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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허준박물관 내의원과 한의원실

서울 강서구에서 건립한 허준박물관은 허준 선생의 출생 · 〈동의보감(국보 제319호)〉집필 · 돌아가신 곳으로 알려진 가양동에 세워진 공립박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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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의원은 궁궐내에 있는 병원으로 의과를 통해 뽑힌 의관들이 의학을 연구하고, 왕과 왕실 가족을 진료하는 곳이다
한의원은 일반 백성들이 생활하면서 가까이 이용할 수 있었던 민간의료기관이다

 

 

내의원과 한의원실

 

 

 

 

조선시대 한의원 개관

조선시대의 한의원은 '약방'이라 불리면서 일반 백성들의 진료를 담당했는데

국가에서 백성들을 위해 설치한 혜민서 · 활인서 등에서 충분한 혜택을 받지못하였기 때문에 생겨나게 되었다

 

 

 

 

경기감영도 / 보물 제1394호

이 그림은 인왕산의 연봉들 아래로 넓게 펼쳐진 서대문 밖 경기감영 일대의 풍경을 그린 경기감영도의 일부분이다

거리의 인물 표현이나 건물들이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고

감영의 본관 건물이 보이는데 건물 정면에는 임금의 덕을 베풀고 백성을 교화함을 뜻하는 선화당(宣化堂)이라는 편액을 달았다

특히 이 그림에서 주목할 부분은 지금의 서대문 사거리 부근에서 보이는 건물인데

이 건물은 벽에 흰 칠을 하고 신설약국(新設藥局) · 만병회춘(萬病回春)의 상호를 써넣은 약방들이다

그림에 있듯이 조선시대에는 일반 백성들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곳에 의료기관을 설치하여 서민들이 쉽게 질병을 치료할 수 있도록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진료 · 약 달이는 모형

 

 

 

 

의관과 의녀

의관은 과거시험 중 잡과시험을 통해 선발되었다

의과의 시험과목은 모두 11과목이었고 합격자 중 1등은 종 8품 · 2등은 정 9품 · 3등은 종 9품의 관직이 주어졌다

시험에 응시할 의원에 대한 교육은 주로 전의감에서 이루어졌다

의녀제도는 조선 태종 6년(14069)에 허도의 건의로 실시되었다

양반 부녀자들이 병이 생겨도 남자 의원에게 진료받기를 부끄러워하여 치료도 받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의녀는 남색치마에 연두색 저고리를 입었으며 옷고름에는 침통을 찼다

또한 노란색 치마를 덧입었으며, 머리에는 흑단 가리마를 사용하였다

성적에 따라 내의 · 간병의 · 초학의 3등급으로 구분하였는데

특히 간병의 중 뛰어난 능력을 보인 2명을 선택하여 내의녀(內醫女)로 임명하고 왕비나 대비 등 왕실 여성의 질병 치료에 종사하게 하였다

 

 

 

 

옥당루상고(玉堂樓上庫)

옥당 오른편에 있는 다락집이다

등영루(登瀛洲)로 불리기도 했으며, 서적 관련물을 보관하던 곳이다

 

 

 

 

왕실의 의료기관

왕실에는 내의원 · 전의감 · 혜민서 등의 의료기구가 있었는데 이를 삼의사라고 하여 조선시대 왕실 의료기구의 근간으로 삼았다

내의원에는 필요에 따라 시약청 · 의약청 · 산실청 등을 개설하기도 하였다

시약청은 국왕이 병이 들었을 때 설치하는 임시기구로서 국왕이 복용할 약물을 담당하였다

그 구성은 내의원의 의관들과 그 당시 유명했던 유의들로 구성되었다

의약청은 치료제의 적부를 상의하는 책임을 맡은 기관이었다 그리고 산실청은 왕자나 왕손들이 탄생할 때 임시로 설치한 기관이었다

 

 

 

 

옥당(玉堂)

홍문관의 다른 이름으로 궁안의 서적을 관리하고 임금의 고문 역할과 교지를 작성하던 곳이다

 

 

 

 

동궐도 / 국보 제249호

동궐도는 본궁인 경복궁 동쪽에 있는 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린 것으로

크기 · 구도 · 화풍이 거의 동일한 두 작품이 현재 고려대학교박물관과 동아대학교박물관에 1점씩 보관되어 있다

이 작품은 고려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된 것으로, 그 중 내의원 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내의원의 위치는 인정전 서쪽 궐내각사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임금이 자주 드나들었다 한다

평면도인 동궐도형에도 내의원이 있는데, 특이한 점은 동궐도와 동궐도형에 나타나 있는 내의원 규모가 서로 조금씩 다르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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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로 있는 모형은 영의사부속채다

영의사는 나라의 장례식과 관련된 물품을 보관하던 곳인데 그 곳에 부속되어 있던 건물이 영의사부속채이다

 

 

 

 

약방

내의원 관청이 있던 건물로 왕과 왕실의 진료를 담당하던 곳이다

 

 

 

 

내의원의 생활상

내의원은 조선 초기에는 내약방이라고 불렸다가 의료기관의 성격이 되면서 내의원으로 이름을 고치게 되었다

주된 업무는 국왕과 왕실 가족의 건강을 보살피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도제조 · 제조 · 부제조 등을 각 1명씩 두었는데, 부제조는 승지가 겸임하였다

정(정3품) · 첨정(종4품) · 판관(종5품) · 주부(종6품) 등을 1명씩 두었고 직장(종7품) 3명 · 봉사(종8품) 2명 · 부봉사(정9품) 2명 · 참봉(종9품) 1명을 두었다

그리고 효종 때부터는 침의와 의녀 22명을 두었다

 

 

 

 

내의원과 한의원실

 

 

 

 

양평군 허준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