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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양평 물소리길 6코스

제주도 올레길을 디자인한 팀들과 협력하여

만든 양평 물소리길 다섯 구간이 코스와 길이를 다듬어 여섯 구간으로 새롭게 태여났다

작년 11월, 5코스를 걷고 6개월만에 6코스다

*

양평물소리길은 우리나라 대표적 걷기길인 제주올레길과 자매의 길로

남녀노소 누구나 걸을 수 있는 자연친화적인 편안한 길이다

그 중 6코스는 용문역을 시점으로 흑천 · 용문천 그리고 한적한 숲길로 용문산 입구에 이르는 길이다

 

 

용문역 3번출구

양평 물소리길 6코스 시점이다

 

 

 

 

양평 물소리길 6코스 안내판

거리 10.7km · 소요시간 3시간이다

 

 

 

 

사금내산(꼬부랑산)

어수물과 산여울펜션이 있는 다문8리다

 

 

 

 

북부지방산림청 용문양묘사업소

뒷산은 「어미산」으로 토기가 출토된 적이 있으나 양이 한두 점이어서 보존지역으로 되지 못하고

지금은 용문양묘사업소로 사용되고 있다

 

 

 

 

다문8리

이곳 들은 마룡리에 새로 생긴 봇물을 이용하는 들이라 「새봇들」이라 불리기도 한다

 

 

 

 

다문8리 두집담 빗돌

두집담과 국립수목원 유용식물증식센터로 들어가는 길이다

 

 

 

 

장대1길 벚나무 길

물소리길 안내판이 있다

 

 

 

 

두담길

다문6리로 들어가는 길이다

 

 

 

 

중원산

용문 스무빌아파트가 앞에 있다

 

 

 

 

중원산 · 괘일산 방향

 

 

 

 

현감남공호중청덕애민영세불망비(縣監南公鎬重淸德愛民永世不忘碑) · 현감박공○○청덕애민선정비(縣監朴公○○淸德愛民善政碑)

 

 

 

 

다문6리(장대마을) 빗돌

옛 지평현 상서면 지역으로 한양에서 양근현을 지나 지평현 · 원주 · 여주를 경유하는 큰 도로변으로

중앙선이 개통되기 이전에는 시장과 주막으로 번창하던 유서 깊은 마을이다

 

 

 

 

흑천을 따라 올라간다

 

 

 

 

사금내산 · 어미산

 

 

 

 

화전교

 

 

 

 

흑천

철길이 지난다

 

 

 

 

흑천

용문생활체육공원 포도 · 머루 · 인동초 터널 앞이다

 

 

 

 

용문국민체육센터

용문생활체육공원에 있다

 

 

 

 

마룡1리 빗돌

본래는 마흔천리(馬欣川里 · 속칭 마내)라 부르다가 일정시대에 마천리라고 지칭함

마천리와 용담리를 합하여 마룡리로 지칭함. 면소(面所)가 마룡리에 소재함

1940년 중앙선철도 개통시 다문리로 관청이 이전되고, 1962년에 마룡1,2리로 분리(分里)되었음

1962년에 마룡1,2리로 분리(分里)되었음

 

 

 

 

마룡2리(馬龍二里) 빗돌

 

 

 

 

마룡2리마을회관

이곳에서 이동식을 했다

 

 

 

 

용문천

보를 쌓아 물이 제법 넓고 깊다

 

 

 

 

용문단위농협창고

이곳에서 창고를 끼고 오른쪽 마룡 용담2길로 걷는다

용담(龍潭)하니 예전 용문사 앞 「용담여관」이 떠오른다

 

 

 

 

덕촌2리(퇴촌마을) 빗돌

용소교 앞에 있다

 

 

 

 

용소

오늘은 낚시꾼들이 안보인다

 

 

 

 

평양조씨세장동구(平壤趙氏世藏洞口)

세장지란 조상대대로 묘를 쓰는 곳을 말하며, 「세장동구」란 이러한 땅으로 들어가는 마을 입구를 말한다

조욱 선생은 세상으로부터 나를 감췄다 또는 묻었다 라는 은유적 표현으로 이렇게 남기셨다

 

 

 

 

조선국 증자헌대부이조판서 조욱신도비(朝鮮國 贈資憲大夫吏曹判書 趙昱神道碑)

 

 

 

 

용문산

세심정 들머리가 보이는 덕촌길에서 봤다

 

 

 

 

세심정(洗心亭 · 양평군 향토유적 제23호) · 연당(蓮塘)

조선 중종 · 명종 때의 학자이며 정암 조광조의 수제자로 이름 높은 조욱(1498~1557) 용문 선생이

기묘사화의 여화(餘禍)로 이곳에 은거하며 제자들과 더불어 도학을 강론하던 유서 깊은 정자다

선생은 중종 11년(1516) 생원 · 진사 양시에 합격한 후 기묘사화로 정암 선생과 그 문인들이 화를 당할 때 겨우 화를 면했고

마침 모친상을 당하자 용문산중에 복거하며 그 마을 이름을 퇴촌(退村)이라 했다

그리고 명종 16년(1561) 지금의 정자를 건립하여 제액(題額)을「세심정」 스스로의 당호(堂號)를 세심당이라 하고

학문 연구와 후진양성에만 전념하니 세상 사람들은 그를 용문(龍門)선생이라 불렀다

*

연당은 정면 16m · 측면 11.5m의 규모이며, 관상 노송이 한가운데 식재되어 있다

 

 

 

 

용문산 내원선원

 

 

 

 

용문산

덕촌리에서 봤다

 

 

 

 

우편함에「덕촌길 305」라 써있다

버드힐펜션과 삼밭을 지난 곳이다

 

 

 

 

물소리길 안내판

물소리길은 안내판과 리본 작업을 새로했다

 

 

 

 

물소리길 안내판

예전 삼판차가 내려오던 길로 「희망볼랫길」 세심정 2.2km 안내판이 있던 곳이다

 

 

 

 

물소리길 5코스 스탬프 찍는 곳이다

 

 

 

 

덕촌길 고갯마루

이 고개를 넘어서 두릅을 조금 땄다

 

 

 

 

오촌리 프로포즈펜션 앞이다

 

 

 

 

두릅을 따는 빅터

 

 

 

 

용문산 · 중원산

오촌리 고갯마루를 넘어서 봤다

 

 

 

 

김병호 고가

조선 말기인 고종 30년(1893)에 지어진 집으로 전체적인 집의 배치는 튼 □자 형을 이루고 있다

안채는 남서향으로 자리 잡고 있는데, 두 칸의 대청마루와 그 좌우로 안방과 건너방이 놓이며

안방은 ㄱ자로 꺾여 부엌이 위치하는 전형적인 중부지방의 주택 평면을 이루고 있다

건너방에서 방 두 칸을 덧달아 내고 전면에 반 칸의 툇마루를 두어 사랑의 기능을 갖추었고

제일 끝의 온돌방에는 방 내부의 북측에 신주를 모셔 두는 감실을 만들어 조상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이러한 가옥 구조는 조선 말기 상공업의 발달로 중인 계층이 성장하는 등 신분 계층의 질서가 와해되면서

지방의 부농 계층이 점차 사랑채와 안채 · 행랑채의 격식을 갖춘 사대부가의 가옥 구조를 좇던 당시의 모습을 보여준다

행랑채는 일제강점기에 파괴된 것으로 추정되며 후에 복원하였다

 

 

 

 

김병호 고가

뒷담에서 봤다

 

 

 

 

용문산로로 가는 고갯마루

고갯마루를 넘어 이동식을 했다

 

 

 

 

경기 제일 용문산 일주문

용문산관광지로 들어가는 문이다

 

 

 

 

응답하라 70 80 추억의 청춘 뮤지엄

복고체험장 · 추억의 놀이문화체험관이 있다

 

 

 

 

양평 용문산 산나물축제장

 

 

 

 

용문버스터미널

용문사 버스정류장에서 7-4번 버스로 왔다

 

 

 

 

용문버스터미널

용문역이 마침점이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11.1km, 소요시간 4시간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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