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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파주 윤관 장군 묘

윤관(尹瓘 ?~1111)은 파평윤씨로 고려 문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쳤다

숙종 9년(1104) 세력이 커진 여진을 정벌하라는 왕명을 받고 싸웠으나 고려군은 여진의 강한 기병을 당할 수 없었다

특수부대인 별무반을 새로이 편성하여 예종 2년(1107)에 여진을 정벌한 후 9성을 쌓았다

그후 여진이 영원히 배반하지 않고 조공을 바친다는 조건으로 성을 돌려받기를 간청하여

고려도 동북쪽의 여진 토벌에만 국력을 기울일 수 없어 일대의 땅을 여진에게 돌려주었다

그후 정세가 바뀌자 여진 정벌의 실패로 모함을 받아 벼슬을 빼앗기고 공신호마저 삭탈되었으나

예종의 비호로 1110년 수태보 · 문하시중 · 병부판사 · 상주국 · 감수국사가 되었다. 예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윤관 장군 나무

느티나무 · 높이 9m · 둘레 4.2m · 나이 320년 · 지정일자 1997. 7. 31

윤관 장군 묘역을 만든 기념으로 심었다

 

 

 

 

여충문(麗忠門)

윤관 장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여충사 삼문이다

 

 

 

 

여충사(麗忠祠)

문숙공 윤관 장군 묘역 빗돌이다

 

 

 

 

윤관 장군 묘소

생각보다 묘역이 넓다

 

 

 

 

진국공신 문숙공 윤관 대원수 사적비

묘역 왼쪽에 있다

 

 

 

 

문숙공 윤관 장군 신도비

묘역 오른쪽에 있다

 

 

 

 

여충사(麗忠祠)

 

 

 

 

여충사

문이 잠겨져 있어 낮은 담 너머로 만든 사진이다

 

 

 

 

윤관 장군 묘

본관은 파평(坡平) · 자는 동현(同玄)이다

고려 태조를 도운 삼한공신(三韓功臣) 윤신달(尹莘達)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검교소부소감(檢校小府少監)을 지낸 윤집형(尹執衡)이다

 

 

 

 

윤관 장군 묘

고려시대의 고위급 무관들은 대체로 문관으로서 공직에 진출한 후 필요에 의해 무관이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윤관 역시 그런 절차를 밟았다

고려 문종(文宗)때 문과에 급제하였었고 숙종 9년(1104)에 동북면행 영병마도통(東北面行 營兵馬都統)이 되었다

 

 

 

 

윤관 장군 묘

 

 

 

 

윤관 장군 묘

 

 

 

 

광탄면 분수1리

윤관 장군 묘에서 봤다

 

 

 

 

진국문(鎭國門)

여충사 삼문이다

 

 

 

 

윤관 장군 영당비

 

 

 

 

파평윤씨 청송심씨 화해기념비

이 곳은 우리나라 유명한 명당으로 파평윤씨와 청송심씨 간에 400년간 지속된 산송분쟁으로 유명한 곳이다

400여 년의 길고 긴 무덤 싸움의 종지부는 2008년 심지원 묘를 비롯한 청송심씨 묘 19기 모두를 이전하면서 조상 묘 다툼이 해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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