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기 대표적인 선승이자 왕사 · 국사를 지낸 태고 보우(太古 普愚 1301~1382)가 창건한 사찰이다
보우는 중흥사를 중창하고 그 동편에 암자를 지어 5년간 머물렀는데, 이 암자가 바로 지금의 태고사다
고려 멸망 이후 거의 폐허가 되었으나, 북한산성 축조와 함께 승병이 주둔하는 승영사찰로 1713년에 중창되었다
현재 태고사에는 지정문화재로 보우의 행적을 기록한 원증국사탑비(보물 제611호)와
그의 사리탑인 원증국사탑(보물 제749호)이 있으며 비지정문화재로 조선 후기 양식의 사리탑이 다수 남아 있다
대웅전 · 원증국사탑비각
계단을 오르면 있다
대웅전 · 원증국사탑비각
대웅전
왼쪽 계단이 원증국사탑으로 오르는 계단이다
산신각(山神閣)
원증국사탑으로 오르는 계단 중간에 있다
고양 태고사 원증국사탑(보물 제749호)
고려 후기 승려인 원증국사 보우의 사리탑이다
보우의 법호는 태고(太古)이며, 왕사 · 국사를 거쳐 82세로 입적하자 이곳에 사리탑을 세우고 탑 이름을 보월승공(寶月昇空)이라 하여 영골(靈骨)을 모셨다
사리는 이곳만이 아니라 양산사 · 사나사 · 청송사 등에 나누어 봉안하였다
복제 탑이 앞에 있다
고양 태고사 원증국사탑(보물 제749호)
원증국사탑의 형태는 3단으로 이루어진 기단 위로 탑신을 올린 후 독특한 모습의 머리장식을 얹었다
원형의 탑신 몸돌은 위쪽이 좁아져서 지붕돌 밑면에 들어맞게 되어있다
고양 태고사 원증국사탑(보물 제749호)
뒤쪽에서 보니 지붕돌이 깨어져 있다
태고 보우(太古 普愚 1301~1382) 영정
보련당(寶蓮堂) 승탑
보련당으로 알려진 승려 응향의 승탑이다
응향에 대한 기록은 조선 후기의 문신 이옥이 지은「중흥유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옥은 "응향이 평소 계율을 엄격하게 지켰으며, 1792년(정조 16)에 입적한 후 이곳에 봉했다"고 적고 있다
기단석 한 변의 길이는 68cm · 승탑의 높이는 136cm · 탑신의 최대 직경은 70c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