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덕사(廣德寺)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광덕산에 위치한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마곡사 소속이다
652년 자장율사가 부처님 사리 · 치아 · 가사 · 화엄경 등을 봉안하시어, 창건하였다 한다
또한, 광덕사 사적기 등을 통해 볼 때 진산화상을 거쳐
고려시대 · 조선시대에 걸쳐 수많은 중창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광덕사는 창건 이후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3층 법당 · 8종루 9범각 · 80칸 장경각 등과
산내에 89개의 암자가 있어 호서지역에 가장 큰 사찰이였다고 한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사찰이 소실되었으나
조선후기 대웅전 · 명부전 등의 전각을 다시 건립하면서
광덕사의 사세를 회복하는 불사가 진행되었다
이후, 1973년부터 현재까지 주지 철웅 대종사의 중창을 통해
대웅전 · 천불전 · 명부전 · 범종각 · 적선당 · 보화루 · 설법당 · 은적당 등이 재건되었고
지금도 광덕사의 사세를 회복하는 대대적인 불사가 진행되고있다
산사 내에는 길상암과 안양암의 두 암자가 있다
태화산 광덕사 일주문(泰華山 廣德寺 一柱門)
태화산 광덕사(泰華山 廣德寺) 현판
호서제일선원(湖西第一禪院)
일주문 안쪽에서 봤다
호서제일선원(湖西第一禪院) 현판
느티나무 보호수
나무 높이 22m · 가슴높이 둘레 5.8m · 나이 478년(2020년 기준) · 지정일자 1982. 11. 1
광덕사(廣德寺) 빗돌
안양암 대문
안양암(安養庵) 현판
극락전(極樂殿)
삼층석탑이 앞에 있다
극락전(極樂殿) 현판
안양암(安養庵)
안양암(安養庵) 현판
수님들의 수행공간
안양암 대문
광덕사로 올라간다
광덕사사적비 · 부모은중경사경비
부모은중경은 부모의 은혜를 크게 10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은혜를 갚기 위해 공양하며 경전을 읽고 외울 것을 권장하고 있다
*
「부모은중경 및 불설장수멸죄호제동자다라니경」은
태종의 둘째 아들인 효령대군이
부인 · 아들과 함께 시주하여 만들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문화관광해설사의 집
천안 광덕사 호두나무 / 천연기념물 제398호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호두나무이다
이 나무는 고리시대에 중국 원나라에 갔다가 온 영민공 유청신이 심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청신은 몽골어를 잘해 여러 차례 원나라에 갔는데
1290년(고려 충렬왕 16)에 원나라에서 임금의 수레를 모시고 돌아올 때
호두나무 어린 나무와 열매를 가져와 어린나무는 광덕사에 심고
열매는 자신의 고향 집 뜰 앞에 싶었다고 한다
천안 광덕사 호두나무 / 천연기념물 제398호
이 이야기가 우리나라에 호두가 처음 전해지게 된 배경으로 알려지면서
현재 이곳은 호두나무 시배지(始培地)로 불리고 있으며
광덕사 호두나무 앞에는 「유청신 선생 호두 시식지」 빗돌이 세워져 있다
광덕사 호두나무의 높이는 약 18.2m이며
지상 약 60cm의 높이에서 줄기가 두 개로 갈라져 길게 뻗어있는 형태이다
이 호두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을 받아왔기에
문화적 · 생물학적 자료로서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 · 보호하고 있다
*
보화루가 뒤에 있다
보화루(普化樓)
천안 광덕사 호두나무가 앞에 있다
유청신 선생 호두 시식지(柳淸臣 先生 胡桃 始植地) 빗돌
광덕사(廣德寺) 현판
보화루에 걸려 있다
보화루(普化樓)
보화루(普化樓) 현판
대웅전(大雄殿)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광덕사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이 봉안된 건물이다
대웅전은 절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법당을 가리키는 말로서
대웅(大雄)은 「묘법연화경」에서 석가모니를 가리켜 위대한 영웅이라고 한 데서 비롯된 말이다
광덕사 대웅전은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불에 탔지만 이후 복구되었다가
1723년에 다시 큰 화재로 인해 불에 타서 사라졌다
광덕사에 있던 다른 전각들도 이때 불에 타서 사라졌다고 한다
그러다가 1725년에 다시 대웅전 건립을 시작해 1729년에 완성되었다
대웅전 건물은 1872년(고종 9)에 다시 고쳐 지었으며
1981년 증축을 거쳐 1983년에는 완전히 해체하여 복원하였다
건물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통일신라 양식의 대형 주춧돌이 확인되었다
현재 건물의 규모는 앞면 5칸 · 옆면 3칸 크기이며 맞배지붕 형태이다
광덕사 대웅전 안에는 1728년 조성한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이 봉안되어 있고
불상 뒤쪽으로 1741년에 조성한 삼세불도가 걸려 있다
대웅전(大雄殿) 현판
천안 광덕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광덕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은 광덕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불상이다
석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아미타여래좌상과 약사여래좌상이 있는데
모두 나무로 만든 대좌 위에 앉아 있는 형태이다
이들 불상은 1728년에 대웅전을 다시 세우면서 조성되었는데
수조각승 취단을 비롯해 보조 화승인 명철 · 의체 · 순명 등이 참여하였다
천안 광덕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은 17세기인 조선 후기에 조성된
목조불의 양식을 따르면서도 타원형의 얼굴에 양감이 없는 평면적인 이목구비가 특징이다
친근한 인상의 상호와 괴체감이 있는 신체 표현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연하면서도 두께감 있게 표현한 옷 주름 등에서는 독창적인 조각기법이 엿보인다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은 발원문과 복장물이 남아 있어 정확한 조성 시기를 알 수 있고
기록을 통해 조각승의 계보 역시 파악할 수 있어 중요하다
또 18세기 초에 대대적으로 진행되었던
광덕사 중창 불사를 증명하는 자료라는 점에서도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천안 광덕사 삼세불도(三世佛圖)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천안 광덕사 삼세불도는 삼세불을 그린 그림이다
삼세불은 약사여래(과거 동방) · 석가여래(현재) · 아미타여래(미래 서방) 등
시공간적인 삼세의 부처를 뜻한다
천안 광덕사 삼세불도는 마 바탕의 채색화로 약사여래(약사회상도)
석가여래(영산회상도) · 아미타여래(아미타회상도) 등 3폭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1991년에 약사회상도가 도난되어
현재는 영산회상도와 아미타회상도 2점만 남아 있으며, 대웅전 내부 불단 위에 봉안되어 있다
영산회상도는 본존인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8대 보살과 사천왕 · 10대 제자 등
다수의 권속들이 좌우대칭으로 배치되어 있다
*
석가여래(영산회상도)이다
천안 광덕사 삼세불도(三世佛圖)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이와 달리 아미타회상도는 영산회상도에 비해 권속의 수도 적고 단순한 구도를 보여준다
천안 광덕사 삼세불도는 화기에 적힌 「건륭 6년 신유 4월일」이라는 기록을 근거로
1741년에 제작되어 광덕사에 봉안되었음을 알 수 있다
*
약사여래(약사회상도)이다
천안 광덕사 삼세불도(三世佛圖)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불화를 그린 작업에는 붕우 · 사혜 · 인찰 등의 화승이 참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광덕사 삼세불도는 현재 2점만 남아 있지만
안정된 구도와 원만한 인물표현 · 유려한 필선 · 뛰어난 채색 등을 통해
18세기 초기 불화의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어 가치가 높다
*
아미타여래(아미타회상도)이다
석등
대웅전 계단 양편에 각 1기씩 있다
석수
대웅전 계단 양편에 각 1기씩 있다
광덕사 삼층석탑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광덕사 삼층석탑은 광덕사 대웅전 앞에 있는 불탑이다
불탑은 부처의 사리를 봉안하고 있어 「부처의 무덤」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불탑은 부처의 열반을 상징하며 예배와 공경의 대상으로서
불교 의례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석조물이다
광덕사 삼층석탑은 높이가 약 2.7m에 이른다
화강암으로 만들었는데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이다
상층 기단과 하층 탑신부의 몸돌에는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는데
특히 탑신 1층의 몸돌에는 문 모양 안에 자물쇠 문양을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밑면에 각각 4단씩 받침을 두었으며
윗면은 경사를 급하게 하고 네 귀퉁이는 위로 솟은 형태이다
탑의 꼭대기 부분에는 노반과 복발이 그대로 남아 있다
삼층석탑은 전체적으로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세부 부재가 생략되어 있고 장식을 간략하게 한 점과
고려 1344년에 세 번째로 광덕사를 중창하였다는 기록을 참고할 때
고려 초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효령대군 사경 부모은중장수태골경 합부 보물기념비
(孝寧大君 寫經 父母恩重長壽胎骨經 合部 寶物記念碑)
육화당(六和堂)
육화당(六和堂) 현판
적선당(寂禪堂)
적선당(寂禪堂) 현판
광덕사 석사자(石獅子)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광덕사 석사자는 광덕사 대웅전 계단 앞에 세워져 있는 사자 석상이다
석사자는 불교를 상징하는 동물의 하나로 인도와 인연이 깊다
일찍이 인도에서는 사자를 왕 중의 왕인 승리자로 인식했으며
어지간한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의 모습을 모범적인 수행자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런 광덕사 석사자는 원래 사찰 입구 보화루로 올라가는 돌계단 옆에 있었는데
도굴꾼이 불법으로 반출한 것을 주지인 철웅 스님이 다시 되찾아 온 후에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 양쪽에 1기씩 두었다
광덕사 석사자(石獅子)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석사자는 2기 모두 앉아 있는 형태이며 암수 1쌍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받침돌은 따로 두지 않고 각각 한 개의 돌로 조각하였는데 높이는 약 80cm 크기이다
전체적으로 마모가 심하여 세부 표현은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앞다리는 땅을 지탱하면서 서 있고
뒷다리는 돋을새김으로 처리하였으며 꼬리는 짧은 선으로 표현되었다
사자의 머리는 하늘을 향하고 있으며, 입을 약간 벌렸는데 안쪽에 이빨을 조각하였다
머리 주변으로 구름 모양으로 갈기를 조각하였다
전체적으로 형식화 · 도식화가 진행되어 사실감이 다소 부족하지만 친근감 있는 모습이다
고경당(古鏡堂)
고경당(古鏡堂) 현판
느티나무 보호수
고경당 뒷편에 있다
*
나무 높이 22m · 가슴높이 둘레 5.5m · 나이 525년 · 지정일자 1996. 3. 1
범종각(梵鐘閣)
보화각이 옆에 있다
범종각(梵鐘閣) 현판
명부전(冥府殿)
명부전(冥府殿) 현판
지장보살 · 시왕(十王)
지장보살
협시보살 무독귀왕 · 도명존자이다
노사나괘불전(盧舍那掛佛殿)
노사나괘불전(盧舍那掛佛殿) 현판
노사나괘불전(盧舍那掛佛殿)
석가모니부처님과 협시보살 대세지보살 · 관세음보살과
나한상들이 옆에 있다
석가모니
협시보살 대세지보살 · 관세음보살이다
광덕사 노사나불 괘불탱(廣德寺 蘆舍那佛 掛佛幀) / 보물 제1261호
절에서 야외법회나 불교의식 등 행사가 있을 때
법당 앞에 걸어 두고 예불하는 데 쓰는 대형 불화이다
광덕사 노사나불 괘불탱은 세로 1193cm · 가로 798cm 크기로 21폭의 삼베를 잇대어 만들었다
1749년(영조 25)에 수화승 사혜를 비롯한 모두 7명의 화승이 작업에 참여하였다
전체적으로 불화의 가운데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설법인의 손 모양을 하고 있는 노사나불(盧舍那佛)이 있고
보살과 사천왕 · 아난과 가섭 · 시방불이 좌우대칭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를 부분적으로 보면 그림 위쪽은 작은 꽃문양과 구름문양으로 장식되어 있고
시방불이 좌우에 5구씩 그려져 있다
또 그림의 가장자리는 붉은 선과 흰 띠를 둘러 화면을 구획하였고
위쪽으로 15개의 범자 원문을 배치하였다
그림의 아래쪽과 위쪽의 오른쪽에는 묵서로 기록한 화기가 남아 있다
노사나불을 화면의 중심에 높은 보관을 쓴 모습으로 표현한 것은
공주 신원사괘불(1664)과 예산 수덕사괘불(1673) 등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화엄법신과 동일시된 노사나불의 신앙관을 구체적이며 화려하게 묘사하고 있어
조선 후기 괘불 중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천안 광덕사 조선사경(朝鮮寫經) / 보물
불교 경전의 내용을 정성스럽게 옮겨 적고 화려하게 장식하여 꾸민 경전이다
조선사경은 모두 백지에 먹으로 썼는데
부모은중경 및 불설장수멸죄호제동자다라니경 · 묘법연화경
불설장수멸죄호제동자다라니경 및 대승기신론 등 총 3건으로 되어 있다
그 중 「부모은중경」은 부모의 은혜를 크게 10가지로 나누어 설명하면서
「불설장수멸죄호제동자다라니경」은 부처의 힘을 빌리거나 수행을 하여
모든 죄악을 없애고 장수하는 방법을 담고 있다
「부모은중경 및 불설장수멸죄호제동자다라니경」에는 태종의 둘째 아들인 효령대군이
부인 · 아들과 함께 시주하여 만들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묘법연화경」의 사경이 언제 했는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만 조선 초에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불설장수멸죄호제동자다라니경 및 대승기신론」은 「대승기신론」이
변상도와 함께 사경되었다는 점에서 드문 사례이다
천안 광덕사 조선사경은 모두 조선 초기에 기록된 것으로 보이는데
발원자와 변상화의 특징 · 서체 등을 볼 때 불교 및 서지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천안 광덕사 감역교지(減役敎旨) / 보물
천안 광덕사 감역교지는 1457년(세조 3) 8월 10일 세조가 광덕사와 개천사에 내린 교지이다
세조가 온양온천을 다녀오다 광덕사와 개천사에 들려 한계희에게 명을 내려
위전을 내리고 절의 각종 잡역을 면제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후에도 광덕사는 왕실과 활발하게 교류하였는데 이를 통해 교지가 내려진 과정을 추측할 수 있다
천안 광덕사 교지는 원래 1장으로 되어 있었는데 각각 3쪽으로 잘라 첩장을 한 다음
표지는 청색 비단으로 감쌌으며 임금이 손수 글씨를 썼다는 뜻으로 어필이란 제첨을 붙였다
교지의 끝에는 세조의 수결이 있으며 발급 연월일에 임금의 도장인 시명지버를 찍었다
감역교지는 조선 초에 왕이 직접 내린 것으로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
나라에서 부역을 면해주는 것을 입증하는 문서인 「사패교지」의 형식을 알려준다
또 당시 세조가 사찰 및 불교 보호에 관심을 기울였던 것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물확 · 동자상 · 맷돌
맷돌
지장보살 상
산신각 · 천불전 사이에 있다
지장보살 상
보살상
5층석탑
마애금강역사상
천불전(千佛殿)
화장교(華藏橋) 건너에 있다
천불전(千佛殿) 현판
자광당(慈光堂)
자광당(慈光堂) 현판
자광당 고양이들
화장교(華藏橋)
석등
산신각으로 오르는 계단 중간에 있다
산신각(山神閣)
산신각(山神閣) 현판
산신각 내부
광덕사 공덕비
요사채
태화교(泰華橋)
천불전 · 길상암 · 부도탑 · 부용묘로 갈 수 있다
안양암 · 광덕사
천안 광덕산과 광덕호두
광덕산의 높이는 699m이며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광덕리와
아산시 송악면의 경계에 있는 천안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광덕산 산악위치 안내표지판
고려승상영밀공유청신공덕비 · 호도전래사적비
(高麗丞相英密公柳淸臣功德碑 · 胡桃傳來史蹟碑)
우리 고장의 자랑스런 명산물인 호두나무를 전래하여 가꾸어 온
선혈들의 내력(來歷)을 후세에 전하고저 세웠다
*
2024.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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