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야기
2011. 12. 4.
충청수영성(오천성)
오천항(鰲川港)은 백제 때에는 중국 · 일본과 교역하던 항구로서 회이포(回伊浦)로 알려졌으며 통일신라시대에는 당나라와의 교역 창구로 이용되었고 고려에 접어들면서 왜구의 침몰이 잦아지자 수군이 주둔할 수 있도록 천수만이 열리는 지점부터 먼 바다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오천성」을 쌓게 되었다 서해의 중간 지점인데다 외부가 섬으로 둘러싸여 있고 수심이 깊어 군선의 항해가 용이해 조선시대에는 전략적 요충지 역할을 했다 * 국내에 남아있는 조선시대 수영 중 가장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고 있다 충청수영은 1466년 설치됐으며, 중종 4년(1509) 수군절도사 이장생이 축성한 이후 고종 33년(1896) 근대 해군 창설로 폐영할 때까지 운영되어 왔다 성의 규모는 군선 142척 · 수군 8,414명 · 성곽 둘레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