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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인천 중구 내동~신포동

친구 넷이 대전에서 LIVE CAFE를 하는 친구한테 가기로했다
헌데 그 중 두 명이 결혼식 참석이 있어 오후에 출발하기로 했다
그 바람에 오전 걷기로 가까운 인천 중구 시내를 걸었다

 

 

동인천역
시점이다

 

 

 

 

구 삼화고속 정류장
1970년 2월 23일 운행을 시작한 인천~서울간 고속버스 정류장이었다
예전 종로2가 사거리에서 출발했고, 일제강점기인 1935년부터 택시회사가 있었다

 

 

 

 

인천내동교회
현재 한국 최초 교회는 1887년 9월 27일 언더우드목사가 세운 정동장로교회(현 새문안교회)로 알려져 있지만
1922년 발간한 인천내리교회역사에는 내리교회가 2년 앞선 1885년 처음 예배를 드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
동인천역에서 신포동쪽으로 걷다 보면 오른쪽 언덕에 있다

 

 

 

 

내리교회 머릿돌
「AD1901」 빗돌을 보고 내리교회 홈페이지 등에서 찾아보니
"내리교회는 한국의 모교회(母敎會 mother church)인가? 적지 않은 교회사학자들이 난색을 표한다
내리교회의 선교는 1885년 4월 5일부터 시작되었지만, 그 제도적 교회가 탄생한 시점은 대략 1888년쯤으로 보며
감리교회의 공식적인 교회로서도 정동교회 다음으로 설립되었다는 역사적 근거가 있다"
또 우리나라 이민사의 첫 장을 연 「동서개발회사」라는 하와이 이민사업자가 내리교회의 도움을 받아
1903년부터 약 7,500여 명의 조선인을 하와이로 이주시켰다는 기록도 있다

 

 

 

 

아펜젤러(좌) · 김기범(중앙) · 존스(우) 흉상
아펜젤러는 씨앗을 뿌렸고 · 존스는 김매고 물을 주었으며 · 김기범은 그 첫 열매로서 토착화 목회의 서장을 열었다
이제 여기 세 분의 흉상을 세워 만고의 사표로 삼고자 한다
*
내리교회 계단 위에 있다

 

 

 

 

아펜젤러
1885년 4월 5일 제물포항에 내려 1902년 6월 11일 순직하기까지

이 땅의 험로마다 헤치고 다니며 교육과 선교의 초석을 놓으셨다

 

 

 

 

존스
1888년 5월 14일 20세 청년으로 제물포에 와서 1911년 본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빼어난 한국어 실력으로 내리교회를 거점 삼아 교육 · 선교 · 행정 · 출판 · 이민 · 학술 연구 등에 눈부신 업적을 남기셨다

 

 

 

 

김기범
1901년 5월 14일 한국 최초로 목사 안수를 받은 제물포 선교의 첫 열매로서
초대 교인들의 존경과 신임을 한 몸에 받으면서 한국적 교회의 만세 반석을 다지셨다

 

 

 

 

옛 내리교회 예배당
미국 뉴저지주연합감리교에 소장돼 있는 도면을 발견해 다시 짓게 된
옛 내리교회 예배당은 아펜젤러센터와 제물포웨슬리관이란 이름으로 다시 태여났다
*
왼쪽 건물이 내리교회다

 

 

 

 

대한성공회 인천내동교회
내리교회에서 언덕을 조금 더 오르면 있다
1891년 9월 30일 축성되었으나, 6 · 25동란시 소실하여 이곳에 옮겨 1955년 8월 28일 정초식을 갖고, 1956년 6월 23일 준공되었다
지금 교회 자리는 랜디스가 세운 「성누가병원」으로 1902년 6개월간 러시아 영사관으로 사용되었고
1904년 제물포해전 당시 일본적십자병원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1955년에는 중학교 교사로 이용하였다

 

 

 

 

인천성공회 빗돌
고요한 주교 · 랜디스 박사 흉상 · 영국병원 빗돌 · 의학박사 엘리바 랜디스 기념비가 있다
인천 최초의 성공회성당인 인천내동교회 입구에 있다

 

 

 

 

고요한(코프) 주교 · 랜디스(남득시) 박사 흉상
성공회는 영국의 국교로 인천에서의 선교는

1890년 9월 영국 해군 종군신부였던 고요한 주교와 내과의사인 랜디스 박사가 인천에 도착하면서 시작되었다
코프 주교는 현 인성여자고등학교 체육관 뒤 송학동 3가 3번지에 있던 교회를 중심으로 포교를 전념하였고
랜디스가 「성누가병원」을 세워 의료구호사업에 전심하여 교세 확장하였다

 

 

 

 

영국병원 빗돌 · 의학박사 엘리바 랜디스 기념비

 

 

 

 

대한성공회 인천내동교회 정초석

 

 

 

 

구 인천감리서 터(지금 한진 SKY TOWER 아파트)
1883년 개항 직후 통상 업무를 담당하는 인천감리서가 생겼고 나중에 인천부(지금 인천시청) 역할에다 개항장 재판소와 학교까지 들어섰다
감리서에는 감옥이 있었는데 백범 김구 선생도 이곳에서 3년 여 동안 옥고를 치렀다
1895년 관립외국어학교가 감리서 안에서 개교했는데, 이 학교가 후일 인천고등학교다

 

 

 

 

예전 이천전기 사옥(일본식 가옥)
일본식 가옥 옆으로 나무 전신주가 보인다

 

 

 

 

나무전신주
어릴 때 본 크기보다 무척 작아 보인다
현재 임무중이다

 

 

 

 

크라운 볼링장
1968년 미군 댄스홀이였던 우리나라에서 서너 번째로 건립된 볼링장이다

 

 

 

 

홍예문
일본 공병대가 1906년 착공하여 1908년 준공했으며 처음에는 혈문이라 불렀다

 

 

 

 

계양산
홍예문 위에서 봤다

 

 

 

 

인성초등학교
토요일이라서 실험학습을 하는지 비닐봉투를 묶은 끈을 잡고 학생들이 뛰어다니고 있다

 

 

 

 

감나무

 

 

 

 

인천역사자료관(예전 인천시장 공관)으로 오르는 계단이다

 

 

 

 

인천역사자료관(예전 인천시장 공관)
역사자료관은 인천의 역사자료를 발굴 · 수집 · 정리 · 발간하는 기관으로
2001년 10월 인천시민의 날을 맞아 시장공관은 역사자료관으로 새롭게 태여났다
일제시대에는 일본인 사업가의 저택이었다가 광복 후에는 동양장이라는 서구식 레스토랑으로 또 송학장이라는 사교클럽으로 사용된 일이 있었다
이후 인천시에서 매입하여 1966년 한옥 건물로 개축, 시장공관으로 변화하였다

 

 

 

 

인천역사자료관(예전 인천시장 공관)
· 일요일은 휴관이다

 

 

 

 

한국문화원연합회 인천광역시지회(예전 제물포구락부)

 

 

 

 

예전 제물포구락부
1891년 청국과 일본을 비롯하여 인천에 거주하던 외국인들의 사교클럽으로 조직되었고

사교장으로서의 기능은 1914년 각국 조계가 철폐됨에 따라 중단되었다
이후 일본 재향군인회가 사용하면서 정방각으로 불렀으며 광복 후 미군의 장교클럽 · 시립박물관 · 문화원 등 여러 용도로 사용되다
현재 제물포구락부의 옛 모습을 재현한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뱃머리(船首) 처럼 생긴 전망대

 

 

 

 

인천항

월미산 너머로 인천대교와 무의도가 보인다

 

 

 

 

세창양행 사택 (지금 맥아더장군 동상 자리)
독일의 무역상사 세창양행이 1884년에 지은 국내 최초의 양관인 사택이 있었다
빨간색 서양식 기와 · 아치형의 네모기둥으로 장식한 테라스 등으로 빼어난 건축미를 자랑했다
1899년 6월 19일 독일 황제의 동생인 하인리히가 인천에 왔을 때, 이 집에서 왕자를 위한 파티가 열렸다
이후 일본인의 손에 들어가 「청광각」이라 불리며 이런저런 용도로 사용하다가 1922년 인천부가 매입해 부립도서관을 설립했다
1946년에는 최초의 공립박물관인 인천시립박물관이 개관했으나 인천상륙작전 중 소실되었다
1957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7주년을 맞아 그 자리에 맥아더 장군 동상을 세우고
이를 계기로 같은 해 개천절을 기해 만국공원에서 〈자유공원〉으로 개칭하였다

 

 

 

 

자유공원 단풍나무 길이다

 

 

 

 

인천학도의용대 호국기념탑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아군은 거듭되는 후퇴로 낙동강이 최후의 전선이 되었다
1950년 9월 15일 UN군의 인천상륙작전이 감행되자 우리 학도들은 의용대를 조직 강화하여 치안 유지에 힘쓰던 중
승전을 눈앞에 두었던 전선이 중공군의 개입으로 나라가 또다시 위기에 처하자
1950년 12월 18일 남녀대원 3,000여 명은 축현초등학교에 집결, 출정식을 갖고 마산까지 남하하여
1950년 1월 5일 600여 명은 해병대로 1,300여 명은 1월 10일 부산에서 육군으로 자원입대하였다
그후 수많은 전투에서 200여 명의 전사자와 많은 부상자가 조국에 젊음을 바쳤다
우리는 그들의 호국정신을 기리고 넋을 추모하고자 여기에 기념탑을 세운다

 

 

 

 

어린이헌장 비

 

 

 

 

제물포고등학교를 지나 동인천으로 간다

 

 

 

 

현대철학작명원
간판이 집 이마와 유리창도 모자라 길가에도 있다
어린 학생이 어지러운 간판을 쳐다보고 있다

 

 

 

 

동인천 삼치거리
전국구 명성을 얻고 있는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 뒷길 삼치거리다
이 골목길이 삼치거리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1966년 「인하의 집」이 현재의 자리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서 삼치와 막걸리를 팔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
이곳에서 걷기를 마치고 친구들을 만나 대전으로 간다

 

 

 

 

4인조 밴드
대전 LIVE CAFE에서

 

 

 

 

대전 LIVE CAFE에서

 

 

 

 

대전 LIVE CAFE에서

 

 

 

 

대전 LIVE CAFE에서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4.1km, 소요시간: 2시간 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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