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길이야기

서오릉

서오릉(西五陵)은 서쪽에 있는 5기의 능이란 뜻으로 구리 동구릉(東九陵) 다음으로 규모가 큰 조선왕릉군이다

세조의 맏아들 의경세자(추존 덕종)의 묘(지금의 경릉 敬陵)가 조성된 것을 시작으로

예종의 창릉(昌陵) · 순회세자의 순창원 · 인경왕후의 익릉(翼陵) · 숙종의 명릉(明陵) · 정성왕후의 홍릉(弘陵)이 조성되었다

1970년대 영빈 이씨의 수경원과 옥산부대빈 장씨의 대빈묘가 이곳으로 옮겨져 5기의 능과 2기의 원 · 1개의 묘가 있는 현재의 서오릉이 되었다

 

 

서오릉 안내도

명릉과 재실은 매표소 밖에 있다

 

 

 

 

조선왕릉  세계유산 빗돌

조선왕릉(40기)은 인류문화유산으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 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서오릉(西五陵) 안내판

 

 

 

 

서오릉 산책길 안내도

능 안이여서 오랜동안 숲이 보호를 받아 오래된 나무들이 많고 잔디가 좋아 산책하기 좋다

 

 

 

 

수경원(綏慶園)

조선 21대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영빈 이씨 (暎嬪 李氏 1696~1764)의 무덤이다

영빈 이씨는 이유번의 딸로 궁녀가 되었다가 1726년(영조 2) 영조의 후궁이 되어 1730년(영조 6) 영빈에 책봉되었다

영조와의 사이에서 사도세자(장조)와 6명의 옹주를 낳았고 1764년(영조 40)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수경원은 처음 의열묘(義烈墓)라는 이름으로 지금의 서울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뒤에 조성되었고 1899년(정조 12) 선희묘(宣禧墓)로 이름이 바뀌었다

 

 

 

 

수경원(綏慶園)

대한제국 선포 후 1899년(광무 3) 사도세자가 장조로 추존되면서 황제의 생모 지위에 맞게 묘를 원(園)으로 높여 이름을 수경원이라 하였다

1969년 서오릉으로 이장했으며 지금은 정자각만 남아 있다

후궁 묘의 예로 조영하여 석물들이 단촐하게 꾸며졌다

 

 

 

 

대한소유영빈수경원(大韓昭裕暎嬪綏敬園) 표석

 

 

 

 

익릉 홍살문

우연히 만난 아도행 친구들이다

 

 

 

 

익릉(翼陵)

조선 19대 숙종(肅宗)의 원비 인경왕후 김씨(仁敬王后 金氏 1661~1680)의 능이다

인경왕후는 광성부원군 김만기의 딸로 1671년(현종 12) 왕세자빈이 되었고

1674년 숙종이 즉위하면서 14세에 왕비로 책봉되었으나 20세 때 천연두에 걸려 경덕궁 회상전에서 세상을 떠났다

왕비가 천연두에 걸렸기 때문에 병문안도 하지 못한 숙종은 천연두가 자신에게 전염될 것을 염려해 창경궁으로 집무실을 옮겼고

영의정이 홍화문에 머물면서 양쪽 궁궐의 상황을 보고했다

1680년(숙종 6) 10월 26일 인경왕후가 승하하자

그 이후 당파 싸움과 맞물려 숙종을 둘러싼 궁중여인들의 암투가 구중궁궐을 혼란에 빠지게 하는데

이러한 현실을 소설화한 것이 「사씨남정기」다

저자는 당대 내노라하는 벼슬길에 오르다 남인의 탄핵으로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한 김만중이다

관료이자 학자였던 그는 바로 인경왕후의 숙부이다

 

 

 

 

조선국 인경왕후 익릉(朝鮮國 仁敬王后 翼陵) 표석

1661년 9월 3일 탄생, 1674년 왕비의 자리에 오르고 1680년 10월 26일 20세로 짧은 생애를 마쳤다

 

 

 

 

정자각(丁字閣)

 

 

 

 

가족 나들이가 많다

 

 

 

 

잔디밭에 많은 사람들이 쉬고 있다

 

 

 

 

익릉에서 순창원으로 가는 길이다

 

 

 

 

순창원(順昌園)

조선 13대 명종(明宗)의 맏아들 순회세자(順懷世子 1551~1563)와 공회빈 윤씨(恭懷嬪 尹氏1552?~1592)의 원(園)이다

순회세자는 7세에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13세에 세상을 떠났다

공회빈은 1561년(명종 16) 왕세자빈이 되었으나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나 왕비가 되지 못하였다

1592년(선조 25) 세상을 떠났는데, 임진왜란의 혼란 속에서 시신이 수습되지 못했다

선조는 임진왜란이 끝난 후 신주를 만들어 순회세자와 합장하였다

 

 

 

 

덕종대왕 경릉 상설도

1457년(세조 3) 의경세자가 요절하자 현재의 위치에 안장하였고

1504년(연산군 10) 4월 27일에는 소혜왕후가 승하하여 경릉의 오른편 언덕에 안장하였다

 

 

 

 

경릉(敬陵)
경릉은 추존된 덕종(德宗 1438~1457)과 소혜왕후 한씨(昭惠王后 韓氏 1437~1504)의 능이다

덕종은 세조의 맏아들로 왕세자에 책봉되었으나, 20세에 세상을 떠나 시호를 의경세자(懿敬世子)라 하였다

이후 1471년 둘째 아들이 자을(잘)산군이 왕(성종)이 된 후 덕종으로 추존되었다
소혜왕후는 정난공신 1등에 오른 한확의 딸로 세조가 왕위에 오르자 1455년 세자빈으로 책봉되었으나

세조 3년(1457) 본래 병약했던 남편 덕종이 일찍 세상을 떠나자 수빈(粹嬪)이 되었고 세조의 법통은 시동생인 예종이 물려받는다

예종 또한 즉위 1년 2개월 만에 죽자 아들 성종이 왕위에 오른 후 인수대비(仁粹大妃)로 책봉되었다

 

 

 

 

정자각(丁字閣)

일반적으로 왕릉은 정자각 쪽에서 능을 바라보았을 때, 왼쪽에 왕의 능, 오른쪽에 왕후의 능을 조성한다

이와 달리 경릉은 반대로 오른쪽에 왕을 모셨는데, 이는 세상을 떠났을 때 신분의 차이(덕종 왕세자 · 소혜왕후 대왕대비) 때문으로 보인다

신분의 차이로 인해 덕종의 능은 묘의 형태로 조성되었으나, 소혜왕후의 능은 왕릉의 형태로 조성된 사실도 흥미롭다

 

 

 

 

덕종대왕 경릉 상설도

 

 

 

 

대빈묘(大嬪墓)

옥산부대빈 장씨(玉山府大賓 張氏 1659~1701)는 장형의 딸로 숙종대의 대왕대비(장렬왕후 조씨)를 모시는 궁녀였다

1688년(숙종 14) 숙종의 맏아들 경종을 낳아 희빈(禧嬪)에 봉해졌다

1년 후 기사환국이 일어나면서 인현왕후가 폐위되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5년 후 갑신환국으로 인현왕후가 왕비로 복위되면서 다시 희빈이 되었다. 이후 인현왕후를 무고한 죄목으로 세상을 떠났다

희빈 장씨가 1701년(숙종 27) 10월 10일 인현왕후를 무고하고 저주한 죄로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나자

구리 인창동에 조성되었다가 1719년(숙종 45) 현 광주 문형리로 옮겼고, 1970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훗날 그녀의 아들인 경종이 즉위하여 옥산부대빈(玉山府大嬪)에 추존하였다

 

 

 

 

제비꽃

희빈 장씨 묘 앞에 피어 있다

 

 

 

 

홍릉(弘陵)

조선 제21대 영조의 원비 정성왕후 서씨(貞聖王后 徐氏 1692~1757)의 능이다

정성왕후는 달성부원군 서종제의 딸로 13세에 1704년 숙종의 둘째 아들 연잉군의 부인이 되었다가

1721년(경종 1) 왕세자빈이 되었고 영조가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조선 역대 왕비 중 중전 재임 기간이 약 33년으로 가장 길었으나, 영조 사이에 자식이 없었다

1757년(영조 33) 66세로 창덕궁에서 세상을 떠났다

왕비가 먼저 승하하여 능을 조성할 경우 왕이 훗날 자신도 왕비와 함께 묻히기 위하여

능의 오른쪽 자리를 비워두는 조영을 「우허제(右虛制)」라고 한다

 *

정조의 하교로 영조의 왕릉은 현재의 위치인 동구릉 내 영릉으로 결정되어 홍릉의 오른쪽은 영원히 비어 있는 채로 남아 있게 된 것이다

 

 

 

 

홍릉(弘陵) 표석

조선국 정성왕후 홍릉(朝鮮國 貞聖王后 陵)

 

 

 

 

창릉(昌陵)

조선 제8대 예종(睿宗 1450~1469)은 세조와 정희왕후의 아들로 아버지 세조가 왕위에 오른 후 해양대군(海陽大君)에 봉해졌다

1457년(세조 3) 형 의경세자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1468년 왕위에 올랐다

세조 때부터 편찬하던 「경국대전」을 완성하여 반포를 앞두었으나 즉위 1년여 만에 세상을 떠났다

안순왕후 한씨(安順王后 韓氏 ?~1498)는 청천부원군 한백륜의 딸로

1463년(세조 9) 당시 왕세자였던 예종의 후궁이 되었다가 예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창릉(昌陵)

예종(睿宗) · 안순왕후(安順王后)의 능이다. 서오릉의 영역 내 왕릉으로 조영된 최초의 능이다

조선왕릉의 혼유석 받침돌인 고석은 일반적으로 귀면 조각으로 장식하는데, 예종 능 혼유석의 고석에는 북고리를 조각한 것이 특징이다

 

 

 

 

창릉 표석(昌陵 表石)

조선국 예종대왕 창릉 안순왕후 부좌강(朝鮮國 睿宗大王 昌陵 安順王后 祔左岡)

 

 

 

 

창릉(昌陵)

정자각 뒤로 보이는 창릉이다

 

 

 

 

창릉에서 홍릉을 지나 언덕에서 왼쪽 소나무길로 들어섰다

앞에 보이는 길이다

 

 

 

 

능안에도 산불감시탑이 있어야 하는지?

또 꼭 있어야 한다면 저런 모양의 탑이여야 하는지?

사실 저 안에 산불 감시원 있는 걸  본적이 없다

 

 

 

 

소나무길을 지나 서어나무 길로 간다

 

 

 

 

다시 홍릉이다

 한 바퀴 돌았다

 

 

 

 

이젠 출입구로 간다

'길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을공원  (0) 2010.05.15
하늘공원  (0) 2010.05.15
서삼릉  (0) 2010.05.08
원당 종마목장  (0) 2010.05.08
행주산성  (0) 2010.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