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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행주산성

외사산의 하나인 덕양산 행주산성은 토성으로 삼국시대에 처음 축조되었으며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임진왜란 때 3대 대첩지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대첩문

행주산성 정문이다

 

 

 

 

권율장군 동상

영의정 권철의 아들로 명문가의 후손이지만

외동딸을 백사 이항복에게 출가시켰을 뿐 후대를 잇는 아드님이 없으셔서

그 분의 역사적인 자료가 아주 빈약하기 짝이 없다

 

 

 

 

관군이 싸우고

권율장군 동상 뒷 벽에 있는 형상이다

 

 

 

 

이에 승려들이 나서고

 

 

 

 

다시 백성들도 나서고

 

 

 

 

여인들은 자신들의 긴 치마를 찢어 돌을 나르기 시작했다

그 돌은 무기가 떨어져 거의 맨손으로 싸우는 군사들 손에 쥐어져 일본군 머리 위로 날아갔다

 *

결국 마지막 나선 산성 여인의 승리이자 모든 백성들이 힘을 합쳐 이끌어낸 승리였다

이것이 짧은 앞치마가 바로 행주치마가 된 사연이다

*

승군을 포함한 정병 2,300여 명으로

우끼다 히데이에가 이끄는 3만 왜군의 9차례의 맹공을 막고 이긴 정말 드라마틱한 승리였다

 

 

 

 

홍살문

충장사 입구에 세워져 있다

 

 

 

 

충장사(忠壯祠) 외삼문

 

 

 

 

행주대첩비

1602년(선조 35)에 세운 대첩비가 비바람에 마멸되어 판독할 수 없어서

1845년(헌종 11)에 행주나룻터 기공사(紀功祠)에 추가로 기록하여 세운 행주대첩비다

6 · 25 때 기공사가 소실되자 1970년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였다

 

 

 

 

충장사(忠壯祠)

충장공 권율 도원수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원래는 권율 장군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기공사(紀功祠)가 있었으나 · 25 때 소실되고

1970년 행주산성 정화공사 때 이름을 고쳐 복원하였다

현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쓴 글씨다

 

 

 

 

충장공 권율 영정

장우성 화백의 그림이다

 

 

 

 

충장사 전사청(忠壯祠 典祀廳)

1987년 건립하였으며, 충장사 제례 봉행 때 필요한 제례용품들을 보관하는 장소다

 

 

 

 

대첩기념관으로 오르는 길이다

 

 

 

 

왼쪽 덕양정 · 오른쪽 대첩기념관 갈림길 바닥에 있는 그림으로

덕양정에서 일출을 맞는 그림 같다

 

 

 

 

대첩기념관

1593년 2월 12일(선조 26) 행주산성 전투 당시 사용된 무기류와

행주대첩도 · 충남 금산의 이치대첩도 · 오산 독산성싸움 등의 기록화가 전시되어 있다

임진왜란 당시 무기고와 군량창고가 있던 곳에 1980년 건립한 유물전시관이다

 

 

 

 

각궁 · 소노

 

 

 

 

화차

 

 

 

 

화차도설

 

 

 

 

계양산 · 개화산

대첩기념관에서 나와 언덕에서 봤다

 

 

 

 

방화대교

 

 

 

 

진강정

주 도로에서 조금 내려와 있다

 

 

 

 

덕양정

한강 인근 풍경을 감상하기 좋다

 

 

 

 

덕양정에서 바라보니 강변의 구불구불한 걷기길이 재미있다

 

 

 

 

대첩비각

1602년(선조 35) 권율 도원수 막하에 있던 여러 장수들이 장군의 공덕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최초의 대첩비다

행주대첩의 과정과 의의 등이 상세히 기록되었다 하나 마모 상태가 심하여 눈으론 식별할 수 없을 정도다

 

 

 

 

행주대첩비

1963년 8월 경기도민과 각계 유지들에 의해 소규모로 건립한 것을 1970년 행주산성 정화사업 때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하였다

덕양산 정상에 위치한다

 

 

 

 

충의정

호국의식을 함양하는 영상교육관으로 임진왜란과 권율 장군의 활약상을 담은 영상을 상영하고 있다

 

 

 

 

북한산

충의정 뒤뜰에서 바라보니 봉태산 뒤로 희미하게 보인다

 

 

 

 

충의정 뒤뜰에 123.55m 지적삼각점

"훼손되지 않도록 보호 의무를 다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쓰여 있다

 

 

 

 

행주산성 안내판

덕양산(해발 124.9m)로 씌여 있다

 

 

 

 

행주산성 토성

덕양산 정상을 중심으로 7~8부 능선을 흙으로 쌓은 토성의 전체 둘레는 약 1km다

 

 

 

 

토성의 출입문이 있던 문터 자리

학술발굴조사로 7m 가량의 문을 세우기 위한 두께 50cm 가량의 통일 신라시대의 성토층이 발굴되었다

 

 

 

 

행주 기씨 유허비

麗鮮兩朝(려선양조)에 많은 충신들을 배출하였다 한다

"행주는 奇(기)씨의 發祥(발상)한 世居地(세거지)이므로 奇(기)씨는 행주를 貫鄕(관향)으로 삼아왔다"라고 안내문에 씌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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