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박물관 3존 · 청계천 복원사업
1990년대 후반 성장과 개발 대신 생태환경과 역사문화의 보존이 중요한 가치로 등장했다
서울 도심을 관통하는 청계천 복개도로와 고가도로는 노후화가 진행되어 전면적인 보수가 시급했다
많은 예산을 들여 유지 · 보수하는 것보다 이를 철거하고 사라졌던 청계천을 되살리자는 주장이 2002년 민선3기 서울시장선거의 주된 쟁점으로 부상하였다
청계천을 새로운 물길로 복원하기까지의 서울시정의 변화 · 복원사업의 준비와 시행 다시 열린 청계천 등 복원사업의 전 과정을 전시하고 있다
3존 · 청계천 복원사업
1990년대 후반의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IMF 금융위기는 한 세대에 걸친 개발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새롭게 도입된 지방자치제 속에서 성장과 개발 대신 생태환경과 역사문화 유산의 보전이 민선시정의 중요한 가치로 등장했다
서울 도심을 관통하는 청계천 복개도로와 고가도로는 노후화가 진행되어 전면적인 보수가 시급했다
큰 예산을 들여 개발시대의 유산을 유지하느니 차라리 이를 철거하고
사라졌던 청계천을 되살리자는 주장이 2002년 민선3기 서울시장 선거에서 주된 쟁점으로 부상했다
우선 구조물을 보수해 활용하고 하천 복원은 장기적으로 검토하자는 신중론에 맞서
즉시 복원을 주장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면서 청계천복원사업은 서울시의 최우선사업으로 추진되었다
2002년 7월 시장 취임과 함께 복원사업을 위한 추진조직이 구축되었다
이후 3년여에 걸친 공사 끝에 총 연장 5.84km에 이르는 청계천의 복원공사가 마무리되었다
유지보수냐 철거복원이냐
서울 근대화와 한국 산업화의 표상으로 당당한 자태를 자랑했던 청계고가도로는 건설된지 한 세대가 지나면서 도시의 흉물로 정락했다
낡은 구조물은 지속적으로 안전을 위협했고, 교각 아래쪽은 슬럼화되었다
서울시는 매년 상당한 예산을 투입하여 보수를 거듭했으나 그조차 한계에 이르러 전면 보수와 철거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태가 되었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막대한 예산이 필요했다
기왕 철거할 바에야 이에 땅속에 묻힌 청계천을 복원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유지보수냐 철거복원이냐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교통편의를 앞세우는 쪽과 생태환경 및 역사복원을 강조하는 쪽으로 여론이 나뉘었다
이 문제는 2002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큰 쟁점이 되었으며 청계천 복원을 공약으로 내건 이명박 후보가 당선됨에 따라
서울시는 철거복원에 착수했다
청계고가도로 노후화
2001년 청계고가도로의 구조안전성을 정밀진단한 서울시 건설안전본부는 전면적인 보수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이에따라 서울시에서는 가장 취약한 충무로 고가도로를 우선 보수하는 한편
다른 부분을 전면 보수할 것인지 철거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차기 시장이 결정하여 시행하도록 약 1천억 원의 예산을 편성해 남겼다
2002년 한일월드컵대회 중 서울 도심의 대동맥에 대한 대수술을 피하기 위한 조치였다
복원론과 유지보수론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제기되면서 상반된 주장이 대두되었다
청계천 복원론자들은 막대한 예산을 들여 개발시대의 유산을 보수하느니
이를 철거하고 청계천을 복원하여 도심에 역사와 자연을 소생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보수유지론자들은 청계고가도로를 철거할 경우 교통수요를 감당하기 어렵고 인근 상권의 침체가 불가피하여
이미 오래전에 하수도로 변한 청계천을 원상태로 복원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맞섰다
서울시장 선거와 청계천 복원 문제
청계천 복원 문제는 2002년 민선 3기 서울시장 선거(2002. 6. 13) 과정에서 핵심 쟁점이었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측이 청계천복원을 공약한 반면
민주당 김민석 후보 측은 충분한 논의가 필요한 대형사업으로 중장기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논쟁이 격화될수록 시민들의 관심은 증폭되어 청계천 처리 문제가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자 서울시는 곧바로 청계천 복원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천변 개발과 보존
서울 도심부는 2000년에 수립된 '도심부관리계획'에 따라 관리되고 있었다
서울시는 청계천 복원사업에 따른 도심활성화를 위해 이 계획을 수정하여, '도심부발전계획'을 새롭게 수립했다
공공 투자를 확대하고 민간투자를 유도하여 정보통신 · 금융 · 국제 업무 · 유통 등의 도심산업을 활성화하는 것이 주된 목표였고
문화벨트를 조성하고 역사유산을 복원한다는 구상도 담았다
법정계획이 아닌 이 계획이 실효성을 갖도록 청계2가에서 8가에 이르는 연변지역은 블록별 지구단위계획으로 관리하기로 했다
복원사업의 준비
청계천 복원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이명박 서울시장은 2002년 7월 1일 취임하자마자 공약을 실현하기 위한 조치들을 서둘렀다
복원사업 전담조직으로 청계천복원추진본부를 발족시키는 한편
이를 지원할 연구지원단을 구성하고 각계의 여론을 수렴하는 기구로 청계천복원시민위원회도 출범시켰다
추진본부는 청계천 복원 타당성조사와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이어 기본 및 실사설계를 진행했다
사업시행에 따른 상인과 노점상 대책 · 공사 중 교통혼잡 완화 방안 · 복원 뒤 주변지역의 도시개발 관리계획도 수립했다
자연하천과 역사유산의 복원 · 도심 발전의 촉진 등 서울시가 표방한 사업 명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갈등을 빚고 상이한 가치와 견해가 대립하는 속에서 사업의 준비가 숨가쁘게 진행되었다
청계천복원사업
복원기본계획
기본 및 실시설계
청계천 노점상
쳥계천 연변에는 6만여 개의 점포 · 21만 명의 종사자 · 1천여 개의 노점상이 밀집해 있었다
상권 위축을 우려한 상인들은 상권수호대책위원회를 만들어 복원에 반대했고 서울시는 지역주민-상인협의회(2002.12.30)를 구성하여 대책을 모색했다
무료 서틀버스운영 · 화물조합주차장 운영 개선 등 불편 해소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문정동에 83,852㎡ 규모의 유통단지를 조성해 이주 희망업체를 이주시키기로 했다
노점상들은 동대문운동장에 풍물시장을 만들어 수용하기로 했다
교통대책
청계로와 청계고가도로에는 하루 17만 대의 차량이 통행했기 때문에 복원에 따른 교통대란을 막는 것이 큰 과제였다
서울시는 공사 중 편도 2차로와 조업 주차공간을 확보하여 기존의 교통체계를 유지하도록 하고
우회도로로 교통량이 분산되도록 했으며, 불법 주정차 단속을 강화했다
가장 필요한 일은 도심지 교통량 자체를 줄이는 것이었다
이에 2004년 버스노선체계 변경 · 환승제 도입 등을 통해 교통체계를 대중 교통수단 위주로 전면 개편했다
복원사업의 시행
2003년 7월 1일 0시를 기해 청계고가도로 시작점인 광교 진입 램프가 차단됨으로써 청계천 복원공사가 시작되었다
공사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전체 구간을 3개의 공구로 나누었다
제1공구(2km)는 태평로 입구에서 광장시장까지, 제2공구(2.1km)는 광장시장에서 난계로까지, 제3공구(1.7km)는 난계로에서 신답철교까지로 정해졌다
제1공구는 역사지구 · 제2공구 중 오간수문 서편까지는 문화지구 · 나머지 구간은 자연생태지구로 하여 구간별 특징을 살리도록 했다
고가구조물 및 복개구조물 철거 · 하천 복원 · 유지용수관 건설 · 하수도 정비 · 교량 건설 · 조경공사 등의 모든 공정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졌다
청계천 복원 공사는 이렇게 해서 2년 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완료되었다
청계천고가도로 폐쇄 홍보물
7월 1일 청계고가 철거!
지하철을 이용합시다
구조물 철거
대형 가림막 설치와 철거장비 배치에 이어 공구별로 3개조씩, 총 9개조가 철거작업에 돌입했다
철거는 램프 · 고가상판 · 교각 · 복개구조물 · 복개하부 교각 · 고가 기초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소음 · 먼지의 공해 발생을 최소화하는 공법과 현장 교통처리 방식이 채택되었다. 잘린 구조물은 압쇄기 등을 사용하여 잘게 부순 뒤 반출했다
청계고가(5km)와 삼일고가(817m) · 복개도로 · 고가도로 교각 371개 · 복개하천 지하교각 6,700개 · 램프 10곳 · 육교 7개 등을 철거했는데
폐기물 총량은 907,000톤 · 덤프트럭 65,000대 분량이었다
이 중 철재류는 전량을, 콘크리트와 아스콘량은 96%를 재활용했다
역사유적 발굴과 복원
공사 착수 전 현황 파악을 위한 지표조사가 실시되었고 이어 유구 잔존 가능성이 높거나 퇴적층이 발달한 구역에 대한 시굴조사가 시행되었다
이를 토대로 수표교 · 광통교 · 오간수문 터와 석축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청계천 문화재 보존전문가 자문위원회'가 복원에 기본 방안을 설정하고 문화재청의 심의를 거쳤다
광통교는 상류로 155m 이전 복원했고, 수표교 이전과 오간수문 · 석축 등의 복원은 장기과제로 남겼다
청계고가도로의 교각 일부는 철거하지 않고 그 자리에 남겨 보존하기로 했다
탈개발되는 하천들
청계천 복원은 다른 하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청계천 복원 이전인 1995년 양재천을 시작으로 홍제천 · 불광천 · 탄천 · 성북천(안암천) 등의 도시 하천들이 시민을 위한 친수 공간으로 거듭났다
일직선의 물길이 구불구불한 원래 모습으로 바뀌었고, 콘크리드 호안 대신 자연 소재의 풀을 덮은 식생 호안이 조성되었다
특히 쓰레기 침출수로 인해 죽어 있던 난지천은 2002년 한일월드컵대회를 계기로 깨끗한 물이 흐르는 하천으로 다시 태여났다
성북천은 청계천처럼 복개도로를 철거하고 하천을 되살린 경우다
광통교지 · 수표교지 · 하랑교지 · 오간수문지에서 발굴된 유물들이 전시되고 있다
광통교지 · 수표교지 · 하랑교지
오간수문지
오간수문지 출토유물 / 조선시대
백자병 · 백자향로 · 백자동체편 · 수키와 · 암키와 · 전 · 상평통
광통교지 출토 유물 / 조선시대 · 일제강점기
백자소호 · 백자소병 · 청화백자대접 · 백자뚜껑 · 백자필통 · 토제 귀면상장식품 · 은비녀 · 백자호 · 백자잔 · 청동장식품 · 조선통보 · 상평통보 · 근대동전
하천복원
청계천 연변은 상가와 도로가 된지 오랜 시간이 지나 하폭 확장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하상을 굴착하여 200년 빈도의 통수단면과 여유고를 확보했다
식생 · 보행 · 유지관리를 위해 양안에 3.5m 폭의 고수부지를 두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양 저수로 폭은 14~24m로 하였다
경관과 생물의 서식환경 조성을 위해 저수로는 물 흐름의 변화를 줄 수 있게 사행(蛇行)하도록 만들었다
집중호우 때 하수도의 빗물을 본류로 유입시키는 홍수처리 시설도 만들었다
바닥은 벤토나이트로 마감하여 유지용수의 손실을 최소화했고, 수로 양쪽에는 콘크리트 수직 차수벽을 만들었다
둔치 양안에는 차집관거 · 상수도관 · 유지용수관을 매설했다
상인 이주대책 '풍물시장과 가든파이브'
청계천 복원공사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있는 상인들의 이해를 구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대책의 기본방향은 주변 건물을 철거하거나 영업장소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계속 영업을 원하는 업종에 대해서는 영업 불편 최소화와 상권 활성화 대책을, 이주를 희망하는 업종에 대해서는 이주지원 대책을 마련했다
상인들과 협상하여 송파구 문정동에 규모 83,852㎡(25,365평)의 이주단지 조성계획을 세웠고 노점상을 위해서는 동대문운동장 풍물 벼룩시장을 개장했다
청계천 주변 상인들의 이주정책 '동남권 유통단지'
서울시는 청계천복원사업을 추진하면서 청계천 인접 이주희망업체들을 위해 전문상가를 조성하고자 했다
이에 약 62,000업체의 상인 중 7,000업체가 이주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동남권 유통단지 조성계획의 당초 257,851㎡(7.8만 평)에 청계천 상인 이주단지 39,669㎡(1.2만 평)을 합해
총 297,520㎡(9만 평) 이상의 이주단지가 조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서울시는 상인과의 협상을 통해 이주상권의 조기정착 및 활성화와 지역경제발전 등을 고려하여 송파구 문정동에 이주단지 조성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하수도 정비
원래 간선 하수도였던 청계천을 맑은 물이 흐르는 하천으로 만들기 위해
유역에서 발생한 하수는 기존 차집관거를 정비 · 이설하거나 추가로 새로 만들어 이송했다
하수처리 용량은 시간당 발생 하수량의 3배인 1일 총 195만 톤을 처리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빗물처리에 대해서는 시간당 2mm 이하의 초기 월류수는 별도의 차집관거로 차집해 하천 하류부의 처리시설로 이송하고
2mm 이상의 월류수는 복원 하천에 직접 유입하도록 했다
토구의 악취를 없애기 위해 탈취설비를 신설하고 개구에는 자동수문을 설치했다
백운동천과 중학천의 복개부분 내부에 오수 차집시설을 설치하여 북악산과 인왕산 계곡의 맑은 물이 청계천에 유입되도록 했다
유지용수 확보
청계천은 본래 비가 내리지 않으면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이어서 항상 물이 흐르는 하천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물을 따로 공급해야 했다
경관과 생태, 친수활동을 위해 유지용수의 용량은 평균 수심 40cm · 유속 초당 0.25m가 되도록 하루 12만 톤으로 정했다
유지용수는 자양취수장의 원류를 주로 사용하되 중랑하수처리장의 처리수로 보충하고 인근 지하철역에서 발생하는 지하수도 일부 활용하도록 했다
유지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청계천 밑에 관로를 매설하고 취수 펌프 등 필요한 기계와 전기시설을 취수원에 설치했다
도로와 교량
복원된 청계천에는 22개의 교량을 설치했다
복원 전의 교차로나 횡단보도를 유지하는 한편, 가급적 물 흐름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설계했다
광통교는 실시설계 과정에서 설치하지 않기로 했으나 주변 상권의 활성화를 위해 보도교로 설치했으며
장충단공원 내에 있는 수표교의 이전 복원은 장기과제로 미루고 대신 임시 보도교를 조성했다
모전교는 전통 양식을 살려 아치 모양으로 건설했다
하류의 교량들도 기능성과 심미성을 함께 갖추도록 했다
조경
자연이 있는 도시하천을 기본 방향으로 하여 청계천 양안에는 연장 6km · 총 276,650㎡(8만 평)의 녹지를 조성했다
태평로에서 청계4가까지는 도심형 하천, 청계4가에서 7가까지는 도시와 자연의 공생
청계7가에서 신답철교까지는 자연성과 생태성 확보 등 구간별로 차별화했다
동시에 안전성 확보 · 녹지 총량의 증대 · 새로운 하천 경관 창출 · 친수활동과 자연체험 공간 마련 · 시민 휴게공간 조성 등을 추구했다
곳곳에 여울 · 소 · 습지의 생물 서식공간들을 마련해 생태적 안정성이 유지되도록 했다
청계천 복원사업 알리기
청계천 복원사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해 다양한 홍보활동을 펼쳤다
시민들이 청계천의 실상을 체험할 수 있도록 '청계천 지하탐방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홍보관을 건립했다
슬로건 공모 · 청계천 그리기 대회 · 시민 걷기대회 등의 행사도 개최했다
국제 세미나와 시민 공청회를 통해 청계천 복원의 이론적 토대를 다지고, 사업 내용을 시민들에게 전달했다
이러한 내용은 영상매체 · 출판물 · 국제전시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해외에서도 접할 수 있게 했다
열린 청계 푸른 미래 기념물 / 2000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