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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인천시립박물관 근대가 찍어 낸 인천풍경

설 연휴에 가까운 걷기로 〈근대가 찍어 낸 인천풍경전〉이 열리는 인천시립박물관을 찾았다

내가 간직한 인천 이미지에 어떤 덧칠을 해줄까?

 

 

인천시립박물관 2층 기획전시실 / 〈근대가 찍어 낸 인천 풍경〉 특별전

개항 이후에 생산된 이미지가 우리에게 익숙한 장면들로 자리 잡아가는 모습을 살피는 전시이다

인쇄 매체는 소통의 도구이자 매개체가 되어 근대의 인천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대량 생산과 복제라는 장점을 가진 인쇄 이미지는 신기하고 새로운 매체로 등장하였고 빠른 속도로 일상생활에 파고들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근대에 생산된 인쇄 이미지가 그 시대를 어떻게 표현하고 무엇을 추구했는지를 살펴보는 한편

근대 문물을 처음 받아들였던 도시 인천이 어떤 이미지로 표출되었는지를 알아보고자 기획하였다

나아가 인쇄 이미지가 근대의 질서를 어떻게 내면화하고 길들여 갔는지를 파악함으로서

근대를 바라보는 인식의 스펙트럼을 확장하는 계기를 마련해 보았다

 

 

 

 

1부 낯설게 다가선 근대 이미지

사진술 · 인쇄술 등 새로운 시각 매체에 의해 등장한 낯선 이미지 속에는 근대의 시각 체제가 작동하고 있었다

투시법 · 소실점 등 근대적 기법으로 제작된 이미지는 전통적 시각 체제에 익숙해 있던 사람에게

혼란을 가져왔으나 이내 일상 속으로 파고 들어 그들의 인식을 변화시켜 갔다

 

 

 

 

전시관 오른쪽 회랑

근대는 시간과 공간을 분할하고 수치화하였다

계산과 측정이 가능한 균일한 시 · 공간이 만들어지면서 전통과는 다른 장면이 늘어갔고

카메라 같은 새로운 미디어가 주는 신선한 시각적 경험과 이를 인쇄한 이미지를 통해 사람들은 근대를 체득해 갔다

근대적 장면은 곧 우리의 눈에 점차 익숙해갔다

인천의 풍경은 달라졌다

규칙적으로 일정하게 반복되는 요소 · 곡선보다는 직선화된 모습으로 소실점을 향해 직선으로 뻗어 나가는 풍경은 근대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도시로서의 인천 풍경을 만들어 나가는 데에는 전봇대가 늘어선 신작로 · 가로수가 있는 거리 · 기차 선로 등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반복되는 요소들이 있었다

소실점에 위치에 놓인 인천은 대상화되고 변모되어 갔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는 대량으로 복제되고, 유포되어 곳곳에서 활용되었다

근대적 시각 체제에 따라 변모된 근대 도시의 모습은 인쇄물의 형태로 대중들에게 확산되었다

 

 

 

 

신문 인쇄용 기자재

인천일보사에서 사용하였던 납활자와 저장통 · 롤러 등 신문용 기자재이다

 

 

 

 

개항 초기 인천(1894 · 28.7×39.5)

프랑스 잡지 〈L'illustration(릴뤼스트라시옹)〉에 수록된 삽화로 개항 초기 인천의 모습을 그렸다

 

 

 

 

스테레오 뷰 · 스테레오 뷰어(근대)

2장의 입체사진이나 그림을 사용하여 입체감 있는 시각상을 형성하는 장치로 입체경이라고도 부른다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반의 시기에 크게 유행한 입체경은

수백만 장의 입체사진과 다양한 스테레오 카메라 및 입체경 발매를 통해 대중의 시각을 자극하고 변화시켰다

 

 

 

 

오래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어윤중 사진(1881 · 13.7×18.2)

일본 인쇄국에서 촬영한 어윤중(魚允中 1848~1896)의 사진이다

유길준 · 윤치호 등과 함께 조사사찰단으로 일본에 건너 갔던 시기에 촬영한 사진이다

 

 

 

 

지운영 사진(1880년대|10.7×14.7)

고종 사진을 처음 촬영한 인물로 알려진 지운영의 사진으로 일본에서 찍은 것이다

지운영은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이후, 사진 기자재가 수입되면서 김용원 · 황철 등과 함께 사진관을 개설하며 조선에 사진술을 도입하였다

이들은 화원이나 서화가 출신으로 신문물에 적응하며 미술문화를 이끌었다

 

 

 

 

만석동 장수 노인 사진(1913년)

사진 왼쪽 흰 테에 〈107세 김춘문 만석동리 거주 (대정2년 6월 촬영)〉이라 써있다

사진은 원본에도 잘 안보이지만 두 사람(의자에 안아있는 사람과 그 뒤에 서있는 사람)이다

 

 

 

 

만석동 장수 노인(1913년) / 인천부 부내면 만석동 8통 3호

이춘광 · 개국 416년(서력 1807년) 12월 6일생 105세

처(妻) 박씨 · 개국 436년(서력 1827년) 7월 10일생 85세

 

 

 

 

히구치 사진관 일본인 가족사진(조선 말 · 10.6×16.4)

인천 히구치(樋口)사진관에서 촬영한 가족사진이다

 

 

 

 

이와모토 사진관 사진(일제강점기 · 9.6×14.2)

궁정(宮町 지금의 신생동)에 있던 이와모토(岩本)사진관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나가노 사진관 기념사진(1930년대 · 39×32.5)

인천 사정(寺町 · 답동)에 있던 나가노(長野)사진관에서 촬영한 인천 소재 보통학교 졸업 기념사진이다

 

 

 

 

LANTERN SLIDE

 

 

 

 

유리원판(일제강점기)

모자를 쓴 군인들 사람들 사이로 마차를 타고 사열하는 사람이 보인다

 

 

 

 

조선철도선로약도(1910년대 · 74.86×47)

전국의 철도 노선망이 붉은 색으로 표시되어 있는 축적 150만분의 1 지도이다

 

 

 

 

인천지도(1918 · 58×46.3)

인천부와 부천군 일부의 지도로, 지형의 높이와 수심의 깊이를 등고선으로 표시하였다

근대기에 제작된 지도는 색과 모양 · 기호와 글씨 등 약속된 이미지를 반복시켜 지도의 이해를 높였다

 

 

 

 

제물포각국조계도(복제 · 67.8×37)

1880년대 후반에 제작된 제물포 각국조계도로 중앙의 일본조계를 중심으로 청국조계와 각국조계의 모습이 상세히 그려져 있다

직선으로 뻗은 도로를 따라 잘 구획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당시 개항장이 계획된 근대도시였음을 알려준다

 

 

 

 

신문

인쇄술의 발달에 따라 대량 인쇄된 신문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일정한 정보와 지식을 전달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인천항과 시가지를 조감한 파노라마 사진엽서(일제강점기)

바다에서 인천항 선거와 시가지를 바라보며 촬영한 파노라마 사진엽서이다

사진으로 표현되는 풍경을 최대한 확장시키기 위해 낱장의 사진을 이어붙인 파노라마 사진이 유행하기도 했다

 

 

 

 

인천 조감도(일제강점기 · 15×10.5)

리플렛 형태로 되어 있는 인천 조감도로 인천 주요 관광지를 표시하였다

조감도란 새의 시선에서 도시를 바라보는 느낌으로 그린 그림지도로 1920년대 일본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일본 작가들이 조선의 각 도시를 여행하며 그린 조감도가 남아있다

 

 

 

 

인천사진엽서(일제강점기)

하늘에서 본 인천선거와 인천시가 사진엽서이다

 

 

 

 

인천시가 항공사진(일제강점기 · 22.2×29.1)

어주로엽(魚住露葉) 사진소에서 제작한 인천 풍경 사진첩 가운데 한 장면으로 항공술의 발달로 하늘에서 시가지를 촬영한 항공사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프로젝터 화면

인천 각국공원(지금의 자유공원)에서 월미도를 바라본 풍경이다

그 밖에 하늘에서 본 인천항 등을 보여준다

 

 

 

 

2부 이미지와 다채로운 활동

근대 이미지는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었다

전통적인 사회 질서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에게 계몽의 도구로 사용된 이미지는 근대적 사고방식과 가치를 전달하며 근대인이 되기를 촉구하였다

교육 · 시간관념 · 위생 · 도량형 등 근대적 가치를 각인시키는 데에 이미지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조선의 교육(1928 · 19.8×9.8)

교육안내서나 참고서 등에 등장하는 학생은 모범적으로 묘사되었다

두루마기 혹은 검정 교복에 각진 교모를 쓴 남학생의 모습은 당시 학생의 표본이었다

 

 

 

 

보통학교 조선어 독본(1935 · 22.1×15.3)

교과서에 실린 삽화는 문명개화와 계몽적 요소가 반영되어 있다

삽화에 드러난 신문물과 근대적 삶의 풍속 · 설화도 · 자연과학적 이치 등을 통해 사람들은 근대적 개념을 시각적으로 경험하고 습득해 나갔다

 

 

 

 

동물학습장(일제강점기 · 12.8×18.6)

충남 보령 주산공립국민학교 2학년생 김민기의 공책으로 각종 곤충 및 동물의 해부도와 생태 · 인간과의 관계 등을 색연필과 색펜으로 그렸다

 

 

 

 

소비문화가 발달하면서 이미지는 상품의 가치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어 대중의 시각을 자극하고 유혹하기도 하였다

특히 상품 판매의 핵심적 시각 요소인 상표를 통해 제품과 기업이 갖는 이미지를 소비자에게 각인시키고자 하였다

 

 

 

 

인천상공안내(1935 · 26×19)

인천어상조합에서 발행한 책자로 인천부의 상업과 공업 현황과 함께 각종 관련 광고를 수록하였다

 

 

 

 

인천객주 영업안내엽서(1930년대)

상점들은 스스로를 대변하는 상표를 내걸고 광고부터 상품 · 거래서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서 자신을 드러냈다

회사의 정체성을 함축한 시각 이미지를 끊임없이 노출함으로써 소비자로 하여금 회사 이미지가 각인되도록 해 주었다

 

 

 

 

인천안내(1930년대 · 38×52)

인천 소재 양조장들의 위치와 공장 전경 사진을 알 수 있도록 만든 안내서이다

인천주조조합 · 인천주선주양조업조합에서 제작하였다

 

 

 

 

광고 · 상표

개항 이후 외국 무역상사들이 인천에 지점을 개설하면서 그들이 들여온 새로운 상품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았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상품도 점차 증가하여 사람들은 더 좋은 물건을 선택해서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외국 상품과 국내 상품이 뒤범벅되어 넘쳐나는 상황에서 제조사는 소비자를 유혹하기 위해 상품에 다양한 시각적 장치를 장착했다

 

 

 

 

시간 · 규칙준수 등의 개념을 일깨우는 이미지

시간은 근대를 가름하는 척도이자, 근대인이 지켜야할 중요한 덕목이었다

교통수단 · 공장 · 학교 등을 통해 사람들은 시간관념에 익숙해지며, 근대인이 되어 갔다

 

 

 

 

활명수 광고 달력(근대)

 

 

 

 

저울 · 자기추(일제강점기)

 

 

 

 

미터법 홍보포스터(일제강점기)

 

 

 

 

세창양행광고지(근대)

 

 

 

 

인천상점광고(1907 · 39.5×54.7)

 

 

 

 

성학 청주병(근대) · 조일양조 금강학 술통(근대) · 조선정미주식회사 포대(일제강점기)

 

 

 

 

아지노모토 광고(근대)

 

 

 

 

건위고장환 광고포스터(일제강점기 · 52.2×75.8)

 

 

 

 

인단 상자(근대)

 

 

 

 

전구(근대)

G · E / 마쓰다전기 합작 전구

 

 

 

 

론돈표 석유 법랑 간판(근대) · 텍사코(별표) 석유법랑 간판(근대) / 다이야쇼쥬판매점 법랑 간판(근대) · 조선인삼보명수 법랑 간판(근대)

 

 

 

 

박람회 입체가드 기념품(일제강점기 · 15×10.5×10.5)

이미지는 정치적 수단으로도 활용되었다

국가 상징물이나 민족 이데올로기의 시각적 표현이 국가의 정체성과 민족성을 강조하는가 하면

멀리서 일어나는 전쟁이나 국가의 정책을 눈앞에 가져와 실재인 것처럼 믿게하였다

타자에 의해, 또는 우리 스스로 타자화하여 오리엔탈리즘과 시각을 내재한 이미지로 서로를 구별하는 데 쓰이기도 하였다

 

 

 

 

국가상징물과 민족이데올로기의 시각적 표현

국가 상징물을 시각화하여 다양한 매체에 싣는 것은 국가의 존속과 정체성을 알리는 하나의 방편이 되었다

점차 그 활용 폭이 넓어짐에 따라 교육이나 광고 등 일상에 등장하게 된 국가 상징물은 「애국」의 의미로도 사용되었지만, 때때로 형상만 남아 소비되었다

 

 

 

 

인천항 사정통((寺町 지금의 답동)

 

 

 

 

조선도별현세지도 경기도(1934 · 74.5×54.6)

동아일보사에서 특선으로 내놓은 축적 50만분의 1 컬러지도이다

시각적 흥미를 끄는 그래프와 함께 경기도 현황과 관련된 여러 정보를 실었다

 

 

 

 

제국주의의 미화

이념과 의지를 담아 생산해 낸 이미지 속에는 특정한 의도가 함축되어 있었다

일본 제국주의가 만든 이미지 역시 그러했다

일본은 수많은 전쟁을 치루는 자신과 그런 상황을 미화하고 독자들로 하여금 의식을 고취시키는 이미지를 무수히 쏟아냈다

그러한 이미지 한 켠에는 일본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문이나 일본 황실의 표상인 국화문 · 일본 문화와 군대를 상징하는 벚꽃

전투에서의 승리와 무력 · 용맹함을 의미하는 잠자리와 별 ·  ·  칼 등의 그림이 적극적으로 삽입되고 있었다

 

 

 

 

일청교전록(日淸交戰錄 · 1894 · 14.8×22.1)

일본 도쿄 춘양당에서 발행한 정기간행물로 표지 윗 부분에 잠자리가 용을 누르고 있는 그림이 있다

승리를 의미하는 잠자리는 일본의 병장기에 많이 쓰였고, 용은 청의 황제를 나타낸다

가운데 제호를 기준으로 오른쪽에는 욱일승천기 · 총검 ·  · 군모 등이 놓여 있고 왼쪽에는 청나라 깃발과 창 · 도끼 등의 무기들이 그려져 있다

 

 

 

 

전쟁 사진화보(1894~1895 · 15×22.1)

청일전쟁 당시 춘양당에서 발행한 화보집이다. 표지 중앙으로 제목을 적고 그 좌우 상단에 훈장을 그려 넣었다

훈장 아래에는 북과 나팔 · 청군의 모자 등이 함께 그려져 있다. 왼편의 태극기처럼 보이는 것은 청군의 군영기였던 팔괘기로 보인다

 

 

 

 

한국사진첩(1905 · 17.7×25)

박문관에서 발행한 러일전쟁 기념판 사진화보 25권이다

욱일승천기를 배경으로 흰 두루마기를 두루고 갓을 쓴 조선 선비가 사진 도구를 들고 서 있는 모습을 표지에 담았다

 

 

 

 

인천 개항25주년 기념엽서(일제강점기 · 14×9)

 

 

 

 

군인 손수건(1904 · 44.6×44.9)

동경군사교육회에서 발행한 군용 손수건으로 가운데 욱일승천기 안에 벚꽃과 군인정신에 대한 문구가 적혀있다

그 주위를 둘러싸며 방사형으로 확대되는 구획들 안에 오칙(五則)을 비롯한 군인과 전투 장면 · 훈장 · 여러나라 국기 및 별과 닻이 그려져 있다

 

 

 

 

공진회장 경복궁지도

서양과 동양 · 지배국과 식민지를 구별하는 데에는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이 내재해 있었다

서양은 동양을 타자화하며 자신을 분리했고 신비로운 눈으로 동양을 바라봤다

같은 동양인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지배국 시선에서 철저히 식민지 조선을 타자화함으로써 스스로 구별짓고 우위에 서고자 했다

 

 

 

 

姿(관기 후자) · 妓 盛裝(관기 성장)

 

 

 

 

조선사진화보 공진회 기념호 대정 4년(1915) 10월호

 

 

 

 

인천 산수정 혈문(仁川 山手町 穴門 · 지금의 송학동 홍예문 · 일제강점기 · 14×9)

홍예문을 향해 지게를 진 조선인이 걸어가고 있다

그 좌우로 물동이를 지고 걷는 사람 · 일본식 복장을 한 사람이 대비된다

 

 

 

 

I  KOREA(1912 · 15×22)

스웨덴 기자인 아손 그렙스트가 저술한 책으로 1904년 말에서 1905년 초까지 한국에서 활동하면서

을사조약 당시의 대한제국의 모습을 취재한 기록이다

 

 

 

 

물산공진회 신문 전면광고(1915)

매일신보 제2990호에 부록으로 실린 대공진회 화보이다

 

 

 

 

외교의 교훈 · 러시아 거미 퇴치도(1904 · 79×54)

큰 거미가 사람들에게 둘러 싸인 채 화살을 맞고 있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거미는 러시아를, 사람들은 주변의 다른 국가를 나타낸 것으로 당시 세계 정세를 엿볼 수 있다

거미의 머리에는 일본기의 화살이 꽂혀 있는데 오른쪽에 위치한 대일본이라 적힌 사람이 또 한번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

청국 사람은 거미를 향해 독침을 물고 있고, 인도와 터키 사람은 칼을 휘두르고 있다

거미 다리가 잘려나간 곳에 금주 남산이라 적어 러시아가 금주 남산 전투에서 패했음을 나타냈다

그 아래 조선인은 책상에 앉아 팔괘점을 치고 있다

화면 가장자리에는 여러 나라들이 일본 국기를 들고 있거나 비스듬이 앉아 방관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러일전쟁지도(1904 · 78.8×54.5)

일본 오사카에 위치한 코데라타케시(小寺武司)에서 발행한 채색 지도이다

일본의 각 지역에 주둔한 군대의 현황과 전투 장면을 일러스트와 함께 표현하였는데

특히 인천 앞 바다에서 자폭하고 있는 러시아 함대의 장면을 그려 넣은 것을 볼 수 있다

 

 

 

 

3부 일상이 된 근대의 이미지

근대 이미지에 내재된 시각적 자극은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키며 근대를 경험하게 하였고 글로는 다할 수 없는 교육과 소통의 수단이 되기도 했다

잡지나 소설 등에 실린 이미지를 보며 대중들은 일상에서 근대를 경험하고 학습해 갔다

 

 

 

 

뻐스걸의 연애(1937)

조준경이 쓴 소설로 보성서관에서 발행한 것이다

*

추월색(1950년대)

세창서관에서 발행한 소설로 과장되게 표현한 원근과 인물이 이루는 장면이 마치 연극의 한 장면처럼 연출되었다

*

애정소설 월미도(1928)

경성 신구서림에서 발행한 박철혼의 애정소설이다

월미도를 배경으로 근대식 복장을 한 남녀가 심각하게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인물과 배경의 원근을 과장하게 표현하였다

 

 

 

 

용득송죽(龍得松竹 일제강점기 · 영인본)

구전설화를 바탕으로 창간된 소설이다

*

금수회의록(1908 · 영인본)

1908년 안국선의 신소설로 짐승과 곤충들이 당시의 인간사회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사회나 가정의 풍속적 타락에 대한 비판 외에도 외국 사람에게 아첨하는 역적놈이나

무기로써 남의 나라를 위협하여 빼앗는 불한당과 같이 외국을 규탄함으로써 당시 일본 침략에 대한 민족의식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신동아(1933) · 모던일본(조선판) · 사해공론 · 삼천리 · 선데이 매일 · 조선화보(1941) · 신여성 · 신세계

 

 

 

 

소년

1908년 11월 최남선이 발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잡지 「소년」의 통권 6호로 1909년 4월에 발간한 것이다

제호를 둘러싼 붉은 색의 월계관은 명예와 영광을 상징하고 있으며 하단 목차의 중앙에 태극문양을 넣어 민족성을 나타내고 있다

 

 

 

 

상허문학독본(1946) · 조운 시조집(1947) ·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38) · 오장환 헌사(1939) · 산호림(1938)

 

 

 

 

어린이 등 광고가 있는 달력(1925 · 31.8×47)

 

 

 

 

베니스의 상인(1948 · 박문출판사 문고) · 조선민요선(1953) · 성탄제(1948 · 을유문화사 문고) · 역사와 문화(조선문고)

성탄제는 다른 문고본들이 서양의 식물 장식을 패턴으로 사용했던 것과는 달리 전통문양을 도안화하여 표지에 맞게 구성하였다

 

 

 

 

모던한 삶에 대한 환상과 결핍은 대중에게 근대에 대한 욕망과 소유를 불러일으켰고 점차 유행을 만들어 냈다

모던걸 · 모던보이나 근대문물 등 일상에 스며든 이미지는 유행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소비 패턴을 불러일으키며 근대의 풍경을 만들어 냈다

대중들은 질 좋은 인쇄 이미지가 넘쳐나는 환경 속에서 다양한 시각 경험에 익숙해졌다

이미지는 문화 소비의 도구로서 자신의 영역을 다져나갔다

 

 

 

 

여성용 구두 · 양산(근대)

 

 

 

 

조선 인천 중정통 (朝鮮 仁川 仲町通リ · 일제강점기 · 14×9)

 

 

 

 

월미도 안내(1920년대 · 15.2×12.3) · 월미도 대조탕 광고지

 

 

 

 

월미도 명승 사진엽서 세트

 

 

 

 

송도유원지 팜프렛(일제강점기)

 

 

 

 

송도조탕호텔 입장권 · 송도유원 회수입장권(일제강점기)

 

 

 

 

조선 여행 안내 책자

조선여행안내 · 인천에서 청도 상해 · 조선항로안내 · 조선여행안내서

 

 

 

 

조선의 풍광(1922)

철도역을 중심으로 근대기 새롭게 도입된 관광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조선의 도시와 공간을 담아냈다

각 장마다 조선의 모습(시가 · 자연 · 유적 · 조선인의 생활상 등)과 사진을 담고 있다

인천에 관련된 내용으로는 인천항 · 월미도가 포함되어 있다

*

사계의 조선(1926 · 114×19)

가메오카가 쓰고 조선척식자료조사회에서 발행한 책으로, 합자회사 곡강상점에서 인쇄하였다

앞표지에는 석탑과 나무가 그려져 있고, 왼쪽 상단에는 책 제목이 적혀 있다

 · 여름 · 가을 · 겨울의 조선의 명소를 소개하는 책자이다

봄에는 꽃을 볼 수 있는 곳을 소개하였고, 그중에 인천의 벚꽃을 37쪽에 실었다

여름은 명승고적 · 폭포 · 해수욕 · 도순회(島巡廻) · 고도의 산수를 주제로 글을 실어 놓았다

해수욕의 주제 중 102쪽에 월미도해수욕장 · 조탕이 실려있다

 

 

 

 

조선 풍속 인형 세트(일제강점기) · 청자 해태 기념품(일제강점기)

 

 

 

 

1900년대 인천항 겨울 풍경과 인천상공안내 표지 그림(1916) 등이 있다

 

 

 

 

전시장을 나오며 돌아본 왼쪽 회랑이다

 

 

 

 

뷰 카메라

개항 이후 새로운 미디어로 등장한 인쇄 매체는 대량 복제와 유포를 통해 대중에게 근대를 바라보는 시각적 이미지를 갖게 했다

이미지는 근대의 산물이라 할 수 잇는 사진 · 지도 · 간행물 등 다양한 인쇄물로 사용되었고 사람들은 점차 반복되는 이미지에 익숙해졌다

근대는 새로운 삶 그 자체였다

아울러 이미지 생산 주체는 이를 활용하여 자신의 의도와 목적을 사회와 대중에게 전파하려 했다

문화적 산물이 넘쳐나는 지금, 평면에 머물렀던 이미지는 다양한 매체와의 결합으로 오감을 자극하며 입체적으로 대중에게 다가오고 있다

그 시작에는 한 세기 전 우리에게 소개된 「근대 이미지」가 있다

근대기에 나타난 이미지 생산 방식과 소비 패턴은 지금도 변함없이 그 영역을 확장해 가며 지금의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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