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불호텔박물관 연회장(3층)은 문화교류와 사교의 장이었다
대불호텔
문화교류와 사교의 장, 연회장
대불호텔전시관 게관기념특별기획전 포스터
연회장 무대
대불호텔 / 세계인들의 정보 교류와 사교의 장
대불호텔
1883년 제물포가 개항되자 개항장 일대에는 여러 나라의 영사관과 조계가 설치되었고
이를 중심으로 해관 · 외국인 상사 · 서양식 주택 · 공원 · 호텔 같은 각종 근대식 시설과 기구가 속속 들어서면서
제물포는 국제적인 도시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외국인들의 왕래가 증가하면서 부족한 숙박시설이 큰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3층으로 지어진 서양식 호텔인 대불호텔의 등장을 시작으로
일본인 여관과 서양식 호텔이 세워지고 영업을 시작하면서 숙박시설의 부족 문제는 조금씩 해소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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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불호텔은 오늘날의 호텔과 그 기능이나 역할이 유사했다
일본식 여관과는 달리 서양의 음료와 음식이 제공되었고 한국어 · 일본어 · 영어가 통용되어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많은 환영을 받았다
음악을 감상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목의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대불호텔의 숙박요금은 다른 숙박시설보다 두 배 이상 높았지만
외교관 · 선교사 · 조선 정부의 고위 관리 · 외국군 장교 등이 주요 고객으로 방문하며 주변 숙박업소보다 높은 인기를 누렸다
대불호텔은 당시 국제정세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교류되던 장소 중 하나였다
주한일본공사관의 기록과 통감부 문서에는 대불호텔 이용객들의 동정을 관찰하고 보고했던 내용이 확인된다
당시 대불호텔을 찾은 선교사들의 기록과 여행자들의 기행문에는 연회장 구비에 따른 식사와 연회가 제공되었다고 적혀 있다
대불호텔은 숙박의 목적을 위한 공간이었을 뿐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오가는 사교의 장으로 활용되었던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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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인천에 세워진 서양식 호텔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당시 호텔은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연회장과 살롱의 역할을 하며 다양한 사교활동이 이루어지는 장소로 사용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종류의 술을 갖춘 살롱이 있던 꼬레호텔이나 결혼식 축하 디너파티를 열 수 있었던 오리엔탈호텔과 마찬가지로
벽난로가 설치되어 있고 피아노까지 구비한 대불호텔의 연회장도 다목적 공간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 / 이사벨라 버드 비숍 · 1897년 · 14.5×21cm
영국 출신 작가이자 지리학자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1831~1904)이 19세기 말 한국을 방문하고 쓴 책이다
당시 한국의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풍속에 대해서 기록하였다
이 책에는 이사벨라 비숍이 1894년 제물포에 상륙하면서 느낀 당시 풍경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당시 제물포의 열악한 시설이나 초가집과는 대비되는 외국인 시설이 들어서 있었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인천 아사히야여관 엽서 / 1912년(일제강점기) · 9×14cm · 14×9cm
인천항 해안에 있던 아사히야(旭屋)여관에서 보낸 연하엽서와 내부 모습이 찍힌 사진엽서이다
아사히야 여관은 지금의 인천중동우체국 건너편에 있었으며 3층 규모의 일본식 건물이었다
엽서는 근대의 중요한 민간 통신수단의 하나였으며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관광 상품으로 널리 활용되었다
이국적인 풍경과 특이한 양식의 건물이나 거리 등을 촬영한 엽서가 널리 유통되었으며 대불호텔의 모습을 담은 엽서도 많이 남아 있다
음식과 음악이 있는 아늑한 공간 연회장
외국인 투숙객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대불호텔에서는 서양식 음식이 제공되고 있었다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는 1885년 4월 5일 인천을 방문하여 머물렀을 때를 기록하며 테이블에 앉자 잘 요리되어 먹기 좋은 서양 음식이 나왔다고 하였고
영국인 화가 새비지 랜도어는 로스트비프 그리고 다음날 무탄숍이라는 이름의 정체 모를 고기 조각'이 제공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개항과 함께 대외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당시 조선의 왕실과 상류층의 연회나 모임에는 서양의 음식이 유행하기 시작하였고, 이는 곧 민간에 확산되었다
제물포를 통해 들어온 것은 사람만이 아니었으며 그들이 가져온 의식주 문화는 조선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켰다
조선의 모습 삽화가 그려진 잡지 / 1904년 · 20×30cm
20세기 초 조선의 지배권을 장악하기 위해 강대국들이 대립했고 청일전쟁(1894. 6~1895. 4)과 러일전쟁(1904. 2~1905. 9)이 일어나자
서양 언론은 각국에 특파원을 보내 사진과 삽화를 담아 신문과 잡지로 취재 내용을 전달했다
발행된 신문과 잡지는 해당 국가의 다양한 상황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귀한 자료가 된다
이 잡지에 그려진 삽화에는 갓을 쓰고 한복을 입은 조선인들이 서양식 식기를 이용해 만찬을 즐기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당시 연회 모습과 분위기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연회장 무대 맞은편이다
포토존
1876년 개항과 함께 서양의 문물이 널리 전파되는데 가장 영향력이 있던 사람들은 기독교 선교사들이었다
이들은 선교활동의 한 가지 방법으로 교육과 의료사업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찬송가는 창가로 이어져 민간으로 스며들었다
창가는 찬송가의 음계에 세속적 가사를 입히거나 서구의 악곡에 맞추어 지어진 가사 형식의 노래로
사람들이 즐겨 부르는 대중음악의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러한 노래들은 교회 · 학교 · 서양식 식당 등 다양한 공간에서 불리게 되었다
서로 가진 정보를 자연스럽게 공유하는 사교의 장소였을 것이다
대불호텔은 선교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휴식과 여유를 즐긴 장소였다
대불호텔 연회장은 다양한 국적을 가진 외국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음악을 감상하고
호텔에서 판매하는 서양식 음식과 커피와 술과 같은 음료를 즐기고 서로 가진 정보를 자연스럽게 공유하는 사교의 장소였을 것이다
대한제국 멸망사 /The Passing of Korea · 호머 헐버트 · 1906년 · 19×26.5cm
미국 출신의 역사학자이자 교육자 · 감리교 선교사인 호머 헐버트(Homer Hulburt, 1863~1949)가 쓴 책이다
6개의 장으로 나누어 역사 · 산업 · 문화와 예술 · 사회제도 등에 대해서 기술해 놓았다
헐버트는 1896년 처음으로 입으로만 전해지던 아리랑을 오선지 악보로 옮기기도 하였다
이 책에서 그는 아리랑에 대해 이 노래는 마치 그들의 식생활에서 쌀이 차지하는 것과 같은 비중이다
다른 것은 주변적인 노래일 뿐이다. 그래서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이 노래를 들을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감리교도용 찬송가 / Methodist Hymns · 1850년 · 16×10.5cm
찬송가는 개신교에서 부르는 성가를 말한다
1885년 4월 5일 제물포를 통해 우리나라에 도착한 선교사 아펜젤러와 언더우드의 주된 사업 중 하나는 성서와 기독교 문서를 번역해서 알리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찬송가집은 1892년 감리교도인 존스가 간행한 「찬미가」였으며
곡조가 붙으 최초의 찬송가집은 1894년 장로교도인 언더우드가 편찬한 「찬양가」이다
찬송가는 한국 근대음악의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으며 신문학운동에도 많은 자극을 주었다
축음기 / Gramophone · 20세기
축음기는 원통이나 원반에 홈을 파서 소리를 녹음한 후 바늘을 이용해서 재생시키는 장치이다
1877년 에디슨이 발명한 이후 축음기는 미국을 중심으로 크게 유행했는데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설치되어 사람들에게 신기한 여흥거리를 제공하였다
이 축음기는 내장형 나팔 그라모폰 축음기로 1906년 영국 빅터사에서 고안한 형태이다
나팔이 외부로 노출되어 있는 기존의 축음기와는 달리 나팔을 축음기의 몸체 안으로 집어넣고 이 몸체를 음반 수납용의 고급 나무캐비닛으로 마감하였다
내장용 나팔축음기들은 가정의 응접실이나 거실 혹은 식당에 놓여 사용되었다
인천 호텔의 연회장 기록
근대 인천에 세워진 서양식 호텔에 관한 기록을 보면 당시 호텔이 숙박시설이라는 본래의 기능 이외에도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연회장, 살롱 등 다양한 사교활동이 이루어지는 장소로 사용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인천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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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레호텔이라는 이름을 가진 호텔은 이 항구에 기항하는 전함의 수병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휴식처가 되었는데
이는 한편으로 모든 종류의 술을 갖춘 살롱이 갖춰진 것이 이 집의 자랑거리였다
새비지 랜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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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삐이노 씨는 상하이 라바곳 양과 수요일 로마가톨릭 성당에서 결혼하였는데
같은 날인 이달 22일 저녁에 신부와 신랑은 이 행사를 위해 정성껏 메뉴가 마련된 오리엔탈호텔에서 그들의 우인들을 위해 디너파티를 열었다
디 인디펜던트
연회장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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