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길이야기

대흥향교

대흥향교(大興鄕校 · 충청남도 기념물)

유학을 가르치기 위해 국가가 설립한 조선시대 지방 교육기관이다

향교는 시나 문장을 짓는 법과 유교의 경전과 역사를 가르치는 곳이자 여러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갑오개혁 이후 교육 기능은 사라졌으나 봄가을 제사를 지내고

초하루와 보름에 향을 피워 지금도 옛 성현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대흥향교는 1405년(태종 5)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정확한 기록이 없어 조선 건국 직후인 1400년대 초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대흥향교에서는 중국의 유학자 5성(공자 · 안자 · 증자 · 자사 · 맹자)과 10철(공자의 뛰어난 제자 10명)을 비롯하여

송조 6현(송나라 최고 유학자 6명)과 우리나라 유학자 18현(신라~조선의 최고 유학자 18명)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위패를 모시는 대성전과 동무 · 서무, 교육공간인 명륜당, 생활공간인 동재 · 서재가 그대로 남아 있다

오늘날 전교 1명을 비롯하여 장의 20여 명이 향교를 관리하고 있으며

한 달에 두 차례 초하루와 보름에 작은 제사를 지내고

봄에 춘향석전제와 가을에 추향석전제 등 일 년에 두 차례 큰 제사를 지낸다

매년 정월 초에는 은행나무제를 지내고 있다

 

 

교촌1리마을회관

대흥향교 은행나무 옆에 있다

 

 

 

 

대흥향교 은행나무 / 기념물 제160호

은행나무 중앙에는 느티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마치 한 그루처럼 어울려 장관을 이루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매년 정월 초순이면 마을의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성황제를 올리고 있으며

이 나무를 베면 마을에 피해를 입는다는 전설이 있는 은행나무이다

*

나무 높이 40m · 넓이 40m · 나이 600년 · 지정일자 2002. 7. 30

 

 

 

 

홍살문

하마비가 없다

 

 

 

 

전교 안성노 모성공적비(典校 安星老慕聖功績碑) · 전교 조병언 모성공적비(典校 趙丙彦慕聖功績碑)

 

 

 

 

우물

 

 

 

 

외삼문

 

 

 

 

외삼문

 

 

 

 

명륜당(明倫堂)

교육공간이다

 

 

 

 

명륜당(明倫堂)

 

 

 

 

명륜당(明倫堂) 현판

 

 

 

 

동재(東齋)

생활공간이다

 

 

 

 

성균관장 표창장 / 공부자 탄강(孔夫子 誕降) 2521년 음 정월(陰 正月)

 

 

 

 

성균관장 표창장 / 단기 4228년 1월 19일

 

 

 

 

성균관장 표창장 / 공기(孔紀) 2550년(1999) 8월 31일

 

 

 

 

대흥향교 임원 성균관 명륜당 사진

 

 

 

 

단체 사진

 

 

 

 

서재(西齋)

생활공간이다

 

 

 

 

본교 창건 성금 안내판 / 공자 탄강(孔子 誕降) 2545년 갑술 추(甲戌 秋)

 

 

 

 

大興文廟重修義捐芳名錄(대흥문묘중수의연방명록) / 소화(昭和) 13년 4월

 

 

 

 

大興文廟重修義捐芳名錄(대흥문묘중수의연방명록) / 소화(昭和) 13년 4월

 

 

 

 

大成殿補修記(대성전보수기) / 단기 4328년 을해 춘(乙亥 春)

 

 

 

 

大成殿重修序(대성전중수서) / 聖上元年乙未季冬(성상원년을미동계)

 

 

 

 

성균관장 표창장 / 공기(孔紀) 2549년(1998) 5월 15일

 

 

 

 

성균관장 표창장 / 서기 1984년 7월 8일

 

 

 

 

내삼문

 

 

 

 

대성전(大成殿)

 

 

 

 

대성전(大成殿) 현판

 

 

 

 

동무(東廡)

 

 

 

 

서무(西廡)

 

 

 

 

명륜당

내삼문에서 봤다

 

 

 

 

동재(東齋)

관리사로 가는 문이다

 

 

 

 

서재(西齋)

 

 

 

 

대흥향교 관리사

 

 

 

 

화장실

 

 

 

 

함석스레이트지붕집

향교 옆에 있다

 

 

 

 

함석스레이트지붕집 대문

 

 

 

 

원홍장 둘레길 안내판

원홍장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용모가 뛰어나고 효심이 지극하여 앞을 못보는 아버지를 성심을 다해 봉양했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매일 관세음보살께 기도를 드리던 운홍장은 효심과 불심으로 자신을 봉양하여

진나라로 건너가 황후가 되었고 착한 마음씨로 진나라 황제의 총애를 받았다

원홍장은 아버지에 대한 효심과 고국에 대한 그리움으로 불상과 나한상을 만들어 백제로 보냈다고 한다

한편, 홍장이 떠난 뒤 슬피 울던 아비 원량은 앞을 볼 수 있게 되어 평안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예산군 대흥면 원홍장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쓰인 "「관음사적기(觀音寺績記)」에 기록된

충청도 대흥에 원량이라는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 살았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예와 효의 고장인 예산군 대흥면은 원홍장의 착한 성심과 효심을 널리 알려

현시대에 사라져가는 효와 예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한다

*

야생화전시실 안내판이 옆에 있어 따라가 보았다

 

 

 

 

돌벽집

 

 

 

 

돌벽집

 

 

 

 

二茅岩(이모암)

돌벽집 앞에 있다

*

야생화전시실을 찾아 언덕을 올랐으나 찾지 못했다

새로운 택지를 많이 만드는 것으로 보아 없어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