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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서울시청~마전교

서울시청역에서 약속 장소인 종로까지 「닐리리맘보 청계천 걷기 코스」를 이용해 걸었다

생활걷기다

 

 

예전 서울시청(서울도서관)

서울도서관(옛 서울시청)은 일제강점기이던 1926년 경성부 청사로 출발하여

해방과 함께 1946년 서울시청사로 새 역사를 시작했고, 2003년에는 등록문화재 제52호로 지정되었다

 

 

 

 

예전 서울시청(서울도서관)

서울시 신청사가 뒤에 있다

 

 

 

 

서울광장

다시 가정으로 쿨 썸머 핫패밀리 페스티벌 리허설 진행중이다

 

 

 

 

다시 가정으로 쿨 썸머 핫패밀리 페스티벌 행사장 안내도

 

 

 

 

YTN 남산갤러리

서울센터빌딩 · 더플라자 사이로 보인다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 GEODETIC CONTROL POINT(서울특별시 측지 기준점)

예전 서울시청(서울도서관) 정문 앞에 있다

 

 

 

 

10 · 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양소

예전 서울시청(서울도서관) 정문 옆에 있다

 

 

 

 

대한문(大漢門)

오래 전부터 공사하던 입구가 보인다

 

 

 

 

군기시 유적전시실

서울시청 건립공사 중 출토된 조선시대 군기시 및 근대 건물지 유구 45기와

조선시대 화포인 불랑기자포 등 590여 점의 군기시 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시간의 기록 · 토층

군기시 유적의 토층은 자연 퇴적층 - 조선 전기 문화층 - 현대 문화층으로 나뉜다

조선 전기 문화층에는 조선 건국 후 설치된 군기시와 관련된 유물과 유구가 확인되었다

임진왜란 이후의 조선 후기 문화층은 일제강점기에 경성일보사와 경성부청사가 건립되는 과정에서 파괴되어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 위로 숙위소(소종황제 호위담당 시설) · 경성부청사가 건립되었던 근현대문화층이 퇴적되어 있다

 

 

 

 

화살촉 더미 / 16세기 · 5-1호 건물지 출토

활과 노(弩)에 사용된 철촉 수천 점이 열과 압력으로 인해 엉겨 붙어 있으며

사두형 · 추형 · 역자형 철촉 등이 보이며 사두형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청와대

북악산 아래 있다

 

 

 

 

시장 접견실

 

 

 

 

서울시장실

 

 

 

 

서울을 「키워드」로 기록하다

세계최고의 인적자원과 교통인프라 · 푸른 숲 · 드넓은 한강 · 아름다운 지천 · 역사 명소 · 문화 콘텐츠 등의

자산을 가진 서울은 세계를 선도하는 일류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이러한 서울에서 생활하는 시민들이라면 한 번쯤 보고, 사용하고, 느꼈을 서울의 다양한 구성요소들을 '키워드'로 묶어 카테고리화해 놓았다

측면에 펼쳐진 키워드들을 자유롭게 탐색하시며, 서울의 다채로움을 만나보길 바란다

 

 

 

 

한성부 서부관아터 빗돌

조선시대 5백여 년 간 서울 서쪽 지역의 주민 행정을 담당하던 관아터가 있던 곳이다

 

 

 

 

모전교(毛廛橋)

 

 

 

 

청계천 소라광장

 

 

 

 

서울시 청소년어울림마당 / 도심속 축캉스 축제

 

 

 

 

행운의 동전던지기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빗돌

 

 

 

 

닐리리맘보 청계천 걷기 코스 안내판

마침 내가 걸을 길과 같다

 

 

 

 

광통교(廣通橋)
태조 때에 흙으로 축조되었다가 폭우로 인하여 무너지자 1410년 (태종 10년) 8월에 돌로 다시 축조하였다

축조 당시 신덕왕후릉을 이장하고 방치해 두었던 신장석을 다리 교대석으로 사용하였는데 그 중 일부가 거꾸로 놓여 있다

이 신장석은 세련된 당초문양과 구름문양이 새겨져 고려 말 · 조선 초기 전통문양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아름다운 문양석이 거꾸로 놓여 있는 것은

조선 초기 왕권에 있어 신덕왕후와 정적관계에 있던 태종 이방원의 의도적인 복수심의 산물이 아니겠느냐는 추측을 낳고 있다

 

 

 

 

광통교 신장석(廣通橋 神將石)

광통교를 정릉의 무덤 돌을 가져다가 만든 데에는 태조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과 신덕왕후 강씨의 깊은 원한관계가 상당히 작용하였다

1392년(태조 1년) 계비 강씨는 정도전 등의 도움으로 이방원을 물리치고 자신의 소생인 방석을 세자에 옹립하였다

이 일로 계비 강씨는 이방원의 깊은 원한을 사게 되었다

그러나 계비 강씨는 그의 아들이 왕위에 오르는 것을 끝까지 지켜주지 못한 채 1396년(태조 5) 3월 세상을 떠남으로써 세자가 된 아들 방석 또한 1398년 (태조 7) 정도전 등과 함께 이방원에 의하여 제1차 왕자의 난에 죽음을 당하였다

 

 

 

 

광통교 신장석 · 병풍석

정교한 구름무늬와 당초(唐草)무늬, 그리고 한가운데 두 손을 합장하고 머리에 관을 쓴 신장상(神將像)을 돋을새김했다

 

 

 

 

계사경준(癸巳更濬) · 경진지평(庚辰地平) · 기사대준(己巳大濬)

계사년에 하천 바닥을 다시 파내었다. 경진년에 하천 바닥을 평평하게 했다

기사년에 하천의 흙을 바닥까지 확실하게 쳐냈음을 알리는 기록이다

*

다리 기둥에 음각되어 있다

 

 

 

 

광교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왜가리작은 물고기를 노려보고 있다

 

 

 

 

석축(石築) 안내판

석축은 개천 둑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둑 양쪽을 돌로 쌓아 놓은 토목시설이다

도성의 석축은 태종 때 처음 건설되었으며 여러 차례 수리를 거듭하다가

1773년(영조 49)에 송기교(松杞橋 지금의 세종로)부터 영도교(永渡橋)까지 약 3.8km 구간에 걸쳐 다시 쌓았다

그러나 1920년 이후 수차례의 정비와 1959년 청계천 복개공사로 대부분의 석축은 훼손되었다

2003년 청계천 복원을 위한 발굴조사를 할 때 태평로와 삼일로 사이에서 석축을 발견하여 복원된  광통교 주변에 보존하였으며

광통교 터와 삼일교 사이에는 석축이 발견된 위치를 표시하였다

 

 

 

 

수선전도(首善全圖) / 가로 67.5cm · 가로 82.5cm 보물 제853호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조선 후기인 1825년 김정호가 직접 각성(刻成)한 목판본 서울시가지도이다

서울 북쪽 도봉산에서 남쪽 한강에 이르는 지역을 종로거리가 동 · 서로 가로지르는 것을 그렸으며

서울의 주요 도로와 교량 · 성곽 등 460여 개의 중요 지명을 표기하였다

수선전도는 조선시대의 목판본 서울지도 중 정확성 및 규모감에서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정조대왕 능행 반차도

행차의 목적지가 경기도이므로 경기감사이자 정리사인 서유방이 행차를 선도하는 가운데

이 행사를 총괄하는 우이정 채제공이 임시로 총리대신의 직함을 띠고 장교와 서리 · 녹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말을 타고 가고 있다

그 뒤에 84명의 별기대와 활을 멘 마병 · 총을 멘 보군들이 북소리에 발을 맞추며 따라가고 있다

행렬의 좌우에 곤장을 멘 군뢰(軍牢 죄인을 다스리는 군인)와 깃발을 든 군인들이 고관을 호위하고 있다

*

청룡 · 백호 · 현무 · 주작 등 깃발을 든 군인들이 앞장서고

그 뒤를 따르는 나팔 · 바라 · 호적 ·  ·  · 솔발 · 해금 등을 연주하는 악대들의 연주가 들리는 듯하다

훈련도감의 책임자인 훈련대장 이경무가 직인을 실은 인마(印馬)와 갑옷을 실은 갑마(甲馬) · 칼을 멘 군뢰를 앞세우고 뒤따르고 있으며

그 뒤에 금군별장이 25명의 금군(禁軍 궁궐을 지키는 군인)을 거느리고 따르고 있다

 

 

 

 

용기(龍旗)

51명의 악대가 말을 타고 가면서 대각 · 나팔 ·  · 점자 · 자바라 · 호적 · 해금 · 적(피리) ·  · 장고 · 나각 · 정 등

10여 종의 악기를 연주하면서 용기를 뒤따르고 있다

타악기 · 현악기 · 관악기의 힘찬 연주가 귀에 들리는 듯하다

악대 뒤에는 너울을 쓴 궁궐 나인과 형형색색의 깃발을 든 군인들이 따르고

그 뒤에는 도중에 쉬면서 먹을 수라를 실은 수레가 혜경궁 홍씨의 친척인 정리낭청 홍수영의 감시를 받으면서 가고 있다

 

 

 

 

자궁가교(慈宮駕轎)

이 행차의 하이라이트에 해당하는 정조의 사친 혜경궁 홍씨가 탄 자궁가교와 정조가 탄 좌마(座馬)가 등장한다

자궁가교는 두마리의 말이 앞뒤에서 끌고 간다

회초리를 든 근장군사(近仗軍士 궁궐 안에서 출입자들을 감시하는 군인)들이 당당한 태도로 가마를 선도하고

총을 멘 무예청의 총수(銃手)와 협련군들이 가마와 좌마를 삼엄하게 에워싸고 있다

정조는 양산을 떠받치고 있는 좌마에 앉아 혜경궁 가마를 뒤따르고 있으나 임금의 모습은 그리지 않았다

좌마 앞뒤에는 무장하지 않은 무예청 별감과 위내사령이 에워싸고 있다

뒤따르는 어용복마는 임금의 용품을 싣고 간다

 

 

 

 

군주쌍교(郡主雙轎)

정리사이자 부제조인 윤행임과 정리사이자 사복시 제조인 이시수가 선도하는 가운데 정조의 두 누이인 정연군주와 정선군주의 가마가 나란히 간다

역시 두 마리의 말이 끌고 간다. 정조의 왕비인 효의왕후 김씨는 이 행차에 참가하지 않았다

군주 가마 뒤에는 외빈과 장용영 부대의 지구관 · 패장 · 병방 · 승지 · 규장각 신하 · 승정원 주서 · 예문관 한림 · 의관 · 등촉방 · 중관 등이 따르고 있다

주서와 한림은 이 행차를 기록하는 임무를 맡았고, 의관은 약물을 준비하고, 등촉방 중방은 등불과 촛불을 담당했다

 

 

 

 

물길따라 걷다보면 어느새 맑아진다

오늘 우리 걷자, 이 길따라

 

 

 

 

수표교 · 삼일교 사이 징검다리

 

 

 

 

삼일교

 

 

 

 

수표교터(水標橋址 사적 제461호) 안내판

원래 수표교가 있던 자리이다

수표교는 1420년(세종 2)에 설치한 돌다리인데, 1441년(세종 23)에는 다리 서쪽에 수표석(水標石)을 세워 개천의 수심을 측정하는 데 사용하였다

이 다리는 1959년 청계천을 복개할 때 장충단공원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2003년 청계천 복원을 위한 발굴조사를 할 때 이 터에서 교각(橋脚) 일부와 수표석의 기초부가 발견되었다

수표교터는 그 역사적 의미가 크기 때문에 사적으로 지정해 보존하고 있으며

장충단공원에서 보존하고 있는 수표교를 현재의 위치에 옮겨 세우려고 준비하고 있다

 

 

 

 

수표교

 

 

 

 

관수교

 

 

 

 

하랑교터(河浪橋址)

원래 하랑교가 있던 자리이다

하랑교는 신교(新橋) · 하랑위교(河浪尉橋) · 화교(花橋) · 화류교(樺柳橋)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다리가 언제 놓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며, 1959년 청계천을 복개할 때 철거된 것으로 추정된다

다리의 형태나 규모는 장통교나 효경교와 비슷하였다

2003년 청계천 복원을 위한 발굴조사를 할 때 다리의 기초 부분에 해당하는

길이 12m · 너비 9.5m의 돌로 만든 구조물을 발견하여 현재 위치에 보존하고 있다

 

 

 

 

세운교

 

 

 

 

잉어

 

 

 

 

오늘은 잠시 걸어야겠어

모두 잊고 나의 길을 가겠어

 

 

 

 

새벽다리

 

 

 

 

마전교

이곳에서 약속 장소로 가기 위해 계단을 올랐다

 

 

 

 

왜가리

 

 

 

 

걸은 거리 5.3km · 소요시간 4시간 19분

*

식사 후 전철역까지 걸은 GPS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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