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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인천 중구 송학동

인천항이 개항하기 이전에는 인천부 다소면 선창리(船倉里)에 속하였고 각국 거류지(居留地) 설정에 따라 조계(組界) 지구에 편입되었다

거류지 구역이 폐지되고 부내면이 새로운 정명(町名)을 만들 때 응봉산(鷹峰山) 구릉지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산수정(山手町)이라고 하였다

1946년 일본식 동명 변경에 따라 송학동으로 개칭되었다

1977년 중앙동에 통합되었고, 1998년 중앙동이 신포동에 통합되었다. 법정동인 이 동은 행정동인 신포동에서 관할한다

거류지시대에는 서양인들의 별장이 많은 일급 주택가였으며 지명은 자유공원의 소나무에 학(鶴)이 있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대한서림

시점인 동인천역 앞에서 봤다

 

 

 

 

인현동 전자상가

서울이 세운상가라면 인천은 인현동 전자상가였지만 지금은 한가하다

한때 디스코장으로 사용하기도 했던 빨간 벽돌건물은 일제강점기 때 마쓰다양조장 건물이었다

 

 

 

 

동인천 삼치거리

전국구 명성을 얻고 있는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 뒷길 삼치거리다

이 골목길이 삼치거리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1966년 인하의 집이 지금의 자리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서 삼치와 막걸리를 팔기 시작하면서부터다

 

 

 

 

황장 제 61(皇庄 第 六十一)

황장은 황제의 땅으로 인천에 청나라 황제의 땅이 있었다

인천이 개항되면서 청국인이 상주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묘지도 필요하게 되어 지금의 내동에 청국인 묘지가 있었다

 

 

 

 

천부교 동인천교회

1955년 박태선이 창설한 신종교로 창시자 박태선 장로가 육신을 입고 온 하나님이라 믿는 종교다

 

 

 

 

전동119안전센터

인천 최초의 소방서는 1910년에 세워진 궁정(신생동)소방서고 1919년 인천에서 두 번째로 세워진 소방서가 전동소방서다

이젠 소방파출소로 격하되었지만 현존하는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소방소다

 

 

 

 

홍예문

인천시내 남북간 교통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하여 철도 건설을 담당하고 있던 일본 공병대가

1906년 착공하여 1908년 준공했으며, 처음에는 혈문이라고 불렀다

오른쪽 흰 조각품은 닳은 소라껍질을 형상화한 것으로 박영성 화백 작품이다

 

 

 

 

카페 HISTORY

입구 검은 글판에 정호승의 고래를 위하여가 쓰여있다

주변에 아미가 · 옛길 등 카페가 많이 있다

 

 

 

 

카페 HISTORY를 지나 홍예문 위로 올라간다

 

 

 

 

홍예문 위에서 본 인천항 방향이다

 

 

 

 

계양산 방향

홍예문 위에서 봤다

 

 

 

 

인천세관용지(仁川稅關用地) · 철이십일(鐵二十一) 빗돌 (1910년 이후)

 인천세관 영내 구역 경계 표시 용도와 경인철도 구역비의 21번째 빗돌로

중구 항동 출입항 옆과 경인철도 종점 철로변에 철도경계를 표시하기 위한 빗돌인데

어떤 연유에서인지 이 곳으로 옮겨져 있다고 한다

 

 

 

 

홍예문 옆 망루

예전 밤 12시 통행금지 때 또 가끔 등화관제 훈련 때 싸이렌을 울렸다 한다

 

 

 

 

어린이 헌장 비

 

 

 

 

인천학도의용대 호국기념탑(仁川學徒義勇隊 護國記念塔)

 

 

 

 

건빵선생과 별사탕

공효진과 공유 주연의 SBS드라마 촬영지 안내판이다

 

 

 

 

인천제일교회

1946년 10월 19일 14명의 월남한 장로교인들이 서울 영락교회에서 파송한 한병혁 목사를 모시고 창립예배를 드림

 1950년 2월 1일 신축교회 70평을 기공하여 건축 도중 6 · 25전쟁으로 중단하였다가 수복 후 완공하였다

 

 

 

 

송도신도시

인천제일교회에서 봤다

 

 

 

 

답동성당 · 한진 SKY TOWER(인천감리서 仁川監理署 터)

한진 SKY TOWER 아파트 자리는 1883년 개항 직후 통상 업무를 담당했던 인천감리서 자리로

22살의 청년 김구가 「치하포사건」으로 압송되어 재판을 받고 복역하던 중 탈출한 일화로 널리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세창양행 사택(맥아더장군 동상 자리)

독일의 무역상사 세창양행이 1884년에 지은 국내 최초의 양관인 사택이 있었다

빨간색 서양식 기와 · 아치형의 네모기둥으로 장식한 테라스 등으로 빼어난 건축미를 자랑했다

1899년 6월 19일 독일 황제의 동생인 하인리히가 인천에 왔을 때 이 집에서 왕자를 위한 파티가 열렸다

이후 일본인의 손에 들어가 「청광각」이라 불리며 이런저런 용도로 사용하다가 1922년 인천부가 매입해 부립도서관을 설립했다

1946년에는 최초의 공립박물관인 인천시립박물관이 개관했으나 인천상륙작전 중 소실되었다

1957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7주년을 맞아 그 자리에 맥아더 장군 동상을 세우고 같은 해 개천절을 기해 만국공원에서 〈자유공원〉으로 개칭하였다

 

 

 

 

 인천시민헌장비(仁川市民憲章碑)

 

 

 

 

자유공원 광장

광장 왼쪽에 비둘기장이 있었으나 1996년 주변 환경을 위해 철거되고 배 모양의 전망데크가 설치되었다

 

 

 

 

인천항 · 월미산

베 전망대에서 봤다

 

 

 

 

제물포구락부

개항기 인천에 거주하던 미국 · 영국 · 독일 · 프랑스 · 러시아 및 기타 외국인들과

소수의 중국 · 일본인들이 친목을 돕는 사교장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1901년 인천 개항장이 내려다 보이는 응봉산 언덕에 세워졌다

내부에는 사교실 · 도서실 · 당구대 등을 마련하였고 따로 테니스코트도 가지고 있었다

 

 

 

 

제물포구락부 실내

1901년 6월 22일, 제물포와 서울에 거주하는 여러 외국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오후 4시30분 주한 미국공사 알렌의 부인이 은제 열쇠로 출입문을 열므로써 개관되었다

원래 명칭은 제물포클럽이었으나 조계제도가 폐지된 이후 클럽이 일본식 가차음인 구락부로 불리고 그것이 그대로 굳어져 오늘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

일본 전통의상전이 열리고 있다

 

 

 

 

 일본 전통의상 입어보기 체험 행사

두 분의 모습이 아름다워 부탁해 만들었다

 

 

 

 

각국지계(各國地界) 빗돌

조계(租界)란 영토의 일정한 범위를 한정하여 외국인의 거주를 허가한 지역으로 거류지라고도 부른다

인천에는 1883년 일본전관조계를 시작으로 같은 해 12월 청국전관조계, 1884년 10월에 각국전관조계가 설치되었다

조계석은 조계의 경계를 나타내 주는 표지석으로 각 조계의 경계 지점에 세웠던 것이다

이 각국조계석에는 〈각국지계(各國地界)〉와 〈조선지계(朝鮮地界)〉 라는 명문이 있어

인천의 각국조계와 조선인 마을이 맞닿는 개항장의 외곽 지점 어딘가에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2007년 제물포구락부 보수공사 중에 발견되어 현재 인천시립박물관이 보관하고 있다

 

 

 

 

시장공관(지금 역사자료관)

역사자료관은 인천의 역사 자료를 발굴 · 수집 · 정리, 발간하는 기관으로 2001년 10월 인천시민의 날을 맞아 시장공관은 역사자료관으로 새롭게 태여났다

일제시대에는 일본인 사업가의 저택이었다가 광복 후에는 동양장이라는 서구식 레스토랑으로 또 송학장이라는 사교클럽으로 사용된 일이 있었으나

이후 인천시에서 매입하여 1966년 한옥 건물로 개축 · 시장공관으로 변화하였다

 

 

 

 

담쟁이집 수아네

드라마 「피아노」에서 수하(김하늘)의 집으로 나왔던 집이다

시장공관(지금 역사자료관)에서 아래로 내려오면 있는 전형적인 일본식 주택이다

 

 

 

 

카페 풍선넝쿨

중구청 · 중구 직장보육시설 사잇길이다

 

 

 

 

크라운볼링장

원래 미군 댄스홀이였던 곳을 1968년 볼링장으로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서너 번째로 일찍 건립된 볼링장이다

 

 

 

 

크라운 볼링장 내부

 

 

 

 

진흥각 맞은편 3층건물에 1946년 창간된 인천신문이 있었다

SC제일은행은 건축가 나상진(羅相晉 1923~1973)이 설계한 건물이다

나상진은 김제출신으로 워커힐 본관 · 경기도청사 · 새나라자동차 부평공장 · 중앙정보부 본청사 · 대통령 집무실 · 영빈관 의장설계 등이 있다

 

 

 

 

예전 이천전기 사옥

오른쪽 일본식 목조 건물이 이천전기 사옥으로 사용되었던 가옥이다

 

 

 

 

나무 전봇대

이천전기 사옥 골목에 있는 키 작은 전봇대지만 현역이다

 

 

 

 

맥주카페 물고기

 

 

 

 

예전 인천감리서(仁川監理署) 터 표지석

한진 SKY TOWER 아파트 자리에 1883년 개항 직후 통상 업무를 담당하는 인천감리서가 생겼고

나중에 인천부(지금 인천시청) 역활에다 개항장 재판소와 학교까지 들어섰다

1895년 관립외국어학교가 감리서 안에서 개교했는데 이 학교가 후일 「인천고」다

또 인천개항장 재판소는 22살의 청년 김구가 「치하포사건」으로 압송되어 재판을 받고 복역하던 중 탈출한 일화로 널리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신포동 로터리

 

 

 

 

신포로 · 개항로 갈림길

 

 

 

 

염염집

가끔 모듬전 · 조개탕 등으로 막걸리를 마시던 곳이다

주변에 가끔 들렸던 다복집 · 마냥집도 있다

 

 

 

 

신포 미디어 로드

 

 

 

 

신포 누들 로드

 

 

 

 

금파(金波 지금 청실홍실)

일제강점기 기린맥주 등을 팔던 〈KING BAR (금파)〉가 있던 곳이다

이곳에서 모밀국수와 통만두로 점심을 했다

 

 

 

 

신포우리만두

SINCE 1971 / 45년된 집이다

 

 

 

 

산동공갈빵

항상 줄을 서야 맛볼 수 있는 집인데 한가하다

 

 

 

 

신포닭강정

 

 

 

 

용동큰우물

1883년 인천 개항 무렵 조성된것으로 전해지는 지름 2.15m · 깊이 10m의 우물로

원래는 자연 연못으로 물맛이 좋고 수량이 풍부하여 상수도가 보급되기 전까지 인천 시민의 식수로 사용되었으며

광복 후 수도 사정이 좋지 않을 때 인천시민의 생활용수로 활용되었다

1967년 기와 지붕의 육각형 정자를 건립하였는데 현판은 이 때 인천 출신 당대의 최고 서예가였던 동정 박세림이 썼다

1996년 6월 12일 인천광역시민속자료 제2호로 지정되었다

 

 

 

 

우현 고유섭 생가 터(지금 동인천 길병원 자리)

우리나라 최초로 철학과에서 미술사와 미학을 전공한 고유섭은 일찍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별해

어린시절 조부모와 새어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말이 없는 의기소침한 소년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3 · 1운동 때는 태극기를 만들어 동네 아이들에게 돌리고

용동 일대에서 만세를 부르며  돌다가 붙잡혀 3일간 구류를 당한 적도 있을 만큼 강한 성격도 있었다

 

 

 

 

가천 이길여 산부인과 기념관

1958년 산부인과를 개원 · 1978년 의료법인 길의료재단 설립 · 1998년 가천의과대학교를 설립한 이길여 회장의 산부인과 기념관이다

 

 

 

 

이길여 기념관 3층

포토존이다

 

 

 

 

동인천역

1899년 경인철도가 개통할 때는 청과물시장에 「축현역」이 생겼다

1926년 지금의 자리로 옮기면서 역명이 상인천역 다시 1955년 동인천역으로 개명했고 1957년에 역사를 새로 준공했다

1989년 오랫동안 정들었던 역사를 허물고 민자 역사를 지으면서 인천백화점이 자리했다

인천백화점이 운영난에 문을 닫고 '엔조이쇼핑'이 다시 재기를 노렸으나 다시 문을 닫고 지금은 새로 리모델링 중이다

*

마침점이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7.9km, 소요시간 4시간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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