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근대건축관의 본래 이름은 (구)조선은행 군산지점으로 1922년에 지어졌다
붉은 벽돌을 쌓아 올려 만든 2층 건물로 지붕은 함석판을 이은 모임지붕으로 처리하였다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서는 고태수가 다니던 은행으로 소개된다
(구)조선은행은 1909년 대한제국의 국책은행으로 설립된 한국은행에 기원을 두고 있으나
을사늑약 이후 조선 총독부에 의해 조선은행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광복 이후에는 한일은행 군산지점으로 사용하였다
일제의 경제수탈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건물로 보수 · 복원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군산근대건축관
전시관 내부 전경
군산의 근대 건축물
공공기관 · 의료/금융기관 · 교육기관 · 일반건축물 사진이 있다
조선은행 군산지점 상량문 / 1922년 7월
조선은행은 1920년 상량식을 하였고 1922년 7월 준공식을 갖는다
이 상량문은 조선은행 보수공사 중 천정에서 발견되었다
군산의 조선은행 · 동아시아의 조선은행
금고 속 조선은행 이야기
조선은행권 100원의 가치는 상당히 높았다
기록을 보면 소 한 마리가 50~60원 가량하였다고 하며 지금으로 대략 환산하면 800만 원 이상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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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고실로 일제강점기 조선은행에서 발행한 화폐 등 유물을 통해 당시 조선은행이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살펴 볼 수 있다
조선은행 발행 주화 · 지폐
조선은행권은 1914년 9월 1일 조선은행 이름으로 100원권을 발행하고 1915년 1월 4일 1원권, 같은 해 11월 1일 5원권, 10원권을 각각 발행하였다
조선은행권은 주로 조선총독부 직영 공장에서 제조하였으나 일부는 대장성 인쇄국에서 일본은행권과 같이 제조하였다
미즈상사 상량문 · 18은행 상량문
미즈상사를 건축할 당시 상량으로 정면과 후면에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1936년(소화 11년) 9월 8일 상량되었다는 내용과 당시 공사관계자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구 미즈상사는 본래 박물관 바로 앞에 위치하였는데 , 2011년 지금의 장소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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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은행의 상량문은 긴 나무판 앞면과 후면에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1911년(명치 44년) 9월 3일에 상량하였다는 내용과 당시 은행지점장 · 공사를 주관한 감독기사 · 작업기사의 이름이 적혀있다
독립군을 처형하는 일본군의 모습
경술국치 / 1910. 8. 29
나라를 잃었던 자들아 그날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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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점장실로 잊지 말아야 할 역사적인 경술국치를 기억하기 위한 전시공간으로 일본제국주의 침략의 역사를 증언하는 공간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한 만행 · 위안부 관련 사진자료
항복문서에 서명하는 일본 외무대신 · 히로시마 /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군산의 역사적 사진들
우량아선발대회 / 1950년
군산항 부두 / 1930년
해망굴 / 1920년대
군산역 / 1920년대
보건조사 / 1961년
시기별 군산지역의 변화
근대 군산의 다양한 모습과 사진을 볼 수 있는 응접실 공간에 있다
군산항의 일본인거리 본정
로비공간
로비에 설치된 바닥 스크린을 통해 근대 군산의 역사를 알 수 있다
2층 내부
군산 최고의 농장주 구마모토
신흥동 일본식 주택(히로쓰 가옥)
일제강점기 군산에서 포목점과 소규모 농장을 운영하며 부협의회 회원을 지낸 일본인 히로쓰가 건립한 일본식 2층 목조가옥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지주의 생활양식을 엿볼 수 있으며 아울러 이들의 농촌 수탈 역사를 알 수 있다
영화 「장군의 아들」과 「타자」를 촬영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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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형을 통해 군산의 근대 건축물을 한눈에 살펴 볼 수 있다
군산세관 / 감시탑
군산항을 개항한 대한제국은 1906년 인천세관 군산지사를 설립하고, 1908년 이 건물을 준공했다
붉은 벽돌 등 건축자재를 수입하여 유럽양식으로 건축하였으며 본관 이외에도 많은 창고들과 부속건물들이 있었다
외관은 붉은 벽돌이지만 내부는 목조로 지어졌으며 슬레이트와 동판으로 지붕을 올리고 그 위에 세 개의 뾰족한 탑을 세웠다
이영춘 가옥
(구) 개정병원 본관 동쪽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는데 1920년대 일본인 대 지주 구마모토가 지은 개인별장으로
외부 형태는 유럽의 주거 형식을 따르며 구조는 일식의 중복도형 바닥을 바탕으로 서양식의 응접실과 한식 온돌방이 결합된 절충식 구조를 보여준다
천정 구조를 보여준다
기둥 구조를 보여준다
창문을 보여준다
금고
구마모토 농장 가옥 소변기
전국 최고의 농장을 소유한 일본인 대지주 구마모토 리헤이가 지은 별장의 소변기로 당시 그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엿볼 수 있다
구마모토의 사치스러운 생활 뒤에는 2만 명의 한국인 소작농이 있었으며 그들의 힘든 노역과 함께 어려운 생활을 견뎌야만 했다
구 빈혜원 건물의 변기
조선은행(근대건축관) 바로 앞 도로에 자리했던 현재는 철거된 빈해원의 구 건물에서 사용하던 변기다
당시 건물의 주인이었던 일본인은 청화백자의 화려한 무늬의 변기로 화장실을 꾸몄다
군산에 살던 일본인들의 사치스러웠던 모습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부분이다
(2021. 10. 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