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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청령포

남한강 상류의 지류인 서강이 곡류하여 반도 모양의 지형을 이룬 청령포(淸泠浦)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경치가 오히려 슬픈 비극과 대조를 이룬다
사약을 받고 짧은 생을 마감한 단종이 머물던 청령포에는 국내에서 가장 큰 소나무인 관음송(觀音松)이 서있다
관음송은 단종의 슬픈 말소리를 듣고(音) · 비참한 모습을 봤다고(觀)해서 생긴 이름이다

청령포 매표소

 

 

청령포(淸泠浦)
삼면이 깊은 강물로 둘러싸여 있고 한 쪽은 험준한 절벽으로 가로막혀 있어서
배로 강을 건너지 않으면 어디로도 나갈 수 없게 되어 있는 곳이다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50호로 지정되어 있다

 

 

청령호
청령포를 왕래하는 배다

 

 

강원 영월군 청령포 숲
2004년 제5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공존상(우수상)을 수상했다

 

 

단종어소(端宗御所)

 

 

단종어소(端宗御所) 본채
승정원일기의 기록에 따라 기와집으로 그 당시의 모습을 재현하였다
어소에는 당시 단종이 머물던 본채와 궁녀 및 관노들이 기거하던 행랑채가 있으며

밀납인형으로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단종을 알현하는 선비

 

 

행랑채
궁녀 및 관노들이 기거하던 곳이다

 

 

바느질하는 침모

 

 

부엌

 

 

단묘재본부시유지비각(端廟在本府時遺址碑閣)

 

 

단묘재본부시유지비(端廟在本府時遺址碑)
1457년 6월 22일 조선왕조 제6대 단종대왕께서 왕위를 찬탈 당하고 노산군으로 강봉 · 유배되어 계셨던 곳으로
당시 이곳에 단종대왕 거처인 어소(御所)가 있었으나 소실되고, 영조 39년(1763)에 이 비를 세워 어소 위치를 전하고 있다
비의 총 높이는 162cm로서 화강석 기단 위에 오석으로된 비신을 세우고 비 앞면에는 단묘재본부시유지(端廟在本府時遺址)라고 음각되어 있다

 

 

단묘재본부시유지비(端廟在本府時遺址碑) 후면
歲 皇明崇禎戊辰紀元後三癸未季秋 涕敬書 令原營竪石 地名 淸泠浦
(세 황명숭정무진기원후삼계미계추 체경서 영원영수석 지명 청령포)
음각되어 있다

 

 

청령포 숲

 

 

영월 청령포 관음송(觀音松 천연기념물 제349호)
소나무 높이 30m · 가슴 높이 줄기 둘레가 5m 지상 1.2m 높이에서 두 가지로 갈라졌고 갈라진 두 가지의 밑 둘레는 각각 3.3m · 2.95m이다
나무의 나이는 확실하지 않으나 단종이 유배생활을 할 때
이 나무의 갈라진 가지 사이에 앉아서 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어서 약 600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이 소나무를 관음송이라 부르는 것은 이 나무가 당시 단종의 비참한 모습을 보았다하여 볼 관(觀)
단종의 슬픈 말소리를 들었다하여 소리 음(音)자를 써 관음송이라 전한다

 

 

망향탑(望鄕塔)
청령포 서쪽 절벽인 육육봉과 노산대 사이에 있는 돌탑으로 어린 단종이 청령포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이곳에 올라 한양에 남겨진 부인 정순왕후 송씨를 생각하며 직접 쌓았다는 탑으로
그 당시 애절했던 단종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다

 

 

검각산
망향탑 위 전망대에서 봤다

 

 

노산대(魯山臺)
단종이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청령포로 유배된 후
해질 무렵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던 곳이므로 노산대라 부르고 있다

 

 

방절리

 

 

청령포 금표비(淸泠浦禁標碑)
단종께서 1457년 노산군으로 강봉 · 유배되어 계시던 이곳을
일반 백성들의 출입과 행동을 제한하기 위하여 영조 2년(1726)에 세운 비석이다

 

 

청령포 금표비(淸泠浦禁標碑) 뒷면
머릿돌이 깨져 있다

 

 

청령포 금표비(淸泠浦禁標碑) 뒷면
東西 三百尺 南北 四百九十尺 此後 泥生亦在當禁 崇禎九十九年
(동서 삼백척 남북 사백구십척 차후 니생역재당금 숭정구십구년)
이 뜻은 동서로 300척 · 남북으로 490척과 이후에 진흙이 쌓여 생기는 것 또한 금지하는데 해당한다. 숭정99년
뒷면에 쓰인 내용으로  당시 단종에게도 이와 같은 제약이 있었을 것이라고 전해진다

 

 

청령포 금표비(淸泠浦禁標碑) 옆면
崇禎 九十九年 丙午 十月  日
(숭정 구십구년 병오 시월  일)

 

 

노산대(魯山臺)

 

 

단종어소 본채

 

 

영월관광센터 · 청령포공원

 

 

오백년만의 해후
청계천 영도교를 건너 영월 청령포에 유배되어 영영 돌아갈 수 없었던 비운의 왕 단종 청령포는 단종과 정순왕후의 슬픈 별리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500년이 지나 오늘에 이른 역사는 단종과 정순왕후의 재회를 희망한다
이곳에 우리 모두의 염원을 담아 「5백년만의 해후」를 형상으로 남겨 교훈으로 되새기려 한다

 

 

동물 벤치

 

 

단종 타일벽화

 

 

두견새 우는 청령포 노래비
작사 이만진 · 작곡 한복남 · 노래 심수경

 

 

왕방연의 시조
1457년 10월 24일 금부도사 왕방연이 단종께 사약을 진언하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통한 심정으로 청령포를 바라보면서 읊었던 시조다
1617년 병조참의 용계 김지남이 영월 순시 때 아이들이 노랫가락에 맞춰 부르는 것을 듣고 한시로 지어 후세에 남겼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2.42km, 소요시간 1시간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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