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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예산 화암사

예산 화암사(華巖寺)의 창건연대는 미상(未詳)이나 삼국시대의 고찰(古刹)이라고 한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증조부인 월성위 김한신(月城尉 金漢藎)이 조선 영조의 부마가 되었을 때

별사전(別賜田)으로 분급된 일대의 전토(田土)에 포함되어 그 일문(一門)에 세습되었다

1752년(영조 28)에 월성위가 중건하였으나, 그 후 대웅전이 소실되고 요사채만 남아 있다

추사 선생은 이곳 오석산(烏石山) 화암사에서 불교에 정심(靜深)하였고

1846년(현종 12)에 제주도 적소(謫所)에서 문중에 서한을 보내어 중건을 지시한 사실이 있다

이때 추사는 화암사중건상량문과 함께 무량수각(无量壽閣) 현판 · 시경루(詩境樓) 현판을 써서 보낸다

이 현판들은 수덕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범종각 · 약사전 · 대웅전

 

 

 

 

범종

 

 

 

 

석불

 

 

 

 

오층석탑

 

 

 

 

약사전 · 대웅전

 

 

 

 

대웅전(大雄殿) 현판

 

 

 

 

약사전(藥師殿) 현판

 

 

 

 

대웅전 · 범종각

 

 

 

 

범종각

 

 

 

 

느티나무 보호수

나무 높이 18m · 나무 둘레 3.2m · 나무 나이 230년 · 지정일자 1982. 10. 15

 

 

 

 

요사채

 

 

 

 

화암사(華巖寺) 현판

요사채에 여러 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세한도(歲寒圖) (김정희 / 국보180호 / 19세기 / 국립박물관 소장)

제자 이상적의 변치 않는 절의를 추위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소나무와 측백나무에 빗대 그린 그림이다

 

 

 

 

원통보전(圓通寶殿) 현판

 

 

 

 

추수루(秋水樓) 현판

 

 

 

 

느티나무 보호수

나무 높이 16m · 나무 둘레 4.1m · 나무 나이 228년 · 지정일자 1982. 10. 15

 

 

 

 

범종각

석불 · 오층석탑이 대웅전 옆에 있다

 

 

 

 

시경(詩經 / 충청남도 기념물 제151호)

추사는 이곳을 자신의 이상향(理想鄕)으로 만들고자 했다

때문에 자신이 가장 존경했던 스승인 담계(覃溪) 옹방강(翁方綱 · 1733~1818)을 상징하는

여러 문구들을 이곳 병풍바위와 쉰질바위에 새겨놓았다

소동파를 존경했던 옹방강 그리고 소동파와 옹방강을 존경했던 추사

이런 추사는 자신이 존경했던 소동파(蘇東坡)와 옹방강을 이 오석산(山)에 흔적으로 남겨두어

자신의 학문의 뿌리 또는 이상향 내지는 선경(仙境)으로 삼으려 했던 것이다

이는 화암사중건상량문에도 나타나는데 마지막 부분에 '소봉래의 선경을 꾸며주소서!' 라는 대목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시경(詩經 / 충청남도 기념물 제151호)

시경은 시의 경계(境界) 또는 시흥(詩興)을 불러일으키는 풍취(風趣)라는 뜻으로 경치를 뜻하기도 한다

이는 추사가 중국 연경에 갔을 때 스승인 옹방강으로부터 받은 탁본 글씨를 화암사 병풍바위에 새겨놓은 것이다

예서로 쓴 이 글씨는 송나라 시인으로 많은 사람으로부터 추앙을 받던 인물인 육유(陸游 · 호 방옹(放翁)의 글씨이다

추사 김정희 선생은 이 좋은 글씨를 후대에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이곳에 새겨놓은 것이다

일각에서는 추사의 친필이라는 견해가 있어 연구가 필요한 필적이다

 

 

 

 

천축고선생댁(天竺古先生宅 / 충청남도 기념물 제151호)

추사 김정희 선생이 중국 연경에 갔을 때 스승인 담계(覃溪) 옹방강(翁方綱)의 집 대문 양쪽에

상견동파구거사(想見東坡舊居士) · 엄연천축고선생(儼然天竺古先生)이라는 대련이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이 대련에서 추사는 천축고선생이라는 문구를 떠올려 이곳 화암사 뒤편 병풍바위에 유려한 행서로 새겨 놓은 것이다

이는 조선 후기 소동파를 흠모하던 선비들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문구이다

소동파와 석가모니를 동일시한 것으로 추사 김정희 선생이 얼마나 소동파를 흠모했는지를 알 수 있다

 

 

 

 

천축고선생댁(天竺古先生宅 / 충청남도 기념물 제151호)

'천축국(인도)의 옛 선생님 댁'이라는 뜻으로 추사가 화암사 뒤편 병풍바위에 새겨 놓은 것이다

 

 

 

 

소봉래(小蓬來 · 충청남도 기념물 제151호)

이 바위는 일명 쉰질(50길)바위로 여기에 추사 김정희 선생은 소봉래라 새겨놓았다

스승인 담계 옹방강의 집 앞 석순(石筍)에 봉래(蓬萊)라 쓰여진 것을 보고

자신은 작은 봉래라 이르며 여기에 소봉래라 새겨놓은 것이다

여기에서 추사 선생은 소봉래학인(小蓬來學人) · 소봉래주인(小蓬來主人) · 소봉래(小蓬來) · 소봉래각(小蓬來閣)

소봉래산인(小蓬來山人) · 봉래산초(蓬來山樵) · 소봉학인(小蓬來學人) 등의 호를 만들어 쓰기도 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오석산(烏石山)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살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소봉래(小蓬來 · 충청남도 기념물 제151호)

소봉래(小蓬來)라는 글귀 밑으로 '추사제(秋史題)'라 쓴 작은 글씨도 보인다

*

화암사로부터 약 500m 정도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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