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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광통교

청계천은 개천(開川 인공적으로 물길을 만든 하천)으로서

도성을 둘러싼 목멱산 · 인왕산 · 북악산 · 낙산 등에서 발원하여

도성 중심부를 서에서 동으로 흘러 중랑천에서 합류하며, 그 길이는 11Km에 달한다
청계천에는 모전교 · 광통교 · 장통교 · 수표교 · 하랑교 · 효경교 · 마전교 · 오간수문 · 영도교 등 많은 다리와 수문이 설치되어 있다

*

광통교는 종로 네거리에서 을지로 사거리 방향으로 나가다가 청계로와 만나는 길목에 있는 청계천을 건너다니는 다리로
원래는 광통방(廣通坊)에 있는 큰 다리라는 뜻의 대광통교(大廣通橋)라고도 하였으며

약칭인 광교(廣橋) · 광충교(廣冲橋) 등으로도 불리었으며, 도성 안 개천에서 여섯 번째에 있었다고 해서 육교(六橋)라고도 하였다

다리 규모는 길이 약 12.3m · 폭 약 14.4m의 다리였다

 

 

광통교(廣通橋)
태조 때에 흙으로 축조되었다가 폭우로 인하여 무너지자 1410년 (태종 10년) 8월에 돌로 다시 축조하였다

축조 당시 신덕왕후릉을 이장하고 방치해 두었던 신장석을 다리 교대석으로 사용하였는데 그 중 일부가 거꾸로 놓여 있다

이 신장석은 세련된 당초문양과 구름문양이 새겨져 고려 말 · 조선 초기 전통문양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아름다운 문양석이 거꾸로 놓여 있는 것은 조선 초기 왕권에 있어

신덕왕후와 정적관계에 있던 태종 이방원의 의도적인 복수심의 산물이 아니겠느냐는 추측을 낳고 있다

 

 

 

 

광통교 신장석(廣通橋 神將石)

광통교를 정릉의 무덤 돌을 가져다가 만든 데에는 태조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과 신덕왕후 강씨의 깊은 원한관계가 상당히 작용하였다

1392년(태조 1년) 계비 강씨는 정도전 등의 도움으로 이방원을 물리치고 자신의 소생인 방석을 세자에 옹립하였다

이 일로 계비 강씨는 이방원의 깊은 원한을 사게 되었다

그러나 계비 강씨는 그의 아들이 왕위에 오르는 것을 끝까지 지켜주지 못한 채 1396년(태조 5) 3월 세상을 떠남으로써

세자가 된 아들 방석 또한 1398년 (태조 7) 정도전 등과 함께 이방원에 의하여 제1차 왕자의 난에 죽음을 당하였다

 

 

 

 

광통교 신장석

정교한 구름무늬와 당초(唐草)무늬

그리고 한가운데 두 손을 합장하고 머리에 관을 쓴 신장상(神將像)을 돋을새김했다

 

 

 

 

고려 말 전통 문양 중 구름무늬와 당초(唐草)무늬가 지워져 있다

 

 

 

 

구름무늬와 당초(唐草)무늬의 돌이 묻혀 있다

 

 

 

 

계사경준(癸巳更濬) · 경진지평(庚辰地平) · 기사대준(己巳大濬)

다리 기둥에 음각되어 있다

 

 

 

 

계사경준(癸巳更濬) · 기사대준(己巳大濬)

계사년에 하천 바닥을 다시 파내었음을 알리는 기록이다

 

 

 

 

경진지평(庚辰地平) · 기사대준(己巳大濬)

경진년에 하천 바닥을 평평하게 했다

기사년에 청계천의 흙을 바닥까지 확실하게 쳐냈음을 알리는 기록이다

*

1760년 경진준천(庚辰濬川)을 한 지 2년 후인 영조 38년(1762) 다리의 기초 부분 개축과 난간을 보수하였다

 

 

 

 

광통교 신장석

계비 강씨를 무척 총애하였던 태조 이성계는 강씨가 죽자 자주 찾을 수 있는

가까운 중부 취현방(聚賢坊 지금의 중구 정동일대)북쪽 언덕에 능을 조성하고 정릉이라고 이름하였다

태조는 이 능을 조성할 때 특별히 제주목사 여의손(呂義孫)으로 하여금 일류석공을 동원하여 당대 최고 수준의 석물(石物)을 조성하도록 하였으며

완성된 이후에도 수 차례 행차하여 강씨에 대한 그리움을 표시하였다

 

 

 

 

광통교 신장석 · 병풍석

 

 

 

 

광통교 병풍석

 

 

 

 

광통교 신장석

 

 

 

 

광통교 신장석 · 병풍석

 

 

 

 

광통교

문양을 새기려 했던 돌과 돌을 자르러 했던 돌이 다리 기둥으로 쓰였다

 

 

 

 

광통교

돌을 자르러 했던 돌이 다리 기둥으로 쓰였다

 

 

 

 

문양을 새기기 전의 돌 같다

 

 

 

 

문확석(門確石)

다리 바닥에 있는 돌인데 정교하게 구멍이 뚫린 것을 보면 정릉에서 가져온 돌인 듯 하다

 

 

 

 

문확석(門確石)

이 돌도 정릉의 돌인 듯 싶다

 

 

 

 

광통교(廣通橋)

광통방에 있는 큰 다리였으므로 처음에는 대광통교(大廣通橋)라 하였다

특히 서울에서는 큰 다리로 알려져 정월 대보름이 되면 도성의 많은 남녀가 이 곳에 모여 답교(踏橋)놀이를 하던 곳으로 유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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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통교가 훼손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부터이다

1900년 초 서울에 전차 노선이 건설되면서 먼저 광통교 동편에 전차길이 놓였다

또 1918년 이전 다리를 확장할 때 양편을 철근 콘크리트로 보강하였는데, 이때 다리의 난간석이 원래 위치에서 확장된 다리 양편으로 옮겨졌다

1923년에는 청계천에 암거 공사를 하면서 정릉의 신장석으로 이루어진 광통교 북측 교대 한가운데에 콘크리트로 된 큰 하수 관을 박았으며

남쪽 교대에도 역시 하수 배출을 위한 토관을 박았다
*
1954년 청계천 복개 때 서쪽 난간석이 사라지게 되고, 1958년 청계천 복개공사가 시작되면서 동쪽 난간석이 사라졌다

현재 창덕궁에 광통교의 난간석 일부가 남아 있는데, 하나의 높이가 약 150cm 정도 되는 것으로 볼 때

광통교가 매우 큰 다리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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