작하여 전시하고 있다

 

 

 

 

고색동 민속줄다리기(코잡이놀이)

고색동 민속줄다리기놀이는 대표적인 줄다리기 중의 하나이다

2003년 고색동 코잡이 놀이 및 도당으로 고색동 도당과 함께 수원시 향토유적 제9호로 지정되었다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신라시대 이전부터 행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1796년 수원화성 축성 이후에는 정월 대보름을 맞이하여 양반 계층과 농민이 모두 모여

일 년 농사의 풍작을 기원하고, 액을 막으며, 동네의 평안과 마을의 풍년을 기리는 의미로 이루어졌다

1900년대에는 화성 · 태안 · 안산 · 수원 등 인근 마을 30여 개의 두레패가 성황을 이루었다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각 마을의 두레패를 집집마다 나누어 대접했기 때문에 줄다리기가 끝나면 마을의 쌀이며 간장 · 된장 등이 바닥날 정도였다고 한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4년까지 명맥이 끊겼다가 1995년에 이르러 동민 및 청년회를 중심으로 복원하여

현재는 《고색동 민속줄다리기(코잡이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고색동 민속줄다리기(코잡이놀이) 모형

 

 

 

 

고색동 도당(수원시 권선구 고색동 381-4,13)

고색동 코잡이 놀이와 함께 수원시 향토유적 제9호로 지정된 고색동 도당은

마을사람들의 정신적 구심이자 고색동 민속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오고 있다

정월 대보름에 줄다리기가 시작되면 도당에 들러 도당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일 년 농사의 풍년을 위한 당제를 지낸다

음력 10월 초에도 길일을 택하여 당제를 지내거나 마을의 액운 및 우환이 생기면 대규모 도당굿을 벌인다

고색동 도당은 일제강점기에 수인선 철로가 부설되면서 1937년 현재 위치로 자리를 옮겼다

 

 

 

 

고색동 도당 할아버지와 할머니

일 년 농사의 풍년을 위해 지내는 당제이다

 

 

 

 

전통방앗간

방앗간은 사람과 자연과 과학이 만나는 어울림의 공간이다

주로 시골의 집 안이나 사람들이 이용하기 편리한 곳에 있다

방아를 어떻게 작동시키느냐에 따라 디딜방아 · 통방아 · 물레방아 · 연자방아로 나뉜다

디딜방아는 사람의 힘으로, 연자방아는 동물의 힘으로, 통방아와 물레방아는 물의 힘으로 움직였다

사람과 자연과 과학의 혁신적 만남, 이것이 호기심 많은 사람들을 방앗간으로 모이게 한 힘이다

 

 

 

 

고색동의 오늘

고색동은 변화와 성장속에서도 끊임없이 자연과 전통의 보존을 추구했다

이는 고색동뿐만 아니라 넓게 나아가 수원을 이끄는 주요한 핵심이다

상생과 어울림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머물게 하는 곳 · 오늘날 고색의 모습이다

*

고색의 자연

고색동은 물이 풍부한 평야지대로서 자연친화적인 지역이다

고색의 사계절은 각종 철새의 낙원으로 알려져 있다

*

고색의 전통

고색동은 도시화와 함께 향토색이 짙게 남아있는 지역이다

전통 축제와 더불어 각종 문화유산들이 전해져 내려온다

*

고색의 발전

고색동은 개발이 활발한 서수원권에 위치한 지역이다

첨단산업과 각종 교통의 편리로 미래의 수원을 이끌어간다

 

 

 

 

고색동의 봄 · 여름 · 가을 · 겨울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으며, 파릇한 새싹들이 돋는다

고색의 봄은 따뜻하다

그 따뜻함으로 사람들의 얼었던 마음을 녹이고, 마음을 하나로 모은다

 

 

 

 

여름

푸르른 녹음이 짙어지는 여름이 되면 누구나 시원한 나무 그늘을 찾는다

사람들은 그늘 아래서 삶의 여유를 찾아 밝은 웃음을 마주한다

 

 

 

 

가을

들판에는 추수가 한창이다

한가위가 되면 사람들은 풍악을 울리며 일 년의 수확에 감사한다

넉넉한 인심에 한껏 멋이 난다

 

 

 

 

겨울

한 해를 정리하는 기간으로 자연은 휴식을 취하고 사람들은 집에 모여 앉아 이야기꽃을 피운다

고색의 겨울은 새로운 시작이며, 미래를 향해 발돋움할 준비를 한다

 

 

 

 

고색동의 새로운 미래

긍정적이고 행복한 미래를 주도하는 고색동은 새로운 도시 문화를 만들어가는 복합 문화 공간이다

고색동이 이끌어가는 효율적인 균형 발전은 창조적 도시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자연과 전통을 보듬는 어울림의 공간이며

특히 이곳에 머무는 모든 사람에게 미래지향적 전망을 제시하는 아름다운 도시 공간이다

*

미래의 가치를 위한 한걸음

현대사회는 개발과 보존이라는 상반된 가치로 인해 많은 갈등과 분열을 경험했다

고색동은 이러한 갈등과 분열을 넘어 상생과 조화라는 새로운 가치를 실현하고자 한다

특히 고색산업단지는 지역 문화를 보존하고, 삶의 터전을 향상시키며 미래지향적 가치를 소중히 여김으로써 행복을 만들어가고자 한다

 

 

 

 

고색동 미니어처

황구지천과 서호천이 감싸고 있다

 

 

 

 

자랑스러운 우리의 가락, 고색농악

한민족은 '농악'을 태초부터 하늘과 인간을 화합하는 신앙의 역할로 사용하였다

또한 꾕꽈리 · 징 등의 쇳소리로 잡귀를 몰아내고, 전투와 사냥을 위해 북과 함께 사용하기도 했다

농악은 상고시대 이전에 자연적으로 발생되었으며 '고색전통농악'은 일제강점기의 민족문화 말살정책에도 불구하고 명맥을 꿋꿋이 이어 왔다

고색농악(풍물패 · 두레패)은 고색 지역의 모든 민족 행사에 근간이므로 농악이 없으면

자랑스러운 고색동 민속줄다리기 · 당제사(도당굿) · 지신밟기 등을 유지할 수 없다

고색전통농악은 수원 화성 가락의 대표 가락으로 길가락(길군악) · 고사가락(지신밟기 · 당제사) · 다드래기 · 상모가락 · 춤가락 · 두레가락(농사)

줄다리기 가락 등 모든 가락이 상쇠를 통해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며, 우리가 배우고 지켜나가야 할 고색의 중요한 문화재이다

 

 

 

 

고색동 지역주민들이 봉사 · 운영하는 카페다

카페에서 발생하는 수익금은 지역사회에 환원된다고 써있다

전시실 맞은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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