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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청계천박물관 기획전시실 서울책방

서울에는 청계천이 있어 종로와 을지로 사이로 흐른다

또 도심에 있던 대학천은 청계천으로 합류하는 작은 하천으로 지금은 복개돼 옛 자취를 찾기 어렵다

대학천과 청계천변에는 책방거리가 있다

이번 전시는 책방을 운영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책방거리의 형성과정과 특성

이곳 책방거리에서 거래되었던 시대별 책들의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대학천 책방거리는 신간 도서의 전국적인 도매 유통망을 중심으로 성장하여 번성하였다

청계천 책방거리는 교과서와 참고서를 시작으로 시대별 베스트셀러 등 헌책들이 유통되는 거점기지 역할을 담당해왔다

 

 

서울책방

 

 

 

 

서울책방거리 청계천 · 대학천

 

 

 

 

동대문 일대 공간의 형성과 변화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 초기 서포(書鋪)는 종로와 북촌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이는 당시 양반 중심의 문화가 남아 있어 종로와 북촌을 중심으로 인문계열의 근대교육시설들이 밀집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평화시장과 대학천상가 일대는 그 시기에도 미개발된 도심의 외곽지역이었다

이 지역의 도시화는 1894년 미국 북장로교회 선교기지가 연희동 일대로 이전해 오고, 경신학교(1886) · 정신여학교(1895)가 설립되면서 시작되었다

경성제국대학(1924) 등 실업교육을 중심으로 학교들이 밀집되면서 공업촌 · 문화촌 · 학생촌으로 지칭되었다

이 일대는 조선시대 이현(배오개)시장으로 시작해 대한제국기 광장시장(1907)

해방과 6 · 25전쟁 이후로도 계속해서 실햘민과 도시 빈민들이 판잣집을 짓고 거주하며 장사를 했기 때문에 많은 시장들이 형성되었다

특히 이 지역의 시장은 지물 · 인쇄 · 염색 등 수공업 기술이 발달되어 있었다

이와 같이 꼬방책방 · 헌책방 등의 상권은 학교 밀집지역으로의 소비조건과 출판인쇄업이 발달된 시장의 생산조건이 결합된 결과라 할 수 있다

 

 

 

 

동대문 일대 / 1962년

 

 

 

 

동대문 일대 / 2019년

청계천 · 대학천 책방거리가 붉은 색으로 그려져 있다

 

 

 

 

평화시장과 대학천상가

평화시장과 대학천상가 일대는 해방 후까지 청계천을 중심으로 청계장 · 방산시장 · 평화시장 등 무허가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는 이 지역이 도성 안쪽이면서 동시에 넓은 공터로 시장이 형성될 입지조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일대는 1960년대 청계천 복개와 정비사업으로 무허가 판잣집의 이전을 위해 평화시장이 건설되고

청계천과 대학천 합수부에는 복개 후 대학천상가가 민간에 의해 무허가로 지어졌다

평화시장은 청계천을 따라 800여 개의 도소매 상가가 있는 전국 최대 규모의 현대식 건물로 신설되었다

이에 비해 대학천 상가는 현재 6층으로 형성되어 있으나, 4층 이상의 층은 증축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대학천상가 인근은 현재까지도 옛 시장이 유지되어 골목을 형성하고 있고

주소지 또한 하천 위에 무허가로 건설된 대학천상가의 주소를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대학천상가 / 1962년

전차차고가 흥인지문 앞에 있다

 

 

 

 

청계천 복개와 책방거리 형성

청계천을 중심으로 한 평화시장과 대학천상가 일대는

해방과 6 · 25전쟁 전후로 월남한 실향민 등 경제적 약자들의 거주지이자 생존의 터전으로 여러 시장이 형성되었다

특히 청계천 준천으로 만들어진 방산(芳山)에 위치한 방산시장을 중심으로 출판인쇄업이 발달하였다

방산시장은 1959년을 전후한 시기 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품목이 주로 판매되었다

대표적으로 인근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미제 물품과 염색한 군복 그리고 헌책방과 꼬방책방(판잣집 형태의 책방)에서 판매하는 책이 있었다

하지만 1960년대 청계천의 복개와 무허가 시장의 철거 및 정비 정책으로 이 일대는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

1960년 12월 청계천이 복개되면서 헌책방은 평화시장으로, 도매 및 출판업 분야는 대학천상가로 이주하여 책방거리가 형성되었다

 

 

 

 

복개된 청계천 위로 운영중인 노점들과 건립중인 평화시장 / 1961

 

 

 

 

흥인지문과 버스터미널 / 1970

 

 

 

 

동대문 전차차고와 복개 전 청계천 오간수교 일대 모습 / 1954

 

 

 

 

흥인지문과 종로 · 복개 전 청계천 전경 / 1955

 

 

 

 

대학천 책방거리 주변 사진

 

 

 

 

흥인지문과 동대문운동장 / 1970년대

 

 

 

 

동대문전차사업소 / 1966

 

 

 

 

청계천 책방거리 주변

 

 

 

 

청계천 복개공사 개통식 · 1층에 상당수 서점들이 입주 / 1961

 

 

 

 

평화시장 인근 청계고가도로 건설 중인 모습 / 1960년대 후반

 

 

 

 

평화시장과 청계고가도로 / 1970

 

 

 

 

대학천 책방거리

대학천 책방거리는 전국에 지식을 전달하고 확산시키는 출판 유통 중심지였다

이 일대는 역사적으로 출판과 유통의 중심지에서 벗어나 있었는데

6 · 25전쟁 이후 동대문 전차 종점부터 청계천변 일대에 있던 판자촌과 노점에서 헌책을 파는 고서점이 생기면서 대학천 책방거리의 태동을 알린 것이다

청계천 지류였던 대학천이 복개된 후 건립된 대학천상가는 초기에 헌책방과 신간 도매상이 공존했는데

헌책방은 점차 평화시장으로 이주하고 신간 도매상들이 밀집하면서 국내 출판 유통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대학천 서점 대부분은 초기부터 서점과 출판을 겸하면서 내용과 질적으로 문제가 있는 책들을 싸게 팔아 불온서적의 온상, 덤핑시장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출판의 흐름과 정보에 밝은 서점 주인들은 서점을 중견 출판사로 성장시켜 국내 출판산업에도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1980년대 본격적인 단행본 시대로 접어들자 전국의 출판영업사업과 도매상들이 모여 대학천은 인산인해를 이뤘고

대학천 서점 주인들이 매절 경쟁을 벌인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대학천 책방거리는 음지와 양지를 오가며 국내 출판산업의 양적 · 질적 성장을 도모하고

전국적으로 책을 유통시켜 지식의 토대를 다지는데 기여한 공간이다

 

 

 

 

대광서적 · 출판의 인큐베이터

대학천 책방거리는 출판사의 창업과 성장을 돕는 인큐베이터였다

대학천 서점상들은 도서정가제 시행으로 단행본의 이윤이 커지자 직접 출판에 나섰는데

여기서 출판한 책은 정가의 30~40%에 팔아도 이윤이 많이 남아 1966년에는 출판사를 겸하는 서점이 80여 개로 급증했다

 

 

 

 

대학천상가

 

 

 

 

신광서적 · 책의 메카 - 전국적인 유통망

1980년대 단행본 시대로 진입하자 대학천은 국내 출판 유통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10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가 연이어 등장하며 출판 유통 시장이 단행본 서적도매 중심으로 재편된 것이다

대학천에서는 진명서적 · 송인서적 · 학원서적 · 한양서적이 4대 주요 도매상으로 성장하고 군소 서점이 빠르게 증가했다

대학천은 전국 출판 영업사원과 지방 도매상이 모이고, 출판사 1,500여 개와 서점 3,000여 개를 연결하는 거대 출판시장으로 변모했다

이는 연간 전체 단행본의 약 30% 정도 하루에 단행본 10만 권 · 전집류 1천 질 정도를 거래하는 규모였다

하지만 대학천상가의 협소한 공간이 급증하는 출판량을 감당할 수 없어 대부분의 서점이 떠나고 현재는 10여 개의 서점이 남아 있다

 

 

 

 

대학천 서적상가

 

 

 

 

유한서적 · 가족 사업과 분가

대학천 책방거리의 주요 구성원인 서점 주인들은 이곳에서 먼저 터전을 잡은 서점 주인의 가족이나 직원이었고

원 주인의 지원을 받아 서점을 시작하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서점 주인들은 활황기 일손이 부족한 경우 지방에 있던 가족들을 불러들여 가족사업으로 하거나, 지인을 직원으로 고용하기도 했다

 

 

 

 

직매서점 · 유한서적

직매서점은 중고등학교 때 부모님 가게를 도와드리다가 아버지를 이어 2002년부터 손재명 대표가 운영했고

유한서적 또한 아버지를 이어 2003년부터 조주현 대표가 운영했다

 

 

 

 

계림서점 · 대학천의 이모저모

대학천 책방거리에서 책을 거래하는 방식은 위탁판매와 매절로 구분된다

출판사는 도매상에게 책 판매를 위탁하고 매월 13일과 말일에 지불했다

도매상들은 3개월짜리 문방구 어음이나 수표를 출판사에 발행했는데

결재일에는 서점마다 대금을 받기 위해 출판사 영업사원들이 줄을 서있어 걸어다니기 어려울 정도였다

매절(買切)은 현금을 주고 책을 사는 방식인데 10~20% 정도를 더 할인 받을 수 있었고, 다른 서점보다 먼저 책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인기 베스트셀러는 서점에서 책을 선점하기 위해 수시로 매절이 이루어졌는데, 대학천에서 매절 경쟁이 일어나는 책 역시 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대학천 책방거리

 

 

 

 

청계천 책방거리

 

 

 

 

청계천 책방거리

 

 

 

 

1988년 광고지

 

 

 

 

대학천상가

 

 

 

 

대학천상가 행사 사진

 

 

 

 

청계천 책방거리 동영상

청계천 책방거리는 청계천변에서 사과상자 · 생선궤짝 · 미군 간이침대 등을 진열대 삼아 헌책을 팔던 것이 시초이다

이후 노점상 · 서점들이 평화시장에 자리를 잡으면서 본격적으로 책방거리가 형성되었다

 

 

 

 

옥스포드서점 · 헌 교과서의 메카

신학기가 되면 전국의 학생들은 턱없이 부족한 교과서를 찾아 청계천으로 모여들었다

학생들은 청계천으로 신학기에 쓸 것을 구하러 오면서 헌책 상인들에게 지난 학기에 사용한 교과서를 판매해 수요와 공급을 담당했다

당시 교과서는 5년 간격으로 개정돼 대물림을 할 수 있었고

경제적 여유가 없던 시대라 학생들은 새 교과서의 1/3 정도인 헌 교과서난 참고서 구매를 선호했다

헌 교과서와 참고서의 수요가 감소하기 시작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인데

대입 본고사 폐지와 과외가 금지되고, 교과서의 내용도 자주 개정되어 더 이상 대물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또한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헌 책보다 새 책 구매를 선호하게 되면서 청계천 책방거리를 가득 채우던 학생들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청계천 책방거리

1993년과 2021년 5월 평화시장 헌책방 소재 현황 비교한다

 

 

 

 

백과서림 · 전집의 유행

1950년대 말 민중서관과 을유문화사의 「한국문학전집」과 「세계문학전집」을 시작으로 전집류가 출판문화를 주도했다

전집은 일반 가정 뿐 아니라 회사와 기관의 대표 집무실에서도 양장본 전집을 마련하여 벽면을 장식했다

헌 책방에서도 헌 전집을 팔았는데, 그 중 을유문화사와 정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이 인기가 있었고, 양장본으로 된 헌 전집도 찾는 이가 많았다

문고본은 1970년대에 와서 다시 붐이 일었다

문고본은 가볍고 휴대성이 좋은 크기에 저렴한 가격과 양질의 내용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학생과 지식인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대표적으로 「삼중당문고」는 300종 이상(1976년)을 발행하여 중고등학생들의 필독서가 될 정도였다

 

 

 

 

1970년대 헌책방거리 모습

 

 

 

 

양지서림 · 금서의 시대

자유가 억압받던 시절에 헌책방은 사회변혁을 이루려는 이들의 열망을 키워내는 곳이었다

1980년대는 군부정권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의 일환으로 인문사회과학 출판 붐이 일었고 독서인구가 증가하면서 본격적인 단행본 시대로 접어들었다

정부는 불온한 서적들을 금서로 지정하고 출판사 · 서점 · 운동권대학생 등을 압수수색해 책을 뺏고 출판과 유통을 금지시켰다

하지만 금서로 지정되면 찾는 이들이 많아지고 복사본까지 만들어져 오히려 판매가 급증했다

 

 

 

 

육교서점 · 헌책방의 이모저모

청계천 책방거리에서는 급전이 필요한 학생들이 전당포처럼 책을 맡기고 돈을 빌려간 후 빌린 돈을 갚고 책을 찾아가기도 했다

책이 귀하던 시대라 남의 책을 도둑질해서 헌책방에 파는 일도 잦았고

분실한 책을 구하러 헌책방을 돌아다니다 자신이 잃어버린 책을 발견하는 일도 있었다

이런 헌책 속에는 전 소유자가 남긴 책갈피나 지하철표 · 돈 등이 정리 중에 발견되기도 했다

 

 

 

 

도심 속의 책방거리

도시의 많은 기능 가운데 지식의 생산과 유통 기능은 조선시대부터 도성의 중심부였던 종로와 청계천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왔다

청계천 주변에는 많은 학교들이 위치하였고 실향민 등 다수의 이주민이 유입되었다

1950년대말~60년대초 대학천과 청계천이 복개되면서 천변에 있던 노점과 같은 서점들이 대학천상가와 평화시장 1층에 자리잡으면서 지식생산과 이주민이 결합한 산물로서 책방거리가 형성되었다

지방의 주요 도시에서도 유사한 모습으로 책방거리가 형성되었다

대표적으로 6 · 25전쟁 당시 임시수도였던 부산은 보수동 일대 · 인천은 배다리 일대 · 대구는 남산동 일대 · 대전은 원동 일대에 형성되어

도시의 형성과 성장과정에서 지식유통의 역할을 담당했던 책방거리는

헌책 수요의 감소와 출판업의 근본적 유통질서 변화에 따라 서점 수가 줄어들면서 전반적으로 위축되고 있다

 

 

 

 

동영상

 

 

 

 

이정향 영화감독 · 유안진 시인 · 서우석 교수 · 김종규 이사장

글과 책들이 있다

 

 

 

 

스크린 · 로드쇼 잡지 / 1970년대

이정향 감독이 청계천 헌책방에서 직접 구입한 「스크린」과 「로드 쇼」 영화잡지다

당시 폴뉴먼 사진이 많이 실린 호를 우선적으로 구입하였다고 한다

당시 대표적인 영화잡지로 1980년대 중반까지 일본에서 수입되다가 1984년과 1989년 각각 국내호가 창간되었다

 

 

 

 

전시를 마치며

서울의 중심부에 자리한 대학천 책방거리는 도심 속에서 출판의 인큐베이터이자 책의 메카로서 신간도서 출판 유통의 중심지 역할을 담당 했으며

청계천 책방거리는 교과서부터 금서에 이르기까지 헌책을 필요로 했던 많은 이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하던 기능을 충실히 해 왔다

한 때 책방이 100여 곳으로 성황을 이루고 책을 사기 위해 줄을 서야 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겨우 10여 곳 정도만 남아 책방거리의 명맥을 잇고 있는 실정이다

책방거리는 어려웠던 시절 용돈을 아껴 책을 구입해 읽으면서 꿈을 키웠던 설렘과 인생의 멘토로서 나름대로의 사연과 추억이 배어 있는 공간이다

비록 전반적인 쇠퇴 속에서 책방거리는 전성기 당시 번성했던 화려한 모습은 잃어버렸지만

서울 도심 속 복고적인 감성과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장소로서 앞으로도 삶의 휴식처 역할을 유지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청계천 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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