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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장릉산둘레길

조선 인조 5년(1627) 왕은 자신의 아버지를 원종(元宗) · 어머니 역시 인헌왕후로 추증하여

그들의 묘를 양주에서 김포로 이장하고 장릉(章陵)이라고 칭하면서 장릉을 품은 산이라 하여 「장릉산」으로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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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릉산 정상은 군부대로 오르지 못하고 장릉산둘레길(6.8km)은 비교적 짧아 장릉 관람 후 걸을 수도 있다

 

 

장릉주차장

무료 주차다

 

 

 

 

장릉산둘레길

시계 반대 방향으로 걷는 게 정방향이나 역방향으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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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릉 주차장 왼쪽이다

 

 

 

 

장릉 펜스를 오른쪽에 두고 걷는다

 

 

 

 

장릉 펜스를 끼고 걷다 승가로로 잠시 나왔다 다시 장릉저수지로 가는 길이다

 

 

 

 

장릉저수지

오른쪽 펜스 안에 있다

 

 

 

 

장릉산

장릉저수지 너머로 보인다

 

 

 

 

느티나무집

자판기가 있는 쉼터가 있다

 

 

 

 

쉼터를 지나 장릉산으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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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지나 금정사를 들렸다 가기로 했다

 

 

 

 

중앙승가대학교

금정사가 오른쪽에 있다

 

 

 

 

금정사(金井寺) 무루당(無漏堂)

경기도 전통사찰 제63호인 금정사는 신라 진흥왕 때 창건되었으며

창건 당시에는 고상사(高上寺)라고만 전하여 왔으며 달리 전해오는 기록은 없다

조선 인조 5년(1627) 왕이 자신의 아버지를 원종(元宗) · 어머니 역시 인헌왕후로 추증하여 양주에서 김포로 이장하였을 때

인근에 있던 고상사를 지금의 위치로 옮겨 장릉을 보호하는 사찰로 재건되면서 봉릉사(奉陵寺)라 칭하게 되었다

 

 

 

 

대웅전

6 · 25전쟁으로 소실된 것을 1973년 고근스님이 중수한 후, 1981년 정념스님이 신축한 건물이다

정면 3칸 · 측면 2칸의 단층 맞배건물로 가람의 상단에 위치하며 높은 계단석 위에 장방형 대석을 기단 삼아 자리하고 있다

건물은 막돌을 치석하여 상부를 원형으로 마감한 원형초석 위에 두리기둥을 세우고

그 위로 참방과 평방을 얹은 익공식 건물로 정면 3칸의 규모에 맞게 여법한 비례를 가지고 있다

공포의 양식은 다포계를 기본으로 한 약식 공포이며, 창호는빗살문으로 되어 있다

건물 외부는 전면 4분합의 교살창호를 달고 삼면을 토벽으로 마감한 모습으로 건물 외벽에는 십우도가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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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층 석탑이 기단 아래 있다

 

 

 

 

설선당(設禪堂) · 종무소

일제강압기인 1930년에 당시 주지 영송화상이 중수하였고

다시 1938년 주지 성화대사께서 대한제국 말기 김포를 관장하던 현청을 일제가 강제로 헐어낼 때

출입문(三門) 중 목재와 주춧돌 등을 구입하여 사찰을 크게 중수하였다

6 · 25전쟁 이후 쓸어져가는 사찰을 1974년에 주지 비구니 정념 스님과 고근 스님이 대웅전과 범종각을 새로 짓고 면모를 일신하였다

「능을 지킨다」는 봉릉사(奉陵寺)에서 절의 뒷산이 금정산이며 또한 법당 앞에서 좋은 물맛의 샘이 솟아남으로 인하여

「하늘우물」이라는 금정사(金井寺)로 개명하여 김포지역 포교와 비구니 수행도량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종무소 건물 바깥쪽에는 금정사(金井寺) · 안마당 쪽엔 부용당(芙蓉堂)과 심검당(尋劒堂)의 현판이 걸려있다

 

 

 

 

장릉산 들머리

 

 

 

 

장릉산 둘레길

 

 

 

 

장릉산 둘레길

 

 

 

 

고려공원 · 장릉 후문 갈림길

 

 

 

 

진달래

올해 산에서 처음 봤다

 

 

 

 

고려공원 · 장릉 후문 갈림길에서 왼쪽 언덕 위 쉼터에서 이동식을 했다

 

 

 

 

인천 서구 마전동 방향이다

 

 

 

 

고려공원 · 장릉 후문 갈림길

이동식을 하고 돌아 오며 만들었다

 

 

 

 

장릉 철펜스 바깥에 쳐진 철조망 안으로 들어간다

 

 

 

 

장릉산 포대

대공방어 포대가 있는 장릉산 정상이 보인다

 

 

 

 

고려공원

묘지 사잇길로 걷는다

 

 

 

 

지뢰위험지대 안내판

탄약고가 주로 마을 한가운데 위치해 주민 안전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고

더구나 지난 수해 때 매설된 지뢰가 노출돼 시민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가현산

멀리 보인다

 

 

 

 

김포시 방향

가현산 오른쪽 방향이다

 

 

 

 

고려공원 끝부분에서 돌아 봤다

 

 

 

 

고려공원 · 김포시청 방향안내판

고려공원에서 도로로 나와 좌측으로 잠시 내려오면 김포시청 갈림길 안내판이 나온다

*

이곳에서 김포시청 방향으로 가야하나 도로로 앞산을 다녀오기로 했다

 

 

 

 

도로를 따라 앞산으로 오른다

 

 

 

 

군시설물

정상 부근이다

 

 

 

 

앞산에서 다시 돌아 간다

 

 

 

 

갈림길 나무계단을 내려오면 왼쪽 김포제일공업고등학교 · 오른쪽 김포시청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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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길로 들어와 돌아 봤다

 

 

 

 

운동기구 쉼터를 지난 곳이다

 

 

 

 

김포시 사우동 방향이다

 

 

 

 

육각정자로 가는 길이다

 

 

 

 

육각정자

이곳에서 이동식을 했다

 

 

 

 

장릉 철펜스

정자에서 둘레길로 오르면 나오는 장릉 철펜스를 따라 잠시 걸으면 장릉주차장이 나온다

*

귀가길에 한하운 시인 유택을 들려가기로 했다

 

 

 

 

한하운 시인 유택

1950년 초 지금의 인천가족공원(부평공동묘지) 위쪽 산속에 국립나환자요양원 성계원이 있었다

1961년 성계원은 음성(치유)환자들의 자립을 위해 천주교 신앙을 가진 사람은 십정농장 · 개신교 신앙을 가진 사람은 청천농장으로 이주시킨다

한때 인천의 달걀은 대부분 그들 손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들 속에는 파랑새 · 보리피리 등의 시로 유명한 문둥병 시인 한하운이 있었다

시인 한하운은 1975년 2월 28일 인천 부평구 십정동 산 39번지 자택에서 간경화로 사망하였다

*

지도 검색을 해보면 산 39번지는 안나오고 산 39-1번지가 동암산 정상이다

 

 

 

 

시인 한하운 태영지묘

1944년 나병이 발병하자 본명을 한하운으로 개명했다

 

 

 

 

한하운 시인이 걸어온 길

 

 

 

 

전라도 길 소록도 가는 길에 / 한하운

 

 

 

 

보리피리 / 한하운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7.1km, 소요시간 3시간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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