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육상궁(毓祥宮 사적 제149호)을 가기 위한 걷기로
경복궁 광화문으로 들어가 신무문으로 나와 칠궁(七宮)으로 갔다
북악산 백악정 · 청와대전망대 · 삼청쉼터 · 삼청안내소를 거쳐 광화문역에서 마쳤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 상(忠武公 李舜臣將軍 像)
광화문역이 시점이다
경복궁 광화문
월대(月臺)는 1866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당시 함께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후 일제강점기였던 1924년, 전차 선로 부설을 이유로 철거되고 2007년에 일부를 복원한데 그쳤다
그리고 지난 해 광화문의 월대가 완전히 복원되었다
광화문(光化門)
1395년(태조 4) 9월 경복궁 정문으로 창건되어 정도전(鄭道傳)에 의해 사정문(四正門)으로 명명되었고 오문(午門)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1425년(세종 7) 집현전 학사들이 광화문이라고 바꾸었다
임금의 큰 덕(德)이 온 나라를 비춘다는 의미이다
광화문(光化門) 현판
「경복궁 영건일기」의 기록에 따라 금박을 입힌 구리글자를 붙여 복원한 광화문 새 현판이다
글씨는 고종의 중건 당시 훈련대장으로 재직한 임태영이 쓴 필적을 첨단 디지털 기법으로 복원했다
예전 광화문(光化門) 현판
2010년 8월 내걸렸던 광화문 현판이다
불과 석달여 만에 균열 현상이 나타나고 뒤이은 색상 고증 오류 지적으로 13년 만에 교체됐다
수문장청(守門將廳)
광화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있다
수문장청(守門將廳) 현판
영제교 서수(永濟橋 瑞獸)
다리를 통해 들어올 것으로 예상되는 사악한 기운을 막고, 흉한 것을 제거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비늘과 갈기가 꿈틀거리는 듯이 완연하게 잘 조각되어 있다
경복궁의 금천인 영제천 서북쪽에 있는 천록(天祿)이다
영제교 서수 중 서북쪽에 있는 천록은 유일하게 혀를 내밀고 있어 유명하다
근정문(勤政門) / 보물 제812호
정전인 근정전의 정문으로 정면 3칸 · 좌우로 각각 1칸씩의 옆문을 배치한 중층 구조로 되어 있다
근정문과 행각은 고종 4년(1867년)에 근정전과 함께 중건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좌우의 행각이 회랑으로 변형된 채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근정전(勤政殿) / 국보 제223호
왕이 문무백관에게 조회를 받고 외국 사신을 접견하며 즉위 · 책봉 · 혼례 같은 주요한 행사를 치르는 곳으로
왕과 나라의 권위와 품격을 드러내는 중요한 공간이다
백악산을 배경으로 한 중층의 전각은 높고 넓은 2층 월대 위에 당당히 올라서 있으며
근정전 주변을 둘러싼 행각의 기둥들은 마치 왕을 호위하는 듯 줄지어 있다
마당 한가운데에는 왕이 다니는 어도가 있고, 좌우에 신하들이 걷는 신도가 따로 있으며, 신하들이 지위에 맞추어 자리하도록 품계석을 세웠다
근정전(勤政殿) / 국보 제223호
북악산이 뒤에 있다
닫집
일월오봉병(日月五峰屛)으로 둘러쳐진 어좌(御座)가 높은 대 위에 있다
황룡(黃龍)
근정전 내부 천장에는 7개의 발톱을 갖고 있는 황룡 2마리가 있다
조선이 황제의 국가가 되었음을 알리려고 고종이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에다 새긴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정전(思政殿) / 보물 제1759호
왕이 평소 머무르며 나랏일을 돌보았던 곳으로 깊이 생각하여 나랏일에 임한다는 뜻을 품고 있다
조선 왕 가운데 가장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다고 평가받는 세종이 밤 늦도록 학문을 연구하고 집현전 학자들과 의견을 나누었던 곳도 사정전이다
불가사리
몸에 털이 있고 코가 길어 코끼리와 흡사하다
태원전 일원 건숙문(建肅門)
왕과 왕비가 죽으면 빈전에 관을 모시고 교외에 마련된 산릉에 시신과 관을 묻은 후에는
혼전에 신주를 모셔 정해진 장례 기간을 치룬 후에 종묘로 신위를 옮겨 모시게 된다
태원전은 경복궁의 빈전으로 문경전은 혼전으로 건립되었다
주변에 공묵재 · 영사재 등 상례용 건물들도 들어서 일곽을 이루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철거를 겪고 한때 청와대 경호부대가 주둔하는 등 변화를 겪었다
2006년 이 일원의 복원공사가 마무리되어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태원전 일원 정문이다
건숙문(建肅門) 현판
경안문(景安門)
경복궁의 빈전인 태원전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신무문(神武門)
청와대 방향으로 나가는 문이다
청와대(靑瓦臺)
서울의 중심부이자 구도심인 경복궁 북쪽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고려시대(918~1392)부터 궁궐로 사용되었고, 조선시대(1392~1910)에는 경복궁의 후원이 있었다
고종 5년(1868) 경복궁이 중건되면서, 문무가 융성하길 기원하는 의미로 경무대(景武臺)라 이름 붙였다
일제강점기 이 자리에 총독 관저가 들어섰고, 해방 후에는 미군정 사령관이 머물기도 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에는 대통령 집무실 겸 관저로 사용되었으며, 1960년 푸른 기와집이라는 뜻의 청와대로 이름을 개칭했다
1991년 지금의 본관이 들어서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청와대 영빈관(迎賓館)
1970년 이후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국빈들이 증가하였으나 청와대 내에 만찬이나 연회 등 행사를 치를 공간이 마땅치 않고
국가 위상과도 걸맞지 않다고 판단하여 청와대 내에 대규모 행사장을 갖춘 지금의 영빈관을 마련하였다
영빈관은 지상 2층 지하 1층, 연면적 5,904㎡ 규모로 1978년 1월 15일 착공하여 같은 해 12월 22일 건립되었다
견고한 돌기둥이 건물 전체를 떠받들고 있는 웅장한 건물로서기둥 원석은 국내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전북 익산시 황등면에서 채취한 화강암이다
특히 전면에 있는 이음새 없는 4개의 돌기둥은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으며 1개 중량이 60톤에 달하고 높이 13m에 둘레가 3m에 이른다
또한 건물의 내부 벽은 무궁화 · 월계수 · 태극무늬를 형상화하여 전통적인 디자인으로 장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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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 · 이희호 여사 기념식수와 청와대 영빈관 정비 빗돌이 계단 양편에 있다
서울 육상궁 재실(齋室)
건물 주위의 뜰은 한국식 정원의 전형을 이루어 정숙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서울 육상궁(毓祥宮) / 사적 제149호
영조의 생모이며 숙종의 후궁인 숙빈 최씨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영조 원년(1724)에 세워 숙빈묘라 했으나 영조 29년(1753)에 승격시켜 육상궁이라 고쳐 불렀다
고종 19년(1882) 화재를 당하여 다음 해에 복구했다
육상궁은 칠궁이라고도 부르는데 그것은 1908년에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는 7개의 궁들을 이곳에 옮겼기 때문이다
칠궁은 육상궁 · 저경궁 · 대빈궁 · 연호궁 · 선희궁 · 경우궁 · 덕안궁을 일컫는데
조선왕조 역대 왕들의 친모로서 정비에 오르지 못한 7인의 신위를 모셔 제사지내는 곳이다
일반적으로는 칠궁(七宮)이라는 이름이 익숙하지만, 문화재로서는 서울 육상궁이라는 명칭으로 사적 제149호로 지정되어 있다
덕안궁(德安宮)
덕안궁은 영친왕의 어머니이며 고종의 후궁인 순헌 귀비 엄씨(純獻貴妃 嚴氏)의 사당이다
순헌 귀비 엄씨는 1897년(광무 1)에 영친왕을 낳은 뒤 귀인으로 책봉되었고
고종이 엄씨가 거처할 궁을 경운궁(현재 덕수궁) 안에 지어 경선궁(慶善宮)이라 하였다
1900년(광무 4)에 순빈(淳嬪)에 봉해졌으며, 1901년(광무 5)에 순비(淳妃) · 1903년(광무 7)에 황귀비(皇貴妃) · 1910년(융희 4) 순헌 귀비로 진봉되었다
1911년 순헌 귀비 엄씨가 세상을 떠난 뒤 경선궁을 덕안궁이라 개칭하였다
1913년 태평로에 사당을 새로 지어 옮겨 모셨다가 1929년 육상궁으로 옮겼다
냉천(冷泉)
냉천정 뒤편에 있는 우물이다
냉천 북쪽 장대석에는 재위 3년째가 되던 1727년 3월 육상궁에 거동한 영조가 지은 오언시가 새겨져 있다
서울 육상궁(毓祥宮) / 사적 제149호
창의문 방향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청와대 · 북악산 등산로 방향안내판
중국 굴피나무 보호수
나무 높이 23m · 둘레 3.1m · 나이 415년 · 지정일자 1981. 10. 27
북한 무장공비 침투를 저지한 곳 빗돌
1968년 1월 21일 22시 10분 경 북한 124군부대 소속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를 기습공격하기 위해 침투했을 때
종로경찰서장 최규식 경무관과 정종수 경사가 육탄으로 저지하여 순국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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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운실버센터 오른쪽으로 보인다
북악산으로 오르는 계단이 오른쪽에 있다
북악산 안내도
북악산으로 오르는 계단 앞에 있다
북악산 한양도성 출입문
대경빌라
북악산 한양도성 출입문
백악정 · 청와대전망대 방향안내판
소나무쉼터
이곳에서 차를 마시며 잠시 쉬었다
백악정으로 가는 길이다
시멘트 계단
1971. 11. 19에 만든 것 같다
인왕산
백악정으로 오르는 계단이다
인왕산
삼청동 · 효자동 방향안내판
백악정 앞이다
백악정(白岳亭)
노무현 대통령 · 권양숙 여사 기념식수 / 김대중 대통령 · 이희호 여사 기념식수가 양 옆에 있다
노무현 대통령 · 권양숙 여사 기념식수
백악정에 있는 글이다
철문
광화문 방향
철문을 지나 청와대전망대로 가는 길에서 봤다
청와대전망대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청와대전망대
남산
청와대가 앞쪽에 있다
남산 오른쪽 방향
남산 왼쪽 방향
성북구 방향
말바위안내소
대통문
삼청안내소로 가는 철문이다
만세동방 · 삼청쉼터 방향안내판
백악2교
옥호정(沃好停) · 수영장 터
수영장 터 위에 또 하나의 둑이 있다
삼청휴식장(三淸休息場) 빗돌
1987년이면 오래된 빗돌도 아닌데 모두 한자다
옥호정(沃好停) · 수영장 터
여름철 장병을 위한 수영장은 한 면만 남아 있다
계곡을 활용한 수영장 터 사진
수영장 규모는 가로 7m · 세로 2.5m · 수심은 가장 깊은 곳이 2.7m이다
월운교(月雲橋)
화장실 · 삼청안내소
북악산 탐방로 지도
삼청안내소 옆에 있다
삼청안내소 철문
삼청동 계곡
삼청테니스장
종로11번 마을버스 종점
한국독립당
옥호정 터(玉壺亭址) 빗돌
순조의 장인 영안부원군 김조순(金祖淳 1765~1832)의 제택(第宅)인 옥호정이 있던 곳이다
전해오는 「옥호정도(玉壺亭圖)」에 그려진 「일관석(日觀石)」 각자(刻字) 바위가 현재 북악 동쪽 산 중턱에 남아 있다
서울서 둘째로 잘하는 집
한국금융연수원
삼청동
독서하는 여인 / 이행균 2016
삼청빙수
은설 설렁탕
BARAKAT
차량 번호판에도 써있다
독립협회 창립 터 · 서울여자경찰서 터 안내판
한국 최초의 근대적 정치사회단체인 독립협회가 공식 발족한 곳이다
독립협회는 1896년 7월 2일 서재필의 발의로
광화문 앞 육조거리에 있던 외부 건물에서 창립총회를 갖고 활동을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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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여자경찰서(1947~1957)가 있던 곳이다
독립운동가 안맥결 총경 등이 서장을 맡았던 서울여자경찰서는 사회적 약자 보호와 신장에 기여했다
걸은 거리 7.6km · 소요시간 4시간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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