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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화순옹주 홍문

화순옹주 홍문(和順翁主紅門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5호)

정려문(旌閭門)은 추사 선생의 증조모인 화순옹주(영조의 차녀)의 정절을 기리고자 정조가 명정(命旌)한 열녀문이다

화순옹주는 13세에 영의정 김흥경의 아들 김한신(金漢藎 · 1720~1758)과 결혼했다

김한신이 39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화순옹주는 14일을 굶어 남편의 뒤를 따라 세상을 떠났다

영조는 화순옹주의 정절을 기리면서도 부왕의 뜻을 저버린데 대한 아쉬움 때문에 열녀정문을 내리지 않았으나

후에 정조가 열녀문을 내렸다. 화순옹주는 조선왕조에서 나온 유일한 열녀라고 한다

 

 

 

화순옹주 홍문

화순옹주도 합장되어 있는 월성위 김한신(月城尉 金漢藎)의 묘 앞에서 봤다

 

 

 

 

화순옹주 홍문

화순옹주(和順翁主 · 1720~1758)는 조선 영조의 차녀이자 정조의 고모다

화순옹주 부부는 자식이 없어 김한신의 형인 김한정(金漢禎)의 3남 김이주로 사후 양자를 삼는데

김이주의 손자가 추사 김정희이다

 

 

 

 

화순옹주 홍문(和順翁主紅門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5호)

열녀유록대부월성위겸오위도총부도총관증시정효공김한신배화순옹주지문

(烈女綏綠大夫月城尉兼五衛都揔府都揔管贈諡貞孝公金漢藎配和順翁主之門)

상지7년계묘1월12일특명정려

(上之七年癸卯一月十二日 特命旌閭)

*

화순옹주의 남편인 월성위 김한신(月城尉 金漢藎)이 사도세자와 말다툼 끝에

사도세자가 던진 벼루에 맞아서 죽자 화순옹주는 화를 삭이지 못해 식음을 전폐하였다고 한다

7일째 되는 날 영조가 알고 찾아와 미음을 권했지만 옹주는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

 

 

 

 

묘막터(墓幕址)

묘막이 있었으나 소실되고 주춧돌만 남았고, 둘레 담장은 근래에 설치한 것이다

 

 

 

 

화순옹주 홍문 · 묘막터

영조의 첫 후궁이었던 정빈 이씨의 딸로 태여난 화순옹주는 이듬해 어머니를 여의었고

친언니는 화억옹주는 태여나기 전에 죽었고, 한 살 터울인 친오빠 효장세자는 아홉 살에 요절하였다

 

 

 

 

묘막터(墓幕址)

화순옹주가 죽자 영조는 슬퍼하며 옹주의 상(喪)에 왕림하였는데

이때 예조판서 이익정이 옹주의 절의를 기리고자 정려(旌閭) 할것을 청하자

부인으로서의 정절을 지켰다 하더라도 부모에게는 불효하였므로 도리에 어긋난다며 청을 거절하였다

 

 

 

 

월성위 김한신 묘(月城尉 金漢藎墓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89호)

김정희의 증조부인 김한신과 부인 화순옹주가 함께 묻힌 묘이다

영의정 김흥경의 아들 김한신은 13세에 영조의 둘째 딸 화순옹주와 결혼하여 월성위에 봉해졌다

인물이 잘 생기고 총명하여 영조의 사랑을 받았으며, 벼슬은 오위도총부 도총관을 지냈다

귀한 신분임에도 평소에 비단으로 만든 옷을 입지 않고 항상 겸손하게 몸을 낮추어 생활했다고 한다

그는 특히 글씨를 잘 써서 시책문을 썼으며, 전각에도 뛰어났다

묘소 앞 비문에는 영조의 친필이 새겨져 있다

 

 

 

 

월성위 김한신 묘비

비문은 영조의 친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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