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대군 사적(誠寧大君事跡 향토문화유적 제2호)
조선 제3대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의 네째 아들로 양령 · 효령 · 충령대군(세종대왕)의 친동생이다
대군께서는 태종 5년(1405)에 태어나시어 태종 17년(1417)에 창령 성씨 좌찬성 억의 따님과 혼인하셨으며
태종 18년(1418)에 홍역으로 향수 14세에 서거하셨고 시호는 「변한국 소경공」이다
태종대왕께서는 이를 애통해 하시어 제문을 지으시고 분묘 옆에 대자암자를 지어 대군의 명복을 빌게 하였으며
신리동이란 지명을 대자동이라 명명하시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대자암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대자사 삼문(大慈祠 三門)
대자사(大慈祠)
대자사 · 신도비각
신도비각(神道碑閣)
봉성재(奉誠齋)
재실 및 관리소다
원천군 부부 묘(原川君 夫婦 墓)
성령대군이 요절하자 처음에는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이 양자로 입적하였으나
그가 형인 세조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되자 사촌 동생이자 효령대군의 6번째 아들인 원천군이 양자로 입적되었다
성령대군 묘는 위쪽에 있다
봉성재 · 비각 · 대자사
원천군 부부 묘지에서 내려다 봤다
원천군 부부 묘
원천군 부부 묘
성령대군(誠寧大君) 묘
3단의 장대석을 쌓았으며 묘의 주위에 호석을 둘렀다
묘소 좌우에는 석사자 · 석양이 배치되어 있으며 묘 앞에는 상석 · 장명등 · 문인석이 있다
신도비는 1418년(태종 18) 4월 세운 것으로 도총제 조용이 묘지(墓誌)를 짓고 대제학 변계량이 신도비명을 짓고 직(直) 예문관 성개가 글을 썼다
성령대군(誠寧大君) 묘
성령대군(誠寧大君) 묘
대자동이 한눈에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