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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화성행궁

1789년(정조 13) 신 읍치 건설 후 팔달산 동쪽 기슭에 건립한 행궁으로
수원부 관아와 행궁으로 사용되다가 화성 축성기간에 화성행궁으로 확대하여 최종 완성되었다
우리나라 행궁 중 가장 크고 아름다우며 정조대왕께서 모친 혜경궁 홍씨의 진찬연을 열었던 궁이다
화성행궁(사적 제478호)은 일제강점기에 모두 훼손되고 「낙남헌」만 신풍초등학교 교정에 남아 있었으나
1996년 화성축성 200주년을 맞아 역사 바로 세우기 일환으로 복원사업이 전개되어 현재 1단계 복원공사가 완료되었다

 

 

홍살문

하마비가 옆에 있다

 

 

 

 

신풍루(新豊樓)
화성행궁의 정문이며 신풍이란 국왕의 새로운 고향이란 뜻으로 정조의 수원 사랑을 보여준다

 

 

 

 

집사청(執事廳)
궁궐의 액정서와 같이 잡다한 사무를 보던 집사들이 사용하던 건물이다
*
궁궐의 액정서는 국왕이 쓰는 붓과 먹 · 벼루 등을 보관하며
대궐 안의 열쇠를 간수하고 여러가지 설비 · 비품을 관리하는 관청이다

 

 

 

 

북군영 뒤편

 

 

 

 

북군영(北軍營)
정조의 호위부대이자 정예부대이며 무력적 기반이었던 장용영(壯勇營)은 크게 내영과 외영으로 나누어졌다
장용내영은 수도 한성부에 설치된 한편 장용외영은 화성에 설치되었는데
이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추존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려는 의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남군영은 북군영과 함께 장용외영의 기마병이 왕의 측근에서 각각 100명씩 입직(入直) · 숙위(宿衛)하는 건물이다
북군영은 장용외영의 기마병이었던 친군위(親軍衛)가 좌 · 우열로 각 100명씩 입직숙위하는 건물이다

 

 

 

 

느티나무 보호수
화성 성역 이전부터 수원을 지켜온 신령스런 나무로 영목(營木) · 신목(神木) · 규목(槻木)이라 불려왔으며
예부터 잎이나 가지를 꺽으면 목신(木神)의 노여움을 사 어려움이 닥친다고 하였다
또한 이 나무에 손을 대고 기도하면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서려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화재로 훼손되어 2003년 5월에 대대적으로 나무 살리기를 하여 현재의 위용을 보인다
느티의 속과 겉이 모두 타 살아 있는 것 만으로도 감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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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높이 30m ·  둘레 6m ·  나이 600년 · 지정일자 1982년

 

 

 

 

드라마 「대장금」의 촬영지

 

 

 

 

좌익문(左翊門)
좌익은 곧 곁에서 돕는다는 뜻으로 내삼문을 바로 앞에서 도와 행궁을 지키는 중삼문(中三門)이다
1790년 완성되었고 편액은 정동준이 정조의 명을 받들어 썼다

 

 

 

 

중양문(中陽門)
궁궐 건축의 삼문 설치 형식에 따라
행궁의 정전인 봉수당을 바로 앞에서 가로막아 굳게 지키는 역할을 하는 내삼문(內三門)이다

 

 

 

 

봉수당(奉壽堂)
화성행궁의 정당으로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이 열린 곳이다

 

 

 

 

낙남헌(洛南軒)
1795년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기간 중 과거시험과 양로연 등의 여러 행사가 치뤄졌던 곳이다

 

 

 

 

득중정(得中亭)
정조대왕이 활을 쏘신 곳으로 모두 명중시켜 득중정이라 했다

 

 

 

 

득한문(得閒門)
행궁 뒤편의 출입문이다

 

 

 

 

을묘원행(乙卯園幸) 동판
득한문 외벽에 8일간의 화성행차 모습을 담은 을묘원행이 그려진 동판이 있다

 

 

 

 

구여문(九如門)
드라마 「대장금」의 장금이 어린시절 사진이 있다

 

 

 

 

복내당(福內堂)
내당으로 평상시 화성유수의 가족들이 거처하는 곳이다

 

 

 

 

외정리아문(外整理衙門)
1796년(정조 20) 화성 행궁이 완성되면서 유여택 앞에 외정리소를 세우고 외정리아문이란 편액을 달았다

 

 

 

 

유여택(維與宅)
정조대왕 행차시 잠시 머물며 신하를 접견하던 곳이다

 

 

 

 

연휘문(延暉門)

 

 

 

 

당시 생활상을 보여준다

 

 

 

 

특종
큰 종 하나만 매달아 놓고 친다
음의 높이는 가장 낮은 음인 황종이다

 

 

 

 

특경
큰 돌 하나만 매달아 놓고 친다
음의 높이는 가장 낮은 음인 황종이다

 

 

 

 

편종
열여섯 개의 종을 두 단으로 된 나무 틀에 매달아 놓고 쇠뿔로된 망치로 친다
소리가 웅장하여 사자의 포효하는 소리에 비유된다

 

 

 

 

편경
ㄱ자 모형의 돌 열여섯 개를 두 단으로 된 나무틀에 매달아 놓고 친다
소리가 청아하여 흰 기러기 울음에 비유된다

 

 

 

 

비장청(裨將廳)
비장은 관찰사나 절도사 등 지방관이 데리고 다니던 막료로
조선 후기에는 방어사를 겸한 수령까지 모두 비장을 거느리는 것을 관례화하여 민정 염탐을 시키기도 하였다
비장청은 화성 유수부의 비장들이 사용하던 건물이다

 

 

 

 

서리청(書吏廳)
서리는 문서의 기록 및 수령 · 발급을 담당하는 아전들이 사용하는 건물이다

 

 

 

 

남군영(南軍營)

 

 

 

 

여민각(與民閣)
여민각은 수원 화성행궁 건너편 종로에 조선 정조 때 설치된 종각으로 나라의 중요 행사나 시간을 알리던 곳이었다
여민(與民)은 백성과 함께 한다는 뜻으로, 매년 수원 제야의 종 타종행사가 열리는 곳이다
한국전쟁 당시 소실되었던 여민각을 2008년에 복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