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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인천 중구 생활사전시관 2층

인천 중구 생활사전시관은

인천 중구가 출범한 1968년을 기준으로 1960~70년대 인천 중구와 관련된 생활사를 볼 수 있는 전시관이다

전시관은 연면적 761.84㎡로 지하 1층 · 지상 2층 규모이며

지하 1층에는 중구 출범 후부터 현재까지의 중구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연표가 전시되어 있다

지상 1층에는 1960~70년대 중구의 의 · 식 · 주 문화를 볼 수 있으며 특색있는 음식과 문화상품을 판매하는 전문판매점이 있다

2층에는 백항아리선술집 · 극장 · 다방과 같은 당시의 문화생활을 였볼 수 있다

 

 

극장

서민의 휴식처이자 주요한 유흥 무대인 영화관은 거의가 중구와 동구에 집결하다시피 했었다

인천의 대표적인 영화관으로 100년 역사를 가진 애관극장을 위시해 동방극장 · 키네마극장 · 인영극장 등이 있었다

1980년대 컬러TV시대에 들면서 경영난에 처해 동방극장, 키네마극장이 문을 닫았고

애관극장만이 시대에 맞춰 복합상영관으로 변신, 아직도 영사기를 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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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다

 

 

 

 

인영극장

동인천 역전의 명물이었는데 일찍이 폐관하고 은행 등이 입주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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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극장

규모는 작았으나 외화 개봉관으로 유명한 극장이었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 첫 작품인 자이언트 · 007위기일발 · 빅컨츄리 같은 영화를 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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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관

1970년대에 들면서 폐관한 듯한데 현재는 인성여고 체육관으로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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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극장

싸리재 길에 생겼던 작은 영화관이었는데 오래지 않아 문을 닫았다

 

 

 

 

서민주점

서민들이 하루의 피로를 풀면서 담소하는 자리가 주점일 것이다

이 시절 중구 신포동 일대에 있었던 서민주점은 대표적으로 염염집 · 오술해 · 대전집 · 충남집 · 돼지족과 스지탕으로 유명한 다복집

전을 잘 부치던 마냥집 · 약주 본산 신포주점 · 대동강 · 백항아리집 · 밴댕이 회를 주로 팔던 북성동 수원집 등등이었다

오부자집 옆 옛 농협자리에서 물텀벙이를 끊이던 영화주점은 1970년대 중후반 무렵 문을 닫았고

신포시장 골목 미미집 같은 곳은 1980년대 초에 생겼다가 1990년대에 신포동을 떠났다

극장식 주점인 국일관과 대형주점인 화백 · 로젠켈러 등도 있었다

이 중에서 현재도 영업을 하고 있는 주점은 주인이 바뀐 신포주점 · 마냥집

새로 창업한 염염집과 2대에 걸쳐 이어오는 대전집, 다복집 그리고 전동의 삼치구이집인 인하의 집 등이다

 

 

 

 

옛 염염집

서민층으로는 다소 값이 고가였던 곳이다

복싱선수 서강일의 장모로 알려진 이여사가 경영하던 신포동 유명 주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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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우물집

용동 큰우물 바로 옆에서 막걸리 안주로 노가리를 굽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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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집

청관 아래쪽 길에 자리 잡았었다. 근래에 문을 닫았는데 밴댕이회로 유명했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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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주점

신포동 청실홍실 우동집 인근 옛 농협이 들어있던 자리에 있었다

물텀벙이가 싸구려로 천대받던 1960년대 1970년대 중반까지 구루마 · 지게꾼 행상 등을 상대로 막걸리를 내고 물텀벙이찌개를 끊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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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술해

대표적인 서민 술집이었는데 종반 무렵부터는 부대고기를 주안주로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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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강

평양 출신 김 선생의 풍채 좋은 부인이 경영하던 신포시장 골목 안 대포집이다

꿩고기 · 토끼고기 같은 안주도 간혹 맛볼 수 있었다

 

 

 

 

백항아리집

지역원로는 "그 때 백항아리집으로 말하면 단순한 목로주점으로서 몇 평 되지 않는 구조인 까닭에

따로 술과 안주를 차려 놓는 탁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벽쪽으로 돌아가면서 선반이 걸려 있고

대개는 그 선반에 안주 한 두 접시와 술주전자가 놓여 각자 마실 수 있는 만큼 청해서 마시는 아주 싼 술집으로

신포동 일대를 배회하는 많은 술꾼들이 드나들던 집이었다"

문학평론가 김양수의 회상이다

 

 

 

 

백항아리집

의자 없이 서서 마시는 서민주점은 1990년대에 들어서 문을 닫았다

 

 

 

 

은성다방

도시의 응접실 다방은 이제는 거의 쇠퇴해 사라지고 없다

특히 중구 신포동 · 용동 · 내동 · 인현동 · 시청이 있던 시절의 관동 · 중앙동에는 한 집 건너 다방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다방이 있었다

생각나는 대로 적어도 은성다방 · 짐다방 · 별다방 · 유토피아다방 · 신포다방 · 르네상스다방 · 흙다방 · 태양다방

상록수다방 · 우봉다방 · 삼미다방 · 소월다방 · 성지다방 · 미담다방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현재 비교적 옛 시절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채 영업을 하고 있는 다방은 신포동의 국제다방과 경동의 학다방 정도이다

 

 

 

 

은성다방 내부

그 무렵, 도심의 번화가였다고도 할 수 있는 중앙동 대로변의 한 모퉁이 일식집 2층에 있었다

한때 문화 예술인들의 휴식처이자 거점이었으며, 또한 예술활동의 숨통을 터주는 장소로도 활용되어져 왔다

무엇보다도 마땅한 전시 공간을 달리 구할 수 없던 당시에 화가들의 작품 발표가 여기서 치러지는 일이 많았다

혹은 시낭송이나 시화전 장소로, 혹은 창작집의 기념출판회나 각종 문화 예술 관계 집회 모임의 장으로 크게 배려되었던

황량한 시대의 문화 소통의 공간이자 카타르시스의 배출구이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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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 잔으로 공허한 시간을 때우는 실업자 예술인들이 매일같이 본능적으로 찾아들어 환담을 교환하는 '만남의 터'였다

무엇엔가의 기다림 같은 것이 항상 짓누르는 무거운 분위기 가운데서

무위에 주눅 든 듯한 예술인들이 초현실적인 자세로 앉아 있는가 하면 제법 활기 있게 움직이는 봉급생활자 무리도 끼어든다

늘 틀어놓는 레코드판은 그런대로 격조 있는 클래식이다

삐걱거리는 목조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맞아주는 그 집 주인 속칭 마담 김윤희

김윤희에 대해 미술평론가 김인환은 "애교라고는 거의 없어 보이는 여성이지만 손님에게 긴장감을 조성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한다

이 다방은 1990년대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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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이곳 은성다방에선 커피를 판매한다

 

 

 

 

짐다방

신포동 문화의 거리 중소기업은행 건너편 등산복 가게 2층에 자리 잡았던 클래식 음악 전문 다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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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방

동인천 대한서림 건물에 있던 다방으로 1960년대 중후반 화려한 실내장식과 음악다방으로 이름을 떨치던 다방이었다

 

 

 

 

기념품숍

인천개항은 소외계층의 사회적, 경제적 자립과 사회서비스의 실현을 위하여 설립된 사회적 기업이다

인천개항은 취업취약계층의 일자리 창출 · 장애인 전문 서비스 직종 개발 및 인천 지역의 관광 자원을 활성화하고 홍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The First in Korea

1883년 인천 제물포의 개항은 이미 개항된 부산이나 원산보다 항구로서의 입지 조건이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역할과 비중을 달리했다

서울로 진입하는 최단 거리라는 지리적 입지로 인해 신문물이 인천을 통해 들어올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적했던 제물포는 서양과 일본의 근대 문물이 유입됨으로써 '국제도시 인천'으로 변모되는 거대한 실험이 이루어졌다

이방인들의 안식처가 생겨나고, 그들의 상공업시설과 종교 · 교육 · 체육 그리고 문화시설들도 빠르게 설립되어 갔으며

그들을 위한 여러 시설들이 만들어지면서 인천은 근대사회로 진입하는 최일선이 되었다

최초의 서양상업회사가 생겨나고 유일한 각국조계가 설정되었으며 서양식 건축도 한국 최초가 되었다

나아가 최초의 호텔 · 공원 · 통신 · 철도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최고 최고'가 탄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홍예문 · 제물포구락부 · 아트플랫폼 등이 있다

 

 

 

 

답동성당 · 대불호텔 · 인천기상대

 

 

 

 

조탕 본관

 

 

 

 

기념엽서들

 

 

 

 

오래된 앨범들

 

 

 

 

인천 중구 생활사전시관

전시관을 둘러보고 나와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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