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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아산 맹씨행단~온양향교

온양 걷기 둘째 날로 아산 맹씨행단을 찾고 남은 시간에 맞춰 온양향교까지 걸었다

아산 맹씨행단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회화나무 보호수
나무 높이 24m · 둘레 120cm · 나이 약 320년 · 지정일자 1982. 11. 10
홍예교를 건너면 맹씨행단이다

 

 

맹사성 고택
문간채를 들어서면 외담과 내담이 있다
오른쪽 계단을 통해 본채 공간으로 들어간다

 

 

쌍행수(雙杏樹) 보호수
1982년 11월 1일 도(道) 나무로 지정된 수령 640년된 은행나무다
쌍행수 한 그루는 높이 40m · 둘레 580cm · 다른 한 그루는 높이 45m · 둘레 850cm로 사적 제109호로 지정된 아산 맹씨행단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이 나무는 세종대왕 때 좌의정으로 봉직한 맹사성이 1380여 년경에 심은 것이다
당시 맹사성은 이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축대를 쌓고 단을 만들었는데 뜻있는 사람들과 강학하던 자리라는 뜻으로 이곳을 행단이라 칭하였다 한다

 

 

맹씨 고택
1388년(우왕 14)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에 따른 정란으로 최영이 죽은 뒤 비어 있던 집에
맹사성의 아버지 맹희도가 정란을 피하여 거처를 이곳으로 옮겨 은거하였다
맹사성은 최영의 외손녀 사위다

 

 

세덕사(世德祠)
두문동 72현인 맹유와 맹희도, 조선조 정승인 맹사성의 위패를 모신 사우이다
맹유는 고려 말 불사이군의 절개를 지키다 순절하였고 맹유는 벼슬을 버리고 한민(閒民)으로서 충절을 지켰다
맹사성은 조선 시대 대표적인 청백리로 백성의 아픔을 함께 나눈 서민적 정승으로 유명하다
사방으로 담장을 둘러 다른 영역과 구분하고 있으며 작은 일각문을 두어 출입하도록 하였다
가묘 공간은 고택보다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세덕사(世德祠) 현판

 

 

세덕사(世德祠) 내부
두문동 72현인 맹유와 맹희도 · 조선조 정승인 맹사성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배방읍
태화산 · 망경산 품안에 있다
구괴정으로 가며 봤다

 

 

구괴정(九槐亭)
조선 세종 때 정승이었던 맹사성이 황희 · 권진과 함께 느티나무를 세 그루씩 아홉 그루를 심었다는 데에서 구괴정이라 불리게 되었다
600여 년이란 세월이 흘러 아홉 그루 중 일곱 그루의 느티나무는 수명을 다하였고
두 그루만이 허리를 굽힌 채 받침대에 의지하여 흥망성쇠하였던 500년의 역사를 말없이 증언하고 있다
*
좌우측 두 그루의 나무다

 

 

구괴정(九槐亭) 삼상당(三相堂) 현판
삼정승이 국사를 논하였다고 하여 삼상당이라고도 한다

 

 

구괴정(九槐亭) 현판
정자 내부에 걸려 있다

 

 

고불 맹사성 벤치

 

 

고불 맹사성 · 흑기총(黑麒塚)
맹사성이 79세로 세상을 떠나자 검은 소는 주인 잃은 슬픔을 못이겨 먹지 않고 울부짖다가 굶어 죽고 말았다
사람들이 이를 보고 감동하여 맹사성의 묘 아래 묻고 흑기총이라 이름지어 주었다

 

 

기억의 벽
고불 맹사성이 흑소에 올라타 있는 모습을 표현한 조형물이다
방문가의 감상을 써 붙일 수 있다

 

 

고불맹사성전시관

 

 

신창맹씨의 유래
우리나라 맹씨의 유래는 맹자 40세손 맹승훈이 당나라 말 공자의 상을 모시고 신라로 이주해 온 것에 기원하여 한국계 시조로 삼고 있다
신창맹씨는 고려 이부전서를 지낸 맹의를 1세조로 하며 조적의 난을 물리친 공으로 신창백에 봉해져 본관을 신창으로 하였다
맹사성은 맹의의 4세손이다

 

 

맹사성 연보
1360년 7월 17일, 개경(현 개성)에서 아버지 맹희도와 어머니 조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출생
*
맹사성의 탄생설화
맹희도는 흥양조씨와 혼인을 하자마자 과거공부를 하러 떠났다
그의 부인이 어느 날 커다란 태양을 치마폭에 받는 꿈을 꾸고 시아버지께 말씀드리자 시아버지는 사람을 시켜 급히 아들 맹희도에게 서찰을 보냈다
과거 공부에 열중하고 있던 맹희도가 서찰을 받아보니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내용이었다
부랴부랴 고향 집을 찾은 맹희도가 아버지를 찾으니 아버지는 태평하게 앉아 병이 그동안 다 나았으니 염려 말고 며칠 쉬었다 가라는 것이었다
영문을 모르는 맹희도는 아버지 뜻대로 며칠 집에 머무르는 동안 부인이 맹사성을 잉태하게 되었다

 

 

기록으로 본 맹사성

 

 

자하당(紫霞堂)
고불 맹사성교육관이다

 

 

자하당(紫霞堂) 현판

 

 

느티나무 정자

 

 

효자 정려
맹희도(孟希) · 맹사성(孟思誠)  · 맹희(孟喜) 처 증 숙부인 조씨 · 맹흠(孟欽)
네 분 빗돌이 있다

 

 

효자 빗돌

 

 

단비의 유래
이 단비는 법곡동에 세워져 있던 신창맹씨 시조비와 구 세거지인 한주(선천군 한산면 축동)에 설단되어 내려오던
신창맹씨 선대 휘 리(理) · 시중공 휘 의(儀) 전서공 · 휘 유(裕) 상서공 등 세 분의 구 단비로
2005년 4월 아산시 법곡동 동포공묘역으로 천단하고 구 단비와 구 상석을 기념 유물로 비림에 옮겨 봉안하다

 

 

신창맹씨세거지비(新昌孟氏世居地碑)

 

 

증 가선대부 이조참판 맹공 휘 세형 신도비
가선대부 이조참판 맹공 휘 세형 하곡 공의 신도비로 현종 14년(1674)에 우암 송시열 문정공이 비문을 엮고 쓰고
좌의정 문곡 김수항의 전서(篆書)로 천안 광덕 금동(金洞 · 쇳골)에 건립되어 내려오던 중
시대의 변천에 따라 인적이 끊긴 산중으로 변하여 부득이 2013년 4월 이곳 신창맹씨 비림으로 이전 봉안하다

 

 

천하대장군 가족

 

 

배방산
걷기 편한 금곡천 둑길로 간다

 

 

설화산
금곡초등학교가 앞에 있다

 

 

초원설화타운아파트 · 읍내주공아파트
온양향교는 우측 읍내주공아파트 앞에 있다
금곡천 둑길에서 봤다

 

 

신흥교

 

 

팬텀스포츠풋살경기장

 

 

설화산

 

 

금곡천의 좁은 다리를 넓히는 공사중이다

 

 

배방산 · 태화산

 

 

써큘런트가든

 

 

온양순환로 좌부IC교

 

 

좌부삼거리

 

 

회화나무 보호수
나무 높이 16m · 둘레 160cm · 나이 약 330년 ·  지정일자 2001. 6. 5

 

 

좌부교

 

 

온양초등학교

 

 

온주아문(溫州衙門)
조선시대 온양군 관아 건물의 문 위에 누각으로 만든 문루 건물이다
아문은 고종 8년(1871)에 고쳐지어진 건물이다
온양이란 이름이 유래한 곳이다
*
공사로 문이 닫혀있다

 

 

온주아문(溫州衙門) 현판

 

 

읍내동 온주아문 비석군
이곳에서 재임하던 군수들과 충청도 관찰사들의 선정을 기념하고 공덕을 칭송하기 위해 세운 송덕비로
흔히 관아의 입구나 도로변에 세워진 것들을 한자리에 옮겨 놓은 것이다

 

 

동헌
조선시대 온양현 동헌으로 쓰였다가 일제 때 주재소 · 해방 후에는 파출소
1986년부터 1988년까지 온양시 온주동사무소로 사용되다 1993년 수리 · 복원되었다
*
현재 공사중이다

 

 

온양향교 홍살문

 

 

온양향교 하마비

 

 

온양향교
당초 아산시 법곡동에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던 것을 광해 2년(1610) 봄에 현재의 위치로 복원하였다

 

 

온양향교(溫陽鄕校) 현판

 

 

온양향교유림회관 상량문 · 준공문비와 공적비 3기가 있다

 

 

명륜당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의 5성 2현과 국내 18현의 위패를 모셨으며, 봄 가을로 석전제를 지내고 있다
*
이곳도 문이 닫혀 있다

 

 

온양향교버스정류장
마침점이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5.7km, 소요시간 3시간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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