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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아리랑문학마을 일제수탈관

아리랑문학마을은 일제강점기를 다루는 소설의 배경으로
수탈당한 땅과 뿌리 뽑힌 민초들이 민족의 수난과 투쟁을 대변하는 소설 아리랑의 배경을 재현한 곳이다
*
일제수탈관
지평선을 이루는 징게맹갱 외에밋들(김제 만경 너른 들)
생명의 쌀이 있는 김제를 수탈의 대상으로 삼았다

아리랑문학마을

 

 

부모 잃은 아이
일제 총칼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하나같이 이런 모습의 거지가 되어야 했다

 

 

1층 전시실

 

 

국권 강탈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만든 일본은 황실을 왕족으로 격하시켜 「이왕가」라 불렀다
이와 함께 한국인의 품성을 미개함과 야만성 · 불결함과 나태함으로 조직하여 널리 전파하여 고착화시켰다
또한 전통적인 행정단위를 해체하고, 식민지 수탈에 필요한 명령조직체계를 구축하였다

 

 

수탈의 홈통
일제강점기 철도부설과 도로사업의 일차적인 목적은 효율적인 식민통치와 자원 수탈, 그리고 대륙 침략에 필요한 전진기지화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물론 일부에서 「식민지 시혜론」의 유력한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
1912년 1월 11일부터 영업을 개시한 김제역은 대전↔논산↔익산↔김제↔송정리를 거쳐 목포에 이르는 호남선에 속한다
조선총독부가 서둘러 호남선을 완공한 것은 김제를 비롯하여 호남평야 등지에서 생산되는 쌀과 자원을 손쉽게 수탈하기 위해서였다

 

 

구마모토공 적선불망비
구마모토 리헤이(熊本 利平)의 은덕으로 가뭄에 종자를 대어 추수가 가능했다는 내용이다
구마모토 리헤이는 1930~1940년 군산 개정에 본거지를 두고
1개 부(당시 군산) · 5개 군(김제 · 정읍 등) 26개 면 · 1,200여만 평을 소유한 전북 최대 일본인 지주였다
*
구마모토의 농장 경영은 일본인과 똑같은 고액의 월급으로 조선인 관리자를 고용하고
일본에서 관리자를 통해 소작농들을 원격 관리하는 방식으로
비료와 최신 농기구를 빌려주고 고리의 소작료와 비료대 · 기계 사용료까지 착취하였다
그 바탕에는 생산력 증대를 통한 쌀 수탈이라는 분명한 목적이 작동하였다

 

 

토지 강탈
조선총독부가 1910년부터 1918년까지 전국적으로 실시한 토지조사사업의 명분은 근대적 토지소유권을 확립한다는 것이었지만
사회경제 구조를 식민통치에 적합하게 개편하기 위한 기초 작업이자 토지 약탈이 주된 목적이었다

 

 

이에 따라 기존의 토지소유권을 인정받는 절차를 아주 까다롭고 복잡하게 만들고
당사자가 소유권을 증명하는 증거주의를 내세웠으며 신고기간도 매우 짧게 하였다
이에 더해 가까스로 신고를 해도 수속 미비와 증거 불명으로 처리하였다
신고되지 않은 사유지와 공유지는 물론 소유관계가 불분명한 토지 그리고 조선의 왕실과 대한제국의 토지 모두가 조선총독부 소유가 되었다
조선총독부는 이렇게 확보한 토지의 일부를 동양척식회사를 비롯한 일본인 지주들에게 무상 · 헐값으로 불하하였다

 

 

식민지 소도시의 탄생
김제가 본격적으로 식민지형 소도시로 바뀌는 데에는 1899년 군산항의 개항과 식민지라는 역사적 환경
그리고 1912년 호남선(철도) 개통과 1920~30년대 일본인의 본격적인 이주가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식민지 교육과 종교
식민지 교육의 기본방침은 충과 효를 근간으로 하여 천황의 충량한 신민을 양성하는 것이었다
가장 먼저 시도된 것이 우리말을 조선어로 일본어를 국어로, 일장기를 국기로 바꾸는 것이었다

 

 

수세발(水洗鉢)
신사에 설치되는 참배 전 손을 씻는 바위 용기다
김제신사는 1924년 3월 10일, 하시모토 니카바(橋本 央)를 창립총대로 현재의 성산에 설치되었다
본 수세발은 1960년 3월, 순국선열 충혼비가 설치된 후 태극문양을 두른 채 잔존한 일제의 흔적이다
2015년경 벽골제박물관이 이관한 자료를 재현하였다

 

 

신사
조선의 얼을 빼앗다

 

 

수탈경제의 유혹
1876년 개항 이후 일본을 비롯한 각국의 상품이 물밀듯이 들어왔다
특히 석유와 성냥 · 고무신과 호롱(램프) 등 생활용품 뿐 아니라 축음기와 전화 · 미싱 등은 가지는 것 자체가 사회적 지위를 과시할 수 있었다
일본은 이러한 식민지 경제를 수탈구조로 만드는 데 이용하였다

 

 

망원경 · 사진기
망원경은 이전의 이야기 속 「천리안」을 대체하였다
사진기 앞에서 펑하는 소음과 연기를 겪으면 신기하게도 사람들 모습이 종이에 박힌다
기존의 체계를 뒤흔드는 신문물은 국권침탈과 함께 공포심을 자극하였다

 

 

1층 왼쪽 편

 

 

수탈 · 전쟁 일억 총옥쇄
천황에 대한 충심으로 일본인 7천만 · 조선인 2천만 · 대만인 1천만은 옥처럼 깨끗이 부서지자

 

 

천인침(千人針 · 센닌바리)
몸에 착용하면 총알이 빗겨가고 착용자가 수호된다고 믿어진 일종의 부적이다
천 명이 한땀 한땀 정성을 모아야 한다는 기원행위까지도 부녀의 동원이 강제되었다

 

 

강제징병
일제의 침략전쟁이 중일전쟁으로 본격회하면서 1938년, 일제는 조선지원병 제도를 실시하였다
당시 2만여 명의 조선 젊은이들이 최전선의 총알받이로 징병했고 약 12만 명의 조선인들을 군속으로 끌고 갔다
또한 400만 명 이상의 조선인들을 징용했는데 이 중 150만 명 정도가 해외로 끌려가 강제 노동에 시달렸다

 

 

저항과 항전
김제지역 역시 독립만세운동에 동참하였다
김제읍내에서는 실패하였으나 원평장터 · 만경공립보통학교와 만경시장에서 대대적인 만세운동이 벌어졌다
일본 헌병경찰의 강제 진압을 당하고 관련자들이 체포당했으나 독립을 염원하는 기개만은 꺾을 수는 없었다

 

 

울부짖는 의병
두 팔을 뒤로 묶여 작두날에 목이 1/3쯤 짤리고 있는 의병의 모습

 

 

기억되지 못한 역사는 반복될 수 있습니다
식민지배의 역사는 반드시 제대로 정리되고, 식민지배의 고통은 지속적으로 상기되어 항구적인 자주독립의 자양분이 되어야 합니다
그 선택은 우리들의 몫입니다

 

 

모니터를 찍은 것이다

 

 

2층 전시실

 

 

문학은 인간의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 / 조정래 작가

 

 

작가 조정래 연보

 

 

이종구 作

 

 

돌진하는 독립군 상

 

 

태백산맥 · 아리랑 · 한강

 

 

소설 아리랑 1부 각 권 줄거리

 

 

소설 아리랑 1부

 

 

소설 아리랑 2부 각 권 줄거리

 

 

소설 아리랑 2부

 

 

소설 아리랑 3부 각 권 줄거리

 

 

소설 아리랑 3부

 

 

소설 아리랑 4부 각 권 줄거리

 

 

소설 아리랑 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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