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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서울문묘 · 성균관

서울문묘 지역은 조선시대의 국가 통치 이념인 유교적 세계관과 관련된 곳으로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우리나라의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이다

대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제사 공간과 명륜당을 중심으로 하는 교육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묘에서 매년 음력 2월과 8월에 공자를 위시한 성현들에게 석전제를 드리는데 이를 석전대제 또는 문묘대제라고 한다

 

 

성균관대학교 1398 빗돌

서울문묘와 성균관으로 가기 위해 찾았다

탕평비각 · 하마비가 뒤에 있다

 

 

 

 

탕평비각(蕩平碑閣) · 하마비(下馬碑)

비각 안의 탕평비는 1742년(영조 18) 3월 26일, 왕세자가 성균관에 입교할 즈음에 영조의 어명으로 성균관 반수교 위에 세워진 비석이다

영조는 지나친 당쟁의 폐해를 막기 위해 능력에 따라 공정하게 관리를 뽑는 탕평책을 펼쳤고 이 비를 세워 그 의미를 널리 알렸다

이 비에 새겨져 있는 「周而不比 乃君子之公心 比而不周 寔小人之私意 / 주이불비 내군자지공심 비이불주 식소인지사의」라는 비문은

논어의 위정(爲政) 편 14장을 활용하여 영조가 지은 것으로

「남과 두루 친하되 편당을 짓지 않는 것이 군자의 공정한 마음이고, 편당만 짓고 남과 두루 친하지 못한 것은 소인의 사사로운 생각이다」라는 뜻이다

*

비각 오른쪽에 하마비가 있다

 

 

 

 

하마비(下馬碑)

비각 오른쪽의 하마비에 새겨진 "大小人員過此者皆下馬(대소인원과비자개하마)는

높고 낮은 모든 사람은 이곳에서부터 말에서 내리라"는 뜻이다

 

 

 

 

삼문(三門)

남쪽의 삼문은 제례 등의 행사에 사용되었던 정문인데 오른쪽으로 들어가 왼쪽으로 나오게 했으며

가운데 문은 성현들의 넋이 드나드는 상징적인 문으로 신문(神門)이라고도 불린다

대문의 문짝이 비틀려있는 것은 혼이 드나들 수 있도록 조금 열어둔 것이다

 

 

 

 

서울문묘와 성균관 안내판

문묘는 대성전을 주 건물로 하는 제사공간이고 성균관은 명륜당을 주 건물로 하는 교육공간이다

이런 배치를 전묘후학이라 한다

 

 

 

 

하연대(下輦臺)

임금이 성균관을 방문할 때 타고 온 가마를 내려놓던 곳이다

하연대 왼쪽에 동삼문은 임금만 드나들 수 있는 문으로 평상시에는 닫혀 있었다

 

 

 

 

동삼문(東三門)

임금만 드나들 수 있는 문으로 평상시에는 닫혀 있었다

 

 

 

 

동재와 진사식당 사이의 문이다

 

 

 

 

동재(東齋)

명륜당 좌우로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있다

 

 

 

 

동재의 긴 마루

 

 

 

 

진사식당(進士食堂)

성균관 유생들의 전용식당으로 총 33칸 규모의 건물로 칸을 막지 않고 길게 터서 수백 명이 동시에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만든 독특한 구조이다

아침 저녁 두 끼 식사를 할 때마다 원점을 찍어 주었는데 이는 유생들의 출석을 점검하는 역활을 하였다

 

 

 

 

정록청(正錄廳)

성균관의 참하관이 입직하여 중요한 시정(時政)을 기록하던 곳이다

이 곳에서 기록된 문건은 현책(玄冊)이라 부르며 독(櫝) 안에 비장하고 그 출납을 금하였다

향관청 앞에 있다

 

 

 

 

향관청(享官廳)

제사에 사용하는 향과 축문을 보관하는 곳이었으나

주로 제사 업무를 주관하는 관리들의 사무실 및 공관 역활을 하였다

 

 

 

 

동 · 서월랑

향관청 양쪽에 있는 동월랑과 서월랑은 성균관 감사를 담당하는 감찰 집사들이 사용하던 건물이다

 

 

 

 

존경각(尊經閣)

도서관이며 명륜당 뒤쪽에 있다

 

 

 

 

육일각(六一閣)

활과 화살을 보관하는 장소였는데, 공자의 가르침에 따라 선비들이 문무를 겸비하기 위해 수련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명륜당(明倫堂)

좌우 동재와 서재가 있는 공간이 성균관의 교육공간이다

1398년(태조 7)에 설립되어 왕세자까지 교육한 조선시대 최고의 학부였으며 때때로 과거 시험의 장소로 사용되었다

 

 

 

 

명륜당(明倫堂) 현판

명륜은 인간 사회의 윤리를 밝힌다는 뜻이며

현판 글씨는 임진왜란 뒤 성균관의 복원이 완료된 선조 39년(1606)에 명나라 사신으로 온 주지번(朱之蕃)이 쓴 것이다

 

 

 

 

명륜당 현판 · 정조의 글

주자의 글씨를 집자한 명륜당 현판엔 〈명륜당 신안주희서(明倫堂 新安朱熹書)〉라 써있고

그 위 정조의 글은 정조가 성균관에 은술잔을 하사하시면서 지은 시의 서문인 〈太學 銀杯 詩書(태학 은배 시서)〉로 문신 이만수의 글씨로 쓴 것이다

 

 

 

 

博文約禮(박문약례) · 덕화만방(德化萬邦)

박문약례는 가장 근래에 걸린 현판으로 공자의 77세손으로서 중국 초대 大成至聖先師(대성지성선사) 봉사관(奉祀官)을 지낸 공덕성의 글씨다

명륜당 오른쪽 날개채에 있다

 

 

 

 

성균관 은행나무

1519년(중종 14) 성균관 대사성을 지낸 윤탁이 심은 것이라고 전해지는데

공자가 은행나무 밑에서 제자를 가르쳤다는 고사를 따른 것이라 한다

명륜당 앞 마당이다

 

 

 

 

성균관 은행나무

 

 

 

 

서재(西齋)

동재와 같이 학생들의 기숙사다

 

 

 

 

대성전(大成殿)

제사공간으로 좌우에 동무와 서무가 있다

대성전과 동무 서무에는 공자를 비롯한 우리나라와 중국의 성현 133명의 위패가 있었지만

지금은 대성전에만 39명의 위패를 모시고 동무와 서무는 비워져 있다

*

현판 글씨는 석봉 한호(1543~1605)의 글씨로 전해진다

 

 

 

 

동무(東廡) · 묘정비각(廟庭碑閣)

문묘(文廟) 안에서 유현(儒賢)들을 배향하는 동쪽의 행각(行閣)이다

 

 

 

 

묘정비각(廟庭碑閣)

문묘를 창건하고 고쳐 지은 연혁을 기록한 비가 있다

 

 

 

 

서무(西廡) 

문묘(文廟) 안에서 유현(儒賢)들을 배향하는 서쪽의 행각(行閣)이다

 

 

 

 

삼문(三門) · 신도(神道)

신도는 까만 전돌 3장 폭으로 만들어져 있고 검은 전돌 양 옆을 화강암 장대석이 받쳐주고 있다

 

 

 

 

전사청(典祀廳)

제사 음식을 차리는 곳으로 대성전 서쪽에 있다

 

 

 

 

수복청(守僕廳)

하급 관원들의 관청이다

 

 

 

 

대학당(戴學堂) 편액 · 주련

莪沚化溢(아지화일) 물가의 무성한 다북쑥(선비)의 교화가 넘쳐나니

杏壇風餘(행단풍여) 행단(공자의 교육)의 가르침이 남아있네

 

 

 

 

제기고(祭器庫)

제사용 그릇을 보관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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