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둘레길 20구간(왕실묘역길)은
성종의 맏아들로 중종반정 때 폐위된 연산군 묘와
세종대왕의 딸로 훈민정음 창제에 기여한 정의공주 묘가 있어 왕실묘역길이라 이름했다
양효공 안맹담 · 부인 정의공주 묘
1428년(세종 10) 14세의 나이로 세종의 둘째 딸 정의공주와 결혼하였는데 부부의 금슬이 매우 좋았다
세종은 그에게 한강 가운데 있는 저자도와 낙천정을 하사하였다
그는 초서를 잘 써서 서예가로 이름이 높았고 음악과 의학에도 통달하였다
*
쌍분으로 봉분 2개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으며, 봉분 앞에 석등과 4기의 문인석이 있다
양효공 안맹담(1415∼1462)은 세종 10년(1428)에 부마가 되어 죽성군
세종 14년에는 연창군, 세조 3년(1457)에는 원종공신이 되었다
양효공 안맹담 신도비
1466년(세조 12) 묘소 동남쪽 아래에 있다
정인지가 비문을 지었고 안맹담의 4남 안빈세가 비문과 전액의 글씨를 썼다
비는 이수(螭首) · 비신(碑身) · 귀부(龜趺)로 되어 있다
앞 묘부터 연산군 사위(능양위 구문경) · 연산군의 딸(휘순공주)
그 뒤 의정궁주 조씨(태종의 후궁) · 연산군과 부인 거창신씨
연산군 · 왕비 거창신씨 묘
조선 제10대 임금이었던 연산군은 1506년 중종반정으로 폐위되어 교동도에 위리안치되었다가 병사했다
그 후 폐비 신씨가 중종에게 간곡히 요청하여 교동도에서 1513년 이곳에 이장되었다
연산군 묘는 그간 비공개로 운영되어 오다가 2006년 7월부터 일반인에게 공개되고 있다
연산군 묘 상설
곡장 · 상석 2기 · 장명등 2기 · 향로석 1기 · 망주석 1쌍 · 문인석 2쌍 · 표석 2기다
의정궁주 조씨 묘
조선 초기의 무신인 조뢰의 딸로 태어나 1422년(세종 4) 태종의 후궁으로 간택되었지만
곧 태종이 승하하여 빈으로 책봉되지 못하고 궁주의 작호를 받았다
이 땅은 임영대군의 땅이였으며 임영대군은 후사가 없던 의정궁주의 제사를 맡게되어 현 위치에 묘를 조성하였고
그 후 임영대군의 외손녀인 거창군부인 신씨의 요청으로 의정궁주 묘 위쪽으로 연산군 묘를 이장한 것이다
방학동 은행나무(서울시 지정보호수 제1호)
서울시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로 모습이 고상하고 아름다워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신성시하였으며
이곳에 불이 날 때마다 나라에 큰 변이 생겼다고 전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일 년전에도 불이나서 소방차가 동원되어 진화하였다 한다
*
나무 높이 24m · 나무 둘레 9.6m · 나무 나이 830년 · 지정일자 1968. 2. 26
연산군 묘 재실(燕山君墓齋室)
왕릉을 지키고 관리하는 사람인 영(종5품)과 참봉(종9품)이 근무하는 곳이며
제향시에는 제관들이 머물면서 제향을 준비하는 곳으로 안향청 · 제기고 · 행랑채 등이 있다
연산군의 제향일은 매년 4월 2일(양력)이다
북한산 둘레길 20구간 왕실묘역길 아치
연산군묘 재실을 지나 산 들머리에 있다
왕실묘역길 아치를 지나 언덕을 오른다
왕실묘역길 아치
강북구 · 도봉구 경계 안내판 옆에 있다
북한산
만경봉 · 백운대 · 인수봉이 보인다
북한산 도선사 입구
예전 우이동 그린파크가 있던 곳인데 공사중이다
이곳이 20구간 마침점이자 1구간 시점이다
또 북한산 둘레길인 21구간 시점이기도 하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1.7km, 소요시간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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