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둘레길은 「단절된 녹지축을 살린다」는 취지로 한남정맥 줄기인 계양산을 시작으로
천마산 · 원적산 · 함봉산 · 만월산 · 만수산 · 관모산 · 문학산 · 연경산 · 노적봉 · 청량산으로 이어지는 S녹지축을 연결하는 코스다
일상에서 자연을 벗 삼아 여가생활을 하고 더불어 우리지역의 자연생태환경과 문화를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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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코스는 인천역을 시점으로 대한제분입구 · 월미공원입구 · 월미문화의거리를 거쳐 다시 월미공원입구까지로
러일전쟁 및 병인양요 · 인천상륙작전 등 인천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월미도를 찾아보는 길로 길이 4.8km · 소요시간 1시간 20분으로 나와 있다
월미바다역
월미바다열차 출발역이다
코로나19 감염차단을 위해 임시휴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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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역이 시점이다
러시아영사관 · 해무청사 터
러시아는 경성 한국주재영사관 내에 부영사관을 병설하고 인천 · 평양 · 진남포 등을 관할케 하고 있었는데
1902년 부영사관을 갑자기 인천에 이전 설치했다
제물포항을 일본이 독점하는 것을 방지하는 동시에 자국의 병참기지화를 위한 것으로 보인다
1974년 철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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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에 김중업에 의해 1957년에 세워진 해무청사는 1903년경에 설립된 러시아 영사관 건물과 나란히 바다를 보고 있었다
1992년경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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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가림막 있는 곳까지가 뭍이었고, 그 앞은 바다였다
우회고가사거리에서 본 인천역 철도차량기지 방향이다
만국 야생화정원 자리
인천역에서 우회고가사거리 밑을 지나 길 건너에 있었는데 만국 야생화정원 언덕을 없애는 공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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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못보던 상상플랫폼 자동차극장이 생겼다
새우젓골목 · 동일아파트
새우젓골목은 인천 앞바다에서 잡은 새우를 소금에 절여 보관하던 창고와 가게들이 있었던 곳이다
골목에는 건어물가게도 있었으나 부두가 사라지면서 새우젓도 함께 떠나버리고
빈 창고와 가게는 인근 노동자와 도시 빈민들이 들어와 쪽방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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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젓골목 옆에는 인근 섬과 주안염전에서 들어온 소금이 있었다
소금은 가마니나 포대에 포장돼 전국 각지로 실려 나갔다
소금을 부리던 그 앞에 부두를 사람들은 한염부두라고 불렀다
소금공장이 떠나고 그 자리에 동일아파트가 들어섰다
북성포구 입구 아치
왼쪽 고가가 월미바다열차 레일 · 오른쪽 북성포구 아치 가운데 인천상륙작전 적색해안 안내석이 보인다
북성포구
인천상륙작전 적색해안 안내석 뒷쪽이다
인천상륙작전 상륙지점(적색해안) · 맥아더 길 빗돌
이 지점은 1950년 9월 15일 새벽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원수가 전함 261척과 상륙군 미해병 제1사단 · 한국해병 제1연대를 진두 지휘하여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한 3곳(적색해안 · 청색해안 · 녹색해안) 중 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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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더 길은 월미도에서 자유공원 맥아더 동상까지의 길이다
제2차 인천상륙작전 전승비
1951. 2. 10~2. 11, 대한민국 해군 · 해병대 단독으로 감행한
제2차 인천상륙작전 승리를 현양하기 위해 상륙지점인 현 위치에 해군이 건립했다
월미도 관광특구 아치
북성포구 입구에서 월미공원으로 들어가는 월미로에 있다
월미공원 아치
월미공원 입구다
월미공원역 · 인천 내항 사일로벽화
월미바다열차 월미공원역 뒤로 인천 내항 사일로벽화가 보인다
사일로벽화 제작 기간은 약 1년으로 22명의 도장 · 도색 전문 인력이 투입됐다
높이 48m · 길이 168m · 폭 31.5m 규모의 거대한 곡물 저장고벽화다
세계 최대 야외 벽화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월미문화관
수신제가의 공간 · 치국평천하의 공간 · 기획전시실 등 세 전시실로 나뉘어 있다
2012년 개관했으며, 입장료는 무료다
해군 제2함대사령부 주둔기념비
월미도는 해군 역사에서 잊혀질 수 없는 한 현장이다
월미도는 한국전쟁 후 처음으로 다수의 북한 해군 정규군과 겨뤄 승전한 「연평해전」의 주역 제2함대사령부가 반세기 동안 주둔했던 곳일 뿐만 아니라
세계 전쟁사에서 높이 평가 받고 있는 인천상륙작전 당시 연합군 주력부대가 상륙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청호 경사 · 오진석 경감 흉상
오진석 경감은 2015년 8월 19일 응급환자 이송 요청을 받고 출동했다가 선박사고로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다가 같은 달 30일 끝내 숨을 거뒀다
당시 자신의 부상을 뒤로하고 다친 동료들을 모두 병원으로 옮겨 '희생의 상징'이 됐다
이청호 경사는 2011년 서해 상에서 불법조업 중국어선을 단속하던 중 순직해 해양주권 수호의 상징이 됐다
해양경찰경비정 206함
퇴역 경비정 206함(200t급)은 길이 43.3m · 폭 6.3m 규모로 1976년 건조 돼 25년간 서해에서 해상경비 및 구난활동을 벌이다 2001년 8월 퇴역했다.
전성기 때는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역에서 불법 조업을 하던 중국 어선들을 잇따라 나포, 중국 어선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으며
1999년 서해교전에도 참여, 어선들을 안전 해역으로 유도하고 해군 고속정을 지원하며 맹활약한 경비정이다
인천상륙작전 시 월미도와 인천
한국전쟁을 승리로 이끈 인천상륙작전의 첫 상륙지점인 그린비치와 레드 · 블루비치 등도 표시되어 있다
치유의 나무 은행나무 / 월미 평화의 나무 첫 번째 이야기
수형이 가장 멋지고 품격이 있어 시민들과 친숙한 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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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앞에 제7 미국 보병사단 상륙 10주년 기념비도 있다
베니키아 더블리스 호텔(BENIKEA The Bliss Hotel)
월미도 문화의 거리 비
치유의 나무에서 월미도 문화의 거리로 들어왔다
영종도행 선착장
월미바다열차가 오른쪽 고가로 지난다
영종도
왼쪽 송산부터 오른쪽 영종진 옆 월미도행 여객터미널까지다
영종도 · 작약도
영종도 여객터미널부터 작약도까지다
CRAZZY LOVE 포토존
월미도 친수공간 전망대
원형전망대 · 인천마스코트
월미문화의 거리
원형전망대에서 봤다
영종도 · 작약도
원형전망대에서 봤다
소무의도 · 무의도
인천대교가 앞으로 지난다
월미문화의 거리
월미도 등대길 방향이다
바다같은 사랑
칼국수로 점심을 했다
월미도 친수공간
이별의 인천항 노래비 / 작사 세고천 · 작곡 전오승 · 노래 박경원
쌍고동이 울어대는 이별의 인천항구 ~♬
1950년 9월 15일 유엔군 16개국의 인천상륙작전 기념비
월미도 등대길
탁 트인 바다와 환상적인 낙조를 감상할 수 있으며 근현대부터 현재까지 인천 중구의 역사와 문화유산이야기를 알아볼 수 있다
월드테마파크
하이퍼 드롭 · 허니문카가 보인다
1950 그날의 월미도 인천상륙작전
인천상륙작전의 설명과 그 때의 사진들이 있다
폭격 후 길에 홀로 놓인 아이
인천상륙작전 때의 사진 중 하나다
월미전망대
중국에서 날아오는 황사가 최소한으로 앉도록 유리창을 역원추형으로 설계하였다
인천 바다 해넘이를 보기에 좋다
월미구장
월미바다열차 월미박물관역이 있다
해넘이 언덕의 석양정
저녁노을과 인천항을 오가는 배들이 발길을 머물게 하는 언덕이다
인천항 등대
멀리 인천대교와 무의도가 보인다
평화의 어머니 나무 / 월미 평화의 나무 세 번째 이야기
섬 전체가 무너지듯 진동했다. 폭격이 지나간 자리는 참혹했다
느티나무 · 높이 22m · 굵기 220cm · 나이 244년, · 지정일 2015년
인천항
부산항 · 원산항에 이어 1883년 국내 세 번째로 개항하였다
1918년 일본이 우리나라 및 중국대륙 침략을 위한 거점 확보를 위해 지금의 제1부두에 4천500 톤급 선박 3척 · 2천 톤급 선박 4척을 동시 접안할 수 있는
수면적 9만9천174㎡의 제1선거를 축조(선거 입구에 여닫이 쌍문 갑문 설치)하여 사용해 왔다
진양정(進洋亭)
인천 내항 사일로벽화
높이 48m · 길이 168m · 폭 31.5m 규모로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 최대 야외벽화다
제작 기간은 약 1년으로 22명의 도장 · 도색 전문 인력이 투입됐다
자유공원
인천항 너머로 자유공원이 있는 응봉산이다
올림포스호텔도 앞에 있다
9 · 18추모공원
인천상륙작전 3일 후 9 · 18의거에 성공한 황해도 벽성군 청룡면 용매도의 청년결사대 태극단은 해군 302함의 지원을 얻는데 성공함으로서
도민 3,500여 명은 물론 도내 800여 명의 청년들을 모두 자유대한의 품으로 이주시키는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이제 잊혀지기 쉬운 6 · 25전쟁 실화를 캐내고 다듬어 펴내서 후손들에게 알릴 수 있는 터전을 이곳 역사의 현장 월미산 동쪽 기슭에 마련하였다
용매도의 실향민들이 1992년 5월부터 8~9년생 전나무를 심어 조성한 동산이다
만 그루 기념 식수 비
인천상륙작전의 전적지인 월미산을 아름답게 가꾸고자 정성을 쏟아온 해군장병들이
만 그루 식수에 즈음하여 그 푸르름이 영원하기를 바라고 이 비를 세웁니다
1997년 4월 5일
해군 제2함대 장병 일동
화약고쉼터
예전엔 효소 · 발효음식 저장고로 사용되었다
스탠다드석유회사 저유창고 사진
1882년 미국과의 통상조약 체결을 계기로 서양 여러나라들과 통상을 체결한 이후
인천항에는 일본과 청은 물론 영국 · 미국 · 독일 등의 외국 상사들이 진출하여 치열한 무역경쟁이 전개되었다
그들은 다양한 서양의 박래품들을 조선에 가져왔다
그 가운데 석유는 가정의 필수품으로 일본 상인들이 이미 독점하여 수입하고 있었다
1895년 미국계 타운센트상사는 미국 스탠다드석유회사와 독점계약을 맺고
월미도 동쪽 해안의 터를 사들여 등유 50만 상자를 저장할 수 있는 석유 저장창고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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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판에 있는 사진이다
월미공원 한국전통정원으로 내려가는 길에 있는 정자다
양진당
북촌을 대표하는 종가집으로 서애 류성룡의 친형인 겸암 류운룡이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조성한 17세기 초의 건물이다
□자형 안채를 중심으로 앞면 동쪽에는 문간채, 뒷면으로는 사랑채가 연결되어
3개의 건물이 자연스럽게 결합되어 보이며 후원의 동북쪽에는 2채의 사당이 있다
월휴정
전통정원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언덕에 있는 정자다
소쇄원 광풍각 터
광풍각은 조선 중종 때의 양산보(1503~1557)가 계곡 가까이에 세운 정자로
광풍(光風)은 「가슴에 품은 뜻이 맑고 맑음이 마치 비갠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과도 같다」라는 뜻이다
소쇄원 광풍각
소쇄원 광풍각이 터만 있어 지난 사진을 올려본다
(1992년 12월 9일 사진)
사슴원 꽃사슴
참 착해 보인다
불로문(不老門)
하나의 돌을 깍아서 만든 돌문으로 이곳을 지나면 늙지않는다고 한다
창덕궁에 있는 불로문을 재현해 놓았다
새우젓골목 · 동일아파트
인천역으로 갈 땐 길 건너로 지났다
인천역
물류로 인해 인천항과 연결되어 있으며
또 인천항은 일제가 여주, 이천 지역의 쌀과 소래 남동 등지의 소금을 인천항을 통해 반출하기 위해 1937년부터 수인선을 운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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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점이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9.6km, 소요시간 4시간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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