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북한 주민의 생활상을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곳으로
남북한의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히고 민족 동질성을 회복하여
평화적 통일의 기반을 다져나가는 문화관광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건설되었다
강화 제적봉 평화전망대
그리운 금강산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북한땅 조망실
해설사가 북한의 지형과 실정 등을 설명하고 있다
중앙에는 전망대에서 조망되는 북한 지형을 모형으로 제작하여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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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 3층이다
당두포리 돌출부 · 예성강 입구
썰물이라 곳곳에 모래톱이 보인다
조망실 왼쪽이다
진좌산 · 송악산
당두포리 오른쪽이다
진좌산 · 송악산
진좌산 오른쪽 유정동마을 · 오른쪽 끝 부분 원정동마을
송악산 · 원정동마을
상달리 수문이 오른쪽 끝에 있다
해창리 돌출부
남북의 거리가 평균 2.3km정도인데 이곳은 가장 가까운 1.9km 거리로
해설사 설명으론 통일이 되면 다리 놓을 계획이란다
2층 전망대
망원경 사용료 500원이다
진좌산 · 유정동마을 · 송악산 · 원정동마을
전망대 왼쪽이다
원정동마을 · 상달리 수문 · 봉황산
전망대 오른쪽이다
북한 돈
전시관 2층이다
녹슨 철모
전시관 2층에 전시되어 있다
1층 기념품 매장
임삼곡주 · 강계술 · 머루술 등 북한 술들이 전시되어 있다
망배단 · 그리운 금강산 노래비
그리운 금강산 노래비
그리운 금강산은 성악가를 선택해 들을 수 있는 버튼이 있다
북한 파노라마 사진
백마산 · 해창리 돌출부
예성강 · 당두포리 돌출부 · 송악산
애사 편강열 의사 추모비(愛史片康烈義士追慕碑)
한 평생 조국 광복을 위해 헌신하시다 순국하신 편강열 의사의 숭고한 애국정신과 위업을 기리기 위해
선생의 탄신 100주년을 기하여 향토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연백군민회 망향제단 경내에 추모비를 세운다
연성대첩비(延城大捷碑)
임진년(1592)에 왜군이 부산포에 상륙해 북상했다
우리의 방비는 미약했으나 통제사 이순신은 한산도 앞바다에서 왜군의 기세를 꺾었고
절도사 김시민은 진주성에서 분투하여 충절을 다했으며 초토사 이정암은 의병과 함께 연안성을 지켜냈다
자헌대부 지중추부사 이정암의 전투로 연안 이하 13주가 회복되었으며 아산 · 강화 · 용강으로 이어지는 서해의 물길이 열렸다
이 비석은 좌의정 이항복이 짓고, 대사헌 정사호가 썼으며 상호군 김상용이 전자하여 선조 41년(1608) 5월에 세웠다
*
연백군 모정리에 있던 이 비는 실향민 망향단에 의사 편강열 추모비와 같이 건립했던 것으로
2009년 8월 19일 이곳 평화전망대로 이전하였다
제적봉(制赤峰) 빗돌
공정식 제6대 해병대사령관은 최초 김포 애기봉을 제적봉으로 명명하려 하였으나
1966년 고 박정희 대통령께서 현 애기봉 방문시 애기의 전설을 듣고
제적봉 대신 애기봉으로 명함에 따라 강화도의 현 고지를 새로이 제적봉으로 정하고
1966년 당시 민주공화당 김종필 의장 참석하에 그가 친필로 쓴 제적봉 비 건립과 명명식을 거행했다
애사 편강열 의사 추모비 · 연성대첩비 · 제적봉비 · 망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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