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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종주이야기 2

겸재 정선기념관

주역의 점괘에서 따온 호 겸재(謙齋)처럼
겸손하고 온화하게 처신하며 예술에만 정진해온 화가 겸재 정선의 기념관이다
1층 양천현아실 · 기획전시실, 2층 겸재정선기념실 · 진경문화체험실 · 영상실, 3층 다목적실 · 뮤지엄숍 등이 있다

 

 

겸재 정선기념관
궁산에서 내려오는 바람에 3층부터 관람하며 밑으로 내려갔다
관람요금 천 원인데 마침 토요일이라 무료관람이다
휴관일은 매주 월요일 그리고 설과 추석이다

 

 

 

 

3층 전시관
겸재 정선이 그린 강서의 옛 모습이 한 폭에 두 작품씩 4폭 걸려있다

 

 

 

 

독서여가도 모형
4폭의 그림 옆에 겸재의 자화상 포토존이다

 

 

 

 

2층 영상실
겸재의 삶과 예술세계를 종합영상으로 구성하여 보여준다

 

 

 

 

진경산수화의 완성자 겸재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고려시대부터 실경산수화의 전통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정선은 이런 전통의 바탕 위에 18세기 전반에 진경산수화를 확립시켰다

 

 

 

 

겸재정선의 연보

 

 

 

 

겸재의 출생과 초년시절 / ~ 30대 중엽

 

 

 

 

18세기 초 화단의 상황과 정선 · 화명을 떨치다

 

 

 

 

하양현감 시절 · 인왕곡 시절 1 · 청하현감 시절

 

 

 

 

하양현감 시절 / 46~51세 · 1721~1726
경상도지역의 다양한 명승을 그린 화첩인 영남첩 · 구학첩을 그렸다

 

 

 

 

인왕곡 시절 1 / 51~58세 · 1727~1733

 

 

 

 

청하현감 시절 / 58~60세 · 1733~1735

 

 

 

 

인왕곡 시절 2 · 양천현령 시절
겸재의 작품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해 놓았다

 

 

 

 

양천현령 시절 / 65~70세 · 1740~1745
정선은 만 5년 간 양천현령으로 재직하며 경교명승첩과 같은 기념비적 역작을 남긴다

 

 

 

 

자유자재의 경지 · 인왕곡 시절3

 

 

 

 

자유자재의 경지
화가로서 드물게 84세까지 장수한 정선은 보통 화가들이 도달하기 어려운
자신만의 화풍의 완성과 완성을 너머선 대자유의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정선은 만 70세에 양천현감을 퇴임한 후, 십여 년 동안 인왕곡에서 여유로운 만년기를 보냈다

 

 

 

 

금강전도
내금강 · 외금강 · 해금강을 그린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겸재의 작품을 시기별로 정리해 놓았다

 

 

 

 

모니터에 있는 겸재의 그림 버튼을 누르면
그림을 그린 장소에 불이 켜지면서 화면에 큰 그림이 나온다

 

 

 

 

2층 겸재정선기념실
정선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시기별로 정리 해설하고 정선 및 관련 화가들의 작품을 함께 배치하였다

 

 

 

 

사천 이병연의 시가 들어 있는 이교첩 · 행산첩 · 예곡첩 · 시원첩

 

 

 

 

이병연이 쓴 제발
조선시대 시인이며 겸재 정선의 절친으로 잘 알려진 사천 이병연의 제발문으로
조선시대 미술품 수집가에 대한 내용과 서화가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다
이병연이 73세 때인 계해(1743)년 여름 · 산 아래 작은 집에서 쓰다라고 써 있다

 

 

 

 

겸재의 진경산수화풍

화풍의 변천을 연대별로 설명해 놓았다

 

 

 

 

1층 양천현아실
정선이 양천현령(65세~70세 · 1740~1745) 재임 시 머물렀던 양천현아를 복원해 놓았다

 

 

 

 

정선은 양천현령으로 재직하는 동안
강서지역의 뛰어난 승경을 경교명승첩(1740~1741) · 양천팔결첩(1742)에 담았다
강서지역은 예로부터 한강의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여왔으며 중국과의 문화교류의 통로가 되었던 곳으로 역사적 의미가 깊은 고장이다

 

 

 

 

강서구의 역사

 

 

 

 

정선이 본 강서의 아름다운 풍광

 

 

 

 

1층 기획전시실
개관 4주년기념 특별전으로 겸재 작품 영인전이 열리고 있다
겸재의 작품을 연대별로 정리해 전시해 놓았다

 

 

 

 

화가로 이름을 떨치다 / 30대 중엽~ 40대
정선이 회화로써 명성을 떨치게 된 결정적 계기는 37세 때인 1712년
이병연 등과 금강산을 여행하고 그린 해악전신첩이 문인들 사이에 유명해지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진경산수화풍의 확립 / 40대 중엽~ 60대
40대 후반 경상도 하양현감 · 50대 후반 청하현감을 지내면서
서울 · 경기지역과 금강산 지역 이외에 영남지방 · 충청도 지방까지 널리 여행하게 되면서
우리나라 산천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화폭에 옮겼다

 

 

 

 

원숙기 / 60대 중엽~ 70대
모친상으로 청하현감을 2년 만에 그만 두고 인왕곡 집으로 돌아오게 된 정선은
충청도 등을 여행하고 관동명승첩 등을 제작하였는데
이 시기 정선 특유의 거침없고 장쾌한 정선 진경산수화의 전형적인 면모들이 완성되어 나타난다

 

 

 

 

노대가의 만년 / 70세~84세
칠십대 이후 만년기의 정선은 붓을 들면 의식하지 않아도 그림이 되는 경지에 이르렀다
정선은 1759년 3월 24일, 84세의 나이로 타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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