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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헌종대왕 태실

헌종대왕 태실

조선 제24대 헌종(1827~1849)의 태(胎)를 안장한 태봉(胎封)이다

조선시대 궁중에서 왕가의 자손이 태어나면 태를 백자항아리에 보관하였다가

좋은 날을 택하여 풍수적 의미를 배려한 길지를 찾아 봉안했다

이는 아기의 무병장수와 왕실의 기복 번창을 의미한다

그러나 일제가 강제병합 후 왕실을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이왕직(李王職) · 일제강점기에 조선의 왕족을 관리하던 직제》이란 기관을 설치하고

1928년 전국에 안치된 조선 왕의 태 53기를 파헤쳐 서삼릉으로 옮겼을 때 이곳 태실도 훼손당했다

태실의 무늬와 모양은 조선시대 풍수와 미술양식을 알 수 있는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헌종대왕 태실

정자 오른쪽 언덕에 있다

 

 

 

 

헌종대왕 태실 안내판

비닐하우스 뒷쪽에 길이 있다

 

 

 

 

헌종대왕 태실

항아리 모양의 몸돌 위에 옥개석을 올렸다

봉우리 정상에 태실이 있다

 

 

 

 

헌종대왕 태실

헌종은 1827년에 태어나서 8세의 어린 나이에

조선의 24대 왕위에 등극한 후

가야산 자락에 있는 자신의 태봉지를 단장하였다

 

 

 

 

헌종대왕 태실

1847년에 덕산에 헌종 태실이 세워진 후 덕산현은 덕산군으로 승격되었다

태실의 주인공이 임금으로 등극하면 태실과 그 고장의 위상도 달라져

 임금의 태실이 설치된 고을에는 등급을 한 단계 높여주었다

 

 

 

 

헌종대왕 태실

헌종의 태실을 단장한 후에 안태사(安胎使) 이지연이

주변의 산세를 그려 왕실에 보고한 태봉도가 실록에 전해진다

 

 

 

 

헌종대왕 태실비

임금의 위상에 맞는 격조 높은 거북이 모양의 귀부석(龜趺石)을 설치한다

비신(碑身)은 사라지고 없다

 

 

 

 

헌종대왕 태실

왕자나 공주 · 옹주가 태어나면 태를 봉안할 장소를 관상감(觀象監)에서 물색하고

봉송 및 개기(開基) · 봉토(封土) 등의 날을 가려서 정하였다

선공감(繕工監)에서는 태를 봉송할 도로를 수치하고 역사(役事)에 지장이 없도록 대비한다

봉송일이 되면 봉송관원을 임명하는데 당상관으로 안태사(安胎使)를 정하고

안태봉송의 책임을 맏게 하고 배태관(陪胎官)을 차정하여

태를 봉송하는 도중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불의의 사태에 대비하여

전향관(傳香官)과 주시관(奏時官)을 차정 · 안태사와 배태관의 임무를 보좌하게 하였다

태실의 주위에 금표(禁表)를 세워 채석 · 벌목 · 개간 · 방목 등의 일체의 행위를 금지시킨다

금표를 세우는 범위는 신분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왕은 300보(540m) · 대군은 200보(360m) · 기타 왕자와 공주는 100보(180m)로 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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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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