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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경기도삼남길 제5길(중복들길)

삼남대로는 조선시대 6대 대로(大路) 중 한양과 충청 · 전라 · 경상의 삼남지방을 이었던 천 리에 달하는 길이다

조선시대 육로교통의 중심축으로 과거를 보러가던 젊은 선비들이 이 길을 걸었고 삼남지방의 풍부한 물산도 이 길을 오갔다

또한 이 길은 정조께서 아버지 사도세자를 참배하기 위해 현릉원으로 행차하던 길이며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영으로 부임하던 길이고, 삼봉 정도전, 다산 정약용이 유배를 떠났던 길이며

암행어사가 된 이몽룡이 남원으로 한달음에 달려가던 길이기도 하고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의 격전지이기도 하다

*

그 중 경기도 삼남길은 과천 · 의왕 · 수원 · 화성 · 오산 · 평택을 연결하는 총거리 100km, 10개 구간으로

삼남대로의 옛 노선을 연구 고증하고, 그 원형을 최대한 따르면서

고속도로 등으로 단절된 구간 · 도보자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구간 등을 대체로로 개척하여 역사문화탐방로인 경기도 옛길 삼남길을 개통하였다

*

제5길은 서호공원을 시점으로 수원시와 화성시의 경계인 배양교에 이르는 길로

삼남길 안내서에 거리 8km · 소요시간 2시간으로 나와 있다

 

 

화서역

시점이다

 

 

 

 

화서역

덕영대로에서 서호공원으로 들어가는 육교에서 봤다

 

 

 

 

새마을지도자 연수원 터 비

1973년 4월부터 1983년 3월까지 새마을 국민교육을 실시한 곳으로

일 주일 내외의 합숙교육을 총 550회 실시 총 55,851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새싹교

경기도 삼남길 4길 종점 · 5길 시점이다

 

 

 

 

경기도 삼남길 제5길(중복들길) · 수원팔색길 안내판

삼남길은 오른쪽 매트가 깔린 길이다

 

 

 

 

서호(축만제) 민물가마우지

겨울 철새인 민물가마우지가 텃새화되면서 서호 인공섬에 서식하고 있다

 

 

 

 

조류전망대 · 안내판

민물가마우지 외에 큰기러기 · 쇠기러기 · 뿔논병아리 · 물닭 · 쇠백로 · 흰뺨검둥오리 등이 있다

어류로는 한국 고유종으로 서호에서만 발견된 잉어과의 「서호납줄갱이」가 살았는데

현재는 멸종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고, 유일한 표본은 미국 시카고 필드 자연사박물관에 있다

 

 

 

 

민물가마우지

보통 새들은 경계심이 강해 가까이 접근하면 날아가는데 이곳 민물가마우지는 집단이어서인지 태평하다

 

 

 

 

민물가마우지

 

 

 

 

서호 가마우지 서식지와 여기산 백로 서식지

서호천 가운데 떠있는 인공섬은 사람의 발길이 제한된 철새들의 낙원으로 자리잡고 있다

수많은 민물가마우지 둥지에서 떨어지는 배설물들은 때로 섬의 90%이상을 차지하는 아까시나무를 포함한 초목들의 위를 하얗게 덮기도 한다

또한 여기산은 해발 50여 미터의 자그마한 야산으로 중백로 · 쇠백로 · 해오라기 · 황로 · 왜가리가 서식하고 있는 백로 서식지가 있다

이처럼 도심지 가까운 곳에 백로 서식지가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은 서호와 서호천에서 활발한 먹이활동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백로는 2급수 이상에서만 먹이활동을 하는데 이를 통해서도 서호와 서호천의 자연환경이 그만큼 우수하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서호저수지 수질정화 시설 건물

꼬리명주나비 서식지 안내판이 옆에 있다

 

 

 

 

꼬리명주나비 서식지 안내판

이곳은 도심 속 자연생태공간으로 꼬리명주나비가 서식할 수 있도록 조성한 곳이다

쥐방울덩굴은 꼬리명주나비의 먹이 식물이다

 

 

 

 

서호천 가운데 있는 인공섬

사람의 발길이 제한된 철새들의 낙원으로 자리잡고 있다

수많은 민물가마우지 둥지에서 떨어지는 배설물로 아까시나무를 포함한 초목들이 하얗게 보인다

하지만 녹음이 짙어지는 계절이 되면 푸르러진다

 

 

 

 

서울대 작물시험장

 

 

 

 

서호 느티나무

바람으로 힘들겠지만 그로 인해 수형이 멋지다

 

 

 

 

서호 소나무

 

 

 

 

축만제(祝萬堤) 빗돌

"정조 23년(1799) 축만제를 화성의 서쪽 5리의 평지에 축조한다

축만제는 길이 1246척 · 너비 720척 · 높이 8척 · 두께 7척 5푼 · 깊이 7척 · 수문 2개가 설치된 저수지로

이를 통해 농업용수의 혜택을 받은 전답은 232섬지기에 이른다

축만제는 농업용 저수지외에도 낙조와 잉어가 유명하였으며, 특히 잉어는 약용으로써 궁중에 진상되었다"

 

 

 

 

축만교

서호(축만제) 수문이 밑에 있다

경기도 삼남길 제5길은 서호에서 흐르는 서호천을 따라 수원시와 화성시의 경계인 배양교에 이르는 길이다

 

 

 

 

서시의 눈썹에서 유래한 항미정

서호의 수문 옆에 자리한 항미정의 이름은 송나라의 대문호인 소식(蘇軾)이 중국 항주의 태수를 지낼 적에

항주를 대표하는 절경인 서호(西湖)가 서시(西施)의 눈썹처럼 아름답다고 말했던 것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서시는 중국 월나라 미인으로 월나라 왕 구천(勾踐)의 신하인 범려(范蠡)가 서시를 오나라 왕 부차(夫差)에게 바쳤고

부차가 서시의 미색에 빠져 정치를 태만하게 한 틈을 타서 오나라를 공격해서 정복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서시는 평소 지병이 있어서 항상 얼굴을 찌푸리고 다녔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나 미모가 출중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여인들이 자기도 그렇게 하면 예뻐 보일까 싶어서 너도나도 얼굴을 찌푸리고 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서시 정도 되니까 예쁜 것이지 못 생긴 사람이 그러면 더 못생겨 보이지 않겠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분수도 모르고 맹목적으로 남을 따라하는 여인들을 비웃었고

여기서 ‘찡그릴 빈(嚬)’자와 ‘찡그릴 축(蹙)’자를 써서 ‘빈축(嚬蹙)’이라는 말이 유래했다고 한다

*

항미정은 순조 31년(1831)에 당시의 화성유수 박기수(朴綺秀)가 건립한 정자로

그 이름은 중국 시인 소동파(蘇東波)의 시구에 "서호는 항주(杭州)의 미목(眉目)같다"라고 읊은데서 따 지었다고 한다

 

 

 

 

서둔교

축만교 지나 첫 번째 다리다

 

 

 

 

서호천을 따라 걷는 길이다

 

 

 

 

서호천 오리

 

 

 

 

운동시설이 있는 쉼터에서 이동식을 했다

 

 

 

 

삼남길 리본

 

 

 

 

수원팔색길 1색 모수길 안내판

서호 항미정에서 중보교까지는 수원팔색길 모수길과 같다

 

 

 

 

두 그루의 미루나무가 죽어가고 있다

 

 

 

 

서둔가동보

 

 

 

 

서둔가동보 밑에 낚시꾼들이 여럿 있다

 

 

 

 

SK그룹의 고향 《수원》

서호와 옛 수인선 철도 사이에는 지은지 수십 년이 되는 공장 건물들이 11만여 평의 넓은 부지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SK그룹의 발상지인 선경직물 수원공장 터로서 1953년 창업주인 최종건 회장이 기존 직물공장을 인수하여 창업한 곳이다

SK그룹은 한국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평동 벌판에서 직기 20대의 설비로 시작하여 지금은 수백 조의 매출을 올리는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하였다

현재 선경직물 수원공장 터에는 1944년 세워진 사무동을 비롯해 본관과 공장 건물이 남아 있으며

당시 사용하던 집기 일부도 보존되어 있어서 해방 이후 한국 산업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근대문화유산이다

 

 

 

 

물길을 따라 걷다 둑으로 오른다

 

 

 

 

둑길을 걷는 빅터

 

 

 

 

추억을 싣고 달렸던 수인선

수인선은 수원과 인천을 잇는 옛 철도로 1937년 조선경동철도주식회사 소유의 사립철도로 세워졌다

수인선은 같은 회사 소속의 수여선(수원~여주)을 인천항까지 연결하는 역활을 수행하기도 했다

서해 바다에서 난 풍부한 소금이 바로 이 수인선을 통해서 내륙으로 수송되었고 내륙의 곡식도 수인선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되었다

일제강점기 「산미증산계획」에 따라 조선의 곡식이 일본으로 대량 반출될 때 사용된 것이 바로 이 수인선이니 이 철로에는 민족의 아픔이 서려있는 셈이다

1945년 해방이 되고서야 수인선은 비로서 조선의 곡식을 일본으로 반출하는 악역을 맡지 않을 수 있었지만

도로 교통이 급격하게 발달함에 따라 수인선의 역할은 점점 축소되었다

그렇게 우리나라 유일의 협궤열차였던 수인선은 1995년 12월 31일을 마지막으로 그 운행을 중단하였다

그리고 더 이상 기차가 달리지 않게 된 철도는 수풀이 무성한 채로 우리의 삼남길과 만나게 되었다

 

 

 

 

수원비행장 철 펜스

 

 

 

 

서호천

 

 

 

 

서호천

수원비행장 옆으로 흐른다

 

 

 

 

서호천 오리

 

 

 

 

삼남길

서호천을 따라 걷다 고색중보들공원에 들렸다 다시 서호천으로 나온다

 

 

 

 

고색중보들공원

방향안내판에 오른쪽에 고색향토문화전시관이 있다

공원에서 이동식 후 전시관을 둘러봤다

 

 

 

 

고색향토문화전시관

고색동 지역주민들이 봉사 · 운영하는 카페도 있다

카페에서 발생하는 수익금은 지역사회에 환원된다고 써있다

 

 

 

 

고색 향토전시관 내부

 

 

 

 

고색중보들공원 빗돌

삼남길로 통하던 중보들 지역은 넓은 들에 물을 대고 농사를 짓기 위해 하천에 둑을 쌓아 물을 가두던 보가 있는 곳이라 하여

예로부터 중보평 혹은 중보들이라 불려 왔다

 

 

 

 

바닥분수

이곳에서 다시 서호천으로 간다

 

 

 

 

공군예비군훈련장 안내판

평리교를 건너 오른쪽 길이다

 

 

 

 

경기도의 하늘을 지키는 수원비행장

수원시 권선구 장지동 · 평리동 일대에 위치한 수원비행장은 원래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비행장이다

해방 이후 기존의 활주로를 두 배 가까이로 확장하여 한국전쟁 시기에는 미국 공군의 출격기지로 사용되었다

특히 수원비행장은 한국전쟁 개전 직후인 1950년 6월 29일 맥아더 장군이 한국 땅에 첫발을 내딛은 곳이다

수원에 도착한 맥아더는 이승만 대통령의 환영을 받은 후

수원 농업시험장에 위치한 임시지휘소로 이동해 작전회의를 주재하고 영등포로 이동하여 한강방어선을 시찰하였으며

인천상륙작전을 비롯해 전황의 반전을 꾀하는 여러 작전들의 초기 구상을 세우게 된다

또한 수원비행장은 공군하면 떠오르는 영화 「빨간 마후라」의 촬영장이기도 하다

지금은 대한민국 10전투비행단이 주둔하여 경기도 하늘을 당당히 지키고 있다

 

 

 

 

평리교를 건너 오른쪽 길이다

 

 

 

 

삼남길의 너른 들판, 중복들 지명 이야기

삼남길의 다섯 번째 길인 「중복들길」은 고색동 인근의 지명인 중복들에서 딴 것이다

이 지역에는 중보가 있다 하여 예로부터 「중보평」 혹은 「중보들」이라고 불려왔다

그리고 이 지역에 있는 「평동」이라는 지명 역시 평야와 관계되어 붙은 이름이다

이 인근에 서호천 아래에 물이 풍부한 너른 벌판 가운데 이루어진 마을이라는 데서

예부터 벌말 · 들말 · 평리 등으로 불렀고 그것이 지금의 평동이라는 이름이 되었다

*

충무공 이순신 백의종군길 리본이 있다

 

 

 

 

중복들

공군예비군훈련장을 지나면 바로 중복들이다

 

 

 

 

중복들 수리시설용 건물

 

 

 

 

중복들

세류역 방향이다

 

 

 

 

서호천

황구지천으로 스미는 지점이다

 

 

 

 

배양교

이제 황구지천을 따라 걷는다

 

 

 

 

황구지천

오른쪽 천변길이 삼남길 6길이다

배양교에서 봤다

 

 

 

 

고색교

무지개처럼 생긴 빨간 아치교다

배양교에서 본 수원일반산업단지 방향이다

 

 

 

 

삼남길 리본 · 스티커

배양교를 건너면 왼쪽에 있다

삼남길 제6길(화성효행길)로 다음에 걸을 길이다

 

 

 

 

배양2리버스정류장

마침점이다

*

수원역으로 가는 6-3마을버스를 40분 기다려 탔다

버스 안내판엔 배차간격 30분으로 나와 있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9.5km, 소요시간 4시간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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