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바다이야기

월미도

조선시대에는 한양을 지키는 군사기지였고 개항 후에는 조선에 들어오기 위해 머무는 첫 기착지였다

한국전쟁시에는 인천상륙작전의 첫 상륙지점이였으며 전쟁 후에는 군부대가 주둔하다 2001년 시민에게 개방되었다

문화유적조사 결과 임금이 국난 등 유사시 사용했던 행궁 · 돈대 · 월미진사(관사) · 예포 등이 있던 것이 확인됐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신사 · 공원 · 유원지 등으로 개발돼 행락지로도 각광을 받기도 했다

 

 

인천역

일제가 여주 · 이천 지역의 쌀과 소래 남동 등지의 소금을

인천항을 통해 반출하기 위해 1937년부터 수인선을 운행했다

*

시점이다

 

 

 

 

월미바다열차역

월미도 모노레일 출발역이다

 

 

 

 

인증로

고가도로와 철로가 없어 도로가 깨끗하다

 

 

 

 

인천역 철도차량기지 방향

예전 고가도로와 철로가 있던 때 우회고가사거리에서 봤다

*

2020. 07. 11

 

 

 

 

인천역 코아루센트럴시티오피스텔(예전 러시아영사관 · 해무청사 터)

러시아는 경성 한국주재영사관 내에 부영사관을 병설하고 인천 · 평양 · 진남포 등을 관할케 하고 있었는데

1902년 부영사관을 갑자기 인천에 이전 설치했다

제물포항을 일본이 독점하는 것을 방지하는 동시에 자국의 병참기지화를 위한 것으로 보인다

1974년 철거되었다

*

그 옆에 김중업에 의해 1957년에 세워진 해무청사는 러시아영사관과 나란히 바다를 보고 있었다

1992년경에 사라졌다

*

지금 건물이 있는 자리였고 그 앞은 바다였다

 

 

 

 

예전 러시아영사관 · 해무청사 터

예전 공터였던 때다

*

2016. 04. 16

 

 

 

 

폐쇄된 철로

월미로 입구다

 

 

 

 

1883 개항쉼터

제물포항(인천항)이 개항한 1883년을 의미하는 운동장이다

상상플랫폼 앞마당 쉼터로 인조잔디가 깔려 있다

 

 

 

 

월미도

인천항 제8부두 너머로 보인다

인천항 제8부두는 소금 · 원당 등을 취급하는 청정잡화부두이다

*

1883 개항쉼터에서 봤다

 

 

 

 

상상플랫폼

인천 북성동 소재 내항에 1978년 건립된 낡은 곡물창고가 리모델링을 거쳐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인천관광공사가 리모델링한 복합문화시설 상상플랫폼의 운영권을 맡게 됐다

*

인천관광공사가 입주 예정이다

 

 

 

 

월미도

세계 최대 야외 벽화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인천 내항 사일로가 옆에 있다

 

 

 

 

THE BOX 8

인천 내항 재개발 열린홍보관이다

 

 

 

 

인천 내항 재개발 열린홍보관

사람들이 많이 찾는 토 · 일요일에 쉰다

화장실이 옆에 있다

 

 

 

 

인천관광공사 · 인천 내항 재개발 열린홍보관

 

 

 

 

상상플랫폼 내부

맞은편에는 무대가 있다

 

 

 

 

1883 storage

인천관광공사가 들어서는 옆 건물로 전망이 좋은 곳에는 카페 등이 들어올 예정이다

 

 

 

 

1883 storage · 인천관광공사

 

 

 

 

북성포구 입구 아치

 

 

 

 

 

 

 

 

 

월미특별관광지역

제2차 인천상륙작전 전승비 · 인천상륙작전 상륙지점(적색해안) 빗돌이 뒤에 있다

*

제2차 인천상륙작전 전승비

1951. 2. 10~2. 11, 대한민국 해군 · 해병대 단독으로 감행한

제2차 인천상륙작전 승리를 현양하기 위해 상륙지점인 현 위치에 해군이 건립했다

*

인천상륙작전 상륙지점(적색해안) 은 1950년 9월 15일 새벽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원수가

전함 261척과 상륙군 미해병 제1사단 · 한국해병 제1연대를 진두 지휘하여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한 3곳(적색해안 · 청색해안 · 녹색해안) 중 한 곳이다

 

 

 

 

월미로

월미도로 들어가는 길이다

 

 

 

 

TS대한제당

 

 

 

 

월미공원

월미바다열차가 왼쪽 위로 지난다

 

 

 

 

월미바다열차

월미도 한국전통정원 담을 따라 간다

 

 

 

 

월휴정

월미전통정원 안의 언덕으로 전통정원을 내려다보며 휴식할 수 있다

 

 

 

 

인천 내항 사일로벽화

제작 기간은 약 1년으로 22명의 도장 · 도색 전문 인력이 투입됐다

높이 48m · 길이 168m · 폭 31.5m 규모의 거대한 곡물 저장고 벽화다

세계 최대 야외 벽화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

월휴정에서 봤다

 

 

 

 

잉어

습지원 연못이다

 

 

 

 

민가(초가)

조선시대 중부지방 서민 주택의 건축적 요소를 반영하여 조성했다

 

 

 

 

양진당

북촌을 대표하는 종가집으로 서애 류성룡의 친형인 겸암 류운룡이 안동시 하회리에 조성한 17세기 초의 건물이다

ㅁ자형 안채를 중심으로 앞면 동쪽에는 문간채가, 뒷면으로는 사랑채가 연결되어

3개의 건물이 자연스럽게 결합되어 보이며 후원의 동북쪽에는 2채의 사당이 있다

 

 

 

 

부용지(芙蓉池) 부용정(芙蓉亭)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졌다는(천원지방 天圓地方) 전통적 우주관을 반영하여 만든 연못으로

숙종 때 만들어졌지만 부용지라는 이름은 정조가 지었다

 

 

 

 

만남의 광장

 

 

 

 

월미 평화의 나무 종합안내판

월미산둘레길 들머리에 있다

 

 

 

 

그날을 기억하는 나무 / 월미 평화의 나무 두 번째 이야기

월미산에 함포사격으로 포탄이 우박처럼 쏟아지던 그날을 기억하는 나무이다

은행나무 · 높이 20m · 굵기 124cm · 나이 103년 · 지정일자 2015년

 

 

 

 

치유의 나무 은행나무 / 월미 평화의 나무 첫 번째 이야기

수형이 가장 멋지고 품격이 있어 시민들과 친숙한 나무이다

 

 

 

 

제7 미국 보병사단 상륙 10주년 기념비

치유의 나무 은행나무 앞에 있다

 

 

 

 

꿈동산 / 일본석탄고

월미행궁 터로 추정되는 월미도 북사면 일대가 일본해군이 1882년부터 무단으로 석탄고로 사용하였다

1885년 일본은 이 부지를 조차하려다가 조선정부로부터 행궁이 있었던 월미도에

다른 나라의 군사시설을 들일 수 없다고 하여 여러차례 거절당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집요한 요구에 따라 결국 1891년 조선의 독판교섭통상사무를 맡고 있는

민종묵과 일본의 근등 대리공사 사이에 임차계약이 체결되면서

이미 일본이 사용하고 있던 월미도 북사면 4,900평을 매년 은화 80냥에 조차하게 되었다

이 석탄고는 일제시대 들어 월미도가 관광지로 본격 개발되면서 철거된 것으로 보인다

*

예전 옆에 있던 안내판이 없다

 

 

 

 

월미바다열차

 

 

 

 

퇴역 경비정 206함(200t급)

길이 43.3m · 폭 6.3m 규모로 1976년 건조돼 25년간 서해에서 해상경비 · 구난활동을 벌이다 2001년 8월 퇴역했다

전성기 때는 서해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역에서 불법 조업을 하던

중국 어선들을 잇따라 나포하여 중국 어선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으며

1999년 서해교전에도 참여 어선들을 안전 해역으로 유도하고 해군 고속정을 지원하며 맹활약한 경비정이다

 

 

 

 

이청호 경사 · 오진석 경감 흉상

오진석 경감은 2015년 8월 19일 응급환자 이송 요청을 받고 출동했다가

선박사고로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다가 같은 달 30일 끝내 숨을 거뒀다

당시 자신의 부상을 뒤로하고 다친 동료들을 모두 병원으로 옮겨 「희생의 상징」이 됐다

*

이청호 경사는 2011년 서해 상에서 불법조업 중국어선을 단속하던 중 순직해 해양주권 수호의 상징이 됐다

 

 

 

 

서문매점

 

 

 

 

카페 좋은 날

 

 

 

 

10번 · 45번 버스 종점

 

 

 

 

월미도 《 》 영종도 매표소

 

 

 

 

월미도유람선 · 뉴코스모스유람선

 

 

 

 

영종도행 선착장

 

 

 

 

영종도

 

 

 

 

간단스케치 만원

사주 · 궁합 · 타로의 붉은 천막도 보인다

 

 

 

 

월미공연장

「노래하는 사람들」의 공연이다

 

 

 

 

음악분수대

 

 

 

 

인천마스코트

 

 

 

 

월미도 친수공간

 

 

 

 

1950년 9월 15일 유엔군 16개국의 인천상륙작전 기념비

 

 

 

 

친수공간

물치도가 뒤로 보인다

 

 

 

 

월미문화의 거리

 

 

 

 

월미도 등대길

탁 트인 바다와 환상적인 낙조를 감상할 수 있으며

근현대부터 현재까지 인천 중구의 역사와 문화유산이야기를 알아볼 수 있다

국립인천해양박물관 건립으로 지금은 없다

*

2020. 07. 11

 

 

 

 

월미공원의 나무 아홉번째 이야기 / 선비나무 쉬나무

쉬나무 붉은 열매는 석유가 없던 시절에 열매를 짠 기름으로 등불을 밝혀 공부했다고 하며

월미공원을 환하게 밝혀주는 나무다

지금은 죽어 없는 나무다

*

2019. 07. 13

 

 

 

 

해군 제2함대사령부 주둔기념비

월미도는 해군 역사에서 잊혀질 수 없는 한 현장이다

월미도는 한국전쟁 후 처음으로 다수의 북한 해군 정규군과 겨뤄 승전한

「연평해전」의 주역 제2함대사령부가 반세기 동안 주둔했던 곳일 뿐만 아니라

세계 전쟁사에서 높이 평가 받고 있는 인천상륙작전 당시 연합군 주력부대가 상륙했던 곳이기도 하다

 

 

 

 

월미문화관

전통생활문화전시관 · 궁중문화전시관 · 기획전시실을 운영하여

국내외 관광객에게 다양한 한국문화의 체험 기회를 제공하여 우리 문화를 널리 알리고자 조성하였다

월미공원 입구 왼쪽 언덕에 있다

 

 

 

 

1920년대 월미해수욕장

멀리 월미조탕 모습이 보인다

 

 

 

 

월미도 조탕

1910년 경술국치를 강제하여 조선에서의 통치권을 확보한 일본은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던 월미도의 아름다운 풍치에 뒤늦게 주목하여 식민관광지로 개발하기 시작하였다

1918년 풍치지구로 지정한 것을 시작으로 월미도 중턱에 회주도로를 가설하고

월미도 정상부를 비롯한 곳곳에 벚나무 · 아까시 등을 심어 가꾸었는데, 봄이면 활짝 피는 벚꽃이 특히 유명했다

1920년에 월미도 북서쪽 해안에 해수욕장을 개장한 데 이어

수족관 · 체육시설 · 야외극장 · 바닷물을 끊여 목욕하는 조탕 등을 연이어 조성하였고

1930년대 초반에 이르러서는 빈 호텔 · 요정 용궁각 등의 편의시설을 갖추면서 수도권의 첨단 임해유원지로 각광 받았다

 

 

 

 

월미조탕 풀장 전경

 

 

 

 

월미도에 이르는 제방둑길(축제도로)

 

 

 

 

월미바다열차 월미공원역

인천 내항 사일로벽화가 뒤에 있다

 

 

 

 

월미공원 아치

월미공원을 나간다

 

 

 

 

월미로

 

 

 

 

대한제분

북성포구 옆에 있다

 

 

 

 

하인천교회

 

 

 

 

새우젓골목

인천 앞바다에서 잡은 새우를 소금에 절여 보관하던 창고와 가게들이 있었던 곳이다

골목에는 건어물가게도 있었으나 부두가 사라지면서 새우젓도 함께 떠나버리고

빈 창고와 가게는 인근 노동자와 도시 빈민들이 들어와 쪽방촌이 되었다

 

 

 

 

새우젓골목

벽화가 그려져 있는 마을이다

 

 

 

 

동일아파트

새우젓골목 옆에는 인근 섬과 주안염전에서 들어온 소금이 있었다

소금은 가마니나 포대에 포장돼 전국 각지로 실려 나갔다

소금을 부리던 그 앞에 부두를 사람들은 한염부두라고 불렀다

소금공장이 떠나고 그 자리에 동일아파트가 들어섰다

 

 

 

 

걸은 거리 9.6km · 소요시간 4시간 14분

GPS를 끄지 않고 신포동 신포주점에서 오래 있어 예전 거리와 시간으로 대체했다

*

2024. 04. 06

'바다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고항  (0) 2024.04.21
장봉도  (1) 2024.04.09
남애항 · 남애해수욕장  (0) 2024.03.29
물치항 · 물치해수욕장  (0) 2024.03.29
매향항 · 궁평항  (0) 2024.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