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길이야기

허준박물관 허준기념실

서울 강서구에서 건립한 허준박물관은 허준 선생의 출생 · 〈동의보감(국보 제319호)〉집필 · 돌아가신 곳으로 알려진 가양동에 세워진 공립박물관이다

*

허준기념실은 그의 생애와 동의보감을 비롯한 의서 편찬에 평생을 바쳐온 허준(許浚 1537~1615)의 일생과 업적을 기리는 공간이다

허준이 편찬한 동의보감과 동의보감 이전 이후의 우리나라 한의학 서적 및 한의학 이론의 발달 과정에 대해서도 알아 볼 수 있다

 

 

허준기념실

서울 강서구에서 태어난 조선 최고의 명의 구암 허준(1537~1615)은

우리나라 전통의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동의보감〉을 완성하여 세계 의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한의학사

한의학은 수천 년 동안 한민족의 건강을 지켜준 의학으로 민족과 역사를 같이 하였다

선사시대와 고조선시대의 원시적인 치료법을 거쳐

삼국시대에는 중국과 의서 · 약재 등의 교류가 활발하여 의학이 발달하였으며 의료제도도 정비되었다

또한 이렇게 발달한 의학은(특히 백제 의학) 일본의 절대적인 영향을 미쳐 고대 일본 의학에 크게 이바지 하였다

*

우리나라에서 중국에 수출한 주요 약재로는 인삼 · 우황 등이 있었고, 중국으로부터는 희귀 약재와 차 등이 수입되었다

또한 일본에는 의사 · 의서 · 약재 등을 계속 전하여 백제와 신라의 처방이 전해지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신라의 의학을 이어받고 거기에 중국 당 · 송나라의 의학을 받아들여 더욱 발전된 의료체계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불교를 통해서 인도 의학의 영향을 받기도 했으나, 점차 발전시켜 독자적인 의학으로 만들어 나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약재에 대한 연구가 점점 깊게 되어 향약에 관한 다양한 책들이 나왔다

*

조선시대로 접어들면서 한의학은 우리나라 고유의 의학으로 눈부신 발전을 하였다

향약을 발전시키는 노력으로 「향약집성방」이 나오기도 하였고

중국 한나라에서 시작한 중국의학을 꾸준히 받아들인 경험을 바탕으로 「의방유취」를 펴냈다

그리고 이런한 의학체계와 경험을 바탕으로 허준이 역사에 길이 남을 「동의보감」을 펴냄으로써

한의학사에 큰 획을 긋게 되고 우리의 의학을 중국과 일본에 전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한의학사 연표

가운데는 커다란 약연 모형이 있다

 

 

 

 

허준의 집념

허준 선생은 44년 동안 내의원 어의로 활동하면서 집념으로 다양한 의서를 집필하였다

 

 

 

 

출생 · 출생지

 

 

 

 

가족 관계 · 내의원 입사 / 스승 · 유배지

 

 

 

 

허준과 동의보감 · 가계도 · 생애와 학문

 

 

 

 

허준의 생애와 학문 연표

 

 

 

 

동의보감 / 18세기

대구에서 재간행된 목판본 동의보감이다

 

 

 

 

동의보감 / 중국 청대 1890년

일본판 동의보감을 중국에서 번역 · 간행하였다

*

동의보감 / 중국 청대 1831년

청대 부춘당 소장 판본 동의보감이다

 

 

 

 

내의원에 들어가다

허준이 언제부터 내의원 생활을 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미암일기 · 유희춘 지음」에 의하면 유희춘의 천거에 의한 것으로 되어 있다

내의원에 들어가서는 여러 차례 국왕의 진맥에 참여하고, 왕명에 의해 의서를 펴내기도 하면서 서서히 국왕의 신뢰를 얻으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허준은 내의원 생활을 하면서 3차례 벼슬이 높아지는 기회를 가지게 되는데, 첫 번째는 광해군의 두창 치료였다

이로 인해 정3품 통정대부의 작위를 받은 허준은 이후 두창에 관한 명의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두 번째 기회는 동궁이 된 광해군의 병을 치료한 공로로 정2품 정헌대부에 오르게 된 것이었고

마지막은 임진왜란 당시 국왕을 모시고 의주까지 피난을 했던 공로를 인정 받아 양평군 읍호와 종1품 승록대부를 받게 된 것이다

이렇게 어의로써 국왕을 살피고 의학에 힘쓰며 내의원 생활을 하던 허준은 선조의 명에 의해 새로운 의서를 만들게 되었고, 그것이 바로「동의보감」이었다

하지만 선조가 승하하게 되자 그 책임을 수의인 허준이 지게 되어 귀양을 떠나게 되었고 내의원 생활도 끝이나는 듯 하였으나

선조의 뒤를 이어 왕이 된 광해군의 도움으로 귀양에서 풀려나 다시 내의원 생활을 하며 마지막까지 자신의 의술을 펼쳐 나갔다

 

 

 

 

왕자의 두창을 치료하여 의술을 인정받다

1590년 허준은 왕자인 광해군의 두창을 완치시켰다

당시 어의 가운데 아무도 왕자의 치료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상황에서 허준이 치료해 낸 것은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이에 선조는 허준의 공로를 인정하여 정3품 당상관 통정대부의 작위를 하사하였다

이후 허준은 궁중의 여러 사람을 치료해 두창에 관한 명의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왕의 건강을 돌보는 어의가 되다

선조는 어린 시절부터 잔병이 많고 몸이 약해 스스로 건강과 의약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선조실록을 보면 그의 잔병치례에 대한 기록과 그것을 치료하는 과정이 자주 보인다

국왕에 대한 진료는 당연히 내의원에서 담당하였기 때문에 선조실록에서 허준이 진료를 맡은 기록들도 볼 수 있다

선조실록에서 허준이 선조를 진료한 첫 기록은 어의 안광익을 도와 선조를 진맥한 것이다(1575)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국왕이 의주로 피난을 가게 되자 허준은 선조를 호종하였고(1595)

수의(首醫) 양예수가 사망하자 그 자리를 이어받아 선조의 진료에 더욱 힘을 기울였다(1600)

선조는 허준을 "모든 서적을 널리 통달하여 약을 쓰는데도 노련하다"고 칭찬하였다(1606)

그리고 선조가 끝내 지병으로 승하하는 순간까지도 곁에서 최선을 다해 진료를 하여 자신의 소임을 다하였다(1608)

 

 

 

 

침구경험방 / 조선 17세기

조선 선조 때부터 인조 때까지 침술로 유명했던 의사 허임이 쓴 침구에 관한 의서이다

*

침경요결 / 조선 17세기

조선 선조 때 유성룡이 실생활에 쉽게 활용하도록 요약, 정리한 의서이다

*

의림촬요 / 조선

양예수가 「의학정전」을 토대로 편찬한 의서로 권 5이다. 인삼황기탕의 약방문이 쓰여 있다

 

 

 

 

선조 진료

임진왜란 이후 경복궁이 소실되어 월산대군 저택(지금의 덕수궁 내 석어당)에서 선조가 기거하던 중 어의 허준이 선조를 치료하는 모습이다

 

 

 

 

두창

급성 발진성 전염병으로 흔히 마마 · 손님이라고도 불렀다

주요 증세는 온몸에 발열이 일어났다가 부어 오르고 고름이 잡혔다가 딱지가 생기고, 나중에 떨어져서 얼굴에 자국이 남는다

두창은 전염력이 매우 강하고, 역사적으로 매우 오래되었을 뿐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 인류에게 큰 피해를 입힌 질병이다

그리고 병의 위력도 매우 커서 한번 걸리면 사망할 확률이 높았으며 살아난다 해도 눈이 멀거나 얼굴에 심한 상처가 남는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향약구급방」에 두창이라는 말이 등장하고, 조선시대에는 백성들을 가장 많이 괴롭혔던 질병 중 하나였다

선조 때 광해군도 두창에 걸려 어려움을 겪었는데 허준이 치료하여 완치시켰다

서양에서는 영국인 의사 제너에 의해 두창을 치료할 백신이 개발되었다

그는 젖을 짜는 사람들은 두창에 걸리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 백신을 만들었다

그 후 우리나라에서는 19세기 말 김홍집을 수행해 일본에 간 지석영이 이 치료법을 들여왔고

1960년에 3명이 두창에 걸린 것을 끝으로 우리나라에서 이 무서운 병은 사라졌다

 

 

 

 

두창경험방부언해 / 조선 1711년

조선 현종 때 박진희가 펴낸 두창 치료에 관한 의서로 한글로 풀어 펴낸 의서이다

*

신간인재직지방론 / 조선 1678년

송나라 명의였던 양사영의 맥학 전문서를 개편한 의서로 조선시대에 의원 교육용 교과서로 널리 사용하였다

 

 

 

 

동의보감 서갑 / 조선 18세기

오동나무로 만든 동의보감 보관함으로 덮개에 동의보감 이십오책(東醫寶鑑 二十五冊)이라고 새겨져 있다

 

 

 

 

호성공신교서

이 교서는 김응남에게 내린 것이다. 임진왜란 때 의주까지 피난가는 선조를 모시고 간 공으로 내려진 것이다

허준은 호성공신 3등에 정해졌으며, 「충근정량」이라는 봉호와 본관인 양천을 참고하여 「양평군」이라는 군호를 받았다

따라서 허준이 받은 작위의 정확한 명칭은 「호송공신 충근정량 양평군」이다

이 자료를 통해 우리는 그 당시 허준의 활약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고 허준이 선조의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허준의 호성공신 3등 교서

3번째 줄에 있다

 

 

 

 

문헌 속의 허준

커다란 약연 모형 앞에 모니터가 있다

 

 

 

 

의관

의관은 과거시험 중 잡과시험을 통해 선발되었다

의과의 시험과목은 모두 11과목이었고, 합격자 중 1등은 종 8품 · 2등은 정 9품 · 3등은 종 9품의 관직이 주어졌다

시험에 응시할 의원에 대한 교육은 주로 전의감에서 이루어졌다

시험에 응시한 사람 중에는 처음엔 양반의 자제도 있었으나 점차 의과를 잡학이라 하여 기피하게 되어 중인 출신들이 응시하였다

의관들은 상복을 착용하였다

*

어의

어의는 내의원의 의관들 중에서 임금과 왕족의 친료를 맡아보는 의관을 말한다

이러한 어의는 일반적인 의관들보다 경험이 풍부하고 뛰어난 의술을 펼쳤기 때문에 임금의 신뢰를 받을 수 있었고

병을 치료한 공로를 인정받아 상을 받거나 당상관의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

종1품 승록대부 가자(加資)받았던 허준의 복장은 공작 흉배가 부착되어 있는 아청색 단령에 사모와 서대를 하였다

*

의녀

의녀제도는 조선 태종 6년(14069)에 허도의 건의로 실시되었다

양반 부녀자들이 병이 생겨도 남자 의원에게 진료받기를 부끄러워하여 치료도 받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의녀는 남색치마에 연두색 저고리를 입었으며 옷고름에는 침통을 찼다. 또한 노란색 치마를 덧입었으며, 머리에는 흑단 가리마를 사용하였다

성적에 따라 내의 · 간병의 · 초학의 3등급으로 구분하였는데

특히 간병의 중 뛰어난 능력을 보인 2명을 선택하여 내의녀(內醫女)로 임명하고 왕비나 대비 등 왕실 여성의 질병 치료에 종사하게 하였다

 

 

 

 

훈련도감의 제작과 보관

1610년(광해군 2년) 동의보감 집필 완성. 광해군은 허준에게 숙마 1필을 하사하고 동의보감을 속히 간행할 것을 명함

*

1613년(광해군 5년) 내의원에 별도의 기관을 설치하고 훈련도감 목활자본으로 동의보감 초판본을 간행함

동의보감 초판본은 나라의 중요한 책을 보관하던 태백산 사고와 오대산 사고에 보관함(지금은 서울대 규장각과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보관)

*

제작과정이 모형으로 설명되어 있다

 

 

 

 

동의보감

훈련도감 목활자본 · 태백산사고 내사본 · 일본 향보 초간본 등이 있다

 

 

 

 

허준의 저서들

허준은 총 9종의 책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으로 펴낸 「찬도방론맥결집성」 · 한글 의서인 「언해태산집요」 · 「언해구급방」 · 「언해두창집요」

선조의 명으로 펴낸 「동의보감」그리고 전염병 전문서로 펴낸 「신찬벽온방」과 「벽역신방」이 있다

그 외에 역대 어의들의 인적사항을  정리한 「내의선생안」 · 왕실의 의약제조법을 수록한 「언해납약증치방」이 있다

동의보감과 비교적 관계가 먼 「찬도방론맥결집성」은 허준의 젊은 시절에 쓴 의서이며 성홍열을 정확하게 관찰한 「벽역신방」은 제일 나중에 펴낸 책이다

 

 

 

 

찬도방론맥결집성 / (조선 1612년

허준이 선조의 명에의해 중국의 〈찬도맥결〉을 교정하여 펴낸 의서이다

 

 

 

 

언해태산집요 / 조선 1608년

허준이 왕명을 받아 편찬한 산부인과 전문 의서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인증서 / 2009년 · 복제본

동의보감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인증서는 문화재청에서 보관하고 있다

 

 

 

 

동의보감 초간본 / 조선 17세기

훈련도감 목활자본으로, 잡병편의 일부이다

 

 

 

 

언해두창집요 / 조선 1608년

허준이 저술하고 내의원에서 간행한 두창에 관한 전문의서이다

*

내의선생안 / 조선 19세기

내의원에서 근무하며 어약을 관장했던 의원들의 인적사항을 기록한 명부이다

서문에 '만력 33년(1605) 을사년 3월 허준이 적다'라고 적혀 있다

*

벽역신방 / 조선 1613년

허준이 지은 당독역이라 불리는 전염병에 대한 치료약방문을 모아 엮은 책이다

 

 

 

 

의서 연대표

 

 

 

 

향약집성방 / 조선 15세기

유호통 · 노중례 · 박윤덕 등이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약재와 한방에 관하여 쓴 책이다

 

 

 

 

사의경험방 / 조선 17세기

조선 중기 · 효종 · 현종 연간에 이석간 · 채득기 · 박렴 · 허임 4명의 명의들의 경험 처방과 유행한 유명 처방을 모아 간행한 의방서이다

 

 

 

 

증주태평혜민화제국방 / 조선 15세기

중국 송나라 진사문이 펴낸 의서를 조선 초기에 간행한 책이다

 

 

 

 

의학입문 / 조선 19세기

중국 명대 이천이 지은 종합 의서로 우리나라에서 간행한 의학 교과서이다

 

 

 

 

마경언해 / 조선 1682년

조선 인조 때 이서가 엮은 수의학에 관한 전문의서이다

말에 관한 여러가지 병과 치료법을 그림과 함께 설명하고 있다

 

 

 

 

식간구황촬요 / 1660년

1660년에 신속이 기근 구제를 목적으로 엮은 책이다

 

 

 

 

방약합편 / 조선 19세기

조선 고종 때 황도연의 저서 〈의방활투〉와 〈손익본초〉를 그의 아들 황필수가 보완하여 펴낸 의서이다

 

 

 

 

소아병원록 / 조선 후기

어린이의 각종 질병과 치료법을 적은 한글 의서로 필사본이다

 

 

 

 

의림수세보원 / 조선 19세기

조선 중기의 의서를 후대에 필사본으로 쓴 책이다

 

 

 

 

쥬방문조과법 / 1923년 경

약술 담그는 법과 약과 만드는 방법에 대하여 순 한글로 쓴 책이다

 

 

 

 

신찬벽온방 / 보물 제1087-2호 · 구급간이방 / 보물 제1236-2호

 

 

 

 

신찬벽온방 / 보물 제1087-2호

온역, 즉 전염병 치료에 관한 전문의서로 어의 허준이 왕명에 의해 광해군 5년(1613)에 편찬한 책이다

전염병이 발생하는 원인과 증상 · 처방과 전염병의 특징과 종류에 대하여 기술하였다

특히 내사기와 내사안이 있으며, 내의원 활자본이라 그 가치가 매우 높다

허준이 지었으며, 이정구의 서문과 책 말미에 간기가 있다

 

 

 

 

구급간이방 / 보물 제1236-2호

1489년(성종 20)에 윤호 등이 왕명에 따라 저술한 구급의서로 목판본이다

우리나라 구급방서 중 가장 완비된 희귀 의서로 약초와 관련된 용어 · 병명 · 약방문 등을 한글로 기록함으로써

의학뿐만 아니라 국어 음운 연구에도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길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허준박물관 약초약제실  (0) 2019.02.22
허준박물관 동의보감실  (0) 2019.02.22
허준박물관~궁산 역사 · 문화 둘레길  (0) 2019.02.22
겸재 정선미술관  (0) 2019.02.16
서울식물원 마곡문화관  (0) 2019.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