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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인천 짜장면박물관

공화춘(共和春 등록문화제 제246호)은 1908년 무렵, 중국 산동지방의 장인이 지은 중정형 중국식 건물로
 외부는 벽돌로 마감하고 내부는 다양한 문양과 붉은 색으로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처음에는 무역상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곳으로 이용되었으나 중화요리가 대중적 인기를 얻으면서부터는
음식점 공간이 확대되어 대형 연회장을 갖춘 유명한 중국음식점으로 1980년대까지 그 명성을 날렸다
인천광역시 중구에서 건물을 매입한 후, 건물을 보수하고 내부에 전시공간을 마련하여 2012년부터 짜장면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공화춘(共和春)
짜장면박물관으로 탈바꿈했다

 

 

 

 

연표
1883년 인천이 개항 · 1884년 청국조계 설정 · 이사청(청국영사관) 개청
1912년 중화민국 건국 · 공화춘 개업

 

 

 

 

음식점 내부 모습

 

 

 

 

짜장면을 먹는 노동자 · 쿨리(苦力)
1890년대를 전후하여 인천부둣가는 외국과의 무역이 한창이었다
배에서 내리고 싣는 물건을 나르기 위해 고용된 수많은 짐꾼과 인력거꾼이 필요하였는데 대부분 산동지방 출신의 노동자인 쿨리였다
이들은 별다른 재료없이 춘장에 수타면을 비벼 즉석에서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는 고향의 메뉴인 짜장면을 먹었는데
이들을 상대로 손수레 노점상이 하나 둘 생기면서 짜장면의 보급이 시작되었다

 

 

 

 

공화춘의 옛모습
공화국 원년의 봄을 맞는다는 뜻으로 「공화춘(共和春)」이라 하였다

 

 

 

 

공화춘 전경

 

 

 

 

젓가락 이야기
한 · 중 · 일 젓가락의 특징

 

 

 

 

화교의 고향

 

 

 

 

화교 등기부 신청부

 

 

 

 

공화춘 수습 유물

 

 

 

 

짜장면 가격
1960년대 초 쌀값이 3,010원(80kg 한 가마니)할 때 짜장면 값이 15원이였다고 하니
예전 짜장면은 누구나 쉽게 먹을 수 있던 음식은 아니였다 생각된다

 

 

 

 

중화요리 가격표

 

 

 

 

짜장면을 내는 주방

 

 

 

 

졸업식

졸업장 보관통을 옆에 놓고 짜장면을 먹는 가족들이다
지금은 짜장면이 가장 흔하고 값싼 음식이지만 예전엔 졸업식 같은 좋은 일이 있을 때 먹던 음식이다

 

 

 

 

철가방 이야기
광복 후 짜장면 · 짬뽕으로 대변되는 중국 음식은 신속 배달이라는 구호 아래 급속히 대중화되었는데
이에 따라 음식 배달을 위한 철가방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철가방 이야기
초기에는 나무로 된 가방을 만들었지만 너무 무거운 데다가
음식물들이 나무에 스며들어 생기는 위생 문제 때문에 오래 사용되지 못하였다

 

 

 

 

철가방 이야기
그 뒤 플라스틱 철가방도 만들었으나 금형 비용이 비싸 일반화되지 못하다가
알루미늄 판과 함석판 같은 싼 재료가 등장함에 따라 오늘날에 이르렀다

 

 

 

 

명품 디자인 철가방
지난 반세기 한국인의 일상을 대표할 수 있는 생활 디자인 가운데 하나로 중국음식점 철가방을 선정했다
비록 개발자나 디자이너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철가방의 명성은 빛을 잃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사자표 춘장

 

 

 

 

자장면? 짜장면?

중국식 발음은 「짜지앙미옌」이다

짜지앙미옌은 짜쟝미옌에서 짜장면으로 발음하기 좋게 변천했다

 

 

 

 

짜장면의 종류와 조리법

 

 

 

 

지역마다 색다른 짜장면의 종류

 

 

 

 

블랙데이

 

 

 

 

꽃그림 면기 · 요리용 대접 / 1950년대

 

 

 

 

선린반점(善隣飯店)

예전 중국집과 배달용 자전거이다

 

 

 

 

세계 속의 짜장면

 

 

 

 

중국에서도 먹는 한국식 짜장면

 

 

 

 

2층으로 올라간다

 

 

 

 

칼판 주방

 

 

 

 

수타 주방

 

 

 

 

짜장을 만드는 주방

 

 

 

 

공화춘 수습 접시편 / 1960년대

 

 

 

 

주방용 뜰채와 깔대기

 

 

 

 

공화춘 화과 틀 / 1940년대

 

 

 

 

주방용 칼과 국자 / 1960년대

 

 

 

 

조왕신

 

 

 

 

프라이팬 다루는 기술

 

 

 

 

공화춘 현판
1950년대 이전으로 추정되는 간판이다

 

 

 

 

우희광 기념홀

 

 

 

 

공화춘의 역사
1907년경, 중국 산동에서 인천으로 이주한 화교 우희광(1886~1949)이 「산동회관」을 설립한데서 비롯되었다
현재 공화춘 자리가 아닌 다른 곳에서 처음 문을 연 산동회관은 청국에서 이주한 상인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객잔(客棧) 성격의 업소였다

 

 

 

 

공화춘家 사람들

 

 

 

 

공화춘의 옛 모습과 공화춘家 사람들 / 일제강점기~1900년대

 

 

 

 

공화춘 술항아리 / 1900년대 초 · 공화춘 술통 / 1960년대 · 공화춘 유리제 술병 / 1940년대

 

 

 

 

공화춘 간판

 

 

 

 

연락가빈(宴樂嘉賓) 현판

 

 

 

 

공화춘 주식증서 / 1914년 · 공화춘 주식증서 / 1922년

 

 

 

 

공화춘 회계장부 / 1914~1949 · 공화춘 식대 계산서 / 1961 · 공화춘 주판 / 198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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