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노 선생 사적지(수덕여관) / 충청남도 기념물
고암 이응노(顧菴 李應魯 1904~1989) 화백이 작품활동을 하던
수덕여관과 우물 · 암각화를 포함한 일대 1,504㎡가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응노 화백은 전통과 현대 · 동양과 서양의 세계를 접목하는 시도를 한
근현대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예술가로
국내뿐 아니라 유럽 화단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수덕여관은 이응노 화백이 1944년 구입하여 6.25전쟁 당시 피난처로도 사용되었으며
1959년 프랑스로 건너가기 전까지 머물면서
수덕사 일대의 아름다운 풍경을 화폭에 옮기는 작업을 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수덕사 위쪽에서부터 내려온 좁은 개울물이 집 앞으로 흘러 지나가고
개울 건니편에 여관을 배치하였다
가운데 안마당을 두고 ㄷ자 초가가 감싸고 있는 여관은 일제강점기 때 지은 것으로 보이는데
여관만 아니라면 소담하면서 궁색하지 않은 전형적인 농가 모습이라 하겠다
후면에는 이응노 화백이 사용하던 우물이 있다
이응노 선생 사적지를 찾는 사람들은 바위 위에 새겨진 암각화를 먼저 찾는다
이응노는 1967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고
1969년 사면된 뒤 다시 프랑스토 떠나기 전 이곳에 며물면서
바위에 2점의 문자적 추상화로 암각화를 남겼다
이응노 선생 사적지(수덕여관)
예산 덕숭산 수덕사 경내에 보존된 초가집으로
이응로 화백의 첫째 부인인 박귀희 여사가 2001년 돌아가실 때까지 수덕여관을 운영하였다
박귀희 여사가 돌아가신 후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수덕여관을 토지소유주인 수덕사에서 수덕여관 건물을 매입하고
예산군에서 원래의 모습대로 다시 복원하였다
수덕사 선 미술관(修德寺 禪 美術館)
이응노 선생 사적지(수덕여관) 대문 위에 있다
화가 고암 이응로(1904~1989) 빗돌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20」은 이응로 선생이 한때 작품활동을 하였던 곳으로
그 역사성을 기념하기 위하여 여기 표석을 세운다
고암 이응노 화백 고택 복원기념석 / 2007년 10월 5일
顧菴 李應魯 畵伯 古宅 復元記念石 / 2007年 10月 5日
감로당(甘露堂)
수덕여관 맞은편에 있다
감로당(甘露堂) 현판
이응노 선생 사적지(수덕여관)
예산 덕숭산 수덕사 경내에 보존된 초가집으로
고암 이응노 화백(顧菴 李應魯 畵伯 1904∼1989)이 작품활동을 하던 집이며
그 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 화가 나혜석이 머물기도 하였다
*
건물 구조는 정면 5칸이 길에 접해 있으며
반대편으로 각각 6.5칸과 4칸이 ㄷ자형 날개를 이룬다
이응노 선생 사적지(수덕여관)
이응노는 동양화의 독특한 화법으로 유명한 화백인데
1944년에 이 집을 구입하여 6.25전쟁의 피난처로 삼아 작품활동을 계속하다가
1959년에 프랑스로 건너갔다
우물
암각화
1959년에 프랑스로 건너갔다
그 후 1967년 동백림사건에 연루된 후 잠시 귀국하여 이곳에서 요양하였는데
이때 근처 바위에 남긴 암각화가 지금도 남아있다
*
둘레 7.6m · 높이 75cm의 바위에 문자체로 그림을 조각하였다
글자 같기도 하고 사람 모양 같기도 한 것이 역동적으로 표현되이 있다
무엇을 그린 거냐고 묻는 이들에게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며, 영고성쇠(藥精盛券)의 모습을 표현했다
여기에 네 모습도 있고, 내 모습도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다"라고 했다는 말이 전혜진다
암각화
둘레 17m · 높이 85cm의 바위에 문자체로 그림을 조각하였다
*
바위에 문자적 추상화 2점이 있다
암각화
바위에 문자적 추상화 2점이 있다
수덕사 선미술관 (修德寺 禪 美術館)
이응노 및 근현대 예술인의 작품과 불교미술품을 전시하고 있다
석불상
선미술관에서 일주문으로 건너는 해탈교에 있다
*
2024.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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