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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서호~숙지산~팔달산~장안공원~남문~경기도청

일기예보에선 날씨가 흐리고 바람이 많이 불거라지만 산들팀과 꽃비를 맞으러 간다

 

 

화서역
만남의 장소 · 시점이다

 

 

 

 

전철육교
서호로 넘어가는 육교다

 

 

 

 

화서역 방향
육교 위에서 봤다

 

 

 

 

수원역 방향

 

 

 

 

서호공원
육교에서 봤다

 

 

 

 

메타세콰이어길
서호공원으로 내려서면 왼쪽에 있다

 

 

 

 

서울대 작물시험장

 

 

 

 

느티나무
서호 둑길이다

 

 

 

 

소나무 쉼터

 

 

 

 

왼쪽 죽은 소나무가 어린 소나무 화분이다

 

 

 

 

서울대 작물시험장

 

 

 

 

축만제(祝萬堤) 빗돌
정조 23년(1799) 축만제를 화성의 서쪽 5리의 평지에 축조한다
축만제는 길이 1246척 · 너비 720척 · 높이 8척 · 두께 7척 5푼 · 깊이 7척이며

2개의 수문이 설치된 저수지로 이를 통해 농업용수의 혜택을 받은 전답은 232섬지기에 이른다
축만제는 농업용 저수지외에도 낙조와 잉어가 유명하였으며 특히 잉어는 약용으로써 궁중에 진상되었다

 

 

 

항미정(杭眉亭)
항미정의 이름은 송나라의 대문호인 소식(蘇軾)이 중국 항주의 태수를 지낼 적에
항주를 대표하는 절경인 서호(西湖)가 서시(西施)의 눈썹처럼 아름답다고 말했던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서시는 중국 월나라의 미인으로 월나라 왕 구천(勾踐)의 신하인 범려(范蠡)가 서시를 오나라 왕 부차(夫差)에게 바쳤고
부차가 서시의 미색에 빠져 정치를 태만하게 한 틈을 타서 오나라를 공격해서 정복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서시는 평소 지병이 있어서 항상 얼굴을 찌푸리고 다녔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나 미모가 출중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여인들이 자기도 그렇게 하면 예뻐 보일까 싶어서 너도나도 얼굴을 찌푸리고 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서시 정도 되니까 예쁜 것이지 못 생긴 사람이 그러면 더 못생겨 보이지 않겠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분수도 모르고 맹목적으로 남을 따라하는 여인들을 비웃었고
여기서 ‘찡그릴 빈(嚬)’자와 ‘찡그릴 축(蹙)’자를 써서 ‘빈축(嚬蹙)’이라는 말이 유래했다고 한다

 

 

 

 

항미정

서나님이 옆에서 사진을 만들어 시선이 분산되었다

 

 

 

 

항미정(杭眉亭)

 

 

 

 

항미정(杭眉亭)

서호 수문이 앞에 있다

 

 

 

 

농촌진흥청 옆이다

 

 

 

 

서호

 

 

 

 

서호

시멘트 둑이 짤려나갔다

 

 

 

 

수원성교회

 

 

 

 


꽃비가 내린다

 

 

 

 

앗~코난님 흩어지게 잘 뿌리셔야지 너무 뭉쳐서 인물이 안 보입니다
엔집니다

 

 

 

 

꽃비 만들기 놀이 후 수성로로 나간다

 

 

 

 

숙지산
오르기 전 길에서 한 분을 만났다
푸름님이라 하신 것 같다

 

 

 

 

체육시설 쉼터
이곳에서 걷다보면님의 팔등분 사과칼로 사과를 나누어 먹었다

 

 

 

 

다시 줄맞춰 숙지산 정상을 향한다

 

 

 

 

숙지정(熟知亭)

 

 

 

 

서포루(西砲樓) / 1796년(정조 20) 창건 · 1975년 누각 복원

서포루는 서암문과 서3치 사이에 있는 치성 위에 군사들이 머물러 있도록 누각을 지은 시설이다

치성은 성벽 일부를 돌출시켜 적을 감시하고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이다

화성에는 15곳의 치성이 있는데 그 중 중요한 5곳의 치성 위에 동1포루 · 동2포루 · 서포루 · 북포루 · 동북포루를 만들고 적의 동향을 감시했다

서포루는 서장대 쪽으로 접근하는 적을 감시하기 위해 만들었다

「화성성역의궤」에는 동북포루와 형태가 같다고 기록되어 있다. 서포루 누각은 복원했으나 치성은 원형이 잘 남아 있다

*
도지사관사 앞 횡단보도를 건너니 있다

 

 

 

 

꽃비가 내린 도로다

 

 

 

 

꽃잎을 밟고 팔달산으로 향한다

 

 

 

 

도로에서 다시 산으로 오른다

 

 

 

 

낮은 산이라 편안하다

 

 

 

 

식사를 한 쉼터
혼자 다닐 땐 간단히 이동식을 했는데 여럿이 함께하니 음식을 여러가지를 맛보아 좋다

 

 

 

 

식사 후 다시 도청을 향해 걷는다

 

 

 

 

많지 않은 인원이라 짝 맞춰서 걷기도 하고 홀로 걷기도 한다

 

 

 

 

경기도청 앞 꽃길을 올라간다

 

 

 

 

꽃길을 내려간다

 

 

 

 

서장대 관광 안내소에서 성곽을 따라 걸으려 하니 세 분이 포즈를 잡고 기다린다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만들고

 

 

 

 

서포루(西砲樓)
전엔 성곽 내부로 돌았는데 이번엔 밖으로 돈다

 

 

 

 

화성장대(서장대 西將臺)

서장대는 팔달산 정상에 자리 잡은 군사 지휘소이다

화성에는 두 곳의 장대가 있는데 동장대는 평상시 군사들이 훈련하는 장소로 쓰고, 서장대는 군사 훈련지휘소로 썼다

서장대는 시야가 트여 있어 멀리 용인 석성산 봉화와 현륭원 입구까지 한눈에 살필 수 있었다고 한다

서장대는 아래층은 사면 3칸 · 위층은 1칸으로 위로 올라가면서 좁아진 형태다

아래 층은 장수가 머물면서 군사 훈련을 지휘하고, 위층은 군사가 주변을 감시하는 용도로 썼다

정조는 서장대에서 군사 훈련인 성조(城操)를 거행했는데 1795년의 행사 모습이 그림으로 남아 있다

위층 처마 밑에 걸린 화성장대(華城將臺)와 시문 현판은 모두 정조의 작품이다

1795년 성조가 끝난 뒤 정조는 화성장대 현판의 글씨를 직접 쓰고 만족스럽고 기쁜 마음을 시로 표현했다

화성에서 유일하게 정조가 지은 두 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

서노대(西弩臺) / 1795년(정조 19) 창건 · 1971년 복원

서노대는 기계식 활인 노(弩)를 쏘기 위해 높게 지은 시설로 군사지휘소인 서장대를 지키는 역할을 한다

노대는 적의 동향을 살피고 깃발을 이용해 적의 위치를 알리는 용도로도 쓰였다. 화성에는 서노대와 동북노대가 있다

서노대는 화성의 서쪽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팔달산 꼭대기에 있어 적을 감시하기에 적합하다

팔각형의 몸체가 위로 가면서 줄어드는 안정적인 형태로 안에는 흙을 채우고 겉은 벽돌을 붙였으며 여덟 방향의 모서리는 돌로 깎아 마감하였다

 

 

 

 

광교산 · 백운산
희미하지만 우리가 걸어야 할 성곽도 보인다

 

 

 

 

태화산 방향
화성행궁이 앞쪽에 보인다

 

 

 

 

무봉산 방향

 

 

 

 

서암문으로 들어와 팔달산로와 만나는 곳이다

 

 

 

 

서1치(西一雉) / 1796년(정조 20) 창건 · 1975년 수리

서1치는 서북각루와 서포루 사이에 성벽을 돌출시켜 쌓은 치성이다. 성벽 가까이 접근하는 적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역할을 했다

성벽에 8곳 · 용도에 2곳의 치성이 설치되어 있는데 지형에 따라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치성은 보통 좌우 방어 시설과 100m 이상 거리를 두고 만들었으나, 서1치는 북서각루에서 약 55m 떨어진 지점에 있다

화서문에서 뻗은 성벽이 팔달산 정상을 향해 크게 꺾이는 요충지이기 때문에 치성에 가깝게 설치한 것이다

 

 

 

 

서포루(西砲樓) / 1796년(정조 20) 창건 · 1975년 복원

서포루는 팔달산 중턱에 설치한 화포를 갖춘 시설이다

화성에는 동포루 · 서포루 · 남포루 · 동북포루 · 북서포루 5곳의 포루가 있는데 주변 지형 조건에 따라 크기를 달리했다

서포루는 경사지에 지었기 때문에 평지에 설치한 북서포루와 북동포루보다 규모를 작게 만들고 화포와 총을 쏘는 구멍의 숫자도 줄였다

포루는 3층 구조로 아래 두 층에는 화포나 총을 쏠 수 있는 구멍이 있고, 상층에는 누각이 있다

서포루 상부의 누각은 복원했으나 벽돌로 만든 하부에는 창건 당시의 모습이 일부 남아 있다

 

 

 

 

서북각루(西北角樓) / 1796년(정조 20) 창건 · 1975년 복원

서북각루는 화성 서북쪽 요충지에 세운 감시용 시설이다. 화성에는 모두 4곳의 각루가 있다

화북각루는 팔달산으로 오르는 경사지에서 성벽이 휘어진 곳에 자리 잡아 서북쪽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아래 층에는 군사들이 머무는 방에 온돌을 놓았고 위 층은 마룻바닥을 만들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사면에 널빤지 문을 달고 구멍을 내서 적을 감시했다

 

 

 

 

화서문(華西門) / 보물 제403호

화서문은 화성의 서문으로 화성의 서쪽이란 뜻이지만 서쪽에는 팔달산이 있어 서북쪽에 자리 잡고 있다

화서문 문밖으로 넓은 평지가 펼쳐져 있어 주변을 감시하기 위해 높다란 서북공심돈을 함께 세웠다

조선시대 건축에는 일정한 위계질서가 있다

화서문은 장안문과 팔달문에 비해 격을 낮추어 석축의 규모도 작고, 1층 문루에 팔작지붕 형태이다

창건 당시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어 간결하면서도 섬세한 18세기 건축기술을 보여준다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 / 1796년(정조 20) 창건

서북공신돈은 화성 서북쪽에 세운 망루로 주변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시설이다

공심돈은 속이 빈 돈대라는 뜻으로, 우리나라 성곽 중 화성에서만 볼 수 있다

보통 돈대(墩臺)는 성곽과 떨어진 높은 곳에 세워 적을 감시하는 시설이나, 서북공심돈은 서북쪽 성벽이 꺾이는 위치에 설치했다

치성 위에 벽돌로 3층의 망루를 세우고 꼭대기에는 단층의 누각을 올려 군사들이 머물 수 있도록 했다

외벽에는 화포를 쏠 수 있는 구멍을 뚫어 공격 기능까지 갖추었다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 · 화서문(華西門)
이곳 쉼터에서 잠시 휴식했다

 

 

 

 

북포루(北砲樓) / 1795년(정조 19) 창건 · 1975년 누각 복원

북포루는 북서포루와 서북공심돈 사이에 있는 치성 위에 군사들이 머물 수 있도록 누각을 지은 시설이다

치성은 성벽 일부를 돌출시켜 적을 감시하고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이다

화성에는 15곳의 치성이 있는데 그 중 중요한 5곳의 치성 위에 동1포루 · 동2포루 · 서포루 · 북포루 · 동북포루를 만들고 적의 동향을 감시했다

북포루는 화성에서 가장 평탄하고 시야가 트인 곳에 있어서 주둔하는 군사의 수도 많고 규모도 크다. 군포루라고도 불렀다

*
장안공원에서 축통님을 만났다
사오신 요구르트도 한 병 받아 마셨다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

 

 

 

 

화성기적비

 

 

 

 

화성복원정화기념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 빗돌 ·  세계역사 가치가 높은 토목공사의 표본 빗돌이 있다




장안문(長安門)

 

 

 

 

장안문(長安門)

장안문은 화성의 북문이자 정문이다

보통 성(城)의 남문을 정문으로 정하지만, 조선시대 당시 임금이 한양(지금의 서울)에서부터 수원으로 오실때

가장 먼저 맞이하는 문이 북문(장안문)이었기 때문에 북문을 정문으로 정했다

잘 다듬은 화강암으로 쌓은 석축에 홍예문을 냈고 그 위에 정면 5칸 · 측면 2칸의 다포양식으로 이루어진 중층의 문루가 세워져 있다

또한 가운데에 홍예문이 나있는 벽돌로 쌓은 옹성이 있으며, 양 옆에 다른 성벽보다 높이가 약간 높은 두개의 적대를 설치하였다

장안문의 이름은 중국의 옛 왕조인 전한(前漢) · 수(隋) · 당(唐)나라의 수도였던 장안(현재의 시안시)에서 따온 것으로

이는 당나라 때의 장안성처럼 화성 또한 융성한 도시가 되라는 정조의 뜻이 담겨 있다

*
한국에서 가장 큰 성문으로 조선시대 화성의 북문으로 건립된 중층누문으로 화성의 정문이다

 

 

 

 

성 안으로 들어왔다

 

 

 

 

북수문(北水門 · 화홍문(華虹門)

북수문은 화성의 북쪽 성벽이 수원천과 만나는 곳에 설치한 수문이다

일곱 칸의 홍예문 위로 돌다리를 놓고 그 위에 누각을 지었는데 화홍문이라는 별칭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누각은 본래 적군의 동태를 살피고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든 군사 시설이지만 평소에는 주변 경치를 즐기는 정자로 쓰였다

수문을 통해 흘러온 물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장쾌하게 떨어지는 모습인 화홍관창(華虹觀漲)은 화성에서 꼭 보아야 할 경치로 손꼽힌다

화홍문은 조선 현종 14년(1848)에 수문과 누각을 다시 지으면서 형태가 약간 달라졌다

1932년에는 '수원명소보전회'를 주축으로 수원주민이 힘을 모아 10년전 홍수로 무너진 누각을 다시 지었다

2016년에는 「화성성역의궤」를 근거로 창문을 복원했다

*

동북각루(방화수류정) · 동북포루 (東北閣樓)가 옆에 있다

 

 

 

 

동북포루(東北砲樓 · 각건대(角巾臺)
화성에는 벽돌을 사용하여 모두 5개의 포루를 만들고
3층으로서 지대 위에 혈석(대포 발사를 위해 구멍을 뚫은 돌)을 전면 2개 좌우 3개씩 놓았으며
그 위에 벽돌을 쌓았고 안쪽으로 판자를 잇대어 2층으로 구분하였다

 

 

 

 

연무대(練武臺)
저기 계시는 분이 표 검사를 한다
성을 들락날락했던 이유다

 

 

 

 

창룡문 앞에선 마상무예 시범이 있다

 

 

 

 

봉돈(烽墩) / 1796년(정조 20) 창건 · 1971년 수리

봉돈은 봉화 연기를 올려 신호를 보내는 시설이다

보통 봉화대는 높고 인적이 드문 곳에 두었으나 화성에서는 시야가 트인 동쪽에 설치해 화성행궁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봉돈은 화두(火竇) 다섯 개가 있다

평소에는 남쪽 끝에 있는 화두 한 곳에만 연기를 올리고, 상황에 따라 연기의 숫자를 증가시켜 전쟁 시에는 다섯 곳 모두 연기를 피웠다

*
옆에서 바닥에 포토존 표시가 붙어 있다며 일러준다
암튼 가서 서시라니 발자국 표시가 그려져 있는 포토존에 서로 발을 대려고...
재미있는 산들팀이다

 

 

 

 

남문 지동시장으로 내려간다

 

 

 

 

수원천
남문 지동시장앞 지동교를 건넌다
몇 개월만에 왔는데 공사가 많이 진척되었다

 

 

 

 

홍난파 고향의 봄 기념비
팔달문을 거쳐 성곽을 따라 오르면 있다
엄마가 휴대전화로 아들 사진을 만들더니 본다
아름다운 그림이다

 

 

 

 

고인돌 / 경기도 기념물 제125호
홍난파 비가 있는 도로에서 왼쪽으로 가다 다시 팔달산으로 오르면 있다

 

 

 

 

효원정
고인돌을 지나 언덕을 내려와 경기도청 앞이다
오늘 걷기는 여기서 마무리한다고 미래소년 코난님이 선언한다
오늘 걷기 끝

 

 

 

 

효원정에서 내려다봤다

 

 

 

 

효원정에서 쉬고 있을 때 둘이 한 몸인 천사가 보인다
사진 한 장 만들어도 될까요?
좋아요다
땡큐~!

 

 

 

 

경기도청

 

 

 

 

효원정에서 걷기는 마무리했지만 수원역이 보이는 이곳까지 모두 오셨다
이곳에서 뒷풀이를 하기로 하자 몇 분은 가시고
2차는 빅터님이 쏘시고 또 3차 가자는 거 제가 말리고...
암튼 즐겁고 행복한 하루였다
박쥐 일기 끝~!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14.2km, 소요시간 5시간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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