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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하남위례길 4코스(위례둘레길) 2-1

지난 주 하남위례길 3코스에 이어 4코스(위례둘레길)를 걸었다

4코스는 길이 39.7km로 하루에 걸으려면 주마간산(走馬看山) 보듯 돌아야 할 것 같아

대중교통이 편리한 남한산성 북문을 기점으로 두 번에 나누어 걷기로 했다

다른 산객들은 하루에도 걷는 길을 두 번에 나누어 걸으니 시간적 여유가 있겠다 싶었는데 막상 걸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

하남시는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이 최초의 도읍으로 정하였던 하남위례성이 위치했던 곳으로

백제 한성시대 약 500여 년간 도읍이었던 역사적인 고장이다

그래서 옛길을 복원하여 만든, 걷고 싶은 길의 이름을 「하남위례길」이라 하였다

*

하남위례길 4코스 위례둘레길은 하남 위례성의 궁안 지역을 둘러싼 산을 걸으며

이성산성 · 금암산 · 남한산성 성곽 · 벌봉 · 객산에서 지금의 하남과 옛 백제의 왕도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하남버스환승공영차고지

시점이다

 

 

 

 

산곡천이 한강으로 스미는 지점이다

하남버스환승공영차고지 옆 산곡2교에서 산곡천을 따라왔다

 

 

 

 

메타세쿼이아 길

이 길은 하남위례길 2코스지만 4코스 시점인 덕풍천으로 가는 길이다

 

 

 

 

예봉산 · 백봉산

억새밭이 있는 강변 방향이다

 

 

 

 

덕풍교

위례길 안내판이 있는 곳이 4코스 시점인데 이곳까지 오기까지 2.4km를 걸었다

 

 

 

 

위례길 안내판

위례길 4코스만 사진에 담았다

 

 

 

 

덕풍천을 따라 남한산성을 향해 걷는다

 

 

 

 

천주교 하남성당

 

 

 

 

하남시청

덕풍2교 옆에 있다

 

 

 

 

천현사거리

하남시청을 지나 덕풍1교에서 덕풍대교 따라 걷는다

 

 

 

 

천연사거리를 지나 샘재로로 가는 길이다

 

 

 

 

마방집

1920년 경 주막의 형태로 개업한 한정식집이다

마방집에서 오른쪽 샘재로로 간다

 

 

 

 

중부고속도로 토끼굴

 

 

 

 

남한산성 가는길 아치

토끼굴을 지나면  왼쪽에 있다

 

 

 

 

중부고속도로

아치 계단을 올라 하남시를 돌아 본다

 

 

 

 

검단산

중부고속도로 너머에 있다

 

 

 

 

남한산

언덕을 오르니 매봉 0.1km 방향안내판이 있어 올랐는데 정상엔 지적삼각점만 있다

매봉의 묘지에서 봤다

 

 

 

 

하남위례길억새밭 · 위례둘레길 리본

 

 

 

 

바깥샘재 갈림길로 가는 길이다

 

 

 

 

벤치에서 이동식을 했다

 

 

 

 

산불감시초소

 

 

 

 

검단산 · 용마산

 

 

 

 

교산동 안내판

교산동은 향교의 「교」 · 객산의 「산」 자를 합쳐 「교산동」이라 하였으며

광주향교와 객산 밑에 보물 제981호인 마애약사여래좌상이 있는 선법사가 있다

 

 

 

 

마루공원 갈림길로 가는 길이다

 

 

 

 

거북바위

 

 

 

 

마루공원 방향안내판

 

 

 

 

솔숲을 지난다

 

 

 

 

선법사 안내판

 

 

 

 

객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다

 

 

 

 

객산(292m) 정상 빗돌

객산은 교산동과 천현동 · 하사창동 · 하산곡동을 끼고 있다

객산은 옛날 마귀할멈이 한양에 남산을 만들려고 이천의 도드람산을 떠서 치마폭에 싸가지고 가던 중

너무 힘이 들어 이곳에 그냥 놓고 가서 생긴 산으로 객지에서 왔다고 해 객산이라는 설과 산 아래 객사가 있었기에 객산이라고 부르고 있다

앞에 마루금이 걸어온 길이다

 

 

 

 

사미고개로 가는 길이다

 

 

 

 

사미고개 못미쳐 벤치에서 이동식을 했다

평일이라 산객들이 없어 조용했다

 

 

 

 

사미고개

이사창동과 하산곡동을 오가는 고개로, 새미재 또는 삼외고개라고도 한다

객산과 남한산성을 연결하는 주능선 중에서 가장 지대가 낮은 곳으로

고골 사람들이 광주나 이천 우(牛)시장에서 소를 가지고 올 때 이 길을 가장 많이 이용했다고 한다

 

 

 

 

철탑을 지난다

 

 

 

 

막은데미고개 갈림길

막은데미는 산이 앞을 막은 듯하게 생겨서 붙여진 산곡초교 건너편 산동네를 말하며

이 고개가 그 마을 뒤에 있어서 막은데미고개라 부르고 있다

 

 

 

 

새바위와 개구리바위 안내판

오른쪽 길로 0.2km를 가면 개구리바위 · 왼쪽 길로 0.2km를 가면 새바위가 있다

왼쪽 길로 갔다

 

 

 

 

새바위

새가 날개를 접고 앉아 있는 형태다

 

 

 

 

갈라진 이빨바위

 

 

 

 

상사창동(上司倉洞) 안내판

상사창동은 조선시대 동부면 사창리의 웃말에 속했기 때문에 상사창이라고 한다

사창리란 국가 창고가 있던 곳으로 한강 수로로 운반된 각종 물자들을 보관하던 창고가 있었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바람재

법화사지 위 능선에서부터 개구리바위까지의 능선을 가리키며 바람이 항상 부는 곳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토성(방어용 군사시설)

토성(土城)은 흙으로 만든 성으로 위례둘레길에는 자연지형인 능선을 이용하여 춘궁동(궁안) 방향은 그대로 두고

적이 침입하는 산곡동 방향은 경사가 급해지도록 흙을 깎아 성벽처럼 만든 곳과

능선과 능선 사이 좁은 협곡에 흙을 다지고 쌓아 연결하여 성벽처럼 만든 방어용 군사시설인 토성으로 추정되는 곳이 여러 군데 있다

 

 

 

 

토루(土壘 · 방어용 군사시설)

토루는 남한산성으로 통하는 길목을 지키기 위하여 설치한 일종의 인위적 방어용 군사시설로 추정된다

적이 쉽게 침입하거나 공격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하여 능선을 깎거나 성토하여 적군에게 매우 불리한 지형이 되도록 「S」자 형태의 협곡을 만든 것이다

적의 침입시 협곡 위 높은 곳에 매복해 있다가 쉽고 효율적으로 적을 교란 시키면서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든 군사시설이다

 

 

 

 

법화골(法華谷)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태종의 매부인 양고리가 조선의 원두표 장군에게 패하여 전사하자

전쟁이 끝난 후 그의 영혼을 달래기 위하여 남한산성 밖에 양고리의 고향인 법화둔의 지명을 따서 세운

법화암이라는 암자가 있었던 골짜기라 법화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지금도 옛 절터에는 부도 3기가 남아 있다

 

 

 

 

가지울 갈림길

가지울은 마을 근처 골짜기가 마치 나뭇가지처럼 많이 뻗어 있고

그러한 형태의 골짜기를 가진 산이 둘러싸여 있어서 가지동 혹은 가지울이라 부른다

 

 

 

 

남한산성 제13암문

이 암문을 들어서 직진하여 아래로 가면 고골과 성문사로 가는 길이고 왼쪽 길이 동장대 터와 벌봉으로 가는 길이다

 

 

 

 

검단산

성벽에 올라서 봤다

 

 

 

 

외동장대 터

장대란 지휘와 관측을 위해 군사적 목적으로 지은 누각 건물로 남한산성에는 5개의 장대가 있었다

이 곳은 외동장대가 있던 곳으로 동장대와 벌봉 일대를 조망할 수 있다

외동장대는 조선 숙종 12년(1686) 윤지선이 수어청 군사를 동원하여 봉암성을 축성할 때 함께 건립한 것으로 추측되며

군사들이 진을 치고 훈련하던 곳으로 보인다

고지도를 보면 다른 장대와는 달리 누각에 관한 기록이나 표시가 없어 누각없이 축대만 설치한 것으로 추측된다

 

 

 

 

남한산(522.1m) 정상 빗돌

멀리 검단산과 용마산 마루금이 보인다

남한산은 위례둘레길 코스는 아니다

 

 

 

 

북문 · 한봉 · 벌봉 방향안내판

 

 

 

 

봉암성

남한산성은 단순한 하나의 성곽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봉암성 · 한봉성 · 신남성과 5개의 옹성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구조이다

이 중에서 봉암성은 본성의 동쪽인 동장대 부근에서 북동쪽의 능선을 따라 벌봉 일대를 포괄하여 쌓은 외성이다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 내부의 동태를 훤히 조망할 수 있는 벌봉을 청군에게 빼앗겨 곤란을 겪었는데

이러한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숙종 12년(1686)에 부윤 윤지선으로 하여금 길이 2,120m의 성을 쌓게 하였고

숙종 31년(1705) 수어사 민진후가 포루를 증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봉암성은 남한산성 본성에 대하여 새로 쌓은 성이므로 「신성」이라고도 하며 동쪽의 성이므로 「동성」이라고도 하였다

 

 

 

 

제3암문(봉암성 암문)

암문은 적의 관측이 어려운 곳에 설치한 성문으로 일종의 비밀 통로이기 때문에 크기도 작고 쉽게 식별될 수 있는 시설도 설치하지 않았다

이 암문은 원성과 봉암성을 연결하는 주출입구로 다른 암문에 비해 매우 큰 편이나

이 암문은 문 윗 부분이 무지개 모양으로 반쯤 둥글게 만든 홍예문이며

규모 또한 폭이 2.36m · 높이가 2.6m에 달해 문루만 없을 뿐 성문의 역활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성곽을 따라 내려간다

 

 

 

 

남한산성(사적 제57호)

삼국시대 이래로 한강과 더불어 삼국의 패권을 결정 짓는 주요 거점이었으며 백제시대 토성 위에 조선시대 석성으로 축조한 산성이다

수도권 최대의 소나무 군락이 있으며 호국정신을 고취하면서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제4암문(북암문)이 보인다

 

 

 

 

제4암문(북암문)

암문의 본분인 비밀통로처럼 구부러져 있다

이 문을 통해 아래로 1km정도 내려가면 하남시 상사창동에 도달하게 된다

 

 

 

 

제4암문(북암문)

윗 부분이 무지개 모양으로 반쯤 둥글게 만든 홍예문이다

 

 

 

 

성곽을 따라 간다

 

 

 

 

제1군포터

군포는 성을 지키기 위한 초소 건물이다

중정남한지 기록에 의하면 남한산성 내에는 125개소의 군포가 마련되어 있었다 하나 지금은 한 군데도 남아 있지 않다

조사 결과 이 군포지는 주변보다 약간 높은 평탄한 대지 위에 정면 3칸 · 측면 1칸의 주춧돌이 발견되고, 다수의 와편과 조총탄환이 나왔다

군포는 목조가구로 된 건물에 기와를 얹고 토석벽을 두른 건물로 보이며

초소 건물 기능에 맞게 정면은 트여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내부는 온돌이나 난방용 시설은 확인되지 않았다

 

 

 

 

상사창동 · 법화골

왼쪽 금암산과 이성산 · 오른쪽 객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매봉 · 객산 마루금

오늘 걸은 길이다

 

 

 

 

금암산 · 이성산 마루금

 

 

 

 

상사창동 · 법화골

왼쪽 금암산, 이성산 · 오른쪽 객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남한산성 소나무

남한산성 소나무숲은 수도권 최대의 숲으로 남아있다

백제 때부터 군사 요충지로 역사적 가치가 높아 조선시대부터 보호되어 왔으며

일제강점기에 훼손될 위기에서 마을 주민 303인이 금림조합을 결성하고 도벌을 막아 지키고 가꾸어 지금의 소나무 숲을 이루었다

「제16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생명상(대상)」을 수상하였다

 

 

 

 

북문(全勝門)

 

 

 

 

북문(全勝門)

남한산성에는 동 · 서 · 남 · 북에 4개의 문이 있는데, 북문은 병자호란 당시 성문을 열고 나가 기습공격을 감행했던 문이다

싸움에 패하지 않고 모두 승리한다는 뜻에서 전승문이라고도 하였다

당시 영의정 김류의 주장에 의해 군사 300여 명이 북문을 열고 나가 청나라 군을 공격하였으나 적의 계략에 빠져 전멸하고 말았다

이를 「법화골전투」라 하는데,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있었던 최대의 전투이자 최대의 참패였다

정조 3년(1779) 성곽을 개보수할 때 성문을 개축하고 이름을 전승문이라 한 것은 그 때의 전투를 잊지말자는 뜻이었을 것이다

선조 때의 기록을 보면 산성내에 동문 · 남문 · 수구문 총 3개의 문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북문은 인조 2년(1624)에 신축된 성문이라고 생각된다

 

 

 

 

세계유산 남한산성 빗돌

마침점인 남한산성 버스정류장 종점 앞에 있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15.6km, 소요시간 7시간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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