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산리석불입상(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7호)
미륵당이라 부르는 높은 누각 안에 모셔진 높이 5.6m의 미륵불상이다
석가모니 다음으로 부처가 될 것으로 정해져 있는 미륵은 보살과 부처 두 가지 성격을 가지고 있어
그 모습 또한 보살상과 불상 두 가지 형태로 제작되는데 이 입상은 보살상으로 만들어졌다
얼굴에 보이는 평면적인 조각수법과 부조화, 신체의 크기에 비해 좁은 어깨 등은
충남 논산의 개태사지석불입상(보물 지219호)과 비슷하여 고려 초기 석불양식을 잘 보여준다
영남길이야기 / 두려움을 없애고 소원을 들어주는 태평미륵
안성은 과거 팔만구암자가 있었다고 할 정도로 불교문화가 발전하였는데 특히 미륵이 많아 '미륵의 고장'이라로 불렀다
안성 전역에 약 19구의 미륵이 분포하는데 이는 전국에서 사장 많은 미륵이 있는 도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매산리석불입상은 고려시대 몽고군의 침입을 물리친 송문주 장군과 김윤후 장군의 명복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라 전한다
이 미륵은 '태평미륵'이라고도 부르는데 이곳에는 중앙관리들의 출장 시 숙소를 제공하던 역원(驛院)인 태평원(太平院)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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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산리석불입상 입구에 있다
매산리석불입상
미륵당오층석탑이 앞에 있다
미륵당오층석탑(향토유적 제20호)
미륵당 내의 매산리 석불입상 앞에 건립되어 있는 화강암 재료의 석탑으로 지금의 위치가 원위치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일반적 형식의 석탑으로 화강석 각 부재가 정연하고 짜임새 있게 결구되어 있으며, 규모는 작은 편이다
1매의 판석으로 조성된 상면에는 낮은 각형의 3단 괴임대가 각출되어 기단을 떠받들고 있다
단층기단은 네 귀에 우주를 새겼으며 1석으로 조성되어 있다
역시 1석으로 조성된 갑석은 아랫면에 반전부분이 있고 윗면에는 불룩한 낮은 각형의 3단 괴임대를 각출했다
옥신과 옥개는 각 1석으로 조성되었는데 지금의 1층 옥신에는 양우주의 선각이 희미하게 나타나있으며 2~4층의 옥신석은 결실된 상태이다
옥개석은 4층의 것이 결실되었고, 5층은 옥신 · 옥개석이 동일석이다. 옥개석은 낙수홈이 있고 그 밑에 원호경사가 있으며 3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옥신괴임은 낮은 1단이고 낙수연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이 석탑에서는 건립시기와 후원자를 알 수 있는 탑지석이 출토되었고 지금 탑지석은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건립 년대는 993년이고, 석탑 전체의 높이는 1.9m이다
매산리석불입상(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7호)
미륵당이라 부르는 높은 누각 안에 모셔진 높이 5.6m의 미륵불상이다
석가모니 다음으로 부처가 될 것으로 정해져 있는 미륵은 보살과 부처 두 가지 성격을 가지고 있어
그 모습 또한 보살상과 불상 두 가지 형태로 제작되는데 이 입상은 보살상으로 만들어졌다
매산리석불입상(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7호)
이 미륵은 높은 머리 위에 사각형의 보개(寶蓋)를 쓰고 있다
높은 보개는 고려 초기 보살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식으로 이를 통해서 이 불상이 고려 초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목구비는 비례가 맞지 않아 괴이한 느낌을 준다
두 귀는 볼에 밀착시키며 길게 늘어져 어깨에 닿아 있고 굵은 목에는 번뇌 · 업 · 고난을 상징하는 삼도(三道)가 표현되어 있다
옷(法衣)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는 우견편단(右肩偏袒)으로 아래로 내려오면서 U자형의 옷주름을 이루고 있다
얼굴에 보이는 평면적인 조각수법과 부조화, 신체의 크기에 비해 좁은 어깨 등은
충남 논산의 개태사지석불입상(보물 지219호)과 비슷하여 고려 초기 석불양식을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