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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야기

학산둘레길

문학산(217m)은 인천도호부 남쪽에 있다하여 〈남산〉 · 산의 형세가 학의 모습과 같다하여 〈학산〉

산꼭대기에 봉수대가 있어 봉화둑산 · 산 위에 산성이 있어 성산(城山)〉 · 봉화의 모양이 배꼽 같이 보여 배꼽산으로 불렀다

*

문학산이라는 명칭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인천부사로 재임 중 학문과 교화에 힘썼던 「이단상」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천서원」이 1708년(숙종 34) 〈학산서원〉이라는 사액을 받게 되는데

이 때 문묘(文廟)와 학산(鶴山)의 음을 따서 「문학」이라 한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보고있다

〈여지도서〉와 〈해동지도〉 등 18세기 중엽 이후의 지지(地誌)와 고지도에 문학산이라 표기되어 있다

*

인천광역시는 2015년 10월15일 제51회 시민의 날을 맞아 인천 역사의 발상지이며 상징이자 인천의 대표 문화유산인 문학산 정상부를 개방했다

그 동안 문학산 정상부는 공군기지의 주둔으로 50년간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됐었다

정상 개방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신동아아파트 버스정류장

문학산을 여러 번 올랐지만 다른 산과 마찬가지로 주로 마루금 산행을 했기에 이번 엔 둘레길을 돌았다

*

시점이다

 

 

 

 

숲 친화 마을길

버스정류장에서 길을 건너 소성로 228번길을 오르면 시작된다

 

 

 

 

인천백학초등학교

매소홀로 438번길에서 봤다

 

 

 

 

문학산 들머리

학산둘레길 종합안내도가 오른쪽에 있다

주요 볼거리로 학산서원 · 삼호현 · 문학산성 · 인천향교가 있다

*

제2경인고속도로 밑에서 봤다

 

 

 

 

학산둘레길 안내판

들머리에서 계단을 오르면 있다

 

 

 

 

벽을 넘어서 안내판

문학레포츠공원의 극기훈련 과정 중 하나다

그 밖에 외나무다리건너기 · 밧줄타기 · 만장굴탐험 · 거미줄타기 등이 있다

 

 

 

 

연경정 가는길 안내판

직진하면 삼호현과 연경정 마루금이 나온다

 

 

 

 

신선약수터 · 연경정 갈림길

연경정은 오른쪽 · 삼호현은 왼쪽 길이다

삼호현 방향으로 내려간다

 

 

 

 

사모지고개(삼호현)

왼쪽 문학동에서 오른쪽 청학동으로 넘어가는 문학산과 연경산 사이에 있는 고갯길로

중국으로 가는 사신들은 부평의 별리현(비류고개)을 거쳐 이 고개를 넘어 능허대로 갔다

배웅하러 왔던 가족들은 별리현에서 이별을 했고 사신들도 삼호현에 오르면

별리현에 있던 가족들에게 큰 소리로 세 번의 이별인사를 하고 이 고개를 넘어 갔다 하여 삼호현이라 부른다

*

오른쪽으로 잠시 내려가면 갑옷바위 · 술바위 · 배바위 안내판이 있다

 

 

 

 

갑옷바위

어떤 장군이 인천에 난리가 나면 이곳을 구해준다고 하며 바위 밑에 갑옷과 투구를 숨겨놓았는데 금기로 절대 열어보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나 문학산 안관당(安官堂)을 지키는 당지기(일명 무당)는 호기심에 그 바위 안에 숨겨 놓은 갑옷을 확인하려 했고

바위를 깨뜨리기 위해 도끼로 바위를 내리치는 순간 벼락을 맞아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고 바위 중간이 깨어지면서 갑옷도 사라져 버렸다고 전한다

*

경주 이씨 백사파 문학종친 묘소 울타리 안에 있다

 

 

 

 

술바위

옛날 술바위에는 신기하게도 술이 나왔다고 전한다

지나가는 길손이 삼호현 고개에 접어들어 쉬어 갈 때 바위에서 여인이 나와 술 석 잔을 권하고 들어갔다고 한다

여기서 나오는 술의 맛이 기가 막히게 좋았기 때문에 어느 날 이 근처를 지나던 중이

술 석 잔을 비우고 욕심을 부려 더 마시려 하자 예쁜 여인은 술이 나오는 바위 구멍 속으로 들어가 버렸고

스님은 바위구멍에 목을 길게 빼고 양손을 바위에 대고 무릎을 꿇고 아무리 애타게 불러봐도 처녀는 구멍 속에서 나오질 않았다

욕심 많은 중 때문에 술을 가득 담고 있던 술바위는 더 이상 술이 나오지 않았다

술바위를 보면 무릎을 끓고 손을 짚으면 머리가 구멍에 들어간다

술바위는 일명 중바위라 불러지고 있다

*

"안내판 맞은 편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실물을 볼 수 있다"는 안내판의 글을 보고 근처를 둘러보았으나 못 찾았다

(안내판 사진)

 

 

 

 

자생 무목 군락지 안내판 · 인천둘레길 마스코트

인천둘레길 마스코트는 여러 사람이 함께 걸으며 방향을 가르키는 모습을 형상화 한 것이다

 

 

 

 

산사나무 자생수목 군락지

장미목 장미과에 해당하는 낙엽교목으로 개화기 5월 · 결실기 9~10월 · 잎은 달걀형

둥근 열매는 끝쪽에 꽃받침 자국이 남아 있고 붉은 색으로 익으며 흰색 반점이 있다

열매는 산사자라고 하여 차로 달여 마시기도 한다

 

 

 

 

문학산 제사 유적

7세기 중반에 건립되어 고려 초기까지는 운영되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정사각형에 가까운 모양의 제단은 산 능선의 큰 바위 위쪽에 돌을 쌓아 만들었으며, 서쪽을 향하도록 설치하였다

제단 위쪽은 기와지붕을 두어 제단을 보호하였고, 문학산성 바깥에 별도의 제사터가 마련되었다는 점이 특이하다

「순화원년(淳化元年 990년) 칠월일관(七月日官)」이 새겨진 기와가 출토된 것으로 보아 관청에서 직접 제사에 관여한 시기도 있었다

또한, 청동기시대 화살촉이 함께 출토되고, 조선시대에도 문학산 관련 제사기록이 나타나는 점 등으로 보아

상당히 오랜 기간 제사터로 이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는 주로 바다와 관련된 생업 · 바닷길의 안전 · 전란으로부터의 안전 등을 기원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문학산 정상 들머리 · 함박마을 안내판

 

 

 

 

문학산 정상으로 통하는 문이 있는 쉼터로 올는 계단이다

 

 

 

 

밤송이가 제법 커졌다

 

 

 

 

계단 난간을 먹는 나무

문학산에 돌먹는 나무만 있는 게 아니다

 

 

 

 

문학산 정상으로 통하는 문

 

 

 

 

돌 먹는 나무

삼신할매 나무라고도 불리우는 이 나무는 돌이 굴러와서 박혔다는 추측도 있지만

나무가 부피생장을 하면서 돌을 끼고 자라는 형태가 되어 지금의 돌 먹는 나무가 된 것으로 추측한다

아까시나무 · 흉고 직경 30cm · 수령 40년 정도 · 기준일 2011년 

SBS TV 「있다 없다」 107회 방영(2008. 1. 18) 된 나무다 

 

 

 

 

안관당 (터)

1949년 조사에 따르면 문학산 봉수 동쪽에 석축 유구가 남아 있는데

유구는 7m × 3m의 방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방 초석이 남아 있어 건물 터로 추정하였다

(안내판에 있는 추상도다)

 

 

 

 

문학산성(인천광역시 기념물 제1호)

문학산성의 축조형식은 봉우리를 둘러쌓아 성을 축조하는 테뫼식 석성으로

성은 내 · 외성으로 이루어졌으며 둘레는 총 577m로 현존하는 부분은 399m다

처음에는 흙으로 쌓아 올린 성이였지만 삼국시대 말이나 통일신라시대에 돌로 쌓아 올린 성일 가능성이 높다

성을 쌓은 시기를 그 때로 보는 것은 이곳에서 발견된 기와 조각, 뱀이 기어가듯 구불구불한 파사형을 이룬 바닥부분

삼석이라는 긴 석재를 사이사이에 넣은 뒤 막돌을 올린 축성 기법 때문이다

*

덩굴식물이 거의 모든 성곽을 가렸다

 

 

 

 

나무데크길

남쪽 둘레길은 거의 나무데크 길이다

 

 

 

 

산사나무

개화기 5월 · 결실기 9~10월 · 잎은 달걀형 · 둥근 열매는 끝쪽에 꽃받침 자국이 남아 있고 붉은 색으로 익으며 흰색 반점이 있다

 

 

 

 

군초소

문학산 정상으로 가는 길로 예전 철조망으로 막혀 있던 곳이다

 

 

 

 

연수둘레길 안내판

오봉산부터 청량산까지의 안내도다

 

 

 

 

문학산

 

 

 

 

봉재산 · 청량산 · 문학산

봉재산 · 청량산 뒤로 송도국제도시 빌딩들이 보인다

 

 

 

 

푸르지오 1단지아파트(43층)

왼쪽 대학공원 · 오른쪽 봉재산 사이 청학동에 있다

 

 

 

 

청학동

랜드마크 푸르지오 1단지아파트가 없고 오른쪽 송도국제도시가 헐렁하다

(2009. 7. 26)

 

 

 

 

푸르지오 1단지아파트(43층)

청학동 랜드마크 건물이다

 

 

 

 

가천대학교가 있는 대학공원 방향이다

 

 

 

 

남동구

오봉산부터 남동테크노타워까지의 남동구다

 

 

 

 

바위 전망대

바위자락이 넓어 전망이 좋고 소나무 밑은 쉼터로 만들어 놓았다

 

 

 

 

산불감시 CC TV

초소보다 깨끗해 보인다

 

 

 

 

길마산 정상 전망대

전망대 쉼터에서 다시 이동식을 했다

 

 

 

 

한남정맥

멀리 소래산부터 오른쪽 만월산까지의 한남정맥 마루금이다

인천향교와 인천도호부청사가 아래로 있다

 

 

 

 

한남정맥

멀리 만월산 · 만수산 등의 한남정맥 마루금이 있고 인천문학경기장 · 인천 SK야구장이 아래로 보인다

 

 

 

 

고마리길 갈림길

법주사 · 고마리길 갈림길이다

 

 

 

 

고마리길

고마리는 물가에 덩굴져 자라며 8~9월에 꽃피는 한해살이 풀이다

흰색 또는 분홍색의 꽃이 여러 개가 모여서 핀다

오염된 물을 깨끗하게 만들어 주는 고마운 풀이라 「고마리」라 한다

*

고마리 군락지다

 

 

 

 

배바위

태초에 조물주가 천지창조를 할 때 후세 사람들에게 여기가 바다와 육지의 경계선이라

이런 모양의 배가 있었다는 사실을 증거물로 남기기 위해 만들어 둔 배라 전한다

 

 

 

 

통나무 쉼터

봉선화가 고마리길부터 따라온다

 

 

 

 

봉선화밭

누군가 심어 키우는 것 같다

 

 

 

 

인천둘레길 안내판

인천둘레길 · 학산둘레길 리본 · 안내판이 좌우에 있다

 

 

 

 

과수원

문학산에서 학익동 산자락마을 날머리다

 

 

 

 

학익동 마을

제2경인고속도로 문학 IC 부근이다

학산둘레길은 고속도로 밑으로 나가 오른쪽 인천향교로 가야 한다

 

 

 

 

학산서원 터

인천 유림들이 인천부사로 재임 중 학문과 교화에 힘썼던 이단상(1628~1669)을 추모하는 서원을 국왕께 상소하여 1708년 완공하였다

완공과 동시에 액호를 내려줄 것을 청원하여 「학산」이란 액호를 받고 사액서원으로 지정되었다

인천 지역의 유일한 사액서원이였으나 고종8년 (1871)에 단행된 서원 정리에 따라 훼철되었다

 

 

 

 

학산서원 터

뒤쪽에서 봤다

 

 

 

 

학산서원 터 빗돌

인천부사로 재임 중 학문과 교화에 힘썼던 「이단상」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천서원」이 1708년(숙종 34) 〈학산서원〉이라는 사액을 받게 되는데

이 때 문묘(文廟)와 학산(鶴山)의 음을 따서 「문학」이라 한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보고있다

여지도서와 해동지도 등 18세기 중엽 이후의 지지(地誌)와 고지도에 문학산이라 표기되어 있다

 

 

 

 

학산서원 주위 돌담

불법 경작과 쓰레기로 뒤덮여 있던 학산서원 터를 정화작업하면서 조팝나무와 각종 꽃을 심었고 2011년 5월 부터 돌담을 쌓기 시작 했다

문학산 지킴이 「도토리」 회원들이 쌓았다

 

 

 

 

문학산

학산서원 윗쪽에서 봤다

 

 

 

 

문학산

겨울철이긴 하지만 나무가 없어 문학산 정상부의 공군기지 레이더 등 문학산 속살이 그대로 보인다

*

(1998. 1. 30 사진)

 

 

 

 

출렁다리

이 다리를 건너면 문학레포츠공원 벽을 넘어서로 가는 계단이 나온다

결국 문학산을 한 바퀴 돈 셈이다

 

 

 

 

운동기구 쉼터 전망대

이곳에서 다시 이동식을 하고 신동아아파트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7.7km, 소요시간 5시간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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