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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오룡골~수기~은행정~영사정~전호리

앞으로 한강이 흐른다

자연마을로는 인향 · 은행정 · 영사정 · 수기 등이 있다

인향은 양쪽에 둥근 산이 있어 모양이 도장 같다 하여 인양산이라고 하였으며, 나중에 인(印) 자를 인(仁) 자로 고쳐서 칭하였다고 한다

은행정은 예전 은행나무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영사정은 조선 제22대 왕 정조가 경치가 아름다워 영원히 생각이 나겠다 하며 영사정이라는 사호를 내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수기는 고려시대에 한 장수가 마을 터를 정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며

그 후 살기 좋은 곳이며 오래 장수한다는 마을로 알려져 수(帥)를 수(壽)로 고쳐서 칭하였다고 한다

 

 

남원윤씨오룡골유적(김포시 향토유적 제11호) 안내판

고촌버스정류장이 시점이다

전철 개화역에서 16번 버스로 왔다

 

 

 

 

등용문(登龍門)

남원윤씨 12세 증(贈) 참판(叅判) 윤민신(1537~1610)은 다섯 아들을 손수 훈육하여 4년 지간에 모두 문과에 등과시켰고

다섯 아들은 모두 공신에 책록됨으로써 효제충신(孝悌忠信)을 실천하고 조선시대 가학(家學)의 귀감이 되었다

일문(一門) 오자등과(五子登科)와 오자오공신(五子五功臣)은 려 · 조(麗 · 朝)를 통하여 희귀하고 훌륭한 일로써

현대사회에서도 교훈적 의미가 크므로 김포시에서 육부자(六父子) 묘역과 가학관(家學館) 터를「김포시향토유적 제11호」로 지정하였다

오룡(五龍)골이란 이름은 등과한 오형제를 용(龍)에 비유하여 생긴 이름이라 전한다

 

 

 

 

오룡재(五龍齋)

영사정의 윤은(尹訔)의 증손 증 참판 윤민신의 육부자(六父子)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용호당(龍湖堂)

용호당과 오룡재 사이에 분수가 나오는 작은 연못이 있다

「남원윤씨참판공오자등과파종중」 안내판이 붙어있다

 

 

 

 

오룡재사적비(五龍齋事蹟碑)

 

 

 

 

윤은(尹訔)의 증손 증 참판 윤민신의 육부자(六父子) 묘

오룡재 뒷산이다

 

 

 

 

토지지신(土地之神)

윤민신의 묘 윗쪽으로 있다

 

 

 

 

수기마을로 가는 길이다

 

 

 

 

고촌읍사무소

고촌근린공원을 지난 곳이다

 

 

 

 

왼쪽 인향 · 오른쪽 수기마을 안내판

 

 

 

 

수기마을 · 인향

수기마을로 들어와 인향마을 방향을 보니 인향힐스테이트아파트 벽면에 「수기마을」이라 써있다

마을 주민에게 알아보니 이 부근이 수기마을이 있던 곳이라 한다

*

상전벽해의 느낌이다

 

 

 

 

인향마을 · 수기마을

모두 아파트 단지로 변하는 것 같다. 조금 늦게 찾아온 느낌이다

이왕 왔으니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본다

 

 

 

 

계양산

가지가 찢어진 나무가 있다

생명이 있는 나무를 어떻게 저리 처참하게 찢어졌는지?

 

 

 

 

투가리마을

모든 주민들이 떠나자 식당도 문을 닫은 듯하다

 

 

 

 

계양산

공사현장 너머로 다시 보인다

 

 

 

 

신곡지구 저류지

 

 

 

 

김포톨게이트

대보천 너머에 있다

 

 

 

 

대보천 보행자다리

 

 

 

 

김구원 선생 기력두부 본점

 

 

 

 

고촌119안전센터

 

 

 

 

대보천(서부간선수로)

 

 

 

 

신곡6리마을회관 · 은행정경로당

 

 

 

 

고촌 세례자 요한 성당

 

 

 

 

고(故) 송해붕(세례자 요한 · 1950. 10. 11선종) 묘

1926년 경기도 부천구 계양면에서 2남 4녀 중 장남으로 모태 신앙을 갖고 태어났다

계산초등학교 · 인천공립직업학교(지금의 인천기계공고)를 거쳐 1944년 4월 덕원신학교에 편입하여 신학생 생활을 하던 중

1945년 해방이 되자 사제가 되기 위한 학업과정을 중도에 포기하고 고촌 은행정마을에 들어와 야학을 운영하며 전교활동을 한다

이후 몇 년 간 은행정과 누산리공소를 오가며 펼친 전교활동은 가히 성인 수준이 아니고는 이룰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1950년 6 · 25전쟁 당시 천주교가 동네에 전파되는 데 반감을 가진 주민의 밀고로 청년 송해붕은 빨갱이로 몰려 총살형을 당하고 만다

그의 죽음은 신앙 전파 때문이었기에 그의 죽음은 순교였다

나중에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그의 유해를 발굴할 수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과 묻혔지만 그의 십자가와 새까만 주단과 묵주가 썩지 않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한다

*

성당 옆 야외성전 앞에 있다

송해붕 일대기 안내자료를 성당 사무실에서 무료 배부한다

 

 

 

 

은행정이 있던 곳

성당에서 알아보니 은행나무는 농사에 방해 된다고 없애버렸고 정자는 집을 짓기 위해 부셨다고 한다

암튼 이 부근이 은행정이 있던 곳이다

*

은행나무는 농사에 방해된다고 없앴지만 지금 나는 묵밭에 서있다

 

 

 

 

김포한강로 토끼굴을 지나 영사정으로 가는 고갯길이다

 

 

 

 

천하대장군 · 지하여장군 장승

은행정과 영사정의 경계로 세웠을까?

은행정 마을에서 고개를 넘자 왼쪽에 있다

 

 

 

 

영사전(永思殿)

남원 윤씨 판관공(휘 은)파종회(南原尹氏判官公(諱訔)派宗會) 건물이다

남원 윤씨 9세손 증(贈) 좌승지 윤은(尹訔)과 그 직계 후손들의 묘소가 있는 곳이다

 

 

 

 

남원 윤씨 9세손

증(贈) 좌승지 윤은(尹訔)과 그 직계 후손들의 묘소가 있다

 

 

 

 

공덕비

이조판서 · 홍문관 예문관 대제학 문헌공 윤 諱 행임

조선 제22대 정조대왕을 최측근에서 19년 간 보좌하면서 문화진흥과 개혁을 추진하시다가

대왕 승하하신 후 1년만에 척신의 모함으로 비명에 간 분이 계시니 바로 이 선영에 안장된 윤 행임 공이시다

 

 

 

 

윤은(尹訔) 묘비

증 통정대부 승정원좌승지 겸 경연참찬관 행통훈대부군자감판관옥과현감 윤공 휘은지묘 증 숙부인 배천 조씨 쌍봉

(贈 通政大夫 承政院左承旨 兼 經筵參贊官 行通訓大夫軍資監判官玉果縣監 尹公 諱訔之墓 贈 淑夫人 白川 趙氏 䉶封)

 

 

 

 

무명무묘선조위령비(無名無墓先祖慰靈碑)

 

 

 

 

증 승정원 좌승지 겸 경연참찬관 행통훈대부 군자감 판관 옥과 현감 남원 윤공 휘 은 배 증 숙부인 배천 조씨 묘

(贈 承政院 左承旨 兼 經筵參贊官 行通訓大夫 軍資監 判官 玉果 縣監 南原 尹公 諱 訔 配 贈 淑夫人 白川 趙氏 墓)

 

 

 

 

증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 윤자신 배 증 정경부인 파평 윤씨 묘

(贈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 領議政 尹自新 配 贈 貞敬夫人 坡平 尹氏 墓)

 

 

 

 

화중원(和仲園)

임진왜란 · 병자호란 등의 충신들과  항일지사의 빗돌이 모여 있다

*

이곳에서 이동식을 했다

 

 

 

 

병란 충신 삼학사 윤집(丙亂 忠臣 三學士 尹集 · 판관공 6대손 1606. 4. 10 생 1637. 4. 19 졸)

병자(1636)년에 청나라가 침공하자 인조왕이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여 공은 북성독전어사가 되어 항전 중

주화파의 주장대로 항복을 하자 삼학사로 추앙받는 홍익한 · 오달제 공과 함께 심양에 끌려가 끝내 굴복하지 않고 순국하셨다

나라에서 충정(忠貞)이란 시호를 내렸으며, 영의정에 증직하고, 정려를 세우도록 하였으며

사당에 신주를 모셔 영구히 제사를 지내도록 부조묘(不祧廟)를 명했다

*

8개의 빗돌 중 하나다

 

 

 

 

남원윤씨 영사정 묘역 안내판

16세기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남원 윤씨의 묘역이다

1529년 윤은 공의 묘가 현 위치에 자리를 잡으면서 총 19개소의 묘가 조성되었으며 현재까지 종중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묘역에 설치된 묘표 · 묘갈 · 상석 · 혼유석 · 향로석 · 문인석 · 망주석 · 석양 등 옛 석물 55기는 16세기 이후 각 시대의 양식적 변화를 보여주며

김노 · 한호 · 송시열 · 윤덕준 · 윤봉오 · 황운조 등의 글씨가 각종 석물에 새겨져 있다

조선 정조가 장릉으로 행차할 때 "저 멀리 경치 좋은 곳에 있는 묘소는 누구의 묘인가"라고 묻자

"남원 윤씨 판관공 은의 산소입니다"라고 하니

"경치가 아름다워 영원히 생각이 나겠다"고 하며 「영사정」이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다는 유래가 전해지고 있다

 

 

 

 

한국농어촌공사 신곡양배수장

 

 

 

 

영사정(永思亭) 터 빗돌

강 기슭에는 소나무 숲이 우거지고 200미터 떨어진 곳에 작은 축뿌리 섬이 있어 한강 하류쪽에서는 으뜸가는 절경을 이룬 곳이다

이조판서를 지낸 윤행임(尹行恁)이 정조로부터 정자의 이름을 하사 받았던 영사정 정자가 있었던 곳이며, 남원 윤씨 가문의 묘역이 가까이에 있다

*

이 빗돌이 있는 곳을 몰라 한강 철책 앞에 있는 빈 공터를 찍고 돌아서 가는데

군인 셋이 뛰어오더니 철책 사진은 왜 찍었냐고 묻길래, 영사정 터 사진을 만들라고 했다 하니

철책 사진은 지워달라며 이곳으로 안내해 주었다

*

이 빗돌 있는 곳을 알려주려고 누군가가 보낸 군인인 듯하다

 

 

 

 

백마교

일반인 출입금지인 백마도로 들어가는 다리다

 

 

 

 

평화누리 자전거길(영사정) 안내판

 

 

 

 

영사대교

이제 전호리로 향한다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김포대교

아래로 길이 있고 나물을 캐는 부부도 보인다

 

 

 

 

굴포천과 한강이 만나는 지점이다

 

 

 

 

평화누리자전거길 안내도

 

 

 

 

전호야구장

이곳에서 강변으로 나간다

 

 

 

 

강변길로 내려서니 한적하다

 

 

 

 

갈대와 버드나무가 작은 숲을 이루고 있다

 

 

 

 

행주산성이 있는 덕양산이 보인다

 

 

 

 

아치도 만들어 놓았다

 

 

 

 

북한산

한강 너머로 보인다. 강가 가까이 들어가 본다

 

 

 

 

일산

김포대교 너머로 보인다

 

 

 

 

북한산

행신 · 능곡아파트단지 뒤에 있다

 

 

 

 

행신 · 능곡아파트단지

 

 

 

 

북한산

 

 

 

 

덕양산

신행주대교 뒤에 있다

 

 

 

 

북한산

행신 · 능곡아파트단지 뒤에 있다

 

 

 

 

오른쪽 전호리마을 · 왼쪽 아라뱃길 한강갑문으로 가는 길이다

 

 

 

 

덕양산 · 신행주대교

 

 

 

 

아라뱃길 한강 갑문

 

 

 

 

덕양산

아라뱃길이 한강과 만나는 지점이다

 

 

 

 

전호리버스정류장

개화역으로 가는 16번 버스가 있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12.4km, 소요시간 5시간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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