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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마포구 걷고 싶은 길

오전에 일이 있어 가깝고 짧은 코스로 오후 걷기를 계획했는데

어제 일이 해소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하루 코스로 계획을 바꿀까 하다

이것도 하늘의 뜻이란 생각으로 그대로 걸었다

 

 

합정역 7번출구

치마 · 티셔츠 · 국수 · 잡곡 등을 파는 노점과 자전거가 몇 대가 있다

시점이다

 

 

 

 

마포구 걷고 싶은 길 1코스(양화진 - 홍대 역사 문화길) 안내판

 

 

 

 

합정동 로터리 쉼터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

1914년 강화의 최초의 성공회 신학교인 성공회신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원장에 취임한 「허지스」

1904년 초대 코르프에 이어 제 2대 주교가 되어 인천과 강화도에 집중되어 있던 성공회의 영역을 진천까지 확대시킨 「터너」

영국 성베드로수녀회가 파송한 6인의 선교단의 일원으로 서양 의료간호사로는 두 번째로 한국에 온 「노라」 묘다

 

 

 

 

MI YONG AVELLONE(미용 애부런)

 

 

 

 

선교지에서 태여난 어린 자녀의 묘지

 

 

 

 

에비슨 가족

올리버 에비슨(1860~1956)은 세브란스 병원과 의학교를 설립하여 우리나라 근대의학의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에비슨은 캐나다의 영국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토론토 의대를 졸업하였다

그는 모교에서 외과 교수로 봉직하면서 선교사의 소명을 갖고 있었는데

마침 캐나다에 와 강연을 한 언더우드로부터 조선 선교사로 헌신하라는 권유를 받고 조선에서의 선교사역을 결심했다

1893년 한국에 온 에비슨은 제중원의 책임을 맡아서 환자를 진료하였다

에비슨은 교단별로 설립한 진료소들을 하나로 묶어 규모가 있는 병원을 설립해야 한다는 생각했다

이러한 바람은 「세브란스」라는 강철회사 사장이 에비슨에게 1만 달러를 기부함으로써 이루어졌다

 

 

 

 

라일리 사관 · 옥거흠 사관 · 고든 실베스터 · 더글라스 실베스터

 

 

 

 

원더우드 부부 · 원한경 부부 · 원일한 부부 등 4대에 걸친 7명의 가족묘

한국 기독교의 개척자인 「언더우드」는 1885년 부활절에 26세의 나이로 한국에 들어왔다

당시 기독교 전파가 불법인 상황에서도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으며

8살 연상의 의료 선교사인 「릴리아 호튼」과 서울에서 결혼하였는데 이들은 신혼여행조차 전도여행으로 다녀왔다

이들 신혼부부는 1,600km 이상을 여행하였고 600여 명 이상을 치료하였다

그는 영한사전 · 한영사전 · 한국어문법서들을 직접 만들어 출판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장로교회인 새문안교회를 설립하고 연희전문대학을 세우고 초대 학장을 맡는 등 한국 대학교육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2세 원한경은 연희전문학교 3대 교장으로 3세 원일한과 원요한도 각각 연세대학교와 호남신학교에서 교육선교사로 봉직하였다

 

 

 

 

아펜젤러 가족 묘

감리교 최초의 선교사로서 한국 감리교의 초석을 놓았다

결혼한지 두 달만인 1885년 한국에 들어와 첫 사업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한 목적의 학교를 열었다

이 학교는 고종으로부터 「배재학당」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

또 1885년 10월 한국 최초의 감리교회인 「정동교회」를 개척했다

배재학당 안에 삼문출판사라는 인쇄소를 만들고 기독교 소책자들과 독립신문 등 일반신문도 인쇄하였다

그의 자녀들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한국에서 선교사로 헌신하였다

아들 헨리 닷지 아펜젤러는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배재학당의 교장과 이사장으로 일하였고

딸 레베카 아펜젤러도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며 이화학당을 이화여자전문학교로 승격시키고 교장으로 일했다

 

 

 

 

에취 띄 아펜젤러 · 아펜젤러 제물포 상륙 첫 기도비

 

 

 

 

MOOR(무어)

백정 전도의 개척자이자 백정 해방운동의 조력자로 칭해지는 인물이다
무어는 미국 매코믹신학교 재학 중 언더우드로부터 한국선교에 대한 도전을 받고 졸업 후 32세 때 선교사로 왔다
그는 꾸준한 노방전도로 사람들을 모아서 곤당골에 교회를 세우고 학교도 열었다

학생들 중에 관자골에 사는 백정 박씨의 아들 봉주리(Pong Choolie)가 있었는데 
어느 날 봉주리에게서 아버지가 장티푸스에 걸려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무어는 박씨를 여러 차례 위문하였다

그런데 하루는 무어가 외국인 한 사람을 박씨에게 데리고 왔다. 바로 고종의 주치의 에비슨이었다

에비슨은 여러 차례 왕진하면서 정성스럽게 치료해주었고 마침내 박씨는 완쾌되었다
박씨는 왕의 주치의가 짐승 같은 백정을 치료해 준 것에 감격해서 곤당골 교회에 출석하였고 세례를 받고 성춘이라는 이름도 얻었다

 

 

 

 

베텔(BETHELL) / 1872~1909

영국 출신 언론인으로 노일전쟁 때 런던 데일리 특파원으로 내한하여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고

을사조약의 무효를 주장하는 등 일본의 침략을 맹렬히 규탄하였다

 

 

 

 

미국 북감리교 선교사 헐버트(HULBERT) / 1863~1949

고종의 밀사로 1907년 헤이그에서 열린 제 2차 만국평화회의에 이준 열사 등과 함께 참석하여 우리나라 주권회복에 적극 노력하였다

비문에는 〈나는 웨스트민스트사원에 묻히기 보다 한국에 묻히기를 원하노라〉라고 씌여있다

 

 

 

 

캠벨(CAMPBELL) / 1853~1920

1897년 10월에 남감리회의 첫 번째 여성선교사로서 중국인 양녀와 함께 한국에 들어와

1898년 10월 2일 지금의 종로구 내자동에 여성들 대상의 학당을 열었다

그리고 〈여성을 아름답게 기르고, 꽃 피워내는 배움의 터전〉이라는 뜻으로 「배화학당」으로 이름 지었다

 

 

 

 

양화진(버들꽃나루) 옛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양화진의 전략적 중대성은 더욱 부각되어 영조 30년(1754) 군사적 주둔지로서 군진이 설치되었다

양화진을 공원으로 조성하면서 군진 옛터 일부를 장대석으로 구획해 놓았다

*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묘원을 지나 양화진공원을 거쳐 절두산순교성지로 넘어간다

 

 

 

 

이승훈 베드로 / 1756~1801

한국 최초의 세례자요 한국 교회 창설 주역의 한 사람이다

1784년 봄 북경에서 선교사들로부터 세례를 받은 뒤에 귀국하여 같은 해 겨울 동료들과 함께 한국 천주교회를 창설하였다

그러다가 1801년 신유박해 때 체포되어 2월 26일(양력 4월 8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형을 받았다

 

 

 

 

 성모자상

 

 

 

 

절두산 성지 순교자 비

 

 

 

 

절두산 성지 순교자 비

절두산을 의미하는 듯 잘라진 머리 형상 밑에 순교자들의 이름과 형상이 있다

 

 

 

 

가톨릭 순교 성지 빗돌

 

 

 

 

절두산 순교 성지 안내판

 

 

 

 

팔마를 든 예수상

죽음으로써 믿음을 증언한 순교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갔음을 상징하는 팔마를 손에 들고 있다

 

 

 

 

참나리

 

 

 

 

형구틀

병인박해 때 흥선대원군의 지시로 천주교 신자들에게 교수형을 집행하기 위하여 고안된 잔혹한 형구로

밧줄을 목에 끼고 뒤에서 잡아 당겨 머리가 돌에 부딪혀 죽게 만드는 형구다

형구 · 형구틀 체험장 입구에 있다

 

 

 

 

십자형틀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령에 따라 체포되었던 리텔 주교가 쓴 옥중일기를 토대로 재현해 놓았다

형구 · 형틀 체험관이다

 

 

 

 

노기남 바오로 대주교 기념관

노기남 대주교 상과 생전에 사용하던 모자 · 안경 · 시계 · 반지 · 묵주 · 자동차 포니 등이 있다

 

 

 

 

원추리

 

 

 

 

김대건 상

 

 

 

 

절두산 비

한국천주교 순교자박물관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 벤치에서 떡과 과일로 이동식을 했다

 

 

 

 

병인박해 100주년 기념성당

 

 

 

 

성당 내부

기도 후 큰절을 올리는 신자가 있다

 

 

 

 

성인 유해실

김대건 안드레아신부 등 한국순교성인 27위 · 무명순교자 1위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한국천주교 순교자박물관

입구 벽면에 온고지信이 써있다

병인박해 100주년 기념성당 옆에 있다

 

 

 

 

곤여전도(坤與全圖) / 1856

예수회 선교사 페르비스트가 1674년 중국 베이징에서 제작한 세계지도다

 

 

 

 

동아시아에서 활동한 예수회 선교사 초상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은 1층 · 지하층으로 되어 있다

 

 

 

 

성모동굴

성당 강변 쪽에 있다

 

 

 

 

초 봉헌소

성모동굴 옆에 있다

 

 

 

 

능소화

분위기가 동양적이라 사찰꽃 · 양반꽃이라 불리기도 한다

 

 

 

 

척화비(斥和碑)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이 서양인을 배척하기 위해 세운 비석으로

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해할 수 밖에 없고 화해를 주장하면 나라를 파는 것이 된다

우리의 만대 자손에게 경고하노라

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우다

 

 

 

 

우리들의 친구,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다 버리시어 다 얻으신

가장 낮추시어 가장 높아지신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여기 길 잃은 양이 홀로 있습니다

그가 가장 힘들어하면 부축해 주시고

그가 방황하면 빛이 되어 주십시오

예수님의 참 평화를 얻을 수 있게 전구하여 주소서

 

 

 

 

예수 성모를 만남

십자가의 길 14처 중 제4처이다

 

 

 

 

남종삼 세례자요한 흉상 · 남요한 큰아버지 남상교 청덕비

사도세자의 서자이자 정조의 이복동생인 은언군 · 그 부인인 송마리아  묘비

천진암 주어사 터에서 발견된 해운당대사 징지비와 한국천주교회의 증언자 박순집 베드로 묘와 일가족 16위 순교자 현양비

 

 

 

 

성모상

1984년에 최종태 교수가 제작하여 2004년 이전에는 성지 내 성모동굴에 놓여 있었다

*

절두산순교성지에서 당인리발전소로 향한다

 

 

 

 

당인리발전소

마포구 걷고 싶은 길에 이곳이 들어있는데 들어갈 수 없다

펼침막에 「우리나라 최초의 발전소 당인리 발전소가 역사 · 문화 · 명품공간으로 다시 태여납니다」라고 씌여있다

안내에 알아보니 당인리발전소가 지하로 들어가고 지상은 공원화계획이 있는데 2017년 완성 예정이란다

아직 여러 해 남았는데 걷기길엔 왜 벌써 포함해 놓았는지...

 

 

 

 

패션매장 간판

이젠 홍대 걷고 싶은 길을 거쳐 홍대입구역으로간다

 

 

 

 

경성팥집 옥루몽

국내산 팥으로 가마솥에 끓여 만든 팥빙수

가마솥 전통 팥빙수 8천 원 · 녹차빙수 9천 원 · 팥 추가 1천5백 원이다

*

십수 명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KT 상상마당

 

 

 

 

노래연습장 수

 

 

 

 

육쌈냉면으로 점심을 했다

2006년 대한민국 최초로 나온 고기를 싸먹는 냉면집이다

냉면을 시키면 고기와 함께 나온다

*

음식점 위쪽으로 빙둘러 있는 연예인 사진 중 크라잉 넛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THE BEATLES

음식점 입구 붙어있는 포스터다

 

 

 

 

홍대 걷고 싶은 거리를 지나

홍대입구역 9번출구에서 오늘의 걷기 끝~!

 

 

 

 

가오리찜

걷기를 마친 후 막걸리와 함께했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6.2km · 소요시간 4시간 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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