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25교구 중의 제6교구 본사(本寺)인 마곡사는
100여 개 사암을 관할하는 충남불교 대본산(大本山)의 하나이며
특히 황벚꽃 · 산수유 · 자목련 등이 꽃을 피우는 봄이 가장 아름답다 하여
봄은 《마곡사》 가을은 《갑사》라는 뜻으로 《춘마곡 추갑사 春麻谷 秋甲寺》라는 말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천년고찰이다
*
마곡사라는 절 이름에 대해서는 대체로 세 가지 유래가 내려온다
첫째 / 청양의 장곡사 · 예산의 안곡사와 더불어 삼곡사(三谷寺)라 불렀는데
이 중 마곡사를 「삼골」이라 하여 마곡사라 불렸다는 것이다
둘째 / 신라의 보철화상이 설법을 할 당시 모인 사람들이
마치 삼밭의 삼대가 골짜기를 이룬 것 같다고 하여 마곡사라 하였다 한다
셋째 / 구산선문의 하나인 성주산문의 개창자인 신라 무연선사(800~888)가
중국 남종선의 「마곡 보철선산」의 법을 이어와 마곡사라 불렀다는 설이 있다
*
마곡사 「사적입안」에는 신라 자장율사가 640년(선덕여왕 9)에 창건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온 다음 7대 가람을 창건했는데
마곡사가 그 세번째라고 한다
「사적입안」에는 최초의 창건이 자장이요 · 재조(再造)는 보조이며 · 삼건(三建)은 범일이요
사수(四修)는 도선이며 · 오성(五成)은 각순이라 하였다
이로보아 마곡사는 구산선문 중 가지산문과 사굴산문이 함께 연관된 선종사찰이 아니었을까 추정할 수 있다
근세에는 만공선사가 마곡사 주지로 있으면서 31본산주지회의에 참석하여
조선총독 미나미의 불교정책을 꾸짖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한다
2018년 6월 30일에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마곡사 주차장
마곡사로 가는 길
태화산 마곡사 일주문
태화산 마곡사(泰華山 麻谷寺) 현판 / 如初居士
여초(如初)는 김응현(金膺顯)의 호이며
「추사 이후 여초」라는 말을 들을 만큼 마음과 손의 조화를 이룬 것으로 유명하다
추사 김정희의 맥을 이은 소전 손재형 · 검여 유희강 이후
형인 김충현과 한국 서예계의 양대 산맥으로 불렸다
마곡사 일주문 상량문(麻谷寺 一柱門 上樑文)
일주문 안에 있다
마곡사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알리는 빗돌이다
백범 김구 명상의 길 갈림길
백범 김구 명상의 길 안내판이 앞에 있다
백범 김구 명상의 길 안내판
백범 김구 상
한말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인 장교 쓰치다[土田壞亮]를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 나루에서 죽인 김구는 인천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탈옥하여
마곡사에서 숨어서 승려를 가장하며 살았다
백범 김구 상
답설야(踏雪野)는 휴정 서산대사의 선시로
백범 김구 선생이 즐겨 쓰시던 휘호다
느티나무
백범 김구 명상의 길 날머리에 있다
다루정
법구경 빗돌이 앞에 있다
마곡사(麻谷寺) 유네스코 세계유산 빗돌
2018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마곡사 계곡
마곡사 남원으로 들어가는 물길이다
남원은 마곡사 입구로 오른쪽은 해탈문을 지나 천왕문으로 연결되고
왼쪽은 영산전과 명부전 · 산신각이 자리잡고 있다
이런한 가람 배치는 1920년에 발간된 「고적조사보고」를 통해
일제강점기부터 현재의 배치와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 남원은 영산전을 주불전으로 삼고 있다
영산전의 앞에는 흥성루가 있고 북쪽에는 매화당 · 남쪽에는 연향각이 있다
매화당과 연향각은 각각 건물을 담장으로 둘러싸서 외부에서 접근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현재와 비교해 보면 연향각이 수선사로 바뀌었고
홍성루 앞쪽에 남원을 둘러싼 담장을 설치했다는 점이 다르다
또한 마곡천을 건널 수 있는 다리가 현재와 비교해 보면 훨씬 동쪽에 있다
즉, 현재의 종각 부근에 다리가 있어 천왕문을 지나면 동쪽으로 이동해야만 다리를 건널 수 있었다
제11회 마곡사 군왕대재
마곡사 축제 기간이어서 농 · 특산물과 시화전 등이 열리고 있다
흥성루(興聖樓)
일제강점기 남원의 주불전인 영산전으로 들어가는 계단 옆에 있다
흥성루(興聖樓) 현판
영산전(靈山殿) / 보물 제800호
세조대왕이 「만세불망지지(萬世不忘之地)」라 극찬하였고
풍수지리에서 천하의 대혈(大穴)이라 감탄하는 군왕대(君王垈)의 맥이 흐르는 전각으로
예부터 영험한 기도터로 이름이 높다
*
세조대왕이 마곡사에 은신하고 있던 매월당 김시습을 만나러 왔으나
김시습은 부여 무량사를 거쳐 옮긴 뒤라
김시습을 만나지 못한 세조가 절을 떠날 때
"매월당이 나를 버리고 떠났으니 연을 타고 갈 수 없다" 하여
타고온 연을 징표로 남겨두고 소를 타고 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세조가 타고 왔던 연이 아직까지도 마곡사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영산전(靈山殿) / 보물 제800호
마곡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오른편 수선사 · 왼편 선원인 매화당이 자리하고 있다
입시 승진 등의 발원을 가진 분들의 기더가 끊이지 않는 곳으로
10월 말 경 군왕대제가 열린다
영산전(靈山殿) 현판
세조가 1465년에서 1487년 사이에 마곡사에 들러 쓴 현판이라고
「마곡사 사적입안」에 기록되어 있으며 실제 현판에는 「세조어필 世祖御筆」이라고 쓰여져 있다
영산전(靈山殿)
현재 남아있는 마곡사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1650년에 중수돼 보물 제800호로 지정되어 있다
영산전에는 고려시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목불 7구가 남아 있다
사적입안 기록에 따르면 영산전에는 세조의 친필인 방서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영산전(靈山殿)
본래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인도의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하시던
당시의 광경인 영산회상을 재현해 모신 곳으로
석가모니 부처님과 10대 제자 · 16나한 혹은 500나한을 모시기도 한다
그러나 유독 마곡사의 영산전에는 한 가운데에 과거칠불 · 주위에 1000분의 부처님을 모셨다
과거칠불이란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에 이 세상에 출현하였다고 하는
일곱 분의 부처님을 일컫는다
영산전 연등
평화의 불 빗돌
선묵혜자 스님이 부처님 탄생 성지 룸비니를 밝히던
평화의 불을 채화하여 3만리 이운의 길을 통해 한국으로 모셔와
오늘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며 태화산 마국사에 평화의 불을 밝힌다
수선사(修禪社)
영산전 오른편에 있다
수선사(修禪社) 현판
매화당(梅花堂)
영산전 왼편에 있다
매화당(梅花堂) 현판
우송 민효식(友松 閔孝植)의 글씨다
태화선원(泰華禪院)
매화당(梅花堂) 주련이다
해탈문(解脫門) / 충청남도문화재 자료 제66호
마곡사의 정문으로서 이 문을 지나면 속세를 벗어나 불교세계(法界) 를 들어가게 되며
해탈을 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고 하여 해탈문이라 한다
중앙 통로 양편에 금강역사상 · 보현 · 문수 동자상을 모시고 있다
고종 1년(1864)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해탈문(解脫門) 현판
태화산 마곡사 해탈문 중수기(泰華山 麻谷寺 解脫門 重修記)
나라연금강(那羅延金剛)
천상계의 역사로 그 힘의 세기가 코끼리의 백만 배가 된다고 한다
나라연금강은 입을 크게 열어 「아」 하고 소리를 내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아금강역사」라고도 한다
이때의 「아」는 범어의 첫째 글자이고, 「훔」은 끝 글자이다
이 금강역사의 입은 시작과 끝을 연결하는 영원과 통일을 상징하는 것이다
상의를 입지 않고 옷을 허리에 걸친 채
주먹을 쥐어 안으로 한 팔을 올리고 한 팔을 내린 자세를 취하거나
한 손으로 칼을 잡고 있는 모습 등을 취하기도 한다
밀적금강(密迹金剛)
밀적금강은 손에 금강저(金剛杵)라는 무기를 가지고 항상 부처님을 호위하는 야차신으로
부처님의 비밀한 사적을 들으려는 서원을 세웠으므로 밀적이라고 한다
입을 굳게 다문 채 방어하는 자세를 취하므로 「훔금강역사」라고도 한다
금강역사는 탑 또는 사찰의 문 양쪽을 지키는 수문신장의 구실을 담당하며
「인왕역사(仁王力士)」라고도 한다
비를 조절하는 용신과 힌두교의 우신인 인드라와 관련이 있어
가뭄이 들었을 때 금강역사에게 기원한다
이들의 머리 뒤에는 커다란 원형의 두광(頭光)이 있다
이는 이들이 단순히 힘센 이가 아니라 신성한 지혜를 고루 갖추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문수보살(文殊菩薩)
「훌륭한 복덕을 가진」 혹은 「완전한 지혜를 가진」 불교 보살이다
지혜를 완전히 갖춘 보살로서 석가모니불의 교화를 돕기 위해 나타난 보살이다
여러 형태 중 사자 · 공작을 타는 것은 그의 지혜가 용맹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손에 청련화를 쥐고 있는 형상은 일체 여래의 지혜와 무상(無相)의 지덕을 맡아서
제법에 물들지 아니하여 마음이 머무르는 곳이 없다는 뜻이다
동자로 문수의 분신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보현보살(普賢菩薩)
불교의 진리와 수행의 덕을 맡은 보살이다
경전을 수호하고 불법을 널리 퍼뜨리며, 희고 큰 코끼리를 타고 있다
이는 자비행을 실천해 나가는 행자(行者)의 모습이다
수행의 과덕(果德) 그 자체를 화엄의 대표적인 행원인 보현행원으로 승화시킴으로
불교 실천행의 상징이 된다
불세계를 드러내고 중생구제 원력으로 보살행을 실천하는 대표적인 보살이며
화엄의 교주인 비로자나의 본질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보살이다
천왕문(천왕天王門) /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제62호
해탈문에 이어 마곡사의 두 번째 문으로 조선 후기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 안쪽에는 동서남북의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인 사천왕상 (四天王像)이 안치되어 있다
사천왕은 천상계의 가장 낮은 곳인 사천왕천(四天王天)의 동서남북 네 지역을 관할하는 신적 존재로
부처님이 계신다는 수미산의 중턱 사방을 지키면서
인간들이 불도를 따라 사는지 살피어 그들을 올바르게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마곡사 소조사천왕상 / 북방다문천왕 · 동방지국천왕
사천왕은 고대 인도의 신으로 불교에서 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상상속의 수미산 중턱에 살면서 동서남북 네 곳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이 사천왕상은 점토로 만들어 「소조 塑造」를 붙였으며
중국식 갑옷을 입고 여러 가지 상징물을 든채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다
북방다문천왕은 비파 · 동방지국천왕은 검 · 서방광목천왕은 당과 채과 바구니
남방증장천왕 용과 여의주를 들고 있으며
의자에 앉아 발 아래의 생령(生靈)을 밟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
마곡사 사천왕상은 국가보물로 지정되었다
마곡사 소조사천왕상 / 남방증장천왕 · 서방광목천왕
사천왕상은 높이가 4m에 달하며 건물과 맞닿아 있는 고정된 형태로
청왕문을 세울 때 함께 조성된 것으로 본다
동방지국천왕 의자 오른쪽에 「강희(康熙)」 23년 계해(癸亥)라 적혀 있어
숙종 9년(1683)에 조성된 것을 확인하였고
이 기록은 우리나라 사천왕상 연구의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누가 만든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마곡사 경내에 같은 시기에 세워진
다른 불상을 제작한 조각승 단응(端應) 유파의 작품일 것이라 추정한다
명부전(冥府殿) /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지장보살과 염라대왕을 비롯한 시왕(十王)을 모신 곳으로 1939년에 건립되었다
지장보살은 불교에서 구원의 상징으로, 모든 인간을 교화시켜 성불하도록 인도하는 역할을 맡은 보살이다
시왕은 인간이 죽은 후에 지옥에서 죄의 크고 작음을 가리는 10명의 왕으로
염라대왕은 그 중의 다섯 번째 왕이다
명부전(冥府殿) 현판
지장보살 · 시왕(十王)
지장보살
극락교
마곡천을 사이에 두고
북쪽의 대웅보전과 대광보전이 있는 화엄공간을 북원이라 하고
남쪽의 영산전이 있는 선(禪) 수행 공간을 남원이라고 한다
마곡천
작은 물고기들이 놀고 있다
응진전(應眞殿) / 충청남도의 문화재자료 제65호
부처님을 중심으로 부처님의 제자인 16나한을 모시고 있다
16나한은 중생에게 복을 주며, 중생을 바른 법으로 인도하기를 원하는 성자(聖子)를 말한다
철종 3년(1852)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건물 전면에만 창호를 달아 출입하도록 하고
나머지 삼면은 회사벽(灰沙壁)으로 마감한 특징이 있다
*
마곡천을 건너 북원으로 들어간다
범종각(梵鍾閣)
극락교를 건너 오른편에 있으며
아래 층에 초 · 공양미 등을 파는 판매점이 있다
범종각(梵鍾閣) 현판
감로수
마곡사 대광보전(大光寶殿) / 보물 제802호
대웅보전과 함께 마곡사의 본전(本殿)이다
임진왜란으로 불 타 없어진 것을 정조 9년(1785)에 다시 지었다
건물 내부에는 진리의 상징하는 비로자나불이 동쪽을 바라보며 모셔져 있으며
후불탱화로 영산회상도가 봉안되어 있다
내부 바닥에는 참나무로 만든 돗자리가 깔려 있으며
전면 창호에는 다양한 꽃살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대광보전은 안팎으로 구성과 장식이 풍부하고 건축 수법이 독특한 건물로
조선 후기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마곡사 오층석탑 / 보물 제799호
일명 다보탑 또는 금탑이라고도 부른다
탑의 2층 네 면에는 소박한 솜씨로 「사방불」이 양각되어 있으며
상륜부에는 청동제인 풍마등이 조성되어 있다
라마식 보탑과 유사한 점으로 보아 원나라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사방불이란 동서남북의 방위개념으로 모든 방향을 포괄하는 상징이기도 하므로
사방불은 모든 공간에 부처님이 영원히 거주한다는 불신상주의 전형적인 모델이라 할 수 있다
오층석탑에는 나라의 기근을 3일간 막을 수 있다는 전설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마곡사 대광보전(大光寶殿) 현판
시문서화 사절로 꼽히던 표암 강세황(姜世晃 1712~1791)의 글씨다
글씨체는 약간 흘림체로 힘이 있고 유려하다
비로자나불
비로자나 부처님이 건물 서쪽에서 동쪽을 바라보도록 특이하게 봉안되어 있다
비로자나 부처님은 진리 자체를 상징하는 부처님으로
진리의 몸이 온누리에 두루 비치는 광명의 빛을 내어 모든 이들을 지혜의 길로 이끌어 주신다
비로자나 부처님 뒷벽에는 18세기 후반 조선회화의 특징을 그대로 살린 백의수월관음도가 봉안되어 있다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환희심을 불러일으키는 관음보살님으로 이름나 있다
영산회상도
대광보전의 후불탱화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1788년 조성된 이 영산회상도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6대보살 · 10대 제자 · 용왕과 용녀 · 사천왕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곡사 대광보전 기둥
쟁극광통달(爭極光通達) / 청정함이 지극하면 광명으로 통해
적조함허공(寂照含虛空) / 고요한 비추임은 허공을 머금는다
*
전면 창호에는 다양한 꽃살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심검당(尋劒堂) · 고방
지금도 수선사 · 심검당 · 고방 등 생활공간도 잘 보존되어 있다
심검당(尋劒堂) 현판
정조 연간에 청백한 관리로 이름난 송하 조윤형(曺允亨 1725~1799)의 글씨다
마곡사(麻谷寺) 현판
근대 서화가인 해강 김규진(海剛 金圭鎭 1868~1933) 의 글씨다
*
외삼촌인 서화가 이희수에게 8세 때부터 글씨를 배웠고, 18세 때 중국에서 8년간 서화를 공부했다
귀국 후 왕세자인 영친왕의 사부가 되어 글씨를 가르쳤다
1903년 소공동 대한문 앞에 「천연당」이라는 사진관을 열었고
1913년 그 사진관 안에 「고금서화관」이라는 최초의 근대적 화랑을 개설하여 서화매매를 알선하기도 했다
관음전(觀音殿) · 연화당(蓮華堂)
관음전(觀音殿) 현판
연화당(蓮華堂) 현판
템플스테이
장독대
대웅보전(大雄寶殿)
대향각
개축 공사중이다
대웅보전(大雄寶殿) / 보물 제801호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조선 효종 2년(1651) 각순대사에 의해 중수되었다
중수기에는 대장전(大藏殿)으로 지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언제부터 대웅보전으로 바뀌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는 않다
외관상으로는 2층 건물 형태인 중층(中層)이나 내부는 하나의 공간이다
건물 내부 중심에는 석가모니불을 좌우에는 아미타불과 약사불을 모시고 있다
현존하는 전통 목조건축물 가운데 많지 않은 중층 건물로
목조 건축의 아름다운 조형미를 잘 표현하고 있다
대웅보전(大雄寶殿) 현판
편액 중 가장 오래된 글씨로
신라의 명필 김생(711~791)이 쓴 것으로 전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석가모니불
대웅보전(大雄寶殿)
법화경에 석가모니 부처님을 큰 영웅이라 한데서 유래한 것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주석하시는 집이라는 뜻이다
대웅보전 담
작은 바람이 돌로 쌓여져 있다
마곡사 관세음보살
공주 마곡사 대광보전과 백범당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기념하고 세계 각지에 무단 반출된 문화재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일본에 있는 백제미소 관세음보살을 기초로 하여 모셨다
마곡천
성보박물관로 간다
마곡천
마곡천
성보박물관
템플스테이
템플스테이
백범당 · 응진전
백범 김구 선생이 머물다 간 곳이다
대광보전(大光寶殿)
통기타 부부듀엣 마음자리TV
마곡천
주차장으로 가며 봤다
마곡사 안내판
마곡사 안내도
마곡사 데크길에 있는 글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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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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