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길이야기

인천 서구 녹청자박물관

인천 서구 녹청자박물관(국가사적 제211호)

인천 경서동 녹청자 요지(가마터)에서 출토된 녹청자 조사연구를 위해 2002년 10월 「녹청자 도요지(도기를 굽던 가마터) 사료관」으로 처음 문을 열었다

개관 후 2010년 현재의 건물로 신축 이전하고 「경서동녹청자도요지사료관」에서 2012년 「녹청자박물관」으로 이름을 바꾸어 재개관했다

역사전시실 · 기획전시실이 있고, 도예 정규 교육과정과 1일 체험과정을 운영한다

 

 

인천 서구 녹청자박물관

 

 

 

 

녹청자박물관 역사전시실

 

 

 

 

 

 

 

 

녹청자란 무엇인가? · 인천 경서동 녹청자 요지

 

 

 

 

녹청자란 무엇인가?

녹갈색의 유약을 발라 구운 조질청자(粗質靑磁)로 일상 생활용품으로 생산된 그릇이다

이들 녹청자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제작되던 초기 청자 이후에

도자기 제작에 있어 고려화 되어가는 과정에서 지방 수요를 위해 만들어진 고려시대의 도자기이다

녹청자는 1965년 국립중앙박물관과 인천시립박물관이 함께 인천 경서동 녹청자요지를 발굴조사하게 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대표적인 녹청자 가마터 유적으로는 인천 경서동과 해남 진산리 가마터가 있으며

근래에는 가마 유적 뿐만 아니라 고려시대의 건물지나, 고분 등과 같은 유적에서도 동반 출토되고 있다

이들 유적에서 출토되는 녹청자 그릇의 형태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하고 있는 용기인 대접과 완 · 접시가 대부분 차지하며

그 외에도 자배기 · 병 · 항아리 · 매병 · 장고 등이 출토되고 있어 생활성이 강한 도자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녹청자는 양질의 고급 청자에 비해 그릇 표면이 다소 거칠고 투박하게 보이지만 질박하고도 독자적인 유색을 보여줘

다른 도자기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멋을 지니고 있으며, 우리 도자기 역사에서도 중요한 맥락을 이루는 도자기라고 할 수 있다

 

 

 

 

녹청자음각연꽃잎무늬 반구병 / 고려시대

 

 

 

 

도짐이(陶枕) / 고려시대 · 인천 경서동 녹청자요지 출토

 

 

 

 

인천 경서동 녹청자요지(국가사적 제211호) 조사 개요

인천 경서동 녹청자 요지는 1964년 당시 국립 현대미술관장이었던 이경성 선생이 당시 최순우 미술과장에게 경서동 가마의 발굴 경위를 알리게 되면서

인천시에서 주관하고 국립중앙박물관과 인천시립박물관이 공동 발굴했던 도자기 생산 유적이다

이 유적은 바다와 면한 완만한 경사의 구릉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1965년 12월부터 1966년 5월까지 4차에 걸쳐 조사되었다

 

 

 

 

인천 경서동 녹청자요지 발굴 개요 · 발굴 결과 및 의의

발굴 결과 가마는 동남 - 북서 방향으로 위치해 있으며 3차례에 걸쳐 개축하여 사용했던 흔적이 발견되었다

노출된 가마의 폭은 120cm이며, 경작과 훼손으로 인하여 길이 7.3m 정도만 확인되었다

가마의 내부 구조는 특별한 시설물은 없으나 경사진 도침을 이용해서 도자기의 수평을 맞추는 구조로 되어 전형적인 고려시대 토축요(土築窯)이다

*

이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의 대부분은 대접과 접시 등 생활용기가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이곳에서 출토된 녹청자들을 통해 고려시대 양질의 고급 청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품질과 유형의 청자를 생산하였음이 확인되었으며

고려청자의 발생과 · 변천 · 특징 · 유통구조 등을 알 수 있는 다양한 연구 자료를 제공하고 있어

인천 경서동 녹청자 요지가 조사된 의미는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녹청자 편 / 고려시대 · 인천 경서동 녹청자요지 출토

 

 

 

 

경서동 녹청자요지 보호각

 

 

 

 

아름다운 우리 도자기

B.C 6000년 신석기시대부터 A.D 1400년 조선시대까지의 연표

 

 

 

 

빗살무늬 토기 / 신석기시대 복제품

신석기시대는 기원전 6,000년경부터 기원전 1,000년경까지이며 처음으로 흙으로 만든 그릇인 토기(土器)가 만들어 진다

토기는 점토가 많이 섞인 흙으로 빚어 700~800℃에서 구운 그릇으로 주로 적갈색을 띄고 있다

신석기시대를 대표하는 빗살무늬 토기는 만주와 시베리아 등 우리나라 주변지역에서도 나타난다

이외에 겉면에 아무런 무늬가 없는 원시 민무늬 토기 · 진흙을 그릇 겉면에 붙여 만든 덧무늬 토기 등도 있다

빗살무늬 토기는 한반도 전역에 걸쳐 나타나지만, 지역마다 형태나 무늬에서 뚜렸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어

이를 통한 문화영역의 구분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민무늬 토기 / 청동기시대 복제품

기원전 1,000년경부터 시작된 청동기시대에는 만주 시베리아 지방의 영향으로 민무늬토기 문화가 성행하였다

민무늬토기는 굵은 모래가 섞인 흙으로 빚은 그릇으로 대체로 바닥이 납작한 몸체에 아무런 무늬가 없는 것을 말한다

이 시기 토기는 다양한 크기의 고리를 만들어 똬리 모양으로 쌓아 올려 가면서 형태를 만들고(테쌓기식 방법)

가마 등 특별한 시설 없이 한데(露天)에서 구웠다

대개 황갈색 또는 적갈색을 띄고 있고 입 부분에는 간단한 줄무늬나 점무늬가 있으며, 어깨 부분에 칠을 한 것들도 있다

독과 항아리 · 사발 · 완 등 다양한 형태의 그릇이 나타났다

쇠뿔모양의 손잡이가 달리기도 하고 토기의 입술을 뒤집어 두 겹으로 만들거나 벌어진 입술 형식 등도 보인다

 

 

 

 

토우 인물상 / 신라시대(신라) 복제품

삼국시대는 고구려 · 백제 · 신라가 한반도와 만주에 걸쳐 거대한 고대국가를 형성했던 시기로

야철(冶鐵) 기술의 영향과 더불어 물레의 사용 · 두드리는 도박(陶拍)의 이용기술이 발달하였으며 많은 양의 토기가 제작되었다

 

 

 

 

짐승얼굴무늬 수막새 · 인동연꽃무늬 수막새 / 삼국시대(고구려) 복제품

고구려에서는 흑색 계통의 경질 토기가 많이 나타나며, 백제에서는 앞 시대의 전통이 남아 있는 회색토기와

고구려식의 손잡이가 있는 갈색계통의 토기 · 돗자리무늬 토기 등이 특징적이다

신라에서는 섭씨 1,000℃ 이상에서 구운 매우 단단한 토기들이 제작되는데 굽다리접시와 긴목항아리 등 다양한 형태가 나타난다

 

 

 

 

목 항아리 · 뚜껑굽다리 접시 / 삼국시대(신라)

가릉빈가무늬 수막새 · 사자무늬 수막새 · 연꽃무늬 수막새 / 통일신라시대 복제품

남북국시대인 7세기경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의 기술 유입으로 토기에도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인물과 동물 · 집 모양 등 특이한 형태의 토기들이 없어지고, 굽다리접시와 뚜껑이 있는 사발 등이 나타난다

굽다리접시는 짧은 다리에 넓은 굽이 달려 있고 네모나 마름모꼴의 작은 구멍을 장식하였다

뚜껑이 있는 사발에는 뚜껑에 꼭지가 있고 토기 겉면에 무늬가 새겨진 도장을 눌러 찍거나 톱날 · 겹고리무늬 등이 새겨져 있다

그러나 9세기에 이르면 굽다리접시가 소멸하고 목이 긴 병 · 자라병 등이 나타나며 도장 무늬가 차츰 사라진다

 

 

 

 

범자문 수막새 / 고려시대 복제품

고려시대는 통일신라의 회청색경질토기와 연질 회흑색 · 회백색 도기를 계속 제작하는 한편 청자와 백자 · 흑자 등 자기를 생산 발전시키게 된다

자기는 고령토를 바탕흙으로 사용하고,1,100~1,300℃ 정도의 높은 온도에서 구워 경도가 강한 그릇을 말한다

청자는 철분이 약간 함유되고 잡물이 제거된 흙으로 만든 그릇에 0.2~3%의 철분이 포함된 유약을 발라 만든다

 

 

 

 

청자상감모란국화운학무늬 매병 / 고려시대

분청사기인화국화무늬 대접 · 분청사기철화연꽃 물고기무늬 병 / 조선시대

고려청자는 처음 햇무리굽 청자와 순청자 등의 등장으로 시작하여 12~13세기 세련된 면모를 지니며 최고의 절정을 이룬다

그러나 몽골과의 오랜 전쟁을 겪은 14세기 이후 점차 쇠퇴한다

무늬는 고려의 대표적인 상감기법을 비롯하여 음각 · 양각 · 철화 · 상형 등 여러 기법을 두루 사용하여 다양한 무늬를 표현하였다

특히 중국사람들도 극찬한 비색(翡色)청자와 상감(象嵌)청자는 고려를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미술품 가운데 하나이다

 

 

 

 

백자청화연꽃무늬 대접 · 백화청화구름용무늬 항아리 / 조선시대

조선시대에는 분청사기와 백자가 발달하였다

회색 또는 회흑색 바탕 흙 위에 흰색 진흙을 바른 다음 유약을 입혀 구어낸 분청사기는

14세기 상감청자의 뒤를 이어 나타나는데 세종 대에 절정을 이루다가 16세기 중반에 생산이 거의 끝난다

백자는 고려시대부터 만들어졌으나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시대를 대표하는 자기로 한층 발전하였다

나라에서 직접 운영하는 관요(官窯)가 설치되어 왕실용 백자가 전문적으로 만들어지면서 더욱 세련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임진왜란 이후 국가의 통제가 약해지면서 생산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지방에서도 백자를 쉽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성리학 중심의 유교사회였던 조선에서 백자는 검소하고 질박하여 결백한 미감을 갖추고 있어 더욱 사랑받았다

백자는 음각과 양각 · 청화 · 철화 · 동화 · 상형 등 다양한 장식 기법을 이용하여

순수하고 평범한 마음과 생활을 반영하듯 티없이 맑고 고운 순백색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표현하였다

 

 

 

 

녹청자 대접 / 고려시대

 

 

 

 

녹청자 완 · 발 · 대접 · 항아리 / 고려시대

 

 

 

 

녹청자 완 / 고려시대

 

 

 

 

녹청자 완 / 조선시대

 

 

 

 

청자장식기법Ⅰ / 음 · 양각기법

성형 후 건조한 상태에서 조각칼을 이용해 문양을 선으로 표현하는 기법을 음각기법이라 하며

문양 주변을 깎아 면을 도드라지게 만드는 기법을 양각기법이라 한다

특히 양각기법의 경우에는 도범(陶範)이라고 하는 문양틀을 이용해 문양을 찍어서 표현하는 압출양각기법이 많이 사용되기도 한다

음각기법과 양각기법은 독립적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함께 사용되기도 한다

음 · 양각기법에서 많이 사용되는 문양으로는 연꽃무늬 · 앵무무늬(鸚鵡文) 등이 있다

 

 

 

 

녹청자음각연꽃잎무늬 반구병 / 고려시대

 

 

 

 

녹청자음각연꽃잎무늬 주자 / 고려시대

 

 

 

 

녹청자음각연꽃잎무늬 반구병 · 녹청자음각연꽃잎무늬 매병 · 녹청자 반구병 / 고려시대

 

 

 

 

청자장식기법 Ⅱ / 철화기법

청자 위에 유약을 시유하기 전 초벌상태에서 산화철이 주성분인 철화안료를 사용하여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장식기법이다

철화안료는 소성전에 적갈색을 띄고 있으나 유약을 발라 구워내면 흑갈색으로 발색된다

철화기법에서 많이 사용되는 문양으로는 국화문 · 당초문 · 모란문 등의 초화무늬가 대부분이다

 

 

 

 

녹청자철화넝쿨무늬 정병 / 고려시대

 

 

 

 

청화철화국화넝쿨무늬 매병 · 청화철화풀무늬 반구병 / 고려시대

 

 

 

 

청화철화풀무늬 반구병 · 청화철화넝쿨무늬 반구병 / 고려시대

 

 

 

 

청화철화국화넝쿨무늬 매병 / 고려시대

 

 

 

 

청화철화풀잎무늬 항아리 · 청화철화풀꽃무늬 주자 · 청화철화국화넝쿨무늬 주자

청화철화국화넝쿨무늬 기름병 · 청화철화국화넝쿨무늬 주자 / 고려시대

 

 

 

 

청화철화국화넝쿨무늬 통형병 / 고려시대

 

 

 

 

청자장식기법 Ⅲ / 상감기법

성형 후 건조한 상태에서 태토 표면에 장식하고자 하는 문양을 음각으로 파낸 후

백토나 자토를 채워 넣고 면을 다듬어 낸 후 유약을 발라서 구워내면 백토는 흰색으로 자토는 검은색으로 발색되어 문양이 선명하게 장식되는 기법이다

주로 사용된 문양은 운학문(雲鶴紋) · 포류수금문(蒲柳水禽文) 등 자유롭고 회화적인 것과 국화무늬 · 모란무늬 등 도안화된 무늬가 대부분이다

 

 

 

 

청자상감능화문 편호 / 고려시대

 

 

 

 

청자상감구름학무늬 잔 / 고려시대

 

 

 

 

청자상감물가풍경무늬 접시 / 고려시대

 

 

 

 

청자상감국화무늬팔각 접시 · 청자상감국화무늬 잔 / 고려시대

 

 

 

 

도자기 만드는 과정 모형

수비(水飛 흙 만들기) · 연토(練土 반죽) · 성형(成形 만들기) · 정형(整形 다듬기) · 장식(裝飾 꾸미기) · 건조(乾燥 말리기)

초번(初燔 첫 불때기) · 시유(施釉 유약 바르기) · 재번(再燔 다시 굽기) · 요출(窯出) 및 선별(選別)

 

 

 

 

장식(裝飾 꾸미기)

그릇의 표면에 음각 · 양각 · 상감 · 철화 등 여러가지 기법을 이용해 도자기에 장식하는 과정이다

 

 

 

 

청자 항 · 녹청자음각연꽃잎무늬 항아리 · 청자음각앵무새무늬 대접 등이 전시되어 있다

 

 

 

 

청자 항 · 녹청자음각연꽃잎무늬 항아리 / 고려시대

 

 

 

 

청자 접시 / 고려시대

 

 

 

 

청자꽃모양 접시 / 고려시대

 

 

 

 

청자음각앵무새무늬 대접 / 고려시대

 

 

 

 

청자상감물가풍경무늬 대접 / 고려시대

 

 

 

 

청자음각풀무늬 합 / 고려시대

 

 

 

 

청자상감구름학무늬 기름병 / 고려시대

 

 

 

 

청자 완 · 백자 완 · 백자 반구병 / 고려시대

 

 

 

 

청자 완 / 고려시대

 

 

 

 

백자 완 / 고려시대

 

 

 

 

백자 반구병 / 고려시대

 

 

 

 

녹청자 항아리 / 고려시대

녹청자두귀 항아리 · 흑유 매병 · 흑유 매병 · 녹청자 병 / 조선시대

 

 

 

 

녹청자 항아리 / 고려시대

 

 

 

 

녹청자두귀 항아리 / 조선시대

 

 

 

 

 

흑유 매병 / 조선시대

 

 

 

 

녹청자 병 / 조선시대

 

 

 

 

녹청자 병 / 조선시대

 

 

 

 

문명상회와 조선공예전람회

2023 녹청자박물관 이야기가 있는 작은 전시회

 

 

 

 

문명상회와 조선공예전람회 안내글

1930년대 소중한 문화재를 유통시켰던 문명상회와 조선공예전람회에 대하여 이야기이다

경성시청 동편 무교동에는 이희섭씨가 운영하는 문명상회가 있었다

이희섭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지만 일제강점기에 한국인 고미술상 중 하나로 주로 공예품을 수집 · 판매하여 거금을 벌어들였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34년부터 1941년까지 7회에 걸쳐 일본 도쿄 · 오사카에서 「조선공예전람회」를 개최하여 12,000점이 넘는 엄청난 수량의 유물을 판매했다

또한 도쿄 · 오사카 · 개성에 문명상회의 지점을 두는 등 조선의 다른 고미술상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활발한 활동을 해왔던 인물이다

이희섭이 반출한 문화재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조선공예전람회」를 통해 공개되었다

이 전람회를 개최했던 「조선공예연구회」에 소속되었던 골동품수집가 · 건축가 · 도예가 · 화가 등이 이희섭이 소장한 문화재의 출품여부를 심사했다

미사키 나오히코가 작성한 3회도록의 서문을 통해 이희섭이 전심을 다해 얼마나 많은 문화재를 집요하게 수집했고, 반출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는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이유와 경로로 해외에 흩어졌으며

현재는 총 229,655점의 문화재가 27개국 784개처로 흩어져 있다

 

 

 

 

조선공예전람회 도록 / 1934년

1934년(1회) 개최되었던 조선공예전람회 도록이다

 

 

 

 

조선공예전람회 도록 / 1936년

1934년(3회) 개최되었던 조선공예전람회 도록이다

 

 

 

 

녹청자음각연꽃잎무늬 항아리 · 녹청자 병 / 고려시대

 

 

 

 

녹청자 항아리 / 고려시대

 

 

 

 

녹청자음각연꽃잎무늬 정병 / 고려시대

 

 

 

 

가마터 복원모형 · 출토 유물

 

 

 

 

가마터 복원모형

 

 

 

 

출토 유물

경서동 가마터에서는 녹청자류와 더불어 검은빛을 띠는 흑자와 도기도 소량 출토되었다

출토량 대부분을 차지하는 녹청자는 대접(발)과 완 · 접시를 비롯하여

입 부분이 둥글고 넓적하게 벌어진 자배기와 반구장경병(盤口長頸甁) · 항아리 · 뚜껑 등이 확인된다

이 가운데 대접과 완 · 접시가 95%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음식을 담아 먹거나 차를 담아 마시는 그릇들이 대다수임을 알 수 있다

바탕흙은 미세한 점토로 정선된 것과 모래알이 약간 섞인 정선되지 않은 예가 공존하고 있으나, 비교적 우수한 점력과 가소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기벽이 얇고 기포가 적은 청자를 만들 수 있었지만 강진과 부안에서 만든 고급 양질 청자에서 볼 수 있는 미세하고 정선된 바탕흙과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고려 중기 내륙지방에서 제작된 여러 곳의 지방 청자들과는 큰 차이가 없어 지방 청자의 공통점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바탕흙은 경서동 녹청자의 품질 결정에 성형과 유약 · 번조법 등과 함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였다

 

 

 

 

대접

입술 지름이 15~20cm 정도로 위는 넓적하고 아래는 편평하며 높이가 낮은 그릇을 말한다

경서동 출토품은 굽에서부터 벌어지면서 올라오다가 입 부분에서 다시 안으로 오므라드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즉 바깥 면의 입술 단면이 안으로 굽은 갈고리 같은 형태이다

해남 산이면 진산리 녹청자 가마터에서도 이와 비슷한 유형의 대접이 확인되고 있어 널리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굽 형태는 대부분 굽깎기가 단정하지 않아 굽 내면이 낮으며, 외면은 대나무 마디(竹節) 모양의 죽절형이다

죽절형 굽은 조선 전기(15~16세기) 분청자와 백자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죽절굽과는 다르다

즉 굽 형태에 정형성이나 통일성을 갖추지 않았으며 매우 간략하게 성형하여 일관성이 없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릇 안쪽(내저면)은 곡면으로 성형한 것 · 원형으로 파낸 것 · 둥근 원만을 두른 것 · 아무런 장식도 없는 것 등이 있다

 

 

 

 

자배기

대접보다 훨씬 크고 입술 부분이 넓은 자배기는 그 모양에 따라 둘로 나뉜다

첫째는 입 부분이 밖으로 벌어지거나 안으로 굽어지지 않고 잘린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안으로 살짝 굽어진 것이다

파손이 잘되는 입술 부분을 보호하기 위해 끝을 도톰하게 성형하였으며, 굽은 평저형이다

*

접시

접시는 대접 · 완과 함께 경서동 출토품 가운데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릇의 형태는 입 부분의 모양에 따라 안으로 굽은 것과 밖으로 벌어진 두 종류로 구분된다

또한 그릇 안쪽에 둥근 원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모두 발견된다

굽은 대접처럼 성형 형태가 단정하지 않아 내면을 전혀 깎지 않은 것(평저형)과 간략하게 깎아 낸 죽절형으로 구분된다

 

 

 

 

반구병(盤口甁)

경서동 출토 반구병은 다른 기종(器種)들과 마찬가지로 그릇 겉면이 정돈되어 있지 않고 안쪽에 물레 자국이 남아 있다

시유 상태는 바닥까지 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두 종류이다

굽을 뚜렸하게 깎은 예는 거의 없고 굽 내면을 안굽(속굽)식으로 살짝 파내어 굽이 있는 것처럼 만든 것 등이 있다

가는 모래가 섞인 거친 내화토 비짐을 받쳐 구웠다

 

 

 

 

항아리

경서동 출토 항아리는 입 부분의 모양에 따라 모두 16가지로 구분된다

안쪽에는 물레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바닥은 편평하고 낮다

반구장경병(盤口長頸甁)은 바닥에 굽을 깎으려고 시도한 흔적이 발견되지만, 항아리에서는 그러한 시도가 없이 편평한 바닥(평저)으로 일관되어 있다

항아리 바닥의 지름은 대체로 12~15.4cm이다

시유 상태는 바닥을 제외한 안과 밖 전체에 유약이 입혀져 있다

가는 모래가 섞인 거진 내화토 비짐을 받쳤는데 대접과 접시에 비해 다소 거친 편이다

 

 

 

 

전국 가마터 분포도

고려청자 가마터 · 분청사기 가마터 안내도

 

 

 

 

우리나라 가마의 발달

점토로 그릇 모양을 만들고 높은 온도로 구워, 단단하고 물이 새지 않는 아름다운 그릇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일찍이 신석기시대부터 시작되었다

그릇을 만들고 굽는 경험과 지혜가 쌓이면서 불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방법과 시설을 개발하기에 이르렀는데 이것이 바로 가마이다

 

 

 

 

가마의 변천

한데가마 · 통가마 · 오름가마의 설명이다

 

 

 

 

가마의 분류

형태 · 구조 · 축조 재료 · 연료 · 재임 방법 등의 따른 분류의 설명이다

'길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천 서구 녹청자박물관 기획전시실  (0) 2023.07.22
녹청자박물관 도자기 만드는 모형  (0) 2023.07.22
서울시청~마전교  (0) 2023.07.08
광통교  (0) 2023.07.08
서울시청  (0) 2023.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